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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 : 구윳사
대북 원조 윳쿠리 [단편]
항상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지만 생기는 돈마다 족족들이 국방비에 퍼붓는 북한..
그리고 남한에는 원조해달라고 끊임없이 땡강(협박)부리곤한다.
한국은 북한이 그런 행동을 계속해와도.. 우리 동포란 이유 하나만으로 울며 겨자먹기식
매번 수백억 달라에 호가하는 원조를 시행해오고 있었다.
결국 한국도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타격을입어
더 이상 땡깡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고
이후 북한 역시 계속되는 식량난을 연타로 몇 번 더 당하더니.. 북괴 정부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군부의 계속되는 분열로 그 끈을 끊고만 것이다--
인민평등이니 뭐니 좋다해도 일단 먹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그 결과 ..
북한 경제권, 정치권 일부는 중국편에 흡수되고 일부는 남한편에 흡수되고 말았따..
허나 그런 심각하고 참담한 상황 속에도 당장엔 북한 주민들의 식량 해소가 시급한 일이다...
북조선 주민들은 매번 쥐와 바퀴까지도 잡아먹으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ㅠ
이 얼마나 비참한 광경인가....?
과거 70년대..
남한보다 더 잘살았고 인구도 남한 못지 않게 많았던 모습은 어디간데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남한 역시 순식간에 약 2500여만명이나 불어난 주민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매우 곤혹스런 임무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한 남한의 정치가가 제안을 했다
윳쿠리들을 이용하자고-
한국은 ..윳쿠리 공장화가 꽤나 발전해서 <세계 일류의 윳쿠리 산업 국가>이었다.
(정말이지 의지의 한국인이라 할 수 있었다.)
윳쿠리는 가장 저비용적고 효율적이며 대체 식량으로 맛까지 일품이라는 평가가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자는건 아무 이의없을듯한 의견이었으나
늘상 그래왔듯이 의례상 국회의원 파이터 아찌들의 싸움이 펼쳐졌고
...왜 싸웠는지도 모르게 최종적으론 만장일치로 의회에 통과되었다.....;;;;;;;;;;;;;;
윳쿠리 원조 계획은 그후 의외로 매우 신속하게 이뤄져
당장 1차 계획 때만
수백대의 차량과 선박, 수송기 등등의 운송 수단들이 수백톤에 해당하는 윳쿠리들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민간 대기업들은 그에 해당하는 비용과 윳쿠리들을 아까지 않고 퍼주었고
자원단체들은 주로 북한 주민들에게 윳쿠리 요리법 및 사육 등등 정보 교류, 강연들을 많이 해주었다..
동무- 이건 모라 하는거우~?
아~ 이건 윳쿠리라고해서 이렇게~ 머리를 픽 까고~
수저를 넣어 휙휙 헤저우면 맛있게 된답니다~~
느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ㅇ악악
덕분에 북한 마을 곳곳에서 윳쿠리들의 비명소리가 끊일 날 없었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 윳쿠리를 보았을때 그 괴기한 모양새에 의혹감과 겁을 먹었지만
이내 그 맛과 영양은 북한 주민들을 사로잡아
윳쿠리는 북쪽 주민들에게도 최고의 대체 식량으로 각광받게되었다--
거리에는 항상 원조되어온 일반 윳쿠리 살윳 퍼레이드가 벌어졌고...
도스 마리사(식용)도 그 예외는 아니여서 살윳 도스 현장도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보통 도스 마리사같은 경우에는 상대하기 매우 버거운 관계로 기계로 도살하곤하지만.....
북한인들은 그냥 맞짱떠서 죽여버렸다.......;;;;;;;;
늣!늣! 아파!! 느긋하게 아파-----!!!!!
이 못뙨 인간 씨들---!!! 느긋하게 저리가라구-- 도스스파크를 쓸거라구--!!!
아~ 이 간나시끼 모라는감? 어서 죽으라우-!!! 퍼퍼퍽!
느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리쟈를 게애로피지마아아아~~
도스 마리사를 죽여버리면 동네 사람들이 한동안 먹을양이 나온다.
따라서 이 질높은 사냥감을 절대 놓칠 순 없는 것이다..
각 마을 북한 특작부대 출신 아찌들과 군인 출신 마을 사람들은
항상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도스 마리사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않았다.
도스 마리사가 뿌국을 시전하던지~ 몸치기 공격을 하던지~ 도스 스파크따위를 날리려고 하던지~
그러던지 말던지.......
수십명이 조직적으로 달려와서 순식간에 패대기를 치고 다굴까는 북한인들의 공격력은 너무 강력해서
아무리 도스라고 해도 몇 분내 정신못차리고 하나의 커다란 팥빵이 되고말았다.......
하지만 이런 처절한 윳쿠리 지옥속에도 정신못차리고 대드는 윳쿠리들도 종종 있었는데...
흥!흥! 레이무는 기엽다구! 더러운 할아범~할멈은 저리가아-------
알고있어-! 아저씨들은 그지인거네----
찐뽀오 찐뽀오오오오
마리사는 강하다구----- 뿌국!!! 달콤달콤씨 주면 부하로 삼아줄 생각이 있다구--?
이러다 미움산 윳쿠리들은 인민재판이라고해서 북한 마을 공동사람들의 집단 다굴로
보통 경우보다 더 잔혹하게 죽게되었다.
아직까지 마을사람들에겐 공산주의적 성향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느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아파!아파~! 느긋하지 않게 그만둬어~~~
아파아아아아아아아아~ 모르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느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랑라
찐뽀오 찐뽀오오오오오오옹오오오오오!!!!!!!!!!!!!!!!!
느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왜애애 바리쟈를 개로피는거야아아아아---?!!!!!!
..어쨌던간 이렇게 남한에서 공급된 윳쿠리들로 포식한 주민들은 너무도 오랜만에 행~복하게 지낼수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윳쿠리 공장들도 완공되어
<치르노 얼음복숭아> < 앨리스 크림쌈 > < 레이무 앙금 과자 > <아기 윳꾸리 과자 >
등등은 북쪽 사람들이 늘상 즐겨먹는 국민 간식이 되었다.
반면 윳쿠리들의 본의아닌 희생(?)에 내심 미안한 감정을 갖는 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자신들의 묘비로 사용하려했던 나무판자를 쪼개 자신이 먹은 윳쿠리 수만큼 심어주는 모습들도 자주 눈에 띠었다.
그밖에 훗날 우스갯 소리로 나올 법한 얘기들은 이무렵 많이 나왔는데........
그건 뭐 아무렴 좋은 얘기다..
뭐가 어찌됬던간에..
윳쿠리 파급효과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젠 더이상 쥐나 바퀴 따위를 먹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도 더이상 시장에서 굴러떨어져다니는 음식을 주어먹지 않아도 되었다..
여자들도 하루치 먹을 음식을 위해 몸을 팔지 않아도 되었다..
겨우 며칠의 기근을 버텨나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빌고 빌고 사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교과서에 실린 이 윳쿠리 식량 원조는 엄청난 변화를 발동했다--
북한 인들은 더이상 가난하게 살고 싶지않았다..
자기 자식 혹은 후손들에게 가난이란 단어를 물려주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매우 뼈빠지게 열심히 살아갔다.
이들은 어차피 북한식 생활로 근성이 몸에 배여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았다.
훗날 이 것들이 G20 선도하는 통일 대한민국의 초석 일부분이 되었다고
말을 할 수 있게된건 그보다 좀 더 훗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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