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증거
w/ 라디
“이 아이로 주세요.”
‘느와아아아! 마리사 해냈다구! 이제 고생씨는 저리 가고, 행복씨 어서오세요! 인 거라구!’
자신을 다루는 드물게도 정중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실려, 마리사는 케이지에서 이동장으로 옮겨졌다. 훌륭한 이동장이다. 마리사 혼자서 간신히 뒹-굴뒹-굴할 수 있는 넓이지만, 살풍경한 케이지와는 어느 모로 보나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느긋할 수 있는 향기가 났다. 폭신폭신씨도 한가득이었다. 무엇보다도 마리사는 알고 있었다. 이 느긋하지 못한 케이지에서 벗어나는 날이, 마리사가 새로운 가족을 찾아가는 날이라는 것을. 설령 이동장이 비좁고 딱딱해서 느긋할 수 없었더라도 마리사는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지긋지긋한 케이지만 벗어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흔들리는 이동장 속에서, 마리사는 기쁨의 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제멋대로 외쳐대는 것은 인간씨를 느긋하지 못하게 한다고 몸으로 배운 탓이다. 대신 마리사는 땋은 머리를 들어 모자에 달린 은뱃지씨를 만지작거렸다. 죽을 고생을 해서 얻어낸, 마리사의 ‘노력의 증거씨’.
사실 ‘죽을 고생’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천성이 이기적이고 멍청한 윳쿠리들이 인간과 함께 살려면, 윳쿠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거의 학대에 가까운 훈육 과정이 필요하다. 마리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다지 똘똘한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 마리사의 불행이었다. 마리사는 참 많이도 맞았다. 실수를 해서 맞았고, 반항하다가 맞았고, 배운 걸 잊어버려서 또 맞았다. 맞고 또 맞았다. 가끔은 찔리거나 꼬집히기도 했다. 불에 구워지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마리사가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씨? 그게 뭐냐제? 응응은 마리사가 하고 싶은 곳에서 하는 게 당연한 거제! 인간씨는 바보인 거냐제? 죽고 싶냐제?’
‘인간씨, 달콤달콤 내놓으라제! 잔뜩이면 된다제!’
‘바디자으 시크릿하고 프리티한 아냐루에 그렁거 집어너치 마아아아아아아! 느부엑!’
‘느히이이이이! 잘모태씁니다아아아아! 다시는 다제말투를 쓰지 안케씁니다아아아아아아아! 용서해주십씨요오오오오오!’
‘느갸아아아아아악! 슈퍼모델쒸도 질투할 각선미를 자랑하는 바디자에 저부씨가아아아아아아!’
모진 체벌을 견디지 못한 마리사가 혼절하면 브리더씨는 곧바로 오렌지주스를 뿌렸다. 마리사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도피하는 것을 브리더씨는 용납하지 않았다. 입가로 흘러드는 달콤달콤의 맛에 정신을 차리면 또 다시 훈육이라는 이름의 고문이 시작되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잘못을 교정해 바람직한 애완 윳쿠리로 거듭나거나, 아예 미쳐 버리거나. 후자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정신을 놓아 버린 다른 윳쿠리들이 갈려나가 윳쿠리용 사료가 되는 것을 보면서 마리사는 이를 악물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저 증오스러운 브리더씨가 보란 듯이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 지옥 같은 나날을 견뎌 애완 윳쿠리가 되어야만 했다.
마침내 은뱃지 시험을 통과했을 때 마리사는 울어버릴 뻔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절반, 기어코 해냈다는 뿌듯함이 절반이었다. 비명과 시취(尸臭)가 뒤섞여 아비지옥과도 같았던 훈육실에서 매장의 전시용 케이지로 옮겨진 것도 이 직후였다…….
상념에 빠져, 마리사는 이동장이 멈춰선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눈을 찌르는 가느다란 빛에 마리사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이동장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있었다.
“자아, 어디 보자……. 느긋하게 있으라구!”
낯선 얼굴이 마리사의 시야에 들어왔다. 느긋하고 상냥한 미소. 윳쿠리샵 제일의 미 레이무보다도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릿결. 마리사의 새 가족이 될 언니야였다. 마리사를 볼 때마다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던 브리더씨와는 아주 달랐다. 마리사의 마음속이 기쁨과 설렘으로 충만해졌다.
“늣! 언니야! 느긋하게 있으라구! 마리사는 마리사야!”
마리사는 활짝 웃으며 외쳤다. 곧 언니야의 가느다란 손이 마리사를 안아들어 마룻바닥에 내려놓았다. 마리사는 이동장을 나서자마자 눈에 비친 집안 풍경에 압도당했다. 그간 마리사는 어두침침한 훈육실과 좁은 케이지, 케이지의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매장 홀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언니야의 집은 달랐다.
넓은 창문으로부터 비쳐 들어오는 햇빛은 집안 구석구석을 어두운 곳 없이 밝혀 주었다. 마리사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저부를 아프지 않게 감싸 줄 부드러운 러그가 있었다. 골판지와 찢어진 신문지로 만들어진 간이 화장실 대신 제대로 된 도자기 화장실도 있었다. 오렌지주스와 깨끗한 생수가 각각 담긴 급수기, 윤기가 흐르는 고급 윳쿠리 푸드가 한가득 쌓인 사료그릇도 있었다. 마리사의 눈높이에는 아기자기한 화분이 놓여 눈을 즐겁게 했다.
“느와아…… 무척 느긋한 윳쿠리 플레이스야! 마리사 느긋할 수 있어!”
“후후,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여기가 다 네 집이야. 어디든 돌아다녀도 된단다.”
“느긋하게 알았어! 마리사를 데려와줘서 고마워, 언니야! 느긋하게 잘 부탁해!”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윳쿠리 푸드가 있긴 하지만, 따로 뭐 먹고 싶은 게 있니?”
“느……?”
생전 처음 받아 보는 질문에 마리사는 당황했다. 언젠가 달콤달콤을 내놓으라며 떠들어대다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이후, 마리사에게 ‘밥씨’란 ‘인간씨가 주시는 것’, ‘무엇이든 감사히 먹어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식사 메뉴를 고를 수 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사는 우물쭈물하며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런 마리사를 언니야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마리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늣…… 언니야, 마리사는 도넛씨가 먹고 싶다구.”
전시용 케이지로 옮겨지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무료하게 유리벽 바깥을 바라보던 마리사의 눈에 어떤 광경이 들어왔다. 인간씨와 윳쿠리 첸이었다. 더없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동장에서 첸을 꺼낸 인간씨는, 양팔에 첸을 꼭 안고 쓰다듬으며 매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는 첸은 즐거워보였다. 한참 동안 아이쇼핑을 즐기던 둘은, 이윽고 휴게용 소파에 걸터앉았다. 인간씨가 쇼핑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첸의 입에 물려주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리사의 귓가로 첸의 목소리가 빨려 들어왔다.
“도넛씨는 느긋할 수 있네! 알고 있어-!”
저게 ‘진짜 도넛씨’라는 거구나. 동그란 빵 위에 올라간 토핑은 딸기와 생크림이었다. 부모 윳쿠리의 팥소씨로부터 이어받은 기억 덕분에,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것을 알아 버렸다. 입에 침이 고였다. 마리사는 저도 모르게 케이지 한구석에 쌓여 있는 싸구려 윳쿠리 푸드와 첸의 도넛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딱딱한 푸드. 부드러운 도넛. 첸의 얼굴이 ‘행복-!’으로 물들수록 마리사의 기분은 점점 울적해졌다. 마리사는 느릿느릿 움직여 사료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우-걱우-걱…… 그럭저럭…….”
그 뒤로도 수십, 수백 번을 생각했다. 도넛씨는 대체 어떤 맛일까. 마리사가 먹고 있는 싸구려 푸드가 도넛이라고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언제 진짜를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다가도, 그런 행운이 올 리 없다는 생각에 아예 도넛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렸었다.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하지만 마리사는 여전히 불안했다. 언제 언니야가 브리더씨처럼 돌변해 회초리를 들지 알 수 없었다.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너무 쉽게 대답을 했다고 혼이 나는 건 아닐까……?
“좋아. 잠깐만 기다려.”
언니야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길질도 욕설도 날아오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마리사의 앞에 곧 접시가 하나 놓였다. 동그란 빵 위에는 구름처럼 흰 크림이 듬뿍. 마치 해님이 구름 뒤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듯, 크림 위에는 새빨간 딸기 한 알이 올라앉았다.
마리사가 꿈에서도 그리던 도넛씨와 완전히 같았다.
“도, 도넛씨!”
“많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먹어.”
환희의 함성을 지르는 대신, 마리사는 조심스럽게 접시로 다가갔다. 그리고 도넛 귀퉁이를 한 입 베어 먹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하마터면 기쁨시시를 지릴 뻔했다. 위험했다. 마리사는 윳쿠리치고는 초윳적인 인내력을 발휘했다. 도넛씨가 더 많이 있다고 언니야가 분명히 말했다. 어서 이걸 다 먹어치우고 새 도넛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마리사는 마치 희소종 금뱃지처럼 얌전하게 도넛을 먹었다. 언니야는 마리사의 곁에 턱을 괴고 쪼그려 앉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 마리사가 도넛을 다 먹어치웠다. 마리사의 앞에 곧장 새로운 접시가 놓였다. 고리 모양 빵이 초콜릿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것도 먹어 보렴. 신제품이래. 오늘 줄 서서 사 왔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구나.”
마리사의 윳천국의 나날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