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당시 호환虎患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널리 알려져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1474년 성종 5년 당시 지사가 임금에게 황해도에 호랑이가 너무 많아 착호갑사捉虎甲士의 파견을 간언하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으며, 조선 중기 1616년 광해 6년에도 경기도 지역에 호랑이의 피해가 많아 군사를 일으켜 사냥케 했으니 더이상 이루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에 더해 조선시대 당시 백성들을 혼란케 한 맹수는 비단 호랑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병倭餠이라고도 불리던 윳쿠리 역시 늑대, 호랑이, 곰과 더불어 주된 구제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16세기 말 조선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을 거치며 다수의 갑사들과 사냥꾼들은 의병으로 일어서거나, 혹은 징집되는 형태로 자리를 비워야 했고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왜적이 아닌 윳쿠리의 사냥을 위해 국력을 낭비할 여유가 조선에겐 없었다.
1598년에 임진왜란이 끝나고서 조선은 한동안 국력의 회복에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냥꾼들이 전쟁 중에 목숨을 잃기도 했고 당장에 급하지 않았던 윳쿠리의 토벌에는 잠시 손을 놓고 불필요한 자비를 그들에게 베풀었다.
이윽고 1612년 임자년壬子이 되었고
조선은 불필요한 자비의 대가를 치룬다.
1612년 경기도 팽성읍의 석교산. 호환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냥꾼들이 이곳에 투입되었다.
사냥꾼 무리 중 하나의 대장을 맡은 강설악은 한참을 산 속을 뒤진 끝에, 자리에 멈춰서서 등 뒤의 사냥꾼들에게 수신호를 전달했다. 수신호를 확인한 사냥꾼들은 설악이 가리킨 전방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해당 방향에는 상처입고 지친 호랑이 한마리가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듯 주위를 두런거리다 말고 다시 앉아 상처입은 앞발을 핥고 있었다. 설악이 조총을 겨누자 다른 사냥꾼들도 일제히 열을 맞추어 서서 전방의 호랑이를 조준했고 방아쇠를-
콰아아아아아아-!
-당기는 것보다, 호랑이를 거대한 빛줄기가 집어삼키는 것이 먼저였다. 호랑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숯덩이로 변해버렸고 호랑이가 있던 그 자리에서는 탄내와 거뭇한 연기만 피어올랐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모두의 시선과 총구가 그 빛줄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는 거왜병巨倭餠-도스 윳쿠리-이 무수히 많은 왜병倭餠-윳쿠리-을 이끌고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격 개시!!"
타탕! 설악과 그 분대도 생 초짜는 아니었다. 설악이 사격을 지시하자 빠르게 다시 열을 구성한 사냥꾼들은 전방의 도스 마리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번의 일제사로 도스 마리사의 몸이 뭉터기로 날아가며 무너져내렸다. 아무리 잘나봐야 까짓게 왜병일 뿐이다.
그래도 윳쿠리들은 계속 이쪽으로 움직였다. 부분대장 항읍이 조총에 화약을 채우는 대신 단창을 뽑아든 찰나, 또다른 빛줄기가 항읍과 충돌했다.
"무슨?!"
빛줄기가 날아온 숲의 저편, 방금 사살했던 도스 마리사의 뒤쪽에서 난생 처음 보는... 집채만한 크기의 도스 마리사가 보였다. 채 다음 사격을 준비하는 것보다 뒤이어 나타난 다른 도스의 공격이 빨랐다. 시커멓게 타버린 항읍이 나무에 충돌한 다음 툭 하고 바닥에 쓰러지자 그게 신호라도 된듯 뒤이어 다른 사냥꾼들에게도 도스 스파크가 작렬했고 그 공격에 명중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제기랄, 빨리... 빨리 전해야해!'
동료들이 이미 늦었음을 깨달은 설악은 피부가 화끈거릴 정도의 열기에 급하게 등을 돌렸지만 이내 설악을 향해 또 다른 초거대 도스 마리사의 도스 스파크가 날아왔다.
그날이 임자병란壬子餠亂이 시작한 날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상 호환으로 인해 조선의 군대가 소집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이 사건 이후의 일이지만 인조반정仁祖反正에서도 호랑이를 잡는다는 구실로 군대를 모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조선왕조 설립 이후의 200여년간 왜병에 의해 사람들이 소집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저녁에 이미 안성천을 넘어 청북읍에까지 윳쿠리들의 마수가 뻗쳐왔고 오산에서는 급하게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 남부 각지가 윳쿠리들에게 공격받는 와중에 오산으로 합류할 수 있는 병력은 당초의 상정에 훨씬 모자란 수에 불과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급히 소집된 군영은 채 합류하기도 전에 상상 이상으로 수가 많은 윳쿠리들과, 그 이상으로 강했던 거대 도스들에 의해 각개격파 당하고 말았다. 안그래도 수원의 군사 절반을 상번시켜버린 경기 남부지방의 방비는 상상 이상으로 허술했고 각지에서 병력의 증원과 원군을 요청하는 파발이 빗발쳤음에도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었고 결국 강원도, 충청도 등 가까운 지방에서의 사냥꾼들이 급히 대타로 투입되었다.
"으... 으윽..."
"정신이 드나?"
설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처음 보는 방이었다. 그의 옆에서는 역시 처음 보는 노인이 반상 앞에 앉아 조촐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팥죽이라도 끓인 건지 방 안에는 팥 냄새가 나고 있었고, 그와 함께 은은하게 약재 냄새도 났다.
상반신을 일으키던 설악은 상상 이상의 통증이 몸 깊숙히부터 퍼지자 허억, 하고 숨을 고른 다음 비틀거리며 노인을 향해 옆으로 몸을 돌렸다. 방 안에 걸린 물건들의 모양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노인은 약초꾼이고 이 집은 산속에서 그가 묵기 위해 만들어둔 임시 숙소인 모양이었다.
온 몸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부위가 없었다. 노인은 팥죽 한숟갈을 입에 넣고 삼킨 다음 지긋이 그를 쳐다봤다.
"사냥꾼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겐가?"
"예?"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환자한테 정신없게 이런 거부터 물을 게 아니지... 나는 심마니 오향만, 오향만일세. 자네 이름은 무언가?"
"설악... 강설악 입니다..."
노인은 다른 팥죽을 그에게 권했다. 아픈 몸을 끌고 어기적거리며 기어간 설악은 팥죽을 한숟갈 떠먹었다.
몸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팥죽의 맛은 아주 달고 부드러웠다.
...
"봉화를 올린 이가... 자네란 말인가?"
"그렇소."
설악을 보며 덩치 큰 거한 쇠정이 눈가를 씰룩거렸다. 키가 꽤나 크고 몸이 가늘은 다른 사냥꾼, 백사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 신호를 보낸 이가 자네 상관인 백한 선생이 아니라서 좀 놀랐다네."
"그분께선... 놈들에게 그만..."
"이거 참 큰일이구만."
백사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난처하다는 듯 발을 괜히 작게 굴렀다.
"백한 선생님의 실력은 유명했는데 말이야. 그럼 자네가 무리의 유일한 생존자고?"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그렇다면 말일세, 어째서 여태껏 홀로... 그것도 어째서 저런 나귀 같은 걸 타고 왔단 말인가?"
쇠정은 백사를 한번 흘겨보고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설악을 쳐다봤다.
비단 쇠정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분명 [하극상下剋上] 사태를 알리는 봉화가 올랐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니 크게 예를 차려 가장 높은 사람이 나올거라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나온 것은 설악 혼자뿐이었다.
"팽성에서 온 사람이라지만, 평택에서 올린 봉화인데-"
"여러분,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설악은 두 주먹을 꽉 쥐고, 파들파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팽성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대장이 아닙니다. 평택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란 말입니다..."
설악의 이야기에 모든 사냥꾼들이 침묵했다. 업복은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설악은 힘겹게 고개를 들고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다. 설악은 그들의 낯빛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천권天拳 갑사는 이제 없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진실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다른 갑사도 아닌, 경기도에서 가장 뛰어난 갑사 8개 중 하나로 꼽힌 그 천권天拳갑사가 단 한명의 생존자만을 남기고 전멸했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쇠정을 가르친 특급포수 백한 선생도, 작년 겨울 백사와 한잔 나눈 산군살山君煞 내실도... 어느 누구도 남지 못했고 그저 그들 앞에 서있는 이 젊은이 혼자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잔인한 이야기는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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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막히는 곳도 너무 많고, 고증 찾기도 빡세고, 리얼월드 살기도 바빠 년단위로 진전이 없네요.
이대로는 평생 못 올릴 거 같아 누군가가 아이디어라도 얻어가시라고 자게에 투척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