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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3 10:35

남극에서 온 그녀 -15-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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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거리가 반짝거린다! 마사히로, 오늘 무슨 날이야?"

"아아, 그러고 보니까 슬슬 발렌타인데이구나."

"발렌...타인?"

 

발렌타인데이.

그것은 본디 로마시대의 발렌티노라는 한 카톨릭 신부를 기리는 날로

가족이 그리워 탈영할 것을 염려해 결혼이 금지된 로마군인들을 위해

그들의 결혼을 몰래 해주었다가 발각되어 사형된 성 발렌티노를 기리기 위한 날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저 리얼충 커플들의 초콜릿 꼬장을 부리는 날

아니면 소위 의리 초콜릿을 받고 혹시 얘가 날 좋아하나? 하고 착각하는 날이다.

같은 학과의 한국 유학생을 통해 나는 솔로부대 죽창대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만 해도 어딜 봐도 커플 커플 커플!

아직 발렌타인데이도 아닌데 벌써부터 들뜨면 대체 당일은 얼마나 거리가 핑크빛일까

당장이라도 대나무밭에 가서 대나무 하나 잘라와 이곳을 점거해버리고 싶다.

 

"저기 마사히로, 발렌타인데이, 뭐야?"

"하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초콜릿 나눠주는 날이야. 친구나 가족끼리도 나눠주지만 특히 애인한텐 정성들이는 날이지."

"그럼 좋은 날이네! 근데 마사히로, 왜 표정 어두워?"

"하하, 난 살면서 이때까지 발렌타인 초콜릿은 받아본 적이 없거든."

 

그 한국 유학생 친구가 내 솔로인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보다 훨씬 잘 주고받을 일본에서 한번도 발렌타인 초코를 받아본 적 없다면 넌 솔로부대 중위는 되겠구나!'

그렇다. 난 장교급 솔로부대원이다.

 

"마사히로,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받은 적 없나?"

"응. 없어. 하아..."

"우웅..."

 

그렇게 씁쓸하게 평범한 며칠이 지나가고 있었다.

난 알바를 갔다오는 동안에 계속해서 늘어나는 커플들의 염장질을 봐야했고.

이젠 창밖만 내다봐도 거하게 꾸며놓은 초콜릿을 파는 가게들과

거길 드나드는 커플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그거 다 상술이야 상술! 니들은 그냥 돈줄이라고 하하! 난 날 사랑하지! 그래서 나에게 투자하지!

...라고 자기암시해봤자 현실은 요모양 요꼴.

이렇게까지 연애경험 없을 수도 있나? 슬프다 진짜...

그러고 보니까 요새 레티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사오질 않던데, 취향이 변했나?

그리고 컴퓨터로 게임 말고도 뭔가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알려준 건 나지만. 나 알바가는 동안 심심하지 말라고 알려준거니까 엄한 것만 아니면 괜찮겠지.

 

발렌타인 데이 당일.

내가 알바하는 편의점도 핑크색 하트가 떠다니는 환각이 보일 정도다.

뭔놈의 커플들이 이리도 많이 찾아와? 점장 입장에선 돈줄이니 딴데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카운터 바로 앞에서 염장질하면 계산하고 있는 커플손님들 상대로 표정 일그러지지 않게 하는 게 힘들다.

애써 웃어본다. 하지만 목에서 실핏줄이 드러날 것만 같다.

저녁 즈음엔 다음 알바하고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화, 목, 토 오후시간대만 하는 알바라 레티 돌보는 덴 여유시간이 난다.

근데 평일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다 커플이다.

이건 지옥이야...

멘탈이 견딜 수가 없어서 평소 다니던 큰길에서 빠져나와 골목길로 돌아서 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공원에서 본 노숙윳들.

저것들은 어떻게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인 걸 아는지

한 윳쿠리 레이무가 윳쿠리 마리사한테 어디서 주운 초콜릿 쪼가리를 선물로 주고 있다.

마리사는 크게 기뻐하고 레이무한테 결혼하자고 한다.

레이무도 얼굴을 붉히며 청혼을 승낙했다.

그리고 난 그 두놈의 결혼식을 하늘에서 열게 해주고자 발로 차 공원 벽에 박아주었다.

 

"다녀왔습니다..."

"아, 마사히로! 조, 조금만 기다려라!"

"응?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줘라!"

"어, 으응..."

 

갑자기 무슨 일이지?

지금 들어가면 안되는 일이라도 있나?

레티가 왜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지 생각하는 중, 레티가 이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레티는 양손을 뒤로 두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마, 마사히로 어딘가 힘들어보인다."

"아아... 세상이 커플투성이야."

"마사히로, 초콜릿 못받아서 힘드나?"

"헤헤, 그런 셈이지 뭐..."

"저... 그럼 마사히로, 이거, 레티 선물이다."

 

레티는 뒤에 숨겨두었던 걸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빨간 리본으로 장식된 분홍색 하트모양 상자였다.

 

"레, 레티 선물이다. 열어봐라."

"어? 어, 으응..."

 

난 어안이 벙벙한 채 리본매듭을 풀고 상자뚜껑을 열어봤다.

그 안엔 정성스레 담긴, 약간 일그러진 하트모양의 초콜릿이 있었다.

 

"마사히로, 초콜릿 못받았댔다. 레티, 신경쓰였다. 그래서 레티, 직접 만들어서 선물하기로 했다."

 

아아... 그래서였구나.

레티는 이 선물을 위해 아이스크림 먹을 용돈을 모으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지금 이렇게 내게 선물해준 것이다.

 

"마사히로... 기, 기쁘나?"

 

부엌의 군데군데에 초콜릿이 묻어있다. 자세히 보면 걸어둔 앞치마에도 초콜릿 자국이 있다.

아마도 레티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 선물을 완성한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응, 정말로 기뻐, 레티."

 

내 말에 레티의 표정이 밝아져 기쁨으로 가득찼다.

 

"와아! 마사히로, 기뻐해줬다! 레티도 기쁘다!"

 

그리고 레티는 기뻐하면서 내게 달려들어 안겼다.

응석꾸러기같으면서도 어딘가 어른스럽고 대견한 레티.

비록 겉모양은 섬세하지 않지만 이 초콜릿은 레티의 정성이 가득 담긴 맛있는 초콜릿이 분명하다.

부엌청소따윈 지금은 잊어버리자. 그저 이 기쁨을 만끽하자.

 

"그래도 역시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지. 같이 먹자, 레티."

"응!"

 

지금 나는 레티와 소파에 앉아 반으로 똑 잘라낸 초콜릿을 나눠먹고 있다.

달달한 맛이 입안에서 퍼져나간다.

레티는 초콜릿을 먹으면서도 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도 레티를 바라보며 웃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은

시중의 것 따위하곤 비교도 안되는 맛이었다.

잠깐, 몸첨부 윳쿠리한테 받은 발렌타인 초콜릿은 솔로부대원으로써 카운트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에이 알 게 뭐야, 오늘은 기쁜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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