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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5년 7월 29일 팥자총에 올렸던 글입니다. 

  원 제목은 '에라 로타스케는 느긋하게 살고 싶다구'...지만 그것도 몇번이나 바꾼겁니다. 전 제목을 잘 못 짓습니다.

 

 

*재미없는 도입부를 그냥 스킵하고 싶으시면 숫자 7이 나올때까지 쭉 내리세요.

 

 

= = = = = = = = = = = = = = = = = = = = 

 

 

1

 

  "햣하-------!"

 

  에라 로타스케는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 행사장에서 그의 생애 최고의 윳학을 펼쳐보이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윳학을 시연하는 동안 전혀 아픈 줄도 몰랐던 무릎과 허리가 다시 아파오고,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와 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힘없는 노인이 아니라 자부심있는 장인과 같았다. 사람들의 박수가 사그라들고,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목소리가 행사장에 울려퍼졌다.

  

  "네! 역시 47년 경력의 베테랑 학... 가공사다운 최고의 퍼포먼스였습니다. 이야, 정말 대단한 학ㄷ...가공이었습니다. 오랜 라이벌이 리타이어한 지금이라면..."

  

  이곳은 제 39회 루미웹 아마추어 윳쿠리 가공대회장. 일본의 윳쿠리 보호법상 이유없는 학대는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가공대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을 뿐, 실제로는 그냥 학대대회였다. 에라 로타스케는 이 대회에 1회부터 참가한 베테랑으로서, 지금까지는 강력한 경쟁자들 때문에 단 한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에 마지막 남은 라이벌이 윳학 은퇴를 선언했기에, 로타스케는 이번에야말로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방심하지는 않았다. 경쟁자들이 다 사라져서 우승을 날로 먹은 늙은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 오늘의 대회를 준비해왔다.

  

  "말이 너무 길어졌군요. 다음 선수는..."

  

  땀을 대충 닦고 자리에 앉은 로타스케는 다음 선수의 윳학을 잠시 관람했다. 이번이 두번째 참가라는 중학생이었다. 로타스케는 그 유치하고 진부한 윳학을 지켜보다가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젊었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놀라운 윳학을 선보이는 강력한 경쟁자들, 본 적도 없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뉴페이스들...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패기도 없고 열정도 없고 창의성도 없다. 로타스케는 흐린 눈으로 참가자 목록을 다시 훑어보고는, 아는 이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에 한탄하며 잠이 들었다. 65세의 몸으로 젊은이들도 따라할 수 없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결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2

  

  

  덥고 습하여 구름 비슷한 안개가 끼고, 팥소와 크림의 단내가 가득하며 시끄럽기까지 한 행사장. 그러나 로타스케는 피로감에 한참을 잠들었다가 옆사람이 흔들자 간신히 깨어났다. 그러나 완전히 잠이 깬 것은 아니었다. 시계는 어느새 오후 8시, 모든 참가자들의 공연이 끝나고 심사결과와 우승자를 발표할 차례였다. 로타스케는 잠이 덜 깬 눈을 들어 사회자와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사회자와 로타스케의 눈이 잠시 마주쳤지만, 사회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입을 열었다.

  

  "네. 심사가 끝났습니다. 다음 참가자분들은 무대로 올라와 주십시오. 29번 쮸쀼쮸쀼, 88번 부라리큰, 616번 기가슈니, 747번 오메가라디오..."

  

  로타스케는 여전히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같이 무대에 올라온 수상자들의 모습은 대충 살펴보았다. 잘해야 중고등학생, 혹은 대학 신입생이나 날백수정도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간에 눈에 확 띄는 백발의 소녀가 있었다. 코스프레 같은 걸까. 신성한 윳학을 하는 데 저런 가발을 쓰고 오다니, 요즘 젊은 것들이란...

  

  로타스케가 속으로 요즘 젊은 것들을 욕하면서 꾸벅꾸벅 조는 동안, 낮은 순위부터 상의 전달과 수상소감의 발표가 이어졌다. 로타스케는 자신이 마지막 차례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다른 참가자들의 윳학을 하나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뭐라고 떠들거나 박수조차 쳐주지 않았다. 그럴 힘이 없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이제 두 분밖에 남지 않았군요. 자, 과연 우승자는 누구일까요!"

  

  그 말 그대로, 이제 무대 위에 남은 사람은 백발을 짧게 자른 소녀와 백발이 다 벗겨져가는 노인, 두 명 뿐이었다. 로타스케는 조금 놀랐다. 130cm정도밖에 안되는 이 소녀가 준우승이란 말인가. 이런 골빈 모습을 하고 있는 여자애 따위에게 준우승을 뺏기다니, 요즘 젊은 것들은... 로타스케는 또다시 요즘 젊은 것들을 욕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남아있었다. 

  

  "제 39회 루미웹 아마추어 윳쿠리 가공대회, 우승자는......"

  

  그의 귀청을 때리는 사회자의 큰 소리에, 로타스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뜸을 들이는 듯 음악소리가 잠시 이어진다. 로타스케는 뚜둑거리는 어깨, 허리, 무릎의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코스프레 계집년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나이의 위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녀는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바닥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한심한 것.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따당! 음악소리가 멈추며 스포트라이트가 한 사람을 비추었다.

  

  "616번, 기가슈니 님입니다! 축하합니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로타스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3  

  

  

  "으... 으...?"

  

  "이제 좀 정신이 드시나?"

  

  로타스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과 함께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것은 빨간머리를 하고 이상한 옷을 입은 여자였다.

  

  "여기가... 어디요?"

  

  "아, 삼도천이야."

  

  "...? 감각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요?"

  

  "당신 죽었어."

  

  "그건 무슨 소리요?!"

  

  "죽었다니까. 여긴 삼도천이고, 나는 사신, 오노즈카 코마치."

  

  "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로타스케는 한참을 징징거리다가 코마치의 안내를 따라 배에 탔다. 그녀가 하는 말을 모두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로타스케는 이것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막 나가기로 했고, 덕분에 코마치는 로타스케의 노인네 개그와 성희롱을 당하면서 그를 삼도천에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고생해야 했다.

  

  

4

  

  코마치의 안내를 받아 삼도천을 건넌 로타스케는 한참 줄을 서 있다가 재판정에 들어섰다.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푸른 옷을 입은 녹색 머리카락의 소녀. 앞에 놓여있는 명패에는 이름과 직책이 쓰여있었다. 로타스케는 분명 처음 보는 문자이지만 어쩐지 읽을 수 있는 그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뭐야, 시키에이키? 또 여자야? 저승이라면서 순 미소녀 동물원이구만 이거. 난 아까 그 가슴 큰 여자가 더 좋던데, 바꿔주면 안 되나?"

  

  지금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로타스케의 불손한 말에, 낙원의 최고재판장 시키에이키 야마자나두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시키에이키는 정파리 거울로 로타스케의 삶을 살펴보고는 흑백을 가르는 능력으로 빠르게 판결을 내렸다.

  

  "흑. 내세에서 그 죄를 뉘우치도록 하십시오."

  

  "뭐? 아니 잠깐..."

  

  "다음."

  

  로타스케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시키에이키는 회오의 봉을 휘둘러 로타스케를 쫓아버렸다.

  

  

5

  

  

  잠시 의식을 잃었던 로타스케가 다시 눈을 뜨니, 이번에는 무슨 취조실같은 삭막한 방의 책상 앞이었다. 여전히 온몸의 감각이 없었지만 로타스케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 꿈이라지만 정말 정신없고 재미없는 전개로군."

  

  "꿈이 아니십니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

  

  그리고 그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듯이 아까 본 녹색 머리카락의 소녀와 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가 방에 들어왔다. 얼굴에 나는 공무원입니다라고 써붙여놓은 것 같은, 피곤하고 귀찮고 만사에 싫증이 난 듯한 표정을 한 흑인 남자였다.

  

  "드디어 남자가 왔구만... 넌 또 뭐냐?"

  

  "저는 환생설계사 에로튜스입니다. 고객님의 다음 생을 준비하시는 데 도움을 드리는 것이 제 일이죠."

  

  "별 쓸데없는 설정이 다 나오네... 이 꿈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꿈이 아니십니다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제 39회 루미웹 아마추어 윳쿠리 가공대회에 참가하셨다가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셨습니다."

  

  "..."

  

  자신을 에로튜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핸드폰 비슷하게 생긴 뭔지모를 기계장치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고객님께선 지난 생의 기억을 모두 지우셨네요. 그래서 상황파악이 잘 안되시는 모양인데... 간략하게 지금 놓이신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에로튜스의 설명은 정말 간략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여기는 저승입니다. 죽은 자는 생전의 선행과 악행 등을 종합하여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지옥행이나 환생 등의 판결을 받습니다. 당신은 환생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이 뭐라고?"

  

  "고객님께서 지금까지 환생을 반복하시면서 쌓은 선행과 악행에 따라서... '카르마'가 쌓이게 됩니다. 이걸 이용해서 다음 생에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난다거나, 또는 카르마를 절약해서 다른 데 쓸 수도 있지요."

  

  "그럼 내 카르마는 얼마나 되는데?"

  

  "고객님께서는 지난번에 환생하시는 데 카르마를 대부분 소진하셨고, 이번 생에는 벌점을 받으셨기 때문에 총 카르마는 47.39393928카르마, 소수점 이하는 버리시므로 총 47카르마 되시겠습니다."

  

  "높은 건가?"

  

  "글쎄요. 고객님께서는 지난번에 인간을 선택하셨고, 강대국인 일본에서, 부모님 둘 다 상류 계층에, 신체에 문제없는 일본인으로 태어나길 선택하셨는데... 여기에 들어간 카르마가 131,072카르마 정도 됩니다."

  

  "......그럼 지금 가진걸론 뭘 할 수 있지?"

  

  "고객님께서 가지신 카르마로 선택 가능하신 환생처는... 모기, 초파리, 바퀴벌레, 윳쿠리 정도 되시겠습니다."

  

  "뭐야 그게..."

  

  "고객님의 이번 생에 성과가 별로 좋지 못하셔서 그러신 것이시지요. 왜 그런지 아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음... 지난 생을 요약해서 보여드릴테니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답을 맞추시면 카르마에 보너스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에로튜스는 다시 기계장치를 적당히 조작하고는, 로타스케가 볼 수 있도록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로타스케의 지난 삶이 영화처럼 요약되어 빠르게 재생되었다. 일본의 유명 대학병원에서 안락하게 탄생, 상류층 유치원, 명문 소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아 윳쿠리 학대에 입문하고, 학대에 심취해 교내의 애호파들을 괴롭히다가 역으로 괴롭힘을 당한 끝에 결국 고교 입시를 실패, 평범한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대입을 준비하지만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채로 윳쿠리 학대에 너무 몰두하여 대학입시도 실패, 집에서 가까운 이름없는 대학에 진학, 부모님이 여행을 떠났다가 무슨 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학을 자퇴, 부모의 유산으로 윳쿠리 학대에 전념한다. 가끔 인터넷방송 유로파 TV에서 윳쿠리 학대 방송을 하며 달풍선을 받아 부수입으로 삼고, 루미웹의 윳쿠리 가공대회에 출전... 그리고 매일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고, 친척도 가족도 없이 윳쿠리 학대만을 하며 세월을 보낸 로타스케는 라이벌들이 모두 은퇴한 시점에 학대대회에 출전했으나 우승하지 못하고 수상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윳쿠리를 학대한게 잘못인가?"

  

  "아니오. 윳쿠리를 죽인 것은 모기, 파리, 바퀴벌레를 죽인 것과 같은 정도의 죄입니다. 고객님의 죄는 그것이 아니십니다."

  

  "뭐야, 전혀 모르겠는데. 그게 잘못이 아니라면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다는 거야?"

  

  "고객님의 죄는 인생을 낭비하신 것이십니다."

  

  

  

  

6

 

  

  로타스케가 지난 생을 반성했는지, 후회했는지 그런 것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전혀 중요하지도 않다. 에로튜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고객님은 인생을 낭비하신 죄로 카르마에 벌점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그 벌로서 앞으로 10회 동안 환생처를 선택하실 수 없게 되셨습니다."

  

  "......"

  

  "그러므로 제가 드릴 수 있는 선택지는 이것 뿐입니다. 이번 생의 기억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삭제, 보존, 유지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삭제는 말 그대로 이번 생과 이전의 모든 기억들을 삭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죠. 카르마에 약간의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다른 건?"

  

  "보존을 선택하시면 살아있는 동안은 전생의 기억을 잊어버리지만, 다시 저승으로 오시게 되면 전생의 기억들이 복원됩니다. 카르마에 영향은 없습니다."

  

  "...그럼 유지는?"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유지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거죠. 이 경우, 다른 환생조건을 선택하실 때 카르마 소모량이 증가합니다."

  

  "게임 같구만..."

  

  "게임이 현실을 흉내낸거죠.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환생할 곳은... 선택할 수 없다고 했었지?"

  

  "예. 하지만 1카르마를 써서 무엇으로 환생할지 미리 아실 수 있습니다."

  

  "알려줘."

  

  "고객님께서는 윳쿠리로 환생하시게 되십니다."

  

  "젠장."

  

  "이번 생에서는 더이상의 정보도 드릴 수 없고, 자세한 선택도 불가능하십니다. 전생의 기억,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47년 경력의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학대 베테랑인 로타스케는 윳쿠리의 무능함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인간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어리석은 행동이 윳쿠리의 생명을 얼마나 깎아먹는지 질릴 정도로 봐 온 로타스케는 더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하고 말했다.

  

  "유지하게 해 줘."

  

  "전생의 기억 유지를 선택하셨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고객님께서는 전생의 기억을 유지하신 상태로 윳쿠리로 환생하십니다. 맞으십니까?"

  

  "선택할 수 있는것도 별로 없잖아. 아무튼 맞아."

  

  "알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7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로타스케의 이해력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가 앉아있던 취조실같은 방의 벽이 나비로 변해 날아가버린다거나, 사방이 빛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거나, 다시 어두워지거나, 뭔가 통로 같은 것을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거나, 갑자기 어지럽게 빙빙 돌거나 하며 그가 이해할 수도 없고 제대로 인식할 수도 없는 과정을 거치고, 로타스케의 영혼은 지구 어딘가에 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윳쿠리의 중추팥소에 깃들었다.

  

  '아... 아무것도 안 보여... 여기가... 어디지?'

  

  로타스케, 혹은 아직 종류도 알 수 없는 윳쿠리의 몸에서 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싹트는데는 며칠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맞아... 나는 윳쿠리로 환생...한다고 했었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윳쿠리는, 동물형은 물론이고, 식물형이라도 눈을 뜨지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굳이 47년 경력의 학대파가 아니라도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럼 나는.... 태아 윳쿠리나... 열매 윳쿠리인가...'

  

  아직도 새로운 육체에 익숙해지지 않은 윳쿠리 로타스케는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처럼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려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신은 어떤 윳쿠리일까. 부모는 어떤 윳쿠리일까. 야생인가? 노숙인가? 애완윳인가? 학대파로서 쌓아온 지식에 비추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서 어느정도 추측이 가능하고, 미리 대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윳쿠리 로타스케는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자신이 무언가 부드러운 것에 감싸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태생이나 난생...인 것 같군.'

  

  식물형이라면 정수리의 줄기를 통해 부모윳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이 부드러운 것에 싸여있다면, 부모윳의 몸 안에 있는 동물형이거나, 알 속에 있는 난생일 것이다. 동물형인 경우 부모윳의 관심과 애정을 받기 쉽지만, 부모의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영양상태에 여유가 있는 윳쿠리들은 식물형으로 다수의 취약한 새끼를 낳는 쪽을 선호하니까. 하지만 난생인 경우, 애완용 콩윳쿠리이거나 바퀴벌레와 다를 바 없는 집윳쿠리라는 것이다. 이 경우는...

  

  '....구! ......라구!'

  

  한참을 멍한 상태로 생각하던 윳쿠리 로타스케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외부의 소리일까? 아니면 동물형 임신에서 모친의 소리를 듣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멍하고 피곤한 것일까...

  

  '레이무의 아가야! 느긋하게 태어나라구! 밖에는 밥씨가 산더미처럼 있고 포근포근한 침대씨도 있어서 아주 느긋할 수 있다구!'

  

  '아... 동물형, 레이무종의 새끼인가... 집안 환경은 좋은 것 같고...'

  

  윳쿠리 로타스케는 자신이 모친의 소리를 듣는 태아 윳쿠리라는 것을 추측해내었다. 그게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로타스케는 계속 생각했다. 레이무종의 자식이라면, 자신도 레이무종일 가능성이 있다. 전체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레이무종으로 태어난다면 이건 아무래도 느긋하게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느긋한 날~ 한가한 날~'

  

  인간일 때는 입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수천 번이나 실제로 입을 찢거나 막거나 꿰매버렸을 정도로) 혐오스럽게 들리던 윳쿠리 레이무의 노래. 로타스케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곡조와 가사의, 인간의 불쾌감을 묘하게 자극하는 레이무종의 노래다. 그러나 지금은 어쩐지 그것이 대단히 마음편하게 느껴졌다. 로타스케는 더이상 생각을 지속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8

 

 

  [귀여운 레이무의 천사같은 아가야~ 느긋하게 태어나라구~ 분명 레이무를 닮아 귀엽고 귀여워서 모두가 반해버릴 미윳쿠리일 거라구~]

  

  처음 얼마동안 로타스케는, 인간의 지식을 가진 윳쿠리라면 통상 윳쿠리 따위와는 격이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서 조금 들뜨기도 했다. 환경 또한, 레이무가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윳쿠리로서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풍족한 환경에 자신의 지식을 더한다면, 윳쿠리 수준을 넘어설 만큼 느긋하게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갑자기 떠오른 걱정에 묻혀버렸다.

  

  '희소종까지는 기대도 안하니까... 미숙윳이나 장애윳은 아니어야 할 텐데...음... 졸려......'

  

  인간의 아기가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것과 비슷하게, 윳쿠리 또한 아주 어린 시기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이것은 태어나기 전의 윳쿠리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난 아기 윳쿠리는 하루의 80% 이상을 잠으로 보낸다. 그보다도 더 어린, 태아 윳쿠리나 열매 윳쿠리는 눈을 항상 감고 있으며 의식을 유지하는 시간은 하루의 1% 미만이다. 로타스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어미 레이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극히 제한된 외부의 정보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추측하려고 했지만, '깨어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기에 잘 되지 않았다. 

  

  [느후후... 레이무의 아가야는 정말 느긋하게 있다구...]

  

  에라 로타스케의 영혼이 윳쿠리의 몸에 깃든 지 며칠이 지나, 이제 슬슬 태어날 때가 가까워왔다. 사실 짧은 시간이나마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면, 태아 윳쿠리가 태어나는 시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의미이다. 로타스케는 자신을 감싼 팥소가 격렬하게 움직이며 자신을 압박하는 것을 느끼면서 깨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주변에 계속 있었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팥소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차가운 기운 - 바깥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해진 정신으로, 로타스케는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 생각했다. 

  

  [느기기기기이이이이이! 느긋하게 태어나라구! 레이무의 아가야아아아아!!]

  

  대단히 애매모호한 감각만이 있던 몸의 일부분이 근질거린다. 로타스케는 자신의 '눈'을 자각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한 줄기의 빛이 비치는 듯한 막연한 느낌. 이제 막 태어나려는 윳쿠리의 시력은 인간의 기억을 가진 그에게는 너무나도 불만족스럽다. 그 다음 순간, 로타스케는 '입'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목소리를 내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태어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느긋하게 있으라구를 외치게 될 것이다. 로타스케는 이제 몸의 앞과 뒤, 그리고 발을 인식했다. 모친 레이무의 팥소가 뒤와 옆에서 자신을 압박하고, 자신의 몸이 점점 앞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느낀다.

  

  [레이.....! ...힘내....!!]

  

  소리가 들린다. 레이무의 팥소 안에 있을 때 레이무의 몸을 통해서 듣던 아주 희미한 외부의 자극이나 레이무의 마음의 소리와는 다른 느낌의, 공기를 진동시키는 진짜 '소리'가 느껴진다. 로타스케는 이제 자신의 얼굴 앞면이 바깥 공기에 완전히 노출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나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아직도 주위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너무 희미하다.

  

  [느기기기이이이이이읶!!]

  

  로타스케의 조잡한 인식 능력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5분의 시간 - 윳쿠리에게는, 심지어 성체에게도 매우 긴 시간이 지났다. 로타스케의 몸을 압박하던 느낌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기차를 탔을 때처럼 주위의 희미한 풍경이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툭

  

  윳쿠리 로타스케는 레이무의 마무마무에서 튀어나와 몇초도 채 되지 않는 비행을 마치고, 얼굴부터 맨바닥에 떨어졌다. 출산을 대비해서 침대를 배치해두었어야 하지만, 멍청한 레이무는 [레이무는 곧 아가야를 낳는다구! 폭신폭신한 침대씨 위에 있어야 한다구! 바보야? 죽을래!?] 라고 떠들며 자신이 침대 위에 올라가서 출산을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새끼 윳쿠리 한 마리가 튀어나와, 30cm도 안되는 높이에서 바닥에 떨어졌을 뿐이다.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파이거나 큰 소리가 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앆!!! 존나아파아아아아아아아!!'

  

  로타스케는 전신이 박살날 듯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주로 얼굴(?)의 앞면이 아프다. 목(?) 깊은 곳에서부터 비명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얼굴부터 바닥에 들이박은 상태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바닥은 자갈이나 거친 흙이 있는 바닥이 아니라, 유리로 된 수조였기에 태어나자마자 치명상을 입는 일은 면했지만 지금 로타스케의 인식능력으로는 그런 것은 알 수 없었다.

  

  [느후우우우.... 태어났다구...? 귀여운 레이무의 천사같은 아가야가 태어났다구...?]

  

  정말 엄청난 고통이었다. 에라 로타스케의 기억 속에 이런 고통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축구부를 구경하러 갔다가 정말 재수없게 우연히 축구공에 얼굴을 맞은 이래 처음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체면도 뭣도 없이 울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 몸은 갓 태어난 새끼 윳쿠리지만 안에 들어있는 건 60살 넘은 인간 노인네가 아닌가. 이런 걸로 울어서야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렇게 생각한 로타스케는 몸을 바둥바둥 꿈틀꿈틀거리며 바로 섰다(?). 뭔가 살색의 거대한 구체 같은 것, 검은 것과 붉은 것이 그 위에... 아니, 다른 것들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리본. '저것은 나의 모친이다' 로타스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몸을 돌려 그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까부터 근질거리는 목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인다.

  

  "찐뽀!!!"

  

  

  ==========  ==========  ==========  ==========  ==========  ==========

 

9

 

  갓 태어난 윳쿠리 묭은 당당하게 첫인사를 외치고는 굳어버렸다. 보통 윳쿠리라면 자신의 멋지고 느긋할 수 있는 인사에 부모윳이 대답해주길 바라며 눈을 반짝이겠지만, 이 묭의 경우는 달랐다. 

  

  '이이이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묭이라니! 내가 묭이라니이이이이!'

  

  47년 경력의 학대 베테랑이 아니라도 윳쿠리에 조금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로서, 묭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느긋하게 있으라묭! 묭이 아빠야다묭!] 이처럼 ~묭 으로 끝나는 말투를 쓰는 일반 묭종과, 찐뽀밖에 말하지 못하는 묭종 C(Chinpo)타입이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윳쿠리의 특성상, 말을 제대로 못하는 메링종이나 묭 C타입은 인간을 자극할 가능성이 낮으므로 행동과 표정만 조심하면 느긋하게 살기는 오히려 편하다고 볼 수 있다.

  

  '말을 못한다면 전생의 기억이 무슨 소용이야아아아아아!'

  

  [느긋하게 있으라구! 레이무가 엄마야라구!]

  

  하지만 자오오옹이라는 뜻모를 말을 하는 메링종에 비해, 남성 성기를 의미하는 단어를 입버릇으로 하는 묭 C타입은 일본 내에서는 애완동물로서 인기가 별로 없으며, 당연히 취급도 나쁘다. 통상 묭종에 비해 지능이 낮거나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묭으로 태어난 에라 로타스케, 이하 묭스케는 갑자기 그것이 굉장히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묭스케의 부모가 된 레이무와 묭은 슬금슬금 기어서 묭스케에게 다가왔다.

  

  [느후후후... 묭을 닮아서 정말 씩씩하고 느긋할 수 있는 아가야다묭. ]

  

  [그렇다구! 이렇게 귀여운 아가야 본 적도 없다구! 분명 오빠야도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귀여운 레이무와 아가야를 느긋하게 해줄거라구!]

  

  "찌...찐뽀?!"

  

  아직 자신이 묭종이라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묭스케는 레이무의 뒷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멍청한 윳쿠리가 무슨 소리를 한 건가...!? 대충 그런 생각을 하는 묭스케의 중얼거림에, 묭스케의 아빠인 묭이 반응해 뭔가 말해주었다. 하지만 묭스케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늣, 오빠야는 우리를 느긋하게 해 주는 인간씨다묭. 인간씨는 멍청해서 말을 잘 알아듣진 못하지만 우리에게 밥씨와 집씨를 바치는 생물인거묭.]

  

  글렀다. 이놈들은 답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묭스케는 조금씩 선명해지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있는 곳은 애완 윳쿠리용의 대형 수조. 부모 윳쿠리에게 막혀서 수조 전체를 둘러보긴 어렵지만, 동물형으로 태어난 아기 윳쿠리에게는 꽤 넓고, 성체 윳쿠리 두 마리에게는 조금 좁을 듯하다. 주변 사물이 자신보다 커보여서 제대로 인식하긴 어렵지만 침대...로 쓰라고 놔둔 듯한 걸레와 화장실인 듯한 종이상자가 보인다. 밥그릇이나 급식기, 급수기도 보이지 않고, 장난감도 없는 것 같다. 다시 몸을 움직여 부모윳의 머리장식을 본다. 묭에게는 동뱃지가, 레이무에게는 식용 윳쿠리의 가격 태그가 붙어있다.

  

  "찐뽀......"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빨리 죽고 환생해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 = = = = = = = = = = = = = = = = = = = 

 

인간의 기억과 지능을 가지고 희소종 윳쿠리로 환생!

태아일 때부터 내공심법을 운용해 태어나자마자 기공을 뿜어내고 초절정고수...이게 아니라,

플래티넘뱃지를 순식간에 취득하고 몸첨부로 변태하여 인간과 같은 권리를!

그 뒤로 이어지는 이지모드 윳생!

 

그런 패턴의 윳쿠리 환생물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야심찬 의도가 있었지만...

찐뽀! 라는 한마디를 쓴 이후로 기력이 다 떨어져서 포기했습니다.

 

 

중간에 환생설계사가 말하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부분은 그냥 영화 빠삐용의 몇 장면을 잘라놓은 짤방에서 인용한 것이고, 별 의미는 없습니다.

 

원래 계획에서는 마지막 10회째 윳생을 마치고 인간으로 환생할 때, 다른 환생설계사가 와서 에로튜스는 근무태만으로 지옥에서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와 아게나이요 뀽뀽을 들으며 삼국지 12를 플레이하는 벌을 받고 있으며 사실 인생을 낭비한 죄 같은 건 없다고 말해주는 장면을 쓸 생각이 있었던 것 같지만 1회차도 쓰기 전에 지쳤는데 뭐...

 

 

  • profile
    치우맥달 2016.04.14 12:32
    ㄷㄷ... 주제파악 못하고 멋대로 아기를 만든 애완윳(그것도 하나는 식용)의 아기라니..... 이 무슨 헬모드가....
    운이 좋으면.... 부모 눈앞에서 단숨에 죽겠고....
    그보다 더 재수 없으면 부모를 울부짖게 하기위한 고문을 받다가 죽을테고...
    혹은... 전 애완윳(당연히 야생생활 능력따위 있을턱이 없는...) 부모랑 gp to the 야생생활... 그것도 인간이 사는곳 근처에서....

    덤으로 둥지...의 상태로 봐서는... 결코 애완윳에 정을 가진 주인은 아닌듯.....
  • profile
    치우맥달 2016.04.14 12:32
    열려라~ 지옥의 문!!
    아... 열렸다인가?
  • profile
    류민혜 2016.04.14 12:32
    찐뽀밖에 말하지 못하므로 먹으세요로 자살도 못합니다!
  • ?
    느긋한철수 2016.04.14 12:32
    나뭇가지에 달려들어서 자살하는게 빠르려나..?
  • profile
    미리내미르 2016.04.14 12:32
    로터스상 보고 계십니끼!?ㅋㅋㅋㅋㅋㅋ
  • ?
    타흘룸 2016.04.14 12:32
    뜨또가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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