집을 나오고 나서 나는 시골로 내려갔다. 갈 곳도 없거니와 그냥 부모님 따라 농사나 짓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집을 나올때 챙긴건 내 몸뚱이와 지갑정도밖에 없었다. 기차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레이무도 윳쿠리인데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겠지.
우리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은 내 고향이다. 20대 초반에 큰물에서 놀겠다고 도시로 갔는데 다시 오다니.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도착해서 인사하니 부모님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버지는 요즘 농사일이 더 힘들어졌다고 하셨다. 이유는 당연히 윳쿠리 때문이다. 예전에는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거만 조심하면 됐는데 윳쿠리는 계속 온다는 거다.
"그 썩을 대가리들은 한도 끝도 없어! 말하는 짐승이다 싶어 타일러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어째 말이 안통하더라. 그냥 인간 목소리 흉내를 내는거 뿐이었다."
"아부지, 그......대가리들 뭘로 만든건지 아시죠?"
"알다마다! 그놈들 팥빵이더만. 그래서 때려 잡으면 밭에 거름으로 준다."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아부지는 날 일찍 깨웠다. 내가 새벽 아니냐고 묻자 아버진 윳쿠리들이 새벽부터 움직이니 우리도 나가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 집은 2층이었는데 2층에서 세 들어 살던 아저씨는 딴대로 가셨단다. 그래서 2층이 내 차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창고에서 엽총을 하나 꺼내셨다. 원래는 고라니 사냥용으로 장만한 것인데 이걸로 윳쿠리 잡는다고 한다. 한방에 터진다나 뭐라나. 정자에서 총들고 앉아 있으니 한 윳쿠리 가족이 내려왔다. 레이무와 마리사로 이루어진 매우 평범한 윳쿠리 가족. 아버지는 그들에게로 총구를 겨누었다.
"인간씨들은 비겁하다구. 어째서 멋대로 자라나는 야채씨들을 독점하는 거냐구?"
"맞다제. 그러니 이 야채씨들은 마리사들의 것이라제!"
"염병하네."
탕!
아버지의 정확한 사격 실력으로 마리사가 터졌다. 옆에 있던 레이무와 아기 윳쿠리들은 마리사의 시체를 시체인줄 모르고 달콤달콤이라며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저렇게 하나만 죽이면 나머지는 뜯어먹는다고 정신 없으니 그때가서 잡으라고 했다.
"아, 애새끼들만 데리고 오너라. 저기 빨간 큰놈은 죽이고."
난 아버지 말대로 작은 호미 들고 가서 어미 레이무의 이마를 찍어버리고 리본을 뺏어 머리에 올렸다. 아기 윳쿠리들은 이제 날 어미로 인식할거다. 따라오라고 하니 순순히 따라왔다. 아버지한테 이것들을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그냥 입속에 던져 넣으셨다. 내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자 아버지가 말하길,
"큰놈들은 너무 커서 별로고 작은 애새끼들은 한 입에 쏙 들어가니 좋더구나. 요것 참 별미야."
나도 아기 마리사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입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지만 몇번 씹으니 잠잠해졌다. 음, 아기 윳쿠리도 먹을만하네. 그런데 흙맛이 조금 난다. 한 5시쯤에 일어났으니 지금은 아마 8시쯤 되는거 같다. 아버지는 총을 나한테 주시고 씻으러 가셨다. 나는 총을 배고 누웠다. 누워 있으니 레이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흉터가 가득했던 그 얼굴을 잊을수 없다. 초점이 없었던 한쪽 눈을 잊을수 없다. 그 얼굴을 잊어버린다면 겁을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누워 있자니 새벽에 못잔 잠이 몰려와 눈을 감았다.
한 몇시간 지났을까? 아버지가 날 깨웠다. 총이 당장 필요하다며 날 재촉했고 난 무슨 일인가 보았다. 도스 마리사가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런 큰 놈은 처음 본다고 말하셨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봤던 도스들보다 더 크신 모양이다. 그런데 더 신기한건 몸이 달려 있다고 했다. 나는 (○_○) 이런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따라갔다. 말 그대로였다. 그 도스는 인간처럼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15m급의 초 거대 도스가. 도스는 마을 이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을 이장님은 손짓으로 아버지를 불렀고 아버지는 총을 다시 나한테 떠넘기고 이장님 쪽으로 갔다.
"거참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구나."
"뭔데요?"
"저 큰놈은 산에서 오는 놈들을 막아주겠다고 하는데? 이미 그 대가리들한테 질릴도록 질렸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더라."
인간에게 우호적인 도스는 나도 처음본다. 도스들은 마리사종 특유의 자만심이 수상 마리사들 보다도 더 심한데.......아버지 말대로 참 별일이다.
그럭저럭 몇년 정도를 시골에서 살았다. 뭐, 별거 없었다고 말하는게 더 편할거 같다. 마을에 큰 재해같은게 있다면 도스가 막아주었다. 큰 홍수가 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도스가 어디선가 바위를 들고와 그쪽을 막았다. 마을의 도스가 가짜 도스들, 즉 우리가 도게스라고 하는 도스들이 몇번 쳐들어 왔지만 마을의 도스가 다 밟아 죽였다. 그것도 벌레 보듯이 쳐다보면서 밟아 죽였다. 나도 모습이 꽤 변했다. 수염을 잘 안잘라서 좀 덥수룩하게 수염이 났고 피부도 꽤 까매졌다.
그리고 그때 다시 시골을 떠났어야 했다.
평소처럼 윳쿠리들로부터 작물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머니가 나보고 선을 보라고 하셨다. 난 결혼에 생각이 없다고 어머니께 말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이제 서른 넷인데 아직도 장가를 못갔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흉을 본다고 했다. 그래서 수염도 깎고, 머리도 다듬고 좀 꾸몄다. 선을 보는 장소가 도시쪽이라서 오랜만에 도시로 갔다. 찻집에서 기다리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알려준 찻집에서 좀 앉아있자 선을 본 여자가 들어왔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난 원래 결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뭐랄까.......딱 내 이상형이었다. 포니테일로 묶은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새하얀 피부.......그야말로 반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큰 가슴까지. 그녀는 수줍게 내 앞에 앉았다. 그녀는 나에게 활짝 웃음을 보였다.
"안녕하세요? OO씨죠?"
그녀는 목소리도 아름다웠다. 일단 찻집이니 메뉴를 주문했다. 그녀는 홍차를, 나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차를 마시며 그녀에 대한걸 물어보았다. 그녀는 지금 윳쿠리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가 나의 직업을 물어보았을때 난 뭐라 말할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였다. 배려심도 좋았다. 차를 다 마시고 나서 돈을 내려 하는데 마침 지갑에 돈이 교통비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제가 낼게요."
헤어지는 길에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녀는 흔쾌히 나에게 알려주었고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붙잡으며 집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이 나한테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내 이상형이라고 말했고 부모님은 좋아라 하셨다.
"아이고! 잘됐다 아들아. 이 어무이가 너한테 좋은 여자 소개시켜주려고 억수로 고생했다."
"그 여자 전화번호도 땄어요!"
나는 집 전화로 그녀의 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누를때마다 혹시 틀린건 아닐까, 다른 사람 전화일까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뚜르르르 하는 연결음이 걸리고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 주셨네요. 그럴줄 알았어요. 후훗. 다음에 한번 더 만날까요? 언제로 할까요?"
"내일 만나죠. 당신을 보고싶어 참지 못하겠습니다."
"좋아요. 내일 오전 11시에 오늘 만났던 찻집에서 봐요."
나는 그날밤 잠을 자지 못했다. 그녀를 한번 더 만난다는 것에 너무나도 긴장되어 참을수가 없었다. 아마 천사가 있다면 그녀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고 그건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그녀를 만날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아름다웠다. 어제는 흰색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오늘은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의 천사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오셨네요. 밥이라도 먹으러 가죠."
그날은 데이트의 날이었다. 정확하게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다. 우린 몇번 더 만났고 나는 그녀의 집에까지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번도 나에게 화장을 지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왜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애인 앞에서는 잘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겠지 하고 넘어갔다.
어느날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래 지냈는데 결혼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혼수도 비용 마련도 모두 자기가 하겠으니 나는 몸만 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거절할게 뭐가 있었겠나? 당연히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을에 식을 올렸다. 친구들은 나보고 결혼 늦게가는 놈이라며 놀렸다. 36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꼭 내가 레이무를 피해 집을 떠난지 10년 만이다. 날짜도 같았다. 꺼림직한 기분도 들었으나 기쁜 마음이 더 커 가려졌다. 신혼여행 첫날밤, 생각해보면 이게 처음 남녀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그리고 맨 얼굴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의 맨얼굴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나는 그때까지 동정이었고 그녀도 처녀라고 말했었다. 둘다 처음하는 것이었다.
-(생략)-
한창 하고 있을때 그녀가 내 위에 올라탄 자세였을때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똑똑히 기억한다. 그 얼굴을. 절대로 잊을수 없는 그 얼굴을.
"레, 레이무?"
"어머?♥ 이제야 레이무를 알아보는거야?♥ 이제 오빠야는 내.껀.데?♥"
나는 레이무를 뿌리치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레이무는 내 팔을 자신의 두 팔로 제압했다. 나는 분명 근육이 조금 있는 편이었는데 레이무의 힘은 그것보다도 강했다. 레이무는 하나 남은 눈으로 날 내려다 보았다. 그건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눈이 아니었다. 사냥꾼의 눈이었다. 마침내 사냥감을 손에 넣은 사냥꾼의 눈.
"왜 레이무를 버리고 간거야?"
"레이무는 오빠야를 좋아했는데."
"레이무는 오빠야를 정말로 좋아했는데."
"왜?"
"딱 한마디면 됐잖아."
"레이무, 나는 널 좋아해."
"이거면 됐잖아."
"그게 어려워?"
"어려워?"
"어렵냐고!"
레이무는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있는대로 힘이 다 빠져간 나는 저항할 힘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숨이 막혀 말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나는 눈을 떴다. 나는 그게 꿈이길 바랬다. 한 윳쿠리가 주인을 너무나 사랑해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하하하...........허나 꿈이 아니다. 이건 진실이다. 흉터가 가득한 얼굴의 레이무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으니까. 레이무는 부릅 눈을 뜨고 말했다.
"아♥, 오빠야 일어났네? 이젠 말이야. 오빠야랑 레이무는 진짜 부부지?♥ 응?♥"
레이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은 무서웠다. 입에서는 꺼림직하고 두려운 목소리와 미소가 있었다.
"내,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어딨어? 넌.....그녀가 아니야."
"그래? 흠흠,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남.편.님?"
레이무는 머리를 묶었다. 그녀와 똑같았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다. 채념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레이무다.........
"이제, 레이무가 다 책임질거야.♥오빠야는 그저 레이무만 바라보고 사랑해줘.♥ 응? 응?♥"
"..........."
그 후 나는 그냥 레이무와 살기로 했다. 좀 무섭긴 하지만. 아이도 2명이나 생겼고, 레이무는 몇가지는 거짓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실이었다. 윳쿠리 관련 사업이라는건 내가 하던 디자이너 생활을 계속 하던 것이었다. 그냥 아이디어랑 간단한 스케치만 보내면 되었다고. 인간이 된건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어느날 갑자기 되었다고. 꿈에 가면 쓴 사람이 나오고 난 뒤에 되었다나 뭐라나. 내가 미처 치우지 못했던 내 방의 노트들을 본 모양이다. 그걸로 내 취향을 열심히 조사했다고.
"여보? 뭐해?"
아내가 부른다. 오늘 나들이 가기로 했었지. 나는 준비를 다 끝내고 있었다. 한가지만 빼고.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풀어주는 거야?"
아내는 내가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나에게 족쇄를 채워놓았다. 의미적으로도 실제로도. 아이들이라는 족쇄와 진짜 족쇄.
"그런데 계속 이러는 이유가 뭐야 레이무?"
"음......."
대답이 어려웠나?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날 바라본다. 언제 나갈꺼냐는 눈치다. 레이무는 아이들과 날 번갈아보더니 내가 선을 볼때 보았던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레이무는 오빠야를 좋아하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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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해피엔딩!
배드 엔딩은 생각이 안나서 해피엔딩이에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