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3.12 04:32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14-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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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이 쿄우진이 제일 어려워하는 일이 있다.

사람 대하는 일이다.

연구욕에 미쳐 연구에 빠져드는 이 인간은 사교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사교계를 제일 거북해한다.

그럼에도 자기 연구의 진행을 위해 그걸 꾹 참고 엄청난 인맥을 쌓아 후원자로 두었다.

대표적인 게 겉으론 윳쿠리 애호파로 알려진 아마다제과의 회장.

몇몇 정치계 인사들과도 인맥이 있고, 법조계나 문화예술등 다양한 분야에 인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지원금과 본인의 논문과 특허로 들어오는 자금으로 그의 삶이 재정난에 빠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할 정도의 인맥인만큼 교육계에도 그 인맥이 닿아있다.

하지만 그 교육계 인맥때문에 그는 때때로 자신이 매우 불편한 일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오늘 외출하니까 집 잘 보고 있어라."

"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주인님?"

"빌어먹을 특별강의."

 

특별강사로써의 초청이다.

 

"안녕하십니까, 시로이씨. 모시러 왔습니다."

"아아, 그 대학에서 오신 분입니까? 차까지 대령해주시고 이거 뭔 귀빈대접인지요. 너무 거창한데요?"

"하하하, 저희 대학 이사장님께서 시로이씨를 워낙 좋아하셔서요."

 

시로이 쿄우진의 연구는 그렇게 역사가 깊지는 않지만 그 업적은 어마어마하다.

윳쿠리를 단순히 말하고 꿈틀대는 만쥬에서 새로운 생체적 특징을 지닌 생명체로써 인식하게 만든 그의 연구는

아직 세간엔 크게 알려져 있진 않았지만 학계나 정재계 등 다양한 세계엔 큰 파장으로 다가왔다.

세간에도 시로이 본인이 눈에 띄기 싫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그의 연구내용을 알게 된 사람들도 늘어나

이번에 특별강사로 초청된 이 대학에선 아예 시로이 쿄우진을 메인 교수로 두고 윳쿠리 생물학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시로이 본인이 연구에 방해된다고 극구반대해서 무산되었지만, 대신에 이렇게 특별강의를 하게 되었다.

 

"...쯧, 이런 귀찮은 일은 사절인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만 사람을 사귀는 그에게 이런 일은 귀찮을 뿐이다.

도쿄의 ◇◇대학교. 그곳의 대강당은 그 학교의 학생들로 바글바글하다.

사회자가 거창한 인삿말과 이번 초청강사에 대한 내력을 소개하는 동안

그 소개당하는 본인은 무대 뒷편에서 불만을 중얼거리면서 앉아있었다.

 

"시로이씨, 슬슬 사회자 멘트가 끝날겁니다. 준비 되셨나요?"

"하아... 네, 해야겠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강의 기대하겠습니다.

"...기대 안해줬음 하는데."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이신, 시로이 쿄우진 강사님을 소개합니다!=

 

학생들의 박수갈채가 대강당에 울려퍼지고, 시로이 쿄우진이 무대의 중앙에 올라섰다.

지금 그는 평소의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치광이 연구자의 본모습과는 다르게 수많은 인파의 압박에 긴장해 있는 상태이다.

평소 냉정침착하던 그도 이런 낯선 환경, 특히 이렇게나 주목받는 상황은 불편하고 긴장되기만 하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일, 어쩔 수 없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형식적인 인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에... 방금 소개받은 시로이 쿄우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재차 박수가 울려퍼진다.

사람들의 기대가 커질수록 그는 괜스레 더 긴장되기만 한다.

 

"뭐어, 일단 사회자님께 소개받은 대로 윳쿠리를 생물학적 관점으로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강의를 하는 건 처음이라."

 

냉담하다. 수백여개의 눈이 이 백의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마치 평가라도 하듯이.

'당장이라도 내빼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였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소극적인 태도였다.

 

"에... 일단 준비해온 PPT의 내용은..."

"저기요! 질문 있는데요!"

 

느닷없이 큰 소리로 질문하는 한 학생.

복장이나 머리 스타일이 불량한 걸 보니 공부에 열성적인 학생은 아닌 것 같다.

 

"아, 네. 어떤 질문이죠?"

"윳쿠리는 왜 멍청한가요?"

 

강당이 폭소로 가득 채워졌다. 질문한 당사자도 마치 무언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크게 웃었다.

옆자리의 사회자도 웃음을 참으려 해도 피식대며 웃음이 새고, 무대 뒤의 스텝들도 웃어대기 시작했다.

사람에 따라, 어쩌면 이건 경직되고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즐겁게 바꾸는 것이 될 지도 모르겠다.

시로이 쿄우진에게도 이 상황은 무언가를 변하게 만들었다.

다만, 즐거움이란 건 절대 아니었다.

모두가 그 질문에 폭소하는 상황. 그 대강당 속에서 유일하게 표정이 어둡고 사나워진 사내.

시로이 쿄우진은 이 질문에 분노라는 감정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는, 이런 감정을 순순히 참아줄 만큼 사람좋은 양반이 아니다.

 

"그럼 제가 역으로 물어보죠 학생. 넌 얼마나 똑똑하냐?"

 

진지하고, 냉담하고, 모멸적인 말투의 역질문.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울려퍼지는 그 한마디는 이 대강당에 있는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자넨 자네가 똑똑하다고 증명할 수 있나? 나보다 똑똑한가? 세상의 삼라만상을 다 설명할 수 있나?"

 

학생들은 이 강사의 갑작스런 의외의 태도에 다들 얼어붙었고, 옆의 사회자도 당황했다.

사회자가 눈치를 주려고 하지만 이 남자는 그딴 거 아랑곳 않는다. 백의를 걸친 강사는 말을 잇는다.

 

"나방은 번식을 위해 달빛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짝을 찾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달빛보다 강한 광원이 있으면

그 광원을 중심으로 행동하게 되지. 한밤중의 시골에 모닥불 피워놓으면 나방은 알아서 불에 뛰어든다.

그럼, 이 나방은 멍청해서 스스로 죽는건가?

개는 길가 아무데나 변을 보지만 고양이는 자기 변을 모래로 덮지. 그럼, 개가 고양이보다 예의가 없나?

인간이 학교에서 발생하는 왕따문제를 방치하고 있을 때, 범고래는 리더가 가해자에게 주의를 주고,

그 가해자가 주의를 무시하며 계속해서 한 개체를 괴롭히면 아예 무리에서 추방한다.

그럼, 인간이 범고래보다 저열한 문화를 가진건가? 새가 하늘을 날 수 있고 우린 날 수 없는 게 새가 우월하단 증거인가?"

 

아무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이 강사의 분노서린 질문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강사, 시로이 쿄우진은, 드디어 긴장이란 사슬을 끊어내고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았다.

 

"인간 기준으로 보니까 윳쿠리가 멍청해 보이는거지 윳쿠리 기준으로 윳쿠리가 멍청할 리가 있겠나!"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발산되는 한 문장의 포효.

윳쿠리를 비웃고 강사를 비웃던 자들은 모두 그 기에 눌려버렸다.

전세가 역전되었다.

 

"왜 이딴 귀찮은 일을 해야하나 투덜거렸는데, 자네의 도발 덕분에 나도 할 말이 생겼군. 그래 제대로 강의해주지.

사회자, PPT 5페이지 켜요."

"어... 아, 넵!"

"윳쿠리를 설명하기 전에, 아메바를 설명하지. 아메바란 단세포 생물로 거의 최초로 존재한 생물이다.

단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포 안의 부속품으로 먹고, 생각하고, 활동하지.

윳쿠리는 다세포 생물이지만 그 장기의 운용방식이 단세포생물과 흡사하다.

너희들이 흔히 팥소라고만 불리는 이 윳쿠리의 내장기관은 모든 세포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

소화계, 신경계, 근육계, 순환계 등의 역할을 같은 종류의 세포가 위치만 바꿔가며 역할을 나눠 기능한다.

인간은 뇌세포가 근육의 기능을 할 수 없지만, 윳쿠리는 내장기관 세포가 뇌세포인 동시에 근육세포기도 하다.

피부는 골격계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며, 배설계와 생식계는 구분 자체는 되어있으나 같은 기능을 하기도 하지.

육체와 정신이 하나이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구분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신충격만으로도 윳쿠리를 죽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윳쿠리가 멍청한 이유냐고?

아니! 이건 단지 윳쿠리의 생물학적 특징일 뿐이다! 윳쿠리는 단지 이러한 생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너희, 소위 학대파라 칭하는 멍청이들은 윳쿠리들을 멍청하다고 하지. 왠지 아나?

윳쿠리가 인간보다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윳쿠리가 인간의 수준에 맞아 떨어지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개한테 두발로 걷고 사람 말을 하며 알아서 화장실을 가리라고 하는 소리랑 똑같아!

너희 자신이 모순을 만들어놓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너희가 윳쿠리보다 똑똑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반박하는 자가 없었다.

어쩌면 속으론 반박하려고 하는 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사회자도 그의 초청강사로썬 어울리지 않는 격정적인 언행을 제지할 수 없었다.

압도.

모든 사람들이 그의 기운에 압도당했다.

 

"굳이 윳쿠리가 왜 멍청한지를 설명하자면, 아까 말한대로 내장기관이 역할을 나누지 않고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그 생물학적 특징때문에 지능이 특별히 발달할 만큼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윳쿠리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윳쿠리가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일부 이해하고 있는 탓이다.

아무 의미없이 소리만 따라하는 앵무새와 달리, 이녀석들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한단 말이다.

그것이 너희가 윳쿠리를 멍청하다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주된 이유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기에, 인간의 문명을 이해할 수준은 되기에 인간과 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거란 말이다.

그딴 기대를 하니까 윳쿠리는 멍청하고 민폐만 끼치니 싸그리 죽여야 한다는 식의 발상이 나오지."

 

이젠 강사 본인이 사회자에게서 PPT를 조작할 리모컨을 빼앗아 강의를 본인 위주로 주도하기 시작했다.

 

"윳쿠리의 신체도 일부 기능을 분담하긴 한다. 저부쪽의 팥소는 근육계 활동을 중점적으로 한다던지 말이지.

하지만 윳쿠리의 내장기관, 팥소는 순환한다. 주기적으로 자리를 바꾸지. 그럼 여태까지 다른 역할을 하던 세포가

곧장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한다. 윳쿠리만큼 세포의 역할전환이 빠른 생물도 없어.

그렇다면 이건 윳쿠리가 뭐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단 소린가? 아니! 이것도 그저 생물학적 특징일 뿐이다!

윳쿠리는 이런 놈들인거야! 우월도 열등도 없어! 근데 너흰 그런게 그렇게 따져들고 싶냐?

윳쿠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렇게 즐거워? 그래서 뭔 보람이 있는데?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결론짓는다. 윳쿠리는 멍청한 게 아니라 이런 생태의 생물일 뿐인거다."

 

누군가는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 강의에서 집중하지 않은 자는 한명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졸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핸드폰을 하거나 옆사람과 떠드는 등의 딴청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록 지금까지의 강사들이 하지 않았던, 과격하고 어이없는 방식이었지만

이게 그의 방식이다. 연구에서도, 실험에서도 그랬듯이.

 

"자, 다음 질문 받는다. 내가 연구한 선에선 다 대답해주지."

 

백의의 광인의 첫 강의는 이제 막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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