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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17:12

동상이몽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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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W/ 라디

 

 

 

마리사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커다란 돌씨로 연거푸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머리가 쾅쾅 울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야에게 몇 주나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지금, 마리사의 심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하고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아가야를 만들 수 없다고?'

 

마리사는 멍한 눈을 레이무에게 향했다.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레이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몰랐던 거야? 마리사가 아파아파하고 있을 때, 오빠야가 윳병원에 데려가서 '거세!'해 버렸다구."

 

기억에 없었다. 마리사는 황급히 혀와 댕기머리로 이마와 페니페니 부근을 더듬거렸다. 느긋한 윳쿠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저속하고 품위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그간 신경을 쓴 적이 없어 몰랐던 위화감이 그제야 느껴졌다. 오랜 길 생활로 거칠어졌던 본래의 피부와 비교했을 때 미묘하게 더 보드랍고 깨끗한 피부가 붙어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봉합의 흔적도 느껴졌다. 마리사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 마리사는, 왜......"

"왜냐하면 아가야는 느긋할 수 없는걸."

 

시차를 거의 두지 않는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리사의 팥소에 내리꽂혔다. 거의 공황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지만, 발끈한 마리사는 거의 반사적으로 반박했다.

 

"그, 그렇지 않다제! 아가야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씨들이고, 그, 그래! 보기만 해도 느긋할 수 있는 거제! 누구나 아가야를 보면 느긋할 수 있다제! 온 세상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거제!"

"그러면 마리사는 왜 인간씨에게 '제재'당한 거야?"

"늣......!"

"아가야를 느긋하게 해 달라고 했던 거지? 만약 마리사 혼자였다면 느긋하지 않은 인간씨와 만날 일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다콤다콤찌 먹고시퍼어어어어!!!!!!'

 

그날따라 아가야는 유독 심하게 보챘다. 씁쓸씁쓸한 잡초를 입 안에서 짓이겨 쓰디쓴 즙을 모두 빼내고 달콤한 설탕물 침으로 반죽한 경단씨를 쥐어 줘도 몇 번이고 내동댕이치길 반복했다. 저러다가 탈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지치지 않고 흙바닥을 구르며 아가야는 서럽게 울어젖혔다.

 

'압빠야는 사냥에 '명수'자나아아아!!!!!! 기엽고 기여운 마리쨔가 먹고 시프면 당쟝 다콤다콤 구해조야 하자나아아아!!!!!! 느뺘아아아아아아아아!!!!!!!'

 

마리사는 아가야의 투정에 백기를 들었고, 그렇다고 해서 아가야가 자신을 '무능한 아빠야'라고 여기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달콤달콤을 독점하고 있는 인간씨를 찾기로 했다. 마리사는 '사냥' 도중 '사냥터'에서 인간씨들의 기척을 느낄 때마다 매번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야 했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노력했다. 인간씨들은 대체로 느긋할 수 없지만, 좋은 말로 구슬리면 분명 흔쾌히 달콤달콤을 내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아가야들은 세계에서 제일 느긋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끝. 들윳쿠리의 세상에서는 흔한 일이다. 중추팥소에 깊게 새겨진 느긋하지 못한 기억들이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 와, 마리사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 그 인간씨가 게스였을 뿐이라제! 오빠야는 상냥하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 오빠야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

"아가야는 느긋하고! 오빠야는 레이무랑 같이 살고! 마리사도 오빠야랑 같이 살고, 또!"

"하지만 레이무랑 마리사는 아가야가 아니잖아? 그리고 그 인간씨는 아가야를 보고도 느긋하지 않았다구? 어째서 오빠야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그러면 그런 느긋하지 않은 인간씨는 이 쪽에서 사절하는 거다제!"

 

점입가경이었다. 레이무는 구레나룻으로 주름진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듯 말을 이었다.

 

"뭐 '거세'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리사, 혼자 힘으로 아가야가 먹을 달콤달콤을 사냥할 수 있어?"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아가야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레미랴나 고양이씨, 비씨, 눈씨가 들어오지 않고 따뜻한 집을 지을 수 있어?"

 

그렇지 않았다. 인간에게 그럭저럭 견딜 만한 쌀쌀한 날씨는 윳쿠리들에게 칼바람과 다름없었다. 마리사와 아가야는 옹색한 골판지를 벽 삼아 밤마다 이를 악물고 추위와 맞서 싸워야 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다른 윳쿠리 가족을 재미로 도륙하고 사라진 날, 마리사는 댕기머리로 아가야를 꼭 끌어안고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었다.

 

레이무가 쐐기를 박았다.

 

"마리사, 정말로 아가야만 있으면 행복-이라고 생각해?"

"느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파피푸페폿-!!!!! 파피푸페포오오오오옷!!!!!!!!"

 

마리사는 팥소를 토하는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팥소가 딱딱하게 굳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마리사의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윳쿠리의 말로 치고는 무척 양호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휴우."

 

레이무는 무감정한 눈으로 마리사였던 만쥬를 내려다봤다. 이런 일에 일일이 놀라기도 지겨울 정도로, 레이무는 마리사 같은 윳쿠리들을 많이 보아 왔다. 마리사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느긋할 수 없는 윳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향하는 하늘의 윳쿠리 플레이스는, 정말로 느긋한 곳일 테니까.

 

조금 뒤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레이무는 신물이 날 정도로 잘 알았다. 집으로 돌아온 오빠야는 마리사의 시체를 보자마자 큰 덩치를 무너뜨리고는 마치 아가야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간 윳쿠리들과 마찬가지로 마리사 또한 힘겨웠던 길거리 생활의 여파를 끝내 견디지 못했음을, 그리고 자신이 또다시 마리사를 끝내 마음 깊이 느긋하게 해 주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오래도록 슬퍼할 것이었다.

 

레이무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요점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었지만, 레이무는 결코 그것을 오빠야에게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레이무가 이른바 정상 범위에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윳쿠리였다는 것이 거듭될 비극의 씨앗이었다.

 

레이무는 결코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양친은 부족한 환경에서도 넘치는 사랑으로 레이무를 어른이 될 때까지 무사히 길러 냈지만, 레이무는 팥소뇌가 아닌 냉정한 시각으로 그것이 순전히 운이었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태어나는 윳쿠리 이상으로 죽어 나가는 윳쿠리가 너무나 많았다. 그것도 온갖 이유로.

 

소꿉친구 앨리슈는 어린 레이무의 눈 앞에서 까치에게 낚아채여 갔다. 앨리슈의 엄마야인 앨리스는 슬픔에 미쳐 버려서 골목 한복판을 떠돌다가 인간의 씽-에 치여 곤죽이 됐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던 이웃 윳쿠리 일가는 아빠야가 사냥해 온 밥씨에 얼굴을 파묻은 채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채로 발견됐다. 밥씨에 인간이 섞어 놓은 독이 들어 있었던 탓이다. 레이무 가족만 해도 혹독했던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엄마야는 레이무 같은 아가야가 있어서 행복-이야!'

 

레이무의 엄마야는 밤마다 졸음에 겨운 어린 레이무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비부-비하며 그렇게 말하곤 했으나, 레이무는 조금 머리가 굵어진 후로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의문을 삼켜야 했다. 자신이 없었더라면, 엄마야와 아빠야는 양육의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엄마야와 아빠야가 자신을 낳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고난들을 헤쳐 가며 목숨을 간신히 부지해나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아가야 같은 건 만들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기 싫은 상쾌-를 억지로 밀어붙여 온 마리사 때문에 아가야들이 생겨 버린 이상은 책임감을 가지고 길러야 했다. 아가야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한 윳쿠리 몫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아가야들을 잃은 절망은 배로 깊었기에, 레이무는 조심스럽게 '거세!'를 권해 오는 오빠야를 향해 고개를 힘차게 세로저을 수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레이무?'

'당연하지, 오빠야! 레이무는 지금처럼 오빠야랑 지내면서 정말 느긋할 수 있는걸!'

'다시는 아가야를 가질 수 없는 거야. 이해했니?'

'느응, 아가야를 보살피는 건 너무 힘들었다구. 레이무 혼자윳만으로도 벅찬 거라구.'

 

지금의 생활이 어디까지나 더부살이에 지나지 않고, 생존과 안녕을 오빠야의 호의에 전폭적으로 기대고 있는 만큼 자신의 윳생은 불안정한 상태 그대로이고, 그런 처지에 아가야를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본심은 숨긴 채로.

 

불행히도 오빠야는 레이무의 결정을, 아가야를 데리고 길거리 생활을 하던 윳쿠리 전반의 경향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구조해 온 윳쿠리가 정신을 잃은 동안 '거세!'를 끝마치는 것도, 오빠야의 입장에서는 불행한 윳쿠리가 조금이라도 더 느긋했으면 한다는 순수한 호의의 발로였다. 아가야를 낳아 기르는 것은 느긋할 수 없으니 근원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일찍, 혹은 뒤늦게 알게 된 윳쿠리들은 미쳐 날뛰다 제풀에 죽어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그 중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레이무에게 강제로 상쾌-를 하려 드는 윳쿠리도 있었기에, 미미하게 피어날 뻔하던 동정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번식에 대한 윳쿠리들의 욕망은 중추팥소 레벨에 새겨진 본능이었다. 레이무만이 별종이었을 뿐이다.

 

'마, 마리사가, 레이무의 아가야들의 아빠야가 되어 주겠다제!'

 

레이무는 다시 혀를 찼다.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알 만했다. '아가야들을 잃고 짝도 없이 지내는' 레이무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겹쳐 보았겠지.

 

대체 누가 누굴 동정하려 드는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어쨌든 레이무는 이 생활에 만족했다. 그 웃기지도 않는 가족 비극사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렇게 주제도 모르고 인간에게 덤볐다가 아가야를 잃고 죽음 문턱까지 다녀온 멍청한 윳쿠리에게 폄하당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게 짜증이 나서 조금 쏘아붙인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쉽게 죽어 넘어가다니. 동족이기는 하지만, 레이무는 윳쿠리들의 연약함이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연약하고 무력한 것은 레이무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만일 레이무가 평범한 윳쿠리처럼 아가야를 만들 수 없다는 데 절망하며 발광했다면, 오빠야가 이 미련한 짓을 일찌감치 그만두었을까?

만일 가까스로 미치지 않은 윳쿠리가 있어, 입양 가정에서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었더라도, 정말 그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

만일 레이무가 생식 능력을 잃지 않고 마리사와 짝을 이루었다면, 느긋하게 살 수 있었을까?

 

온통 가정일 뿐이기에 무의미했다. 레이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레이무는 생명의 은인이자 헌신적인 보호자인 오빠야를 좋아했다. 윳쿠리를 사랑하는 마음씨도 충분히 알았다. 그런 오빠야에게 '사실 오빠야가 한 짓은 윳쿠리를 죽이는 일이었다'며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면 오빠야가 받을 상처는 말도 못할 것이다. 레이무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바보 같아."

 

눈도 감지 못한 마리사의 시체에 대고 씹어 뱉듯 중얼거린 레이무는 차갑게 발길을 돌렸다. 조금만 있으면 오빠야가 돌아올 것이다. 슬픔을 걷어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위로는 할 수 있었다.

 

 

 

-

 

 

 

TNR을 비뚤게 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막 써내려갔는데 어째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느낌이 됐네요...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TNR에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어느 수의사의 말로는 동물은 의료적 조치로 인한 신체기관의 손실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건강을 되찾게 되면 오히려 거기에 더 만족한다고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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