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월도 반이나 지나갔다.
학교의 재학준비도 마쳐놨고, 알바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방학을 끝내고 새 학기가 다가오는 만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설레는 것도 아쉬운 것도 많지만
역시 제일 아쉬운 것은 레티가 곧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제 남극의 코지마씨와 화상통화를 했다.
{오랜만이네, 마사히로군.}
"와아! 코지마다!"
"안녕하세요 코지마씨"
{불필요한 사족은 않겠네. 레티의 남극으로의 이송절차가 준비중이네}
"그 말씀은 역시..."
{그래. 머지않아 레티를 남극으로 돌아오게 할거야.}
"레티, 남극 가는거야?"
{그렇단다, 레티. 당장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거야.}
"코지마, 마사히로는?"
{마사히로군은 남극에 올 수 없어. 인간이 이곳에 오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
"우웅... 레티, 마사히로 좋다. 헤어진다니 슬프다."
"어쩔 수 없어, 레티. 난 남극으로 갈 수가 없고..."
{레티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나. 일본이 겨울인 동안만 지내는 것인 걸로.}
"응. 레티 안다. 그래도 슬프다..."
"너무 슬퍼하지마, 레티. 적어도 지금 코지마씨랑 하는 것처럼 남극에서도 나랑 통화할 수도 있잖아?"
{자네는 여러모로 많이 도와줬으니 그 부분은 어떻게든 허가를 받겠네.}
"알았다. 레티, 슬프지만 참는다. 그래도 남극에서 마사히로랑 자주 통화하고 싶다."
{가능해지면 그렇게 해주겠네. 그럼, 마지막까지 잘 부탁하네 마사히로군.}
"예, 걱정마세요."
어제 이런 통화를 했었지.
레티야 처음부터 몸만 왔었으니까 따로 챙겨둘 건 없고 처음 입고 온 옷을 입혀서 보내면 되려나.
아, 그래도 작별선물로 하겐X즈 정도는 사줘야겠다.
"레티, 이 옷 맞지?"
"응, 그 옷이다. 처음 마사히로 집에 입고 온 옷."
그때가 생각난다. 1월. 새해가 떠오른 지 며칠 되지 않았던 때.
이 아이, 레티는 청색과 백색이 적절히 어우러진 이 옷을 입고 우리집에 돌연 찾아왔었다.
참으로 독특한 스타일의 옷이었기에 아사쿠라씨가 선물로 주고 간 온갖 코스프레 복장에 섞여 찾는데 애 좀 먹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부터였지. 칙칙했던 일상이 밝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것처럼 된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대학생활, 혼자 사는 자취생활, 재미라곤 게임을 하거나 윳쿠리 학대하는 게 고작이던 나에게
갑자기 나타나 새로운 경험, 새로운 기분을 선물해준 이 아이.
"그러고 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너랑 지내고 나서."
"우웅? 그랬어?"
"응, 레티 널 만나기 전엔 내 일상이라곤 단조롭고 지루하기만 했거든."
"그럼, 마사히로, 레티 만나서 기쁘나?"
"그럼! 물론이지! 레티랑 같이 지내면서 얼마나 즐거웠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아이인 듯 하면서도 어른스럽고 성숙하고 현명했던 레티.
난 레티에게서 즐거움을, 기쁨을, 재미를, 신기함을, 그리고 교훈을 받았다.
아마 이번 겨울방학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웅... 나도 마사히로랑 있어서 즐거웠다. 근데 헤어진다. 레티 슬프다."
"하아... 나도 그래.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같이 지낼 기간은 정해져 있었잖아?"
"응, 레티 안다. 기억한다."
"걱정마, 가능하면 자주 전화할테니까."
"응! 레티, 마사히로 전화 기다릴거다!"
난 레티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레티는 칭찬받는 어린아이마냥 좋아했다.
그 이후 난 레티가 챙겨야 할 것들을 확인했다.
레티가 처음에 입고 온 옷하고, 비행기 티켓, 레티에 대해 설명하는 서류와 증명서.
그리 많은 짐은 없네. 여기에 작별선물로 하겐X즈 추가해주면 완벽하겠다.
"저... 마사히로, 레티 좀 뜨겁다."
"아아, 날이 점점 풀려서 그런가. 레티한텐 더울 수도 있겠다."
"아니, 공기가 아니라 몸이..."
내 핸드폰이 큰 알람을 울렸다.
이런, 알바 갈 시간이네.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하겠다.
그래도 알바 마지막날을 안좋은 이미지로 남길 수는 없지.
"레티, 나 알바 가봐야겠다, 집 잘 보고있어!"
"으, 으응..."
핸드폰 알람때문에 아까 레티가 뭐라고 했는지 잘 못들었는데
뭐, 괜찮겠지. 돌아와서 다시 물어보면 될테고.
"그래, 츠치다군. 자네 오늘이 마지막날이지?"
"네, 점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하, 뭘. 자네도 열심히 했어. 유능한 알바생이었는데, 떠나보내니 아쉽군."
"죄송해요. 하지만 대학 다니기 시작하면 알바 할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하하하하하! 자네 때 나이는 열심히 공부할 때야! 그래야 성공한 삶을 살지!"
내가 일했던 편의점의 점장님은 한때 보디빌더를 꿈꿨지만 경쟁에서 밀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편의점 점장에 맞지않는 육체미를 가지고 계신, 프X글스 그림의 콧수염을 가진 호탕한 사람이다.
"느!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레이무가 왔다구! 빨리 달콤달콤씨를 달라구!"
"마리사는 배고프다제! 밥씨를 독점하는 썩을 인간씨들은 빨리 마리사의 노예가 되라제! 그리고 밥씨를 바치라제!"
"요새 날이 점점 따뜻해져서인지 게스 윳쿠리들이 가게에 침입하곤 하네요."
"좋아, 이 점장이 해결해주지."
"느? 할아범은 뭐냐제? 느, 느아아아! 괴물이다제! 다가오지 말라제!"
"흡! 점장류 벌크업!"
"느아아아! 레이무한테 뿌꾹하지 말라구우우! 느긋할 수 없다구우우우!"
안타깝게도 저 게스일가는 듣지 못했던 것 같지만
점장님은 특유의 울끈불끈한 근육과 게스 윳쿠리에 대한 자비없는 철권제제로 이 주변의 노숙윳들에겐
편의점에 사는 느긋하지 못한 괴물씨로 소문나있어 어지간하면 노숙윳은 이 편의점에 오질 않는다.
어쩌면 야생에서 막 굴러들어온 녀석들일지도 모르지만 뭐, 알 바 아니지.
여튼 오늘 알바를 마치고, 이전부터 레티에 대해 여러 이야길 듣고, 또 이 편의점으로 물건사러 왔을 때
내가 소개해 준 적도 있어서 레티에 대해 알고 계신 점장님께서 내가 사려던 하겐X즈를 자기 돈으로 사주셨다.
자기도 레티가 남극에 돌아가는 게 아쉽다며, 자기도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엔 만류했지만, 점장님이 워낙 진심이셔서 나도 그 마음을 받기로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귀갓길. 난 봉투에 몇가지 식재와 레티한테 선물할 아이스크림을 담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진다. 레티도 집에서 이 멋진 풍경을 보고 있을까?
세상이 다 멋지게 보인다. 전부 다 레티가 온 이후였던 것 같다.
남극으로 보내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통화할 수 있을테니까.
난 내 아파트 집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레티, 나 돌아왔어!"
집안이 조용하다. 평소같았으면 레티가 밝은 목소리로 반겨줬을텐데.
이상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바닥으로 시선이 향했다.
나는 충격으로 들고 있던 물건을 놓아버렸다.
레티는 현관 앞에서 쓰러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