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5.09.17 01:14

그가 바라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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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 : 구윳사



그가 바라보는 풍경

나는 이 곳에 있다.

내가 이 곳에 서있게 된 것은...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확실한건 내가 이 곳에 서있기 시작할 때부터, 내 뒤의 산과 내 앞의 광장은 이미 있었다는 것 정도. 그들이라면 내가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나이를 잊을만 하면 사람들이 와서 내 나이를 말해주기에.

마침 오늘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몇 번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일정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 앞에 와서 나의 나이를 말해주고, 뭔가 어려운 말을 한다. 솔직히,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있기만 하는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내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 같은 숫자 뿐이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아아. 올해로 나는 **번 째 생일을 맞는구나.

솔직히 그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말에서 나의 나이를 뺀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들이지만 정말 가끔씩 나에게 찾아오는 오락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그들이 몇 번을 찾아왔는지 모르듯, 그들이 몇 번을 이렇게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번 정도였겠지.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몇 번인가 정도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졌다.

당연한 일상이지만, 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 이게 바로 나의 일상이다. 가끔씩 사람들이 몰려 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면, 평소와 같이 지금까지 나의 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과를 시작하자.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평소와는 달리 하늘 높이 뜬 햇살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발 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했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내가 이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직 사람들이 찾아올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째서 말소리가 들려온 것일까. 

그 곳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니, 무언가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의 머리와 같은 것들. 그들의 머리 밑이 없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늣샤! 늣샤! 아가야들, 엄마야를 잘 따라오라구!"
"늣! 레이뮤는 엄먀야를 따라갈꺼야!"
"느으! 레이뮤도 따라갈꺼야!"
"느늣! 마리샤만 버려듀고 가지마!"
"아가야들, 여기는 '신천지'니까 모두들 주위를 조심하라구! 엄마야와 떨어지면 위험하다구!"

...이 녀석들은, 뭐지?
자세히 보니 큰 머리는 작은 머리 넷에게 '아가야'라고 부르고 있고, 작은 머리 세 개는 큰 머리 하나에게 '엄먀야'라고 부르고 있다. 아, 기억났다. 이들은 '가족'인 것이다. 가끔씩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ㅡ며칠 전 나의 나이를 알려준 사람들은 아니다ㅡ중 하나가 '가족'이라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몇몇 '가족'과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애초에 내 기억은 부정확하다. 그냥, 이들도 '가족'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은 내 옆을 지나쳐, 내 앞에 펼쳐진 너른 광장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씩 내 밑을 기어다니는 개미같이 느린 움직임이었다.

"아가야들! 이 벌판을 지나면 달콤달콤이 있을거라구! 잘 따라오라구!"
"느늣! 달콤달콤! 레이뮤거야!"
"느으~아냐 그건 레이뮤거야!"
"언니야들 무슨 먈하는 거야! 그건 마리샤거라구!"

...조금은 시끄럽다.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조용했었기 때문이다...아니, 이것은 내 느낌일 뿐이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의 기억은 부정확하니, 어쩌면 지금까지 나에게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시끄러웠을지도 모른다.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흥미를 잃은 나는 다시 나의 일과를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동안 살아왔다...

"느갸아아아!"

갑자기 내 앞에서 들린 비명소리에 나는 놀라 앞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내 눈에는 내 주위에 곧잘 놀러오는 새가 아까 지나가던 머리 넷 중, 작은 머리 하나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느갸아아아!!! 아바아아아! 레이뮤 아바아아아아!!! 사려져!!! 어마야!!!!"

"느늣! 느긋할 수 없는 새씨라구! 아가야들 모두 도망가자구!"
"늣! 레이뮤 도망갈거야!"
"느느! 마리샤도ㅡ!"

"어재저 레이뮤를 두고 가는거야아아아!!!! 느갸아아아아!!!!"

...큰 머리 하나와, 작은 머리 둘이 내 뒤쪽, 그러니까 산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그리고, 작은 머리 하나는...이윽고 새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해가 졌다.

"....느갸아아아아!!!!"

어제와 마찬가지로 왠 목소리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

아, 그 '가족'이다.

"느느느느!!! 느게에에엑!! 마리샤..마리샤의 모쟈! 느갸! 마리샤의 리보...느갸아!"

"느늣! 어째서 새씨가 여기에 있는거냐구! 아가야들 모두 도망가자구!"
"늣! 레이뮤, 엄먀야를 따라갈꼬야!"

"안대애애! 엄먀야야! 마리샤를 버리지먀아아아아!!!!"

어제 본 것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 주위에 곧잘 놀러오는 새가, 작은 머리 하나를 입에 물고 있고, 큰 머리 하나와 작은 머리 하나가 내 뒤쪽, 그러니까 산쪽으로 황급히 뛰어가는 광경. 어째서 어제와 이리도 똑같은 것일까.

어제와 마찬가지로, 해가 졌다.

"느베에에에엑!!!!"

어제와, 어제의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그 '가족'이었다. 이번에 새에게 먹히고 있는 쪽은 작은 머리 하나였다. 큰 머리 하나는 내 뒤쪽, 그러니까 산쪽으로 황급히 뛰어가고 있었다.

어째서, 큰 머리는 작은 머리들이 계속해서 새에게 먹히는 이 곳으로 계속 온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인가의 낮과 밤이 지나갔다.

말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머리만 있는 기묘한 것이 나를 이렇게 깨웠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평소에 많이 보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머리 밑으로, 몸과 팔다리가 있다. 내가 태어난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이제 슬슬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져간다. 나의 기억력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ㅡ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바보 아들아?"
"...이 탑은, 왜 세워진거죠?"
"...몰라서 묻는거냐, 혹시?"
"아니, 대충은 알겠다니까요. 옛날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적이 있었고, 뭐 어찌되었든 그럭저럭해서 뭔가 큰 일을 해냈다는건 알겠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 탑을 세워났냐 이겁니다."

퍽

작은 사람쪽이 큰 사람쪽에게 한 대 맞았다. 아파보인다.

"내가 바보아들을 위해 강의를 해주마. 우리가 이 탑을 세운 이유는, 우리의 슬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슬픈거는 잊어야잖아요?"

퍽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세게 맞은 것 같다. 작은 사람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이 탑은 우리에게 그 때의 슬픔을 기억하게 하고, 그 슬픔을 우리가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하기 위해서 세운거다. 우리가 그 슬픔을 아예 잊어버린다면, 어쩌면 그 슬픔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만으로는 그 슬픔이라는게...꽤나 잘 잊혀지거든? 그래서 우리는 이런 탑을 세우거나 아니면 책을 쓰거나 해서 그 슬픔을 미래에 전하는거다. 알겠냐 바보아들아?"
"...한 마디로 교훈이라는 거네요 뭐."

작은 사람의 중얼거림에, 내 오래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

그런거였나.

그것ㅡ큰 머리 하나ㅡ은 그 '슬픔'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계속 찾아온 것인가.

그런데...

그것이 저 큰 사람의 말처럼 슬픔을 반복하지 않게하기 위해서 이 곳에 찾아온 것이라면...

어째서 작은 머리 셋은 새에게 모두 먹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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