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3.14 11:07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16-

mad
조회 수 161 추천 수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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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로이 쿄우진이라는 남자를 살펴보자.

윳쿠리 생물학의 선구자격인 천재 연구자이자

21세기의 손꼽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연구와 실험에 단단히 미친 광기의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하루는 태만하다.

 

"으어... 몇시냐?"

"아, 9시 15분입니다, 주인님."

"하아~암... 더 자고싶다... 젠장..."

 

평소에 수시로 밤샘연구를 하는 이 인간은 자주 피로가 쌓여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일어나는 일도 가끔 있다.

 

"오늘은 딱히 연구할 테마도 없고, 지루하구만."

"그, 그래도 평화롭단 건 좋은 거 아닐까요? 나쁜 일도 없다는 거잖아요..."

"너도 꽤 그럴싸한 소릴 할 줄 알게 되었구나?"

"죄, 죄송합니다!"

"아니, 칭찬한건데."

 

패션센스는 개판이다.

자신이 연구자라는 것에 자부심이 강한 탓에 항상 의사나 연구원들이 입을 백색의 가운을 걸치고 다니지만

그 망토마냥 풀어헤친 가운 안쪽엔 단조로운 색의 T셔츠와 대충 고른 청바지로 되어있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자기 패션에 관심이 없으며

때문에 틀이 정해진 정장이나 늘상 입는 흰 가운을 빼면 그의 패션감각은 괴멸적이다.

특히 절친인 마츠다에게 '너도 한번쯤은 패션에 신경써봐라' 라는 소리를 듣고 기껏 고민해서 골라온 옷이

빨간색 반팔티에 짙은 녹색의 긴바지, 그리고 평소대로의 흰 가운이라는

한여름에 나홀로 크리스마스 컬러로 나타나 마츠다에게 '넌 그냥 패션은 포기해라' 소릴 들었다.

 

"어디보자... 종별 개체실, 이상없고. 사회성 개체실, 이상없고. 장기실험 개체실은..."

"느삐이이!"

"사, 사나에! 지금 울면 안된다도! 이 남자한테 잘못 보이면 큰일난다도!"

"아니, 우는 것 정도론 잘못 보이진 않거든? 그나저나, 그때 집선언한 일가에서 가져온 256번 사나에인가."

"느삐이이이! 오빠야! 사나에, 엄마야랑 아빠야랑 언니야들이 보고싶어요!"

"흐음, 그렇게 따돌림 당하고도 가족애가 강하군. 좀 더 지켜보도록 할까. 그럼, 다음 장소 체크."

"느삐이이이!"

 

연구욕이 강한 그이지만 그가 매일같이 연구와 실험을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거의 매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루를 통째로 쉬는 때가 있긴 하다.

그럴 땐 파츄리 혼자선 해낼 수 없는 집안일 일부의 처리나 보관중인 윳쿠리들의 상태점검 등을 하곤 한다.

물론 자료정리도 빼먹지 않는다.

그가 10시 이전에 일어났다면 여기까지의 일을 끝내고 나면 최소 12시 30분.

적당히 차린 점심식사를 한다.

윳쿠리에겐, 실험개체의 특정조건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면 호화판을 차려주기도 하는 그이지만

자기 자신의 식단은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조촐하기 그지없다.

오늘도 어제 저녁에 남은 밥을 데워서 오이절임과 3일 전에 사온 편의점 소시지로 식사를 마친다.

 

오후엔 청소와 세탁을 하며, 이후엔 집안과 바깥의 장비, 장치를 점검한다.

연구실에 있는 연구용 장비들로 고가의 원심분리기와 현미경, 그리고 자작으로 만든 성분분석기를 포함한

각종 기계장비와 메스, 집게, 그밖의 약품이나 소모성 용품 등을 확인, 점검한다.

그게 끝나면 윳쿠리방의 정리 및 점검, 특히 마당과 통하는 벽에 만들어놓은 문의 상태를 확인한다.

윳쿠리방에 실험개체를 두고 있을 땐 야외활동이 필요한 경우나

집선언하려는 윳쿠리의 침입을 피해없이 허용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그의 집의 마당으로 통하는 유리문은 강화유리라 윳쿠리가 깰만한 힘이 없지만 피해하곤 별개로

자신의 부재중에도 윳쿠리가 드나들 수 있게끔 윳쿠리방의 문은 존재해야 한다. 그렇기에 종종 점검한다.

그의 집은 2층저택에, 적당한 담벼락으로 둘러싸여져 있고, 차고는 없지만 잔디가 촘촘한 마당이 있다.

울타리에 있는 문은 철물점에 주문제작한 것으로 한쌍의 문 중 하나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문이 달려있고

다른 한 문엔 윳쿠리, 특히 조수인 개조 파츄리도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있다.

벽이 매우 깨끗하고 튼튼하기에 이 문만 잘 단속하면 애당초 윳쿠리가 그의 집에 침입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의 집에 침입하는 윳쿠리들은 착각한다.

자신이 잘나서, 강해서 짐입할 수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그가 침입하게끔 허용한 것이다.

마당의 마루에도 한쪽에 윳쿠리가 오르내리라고 완만한 경사로를 붙여놨다.

이쯤되면 진짜 대놓고

<이 집은 느긋하니까 들어오세요>

하고 광고하는 꼴이다. 그리고 그게 목적이다.

제 잘난 줄 알고 순순히 들어와 윳쿠리방에서 집선언을 하는 윳쿠리들은 모두 하나같이 낚인 월척일 뿐이다.

그렇게 찾아온 윳쿠리들의 운명은 동일하다. 어떤 실험에 동원되든, 어쨌든 실험체다. 결국 실험체가 된다.

 

벽의 상태와 문의 상태, 마당과 마루, 마루의 경사면, 마루에서 윳쿠리방으로 통하는 문의 점검까지 끝내면

그의 오후일과는 마무리가 된다. 나머지 시간은 백수처럼 보낸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채 프리랜서로써 연구하는 그이기에 가능한 태만한 삶이다.

소파에 누워 과자를 씹으며 TV를 본다. 자기 조수가 여기에 동참하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무, 무큐! 바, 방금 전 채널 보고싶어요..."

"그래."

 

딱히 TV에 큰 관심이 없는 그가 조수에게 리모컨을 넘기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보내다 보면 저녁식사시간이다.

저녁도 그리 신경써서 차리진 않는다. 오늘은 그냥 피자나 한판 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도착한 8등분된 피자 중 두조각만 먹고 남긴다. 조수는 네조각이나 먹는 동안에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두조각은 냉장고에 넣고 내일 아침식사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다.

이제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다. 다시 잘 생각인가보다.

조수는 그냥 저 좋을대로 TV를 보든 윳쿠리방에서 놀든 마음대로 하다가 원할 때 자면 된다.

이걸로 끝이다. 연구와 실험이 없는 때의 이 남자의 일상이다.

그 백의의 광인의 이면엔 이런 태만한 백수가 숨어있다. 뭐, 연구때문에 생긴 피로가 원인이긴 하지만.

이제 그는 잠에 든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낸다.

 

그리고 새벽. 그는 눈을 떴다.

그 남자의 것으로써 익숙한 그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좋은 연구테마가 떠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곧장 실행에 옮길 것이다.

  • profile
    무첸 2017.03.14 16:18
    여름에 크리스마스라니...지구 반대편은 통할수도??
  • profile
    미리내미르 2017.03.14 16:45
    편한걸 입으면 그게 패션!...이라고 믿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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