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 : ?
-끝★-
원출처 : 구 윳쿠리 사이트
[단편] 윳쿠리 학대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
집 뒷마당에 취미삼아 돌보고있는 작은 야채밭에 꾀죄죄한 행색의 마리사가 기어오길래, 툭 하고 가볍게 걷어차줬다. 둔중하게 데굴데굴 구르던 놈은 고개를 들고 빽, 소리지른다. 뻔하다. '왜 자신을 걷어차느냐.'
이웃집의 성격 고약한 할아버지도 작은 야채밭을 일구고, 공교롭게도 심는 작물도 똑같은 당근이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내쪽에서 미리 벽돌로 작은 담까지 만들어 뒀으니 '모르고 온거야' 라는 변명따윈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나온말이 약속의 패턴, '여기는 니 밭이 아니라 야채가 제멋대로 자라난 장소일 뿐이다.'
이웃집의 성격 고약한 할아버지는 야채밭에 몰리는 윳쿠리라면 '나는 이 똥만쥬가 싫어!! 지겨운 개자식들!!' 이라고 오만 욕설을 내뱉으며 누구든 문답무용으로 두드려 으깨 버렸다. 그래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윳쿠리도 제법 되서 그 방법이 과연 효과가 있나- 했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벌금 청구서 꽤나 받았지만 윳쿠리들 사이에서도 '성격 고약한 할아범이 저기 산다' 라는 소문이 퍼졌는지 할아버지의 밭에는 윳쿠리의 '윳'도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덕분에, 윳쿠리들이 옆집인 내 밭으로 더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말이 통하는 윳쿠리도 많았지만, 내가 '야채는 씨앗을 심어서 자라는 거지 제멋대로 자라는게 아니다' 라고 골백번 말해도 이놈들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야채 도둑질 하려고 와서는 약속이라도 한듯 똑같은 소리, 즉 '야채는 멋대로 자라는 거고, 그 땅을 독점한 내가 나쁜 놈' 이라는 소리만 줄창 해대니 사람이 버틸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냥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등 떠밀어 돌려보냈다. 그러자 이놈들은 내가 잠든 밤에 도둑질을 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놈들은 작은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렸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야채밭에 본격적으로 방범장치를 해둘까 했지만 본업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일에 그런 거금을 부을 정도로 내가 돈이 남아도는건 아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밭 도둑질 하러 오는 윳쿠리들의 머리장식을 뺏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녀석들은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다시 되돌려줬지만 꿋꿋하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난동부리는 놈들은 눈 앞에서 머리장식을 불태워버리고 걷어차 내쫓았다. 예전보다 윳쿠리들의 침입은 줄었지만, 여전히 질리지도 않고 뒷마당에 침입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야채밭을 만들고 쳐들어온 윳쿠리들을 마구 학대한 것도 이때쯤이었기 때문에, 좀더 만만한 내 밭을 노렸던게 분명하리라. 그리고 이 녀석도.......
할 수 없다. 이 녀석의 머리장식도 뺏어 불태워버리자, 라고 생각하고 모자를 집어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입 험하게 욕과 저주를 내뱉는다. '왜 그러는거야, 왜 그러는거야,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야채씨를 독점한 주제에 왜 이러는거야.'
정말이지 아무 할 말도 안나오는 한심함에 질려버린 나는 아무 대꾸 없이 모자를 불태워버렸다. 당연히 더욱더 심하게 소리지르며 욕과 저주의 강도도 강해졌다. 더는 이놈과 상대하기 싫어서, '다음부터는 너같은 게스를 죽여버릴거야, 모자만 불태운 너는 다행인줄 알아' 라고 말하고 울타리 밖으로 던지려 했다. 그러자 그때 놈은,
"병신같은 인간씨의 잣대로 함부로 마리사님을 게스라 부르지 말라제!!"
라고 고함을 질렀다. 지금 뭐라고 그랬냐- 라고 말하자, 놈은 다시 빽빽 고함지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눈다, 니들 마음에 안들면 다 게스 아니냐, 너희의 가치관을 우리들에게 적용시키지 마라, 우리는 적에 불과한 너희의 도덕을 따르지 않겠다, 등등등. 기가 막혔다. 제딴에는 이런 소릴 하면 내가 내 행동을 뉘우치고 반성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게스의 팥소뇌에서 나온 생각을 내가 따라줄 의무는 없다. 문답무용, 나는 놈을 가능한 높이 집어들어 있는 힘껏 야채밭을 향해 던졌다. 유뷰게엑! 하는 단말마와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팥소와 만쥬 가죽이 제법 크게 자란 당근 이파리에 후둑 후둑 튀었다.
반쯤 허물어진 몸으로 마리사는 이해할수 없다는 듯, 증오와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 눈을 보며, 나는 평소에 내가 윳쿠리에게 가졌던 생각을 하나 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설익은 마인드를 가졌으니 윳쿠리들은 인간에게 당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누고,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게 게스니 해충이니 악당이니 매도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건 윳쿠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자가 있으나 모자가 없으나,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눈에는 같은 윳쿠리인데도 모자가 없다는 너무나 단순한 이유로 모자가 없는 윳쿠리들은 '악'으로 굴러떨어진다. 그 윳쿠리가 인간은 물론, 사회적인 동물인 윳쿠리의 기준으로도 달리 악한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른 장애 윳쿠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윳쿠리가 윳쿠리들의 기준으로 달리 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단지 생긴것이 느긋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동족에 의해 학대당한다. 물론, 인간도 거미나 박쥐같은 소위 불길한 외형을 가진 동물과 동족인 인간도 장애인이란 이유로 기피했던 것이 사실이니 장식 없고 추한 동족을 괴롭히는 윳쿠리를 비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그런 동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고, 장애인들을 탄압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재평가하는데 성공했으며,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나 집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윳쿠리들은 그런 행동을 했던가. 이해하려는 노력은 커녕 느긋할 수 없다는 딱지를 씌워 추방하기 바뻤다. 그런 주제에, 자신들의 편견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인간에게 제멋대로 선과 악을 나누는 독단적인 생물이라고 하는 건 이중잣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과거의 인간들은, 다른 동물들은 물론이요 같은 동족인 인간끼리도 타자의 관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이 무조건 자신들의 가치관과 도덕을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단지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적용시키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반대로 타자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 속에서 공존할 타협점을 찾으려는 인간도 숱하게 많았고, 많으며,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윳쿠리들은 어떤가. 인간들의 관습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윳쿠리들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무고한 윳쿠리를 학대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함부로 윳쿠리들의 서식처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고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내린다. 그러나 윳쿠리들은 무엇을 했는가. 정당하게 씨앗을 사서 땀흘려 경작한 인간 앞에 나타나 고압적인 자세로 인간을 도둑으로 몰고 노력해 수확한 결실을 빼앗으려 들었다. 인간들이 땀흘려 지은 집을 제멋대로 점령하고 먼저 찾았으니 우리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채가 어떻게 자라는지, 집을 어떻게 지은건지, 인간이 아무리 친절하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면서, 왜 그런 행동으로 피해를 입는 인간은 그래선 안됀다는 것일까. 이런 윳쿠리들의 아집에 질린 인간중 일부가 윳쿠리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이런 인간들 덕분인지 몰라도, 윳쿠리는 인간을 느긋하지 못한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마리사도 나를 '적'으로 매도하며 '적의 도덕을 따르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인간들이 정당하게 획득한 수확을 제멋대로 아집부려 가져가려는 자들을 긍정적으로 볼 바보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들은 윳쿠리들을 보호한다. 법을 제정해 윳쿠리를 재미삼아 학대하지 못하게 막았고 함부로 윳쿠리들의 터전인 숲을 파괴하지 못하게 막았다. 서로의 차이점과 서로의 일방통행만 매도하며 계속 평행선을 달리면 남는 건 두 종족 모두의 파멸과 찌거기처럼 남은 증오의 잔재뿐이므로, 서로의 뜻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조금씩 꺾으며 공존하며 살아갈 방법을 택했다. 남은건 윳쿠리들의 몫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 눈앞에 있는 반쯤 으깨진 마리사같은 놈들이 많은 이상 앞으로도 공존의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야한다. 윳쿠리가 그러지 못하겠다면, 더 현명하고 더 강한 동물인 인간이 윳쿠리들의 몫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된다.
인간이 아무리 힘세고 강한 동물이라도 다른 동물들에게 불편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아무리 힘세고 강한 동물이라도 다른 동물들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다 양보해 줄 의무도 없다. 아니, 굳이 인간만이 아니다. 호랑이가 살아남으려면 토끼에게 죽음을 강요해야 하는 것처럼, 토끼가 살아남으려면 풀에게 죽음을 강요해야 하는 것처럼, 풀이 살아남으려면 흙에게 불편을 강요해야 하는 것처럼, 이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인간처럼 쓸데없이 스케일이 크지 않을 뿐 각자 서로에게 일정한 불편을 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자연에게 일정량의 불편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다른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을 위한 불편을 강요하는 이 불편한 현실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공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나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너가 게스라 불리는 이유며, 그것이 너가 학대받아야 하는 이유며, 그것이 너가 모자를 불태워진 이유며, 그것이 너가 몸의 절반이 으깨질 정도로 거칠게 야채밭에 내동댕이쳐진 이유며, 이제 곧 내 삽자루에 나머지 몸뚱이조차 으깨져야 할 이유다. 완전한 신의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이 완전한 판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최소한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피나는 노력은 한다. 그러나 너는 그러지 못했다. 너는 너가 불완전하리라는 점을 깨닫지도 못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과오와 아집을 반성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나에게 살해당해도 아무런 억울함도 표할 수 없다-----그렇게 말하며 나는 증오와 원망과 공포의 삼원색이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마리사를 향해 삽을 내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