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4.12 10:54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35-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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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가공소.

가공소 중에선 오다케 산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공소로

도쿄 내의 가공소 중에선 작은 편에 속하지만 가공소로써의 기능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윳쿠리들을 가공하는 가공공정은 물론이고 그 공정에 투입시킬 윳쿠리들을 사육하는 공간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제 26 가공소의 사육공간은 단 한마리의 윳쿠리가 독차지하고 있다.

도스다.

정확하게는 어제 시로이 쿄우진이란 남자에 의해 잡혀온 도스로

그 남자의 이식수술에 의해 몸은 3m급이지만 정신은 6m급의 특이한 도스이다.

그 도스는 현재 이 제 26 가공소에서 관리되고 있다.

 

"앗,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이네. 그 도스의 상태는 어떤가?"

"표정으로 봐선 순종적인 건 아니지만 별 문제는 없습니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식사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시로이씨가 오기 전까진 잘 관리해야 하네. 그분은 가공소의 기술지원을 해주시는 높으신 분이니까."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나저나 그 사람도 특이한 걸 만들었구만. 6m급 도스의 중추팥을 3m급에게 이식시켰다고?"

"네, 시로이씨 말에 따르면 6m가 원종, 3m가 아종이라고 합니다. 그 원종의 중추팥을 아종에게 이식시켰다고 하셨죠."

"나로썬 모르겠구만... 이런 도스에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뭐, 그분은 무가치한 윳쿠리에서 새로운 가치를 뽑아내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귀빈이 맡긴 물건인 만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물건, 도스가 대체 무슨 가치를 가지는지, 제 26 가공소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아는 유일한 자, 백의의 연구가 시로이 쿄우진이 오후 1시에 이 가공소에 도착했다.

 

"제 26 가공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시로이씨. 제가 이 가공소의 소장인..."

"제가 부탁드린 도스는 잘 있는지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려는 소장의 말을 잘라먹고 시로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 물론입니다. 도스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고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도주의 우려는 없는 거겠죠?"

"하하하! 고작 도스따위가 어떻게 인간의 기술을 뚫을 수..."

"멍청하시군요."

 

시로이는 오만하고 한심하다는 듯, 그늘진 표정으로 소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게스 윳쿠리를 내려다보는 학대파들과 같았다.

 

"...예?"

"녀석은 인간보다 오래 살아왔고, 경험에 의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새 몸에 적응해 도주하려 했죠.

녀석은 전략적으로 움직일 줄 알고, 신중하며, 치밀합니다. 여태까지 봐왔던 아종 도스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 넵!"

"녀석에게 안내해주십시오. 직접 봐야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시로이는 소장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가면서 중얼거렸다.

 

"...소장씩이나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놈."

 

시로이가 인류를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란 것에 자부심도 없고, 타인에게 무례하긴 하지만

그의 이번 발언은 정확히 맞았다.

제 26 가공소의 가공소장은 전형적인 학대파 인간으로 지금은 업무상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있지만

이전엔 모히칸 스타일로 '햣하!'를 외치며 윳쿠리를 고문하며 즐기던 전형적인 학대파 오니이상이었다.

그는 순전히 윳쿠리를 학대하기 위해 가공소에 입사했으며, 시간과 실적, 그리고 아첨으로 자연스레 소장에 오른 사람이다.

윳쿠리를 엄연한 생물체로 보는 시로이에겐 윳쿠리를 단지 주절대는 만쥬로만 보는 소장이 멍청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시로이가 속으로 불만을 늘어놓는 사이에 그는 소장의 안내로 도스가 갖힌 사육장에 도착했다.

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본 그곳은 광활하고 살풍경했다.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벽들에 갇혀 단 한마리의 도스가 별다른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는 채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유리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하, 저것 좀 보십시오. 뭘 볼 게 있다고 저리 멍청하게 올려다보는지..."

"멍청한 건 댁이죠."

"네!?"

"저녀석의 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멍하니 있는 게 아닙니다. 녀석도 우릴 감시하는거죠."

 

시로이는 계단으로 내려가 사육장으로 들어갔다.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유리창으로 사람들을 노려보던 도스는 문이 열리자 그제서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도스 자신이 증오해 마지않는 흰 옷을 펄럭이는 인간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신가, 도스."

"......시로이, 쿄우진."

"내 이름을 기억해주니 고맙구만?"

"왜 날 살린거지?"

"순수히 내 연구욕을 위해서이지. 내 욕망을 따랐을 뿐이야."

"내가 너에게 비협조적일 거란 생각은 안했나?"

"오히려 협조적일 가능성을 낮게 봤는데? 내가 윳쿠리 연구를 윳쿠리들에게 협조를 받으면서 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난 인간들을 피해 숲속에 살면서 윳쿠리들을 다스렸다. 인간과의 마찰이 없게 깊디 깊은 곳에 숨어서."

"그래서 찾는 데 고생 좀 했지."

"인간의 기준에서 윳쿠리가 해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날 드러내지 않았지."

"그랬겠지."

"근데 넌 그런 날 그 깊은 숲속까지 찾아들어가서 이러한 형태로 데려왔어. 대체 무엇이 목적이냐...!"

 

도스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확실하게 분노로 일그러졌다.

바로 눈앞의 천적을 적대하고 있다.

 

"흐음, 내 연구를 위해서란 말은 했으니 그걸 물은 건 아닐테고, 너에게 어떤 실험을 하고 싶어하냐는건가?"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군."

"너한테 말해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가..."

"그건 그렇고...... 말투가 바뀌었군. 어미에 '제'를 붙이지도 않고, 목소리에 분노와 증오가 서렸어."

"그래."

"무엇이 너를 그렇게 바꾸었지?"

"저기 보이나? 저 창문 너머의 광경이."

 

시로이의 맞은편에 있는 벽엔 하나의 창문이 또 있었다.

그 위치는 윳쿠리들의 크기에 맞게 낮은 위치에 있었으며, 그곳으로 보이는 풍경은 가공소의 가공공정이었다.

수많은 윳쿠리들이 고정된 채 레이퍼에 의해 강제적으로 교미당하며 억지로 열매 윳쿠리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줄기에 맺힌 어린 윳쿠리들은 성장촉진제에 의해 몇초만에 아기 윳쿠리로 성장해 컨베이어 벨트로 떨어졌고

그렇게 떨어진 아기윳들은 그대로 끌려가 온갖 형태로 가공되어 제품이 되었다.

 

"윳쿠리들은 이런 끔찍한 일들을 반복해서 당하지. 너희 인간은 그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소일렌트 그린. 좋은 영화이지. 식량난에 빠진 인류가 결국은 인간으로 식량을 생산한다는 내용의 이야기."

"상상정도는 했다는 소리로군."

"상상으로 그칠까? 인간은 인간에게도 잔혹해질 수 있는 생물이야. 단지 지금이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일 뿐.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군. 윳쿠리처럼 목숨을 갈아내지는 않지만 인간은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누군가는 그걸로 배를 불리고."

 

시로이는 도스의 옆으로 다가가 낮은 위치에 있는 유리창에 비춰지는 공정을 바라보았다.

 

"인간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어. 형태와 수단은 다르겠지만, 그 본질은 같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해 살아간다.

인간이 윳쿠리에게 행하는 잔혹행위들은 인간도 당해왔던 것들이야. 차별, 학대, 세뇌, 학살...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난 윳쿠리 연구자야. 윳쿠리에 대해 알아보고, 그 결과를 논문이란 이름으로 내지.

난 그걸로 재물을 얻고, 그걸로 살아가. 그런 내가 낸 논문 중 가장 많이 욕을 먹은 것이 딱 하나 있어. 뭔지 알아?"

"흥, 뭔데?"

"윳쿠리에 대한 학대는, 인간에 대한 동족혐오에 기반한다."

"......하?"

"학대파들이 주로 하는 말들이 있지. 윳쿠리들은 느긋하게 살아가길 원하면서도,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다른 존재에게만 의존하려고 하며,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것을 자신 이외의 존재의 탓을 하며

스스로를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순간의 욕망에만 충실할 뿐인

미천하고 더러운 생물이라고. 그런데 그건 말야, 인간도 마찬가지야. 학대파들이 말하는 윳쿠리가 학대당하는 이유들은,

그대로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하고, 또 적용되어 왔거든. 스스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타인에게 의존만 하며,

자신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는 모든 일들을 외부의 탓으로만 하며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 인간들.

인간들은 윳쿠리들에게서 그러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혐오하게 된거야. 저것 좀 봐."

 

시로이가 가리킨 것은 공정에서 일어나는 한 장면.

선임 직원이 후임 직원의 실수를 문책하며 면전에서 폭언을 내뱉으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후임은 고개를 숙인 채 그저 사과만 할 뿐이었다.

 

"사냥을 갔다왔는데 성과가 형편없는 아비를 면박하는 어미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 저 후임 직원은 이제 그러겠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힘들게 먹이를 구해오는 윳쿠리들에게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윳쿠리를 보며

자신의 같잖은 실수로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괴롭힌 선임을 떠올리며 혐오하겠지. 그리고 그 분노를 표출하겠지.

그 윳쿠리를 학대한다는 방식으로 말이야. 그게 내가 본, 윳쿠리 학대의 시작이야. 인간은 윳쿠리에게서

인간의 혐오와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는 인간의 모습과 같은 모습들을 본다. 그런데 그 윳쿠리라는 것들은 인간보다 약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윳쿠리를 학대하지. 윳쿠리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쥐고 있어서 건드리지 못하니, 그 대신으로 윳쿠리에게 그 감정을 폭발시키는거야."

"그렇다면 아무 이유없이 윳쿠리를 괴롭히는 인간들은 뭔데?"

"크게 두가지가 있지. 하나는 선입견. 윳쿠리는 인간이 인간에게 혐오를 느끼는 행위들만을 한다는 생각이 이미 각인되어

모든 윳쿠리들은 그렇다는 착각을 하고 학대하는 것이지.

두번째는 그 인간 자체가 원래 성격이 불량하고 폭력적인 것. 이런 인간은 비단 윳쿠리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의 짓을 하지. 자신보다 약한 인간에게 폭행이나 갈취를 한다고. 뭐, 인간끼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 처벌하는

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걸 어찌할 수 없는 위치의 인간들은 그나마 정도를 두고 행동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니 인간도 힘들게 산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 어떤 생물도 사는게 죽는 것보다 힘들지. 식물조차도 말이야."

 

시로이는 뒤를 돌아 문을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너에 대한 연구는 다음으로 미루지. 대신 제법 좋은 대화를 했으니."

"한가지 묻고싶은 게 있다. 시로이 쿄우진."

"뭐지?"

"인간이 다른 윳쿠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사는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고, 네 얘기로 더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어떤 인간들은 확실히 느긋하게 살고 있지. 시로이 쿄우진. 너는 느긋하게 살고 있는 인간인가?"

 

시로이는 고개만 돌린 채, 어둡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의 느긋함은 연구하는 것이다. 내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고, 또 계속하는 한, 난 스스로가 느긋한 인간이지."

"...알았다."

 

그렇게 시로이의 도스에 대한 연구는 다음으로 미뤄지고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아종의 몸을 취한 원종 도스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생각에 잠겼다.

 

"시로이 쿄우진. 난 너란 인간을 전부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겠어. 네놈은..."

 

도스는 콘크리트 벽에 도스 스파크를 쏘았다.

벽이 무너졌고, 바깥의 풍경이 드러났지만 도스는 탈출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가공소의 직원들이 당황하는 와중에, 도스는 중얼거렸던 혼잣말을 이어서 했다.

 

"네놈은 자신의 느긋함을 위해 윳쿠리도, 인간도 희생시킬 수 있는 게스라는 것만은 알았다."

 

도스는 이를 갈며, 그 백색의 악마에 대한 타오르는 분노와 혐오를 참아내며 밤을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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