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서술에 앞서, 엘리니카 팀에 대한 정보는
http://kimchimanju.com/xe/creation_write/36641
이곳에서 확인하시면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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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밝을때만 해도,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도 어제까지처럼 평범한 나날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일어나,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식사를 하고
어김없이 꽉 막힌 길가를 헤치고 각자의 일과를 시작했을 것이다
학교의 학생들도, 회사의 회사원들도, 집안의 주부들도
그들의 평범할 것이었을 하루의 예정은 고작 그날 오전 9시 30분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수많은 대기업들과 대형 상가들이 몰린 곳
인근에 학교와 주택이 많은 곳
산과 가까운 한적한 곳
이 세곳에 자리하고 있던 세개의 가공소들에서 동시에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폭발에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으며
경찰들은 시민들을 보호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으며
소방관들은 시민들을 구출하고 폭발에 의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SNS의 발달은 수많은 이들이 경황이 없는 이때에도 누군가는 이를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게끔 만들었다
폭발을 직접 목도한 이들도,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들은 이들도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렴, 멀찍이 떨어진 세 가공소가 동시에 폭발하는 일을 우연한 사고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 중엔 폭발현장에 더욱 다가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을 촬영해 올린 이도 있었다
[헐, 저거 윳쿠리 맞음?]
이런 제목의 어느 짤막한 영상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져 전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도쿄 제 1 가공소 근처의 사거리에서 주변이 초토화되어 갈 정도로의 격전을 벌이는 윳쿠리들이 있었다
"하아아아앗!"
"크읏!"
"으랴앗!"
"핫!"
카이와 아포칼립스의 육탄전은 이미 인간의 눈으론 제대로 쫓을 수도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둘의 팔다리는 이젠 잔상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키캬캬캬캬캿!"
오른주먹이 검붉은 빛으로 빛나는 오메가는
아포칼립스를 겨누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풍압을 날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포칼립스가 카이의 맹공을 피하면서 오메가의 공격에도 대응하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알파가 또 다른 방향에서 저격해온다
"크윽... 이젠 벅차기 시작하는군!"
아포칼립스가 잠시 숨 좀 돌리려고 크게 뒤로 물러서면
배후에서부터 세타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 검이 아포칼립스의 몸에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정체의 은폐와 활동성을 위해 본래의 헤어스타일을 포기하고 포니테일로 묶었던 아포칼립스의 리본부분을 잘라냈다
웨이브진 금발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조금만 늦었어도 뒤통수를 베였겠..."
세타의 검이 빗나가자마자 파이가 아포칼립스의 품에 파고들어 복부에 강한 공격을 가했다
양손으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강해 아포칼립스는 하늘로 떠올랐다
"크억...! 어느새 이정도로...!"
그리고 아직 멀었다는 듯이 이번엔 로의 더블 스파크와 오미크론의 나이프 세례가 이어졌다
오랜 연전으로 점점 지쳐가는 아포칼립스는, 본래라면 가볍게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공격임에도
양손에서 쏘아낸 빔으로 두 공격을 상쇄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다 막아내지 못해 나이프 몇개가 자신의 몸을 스쳤고, 더블 스파크는 가까이에서 폭발했다
허공에 뜬 채 거친 숨을 쉬며 땅을 내려다보는 아포칼립스는 이내 무언가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람다의 우라늄 팥소를 머금은 크사이가 베타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올라갔다가 아포칼립스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모코땅 IN 했다구!"
베타의 네일건 사격의 엄호를 받으면서 강하하는 크사이는 스스로 발화하여 물고 있던 팥소폭탄을 폭발시켰다
아포칼립스의 대처는 늦었다
몸을 경화시켜 피해를 줄이는 것까지는 해냈지만, 아니, 그것밖에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등에 대못 몇개가 박힌 채 폭발의 폭풍으로 땅바닥에 순식간에 내리꽃힌 아포칼립스
땅에 부딛히고, 반동으로 다시금 살짝 떠오른 그 순간
"델타 숄더태클!"
델타게리온의 어깨만 아스트론화시킨 델타의 숄더태클을 맞고 제대로 나가떨어져 굴렀다
"커헉...! 크윽... 이거 아무래도 지치기 시작하는군..."
"다시 태세를 정비한다게라! 상대를 확실히 무력화시킬 때까지 절대 방심하지 마라게라!"
"알았다해! 그래도 저녀석 꽤 지쳐보이는 것 같다해."
"케헷, 그렇겠지. 나도 대충 비슷하게 따라해봤는데 이거 엄청 에너지 소비가 심해. 힘들어서 더는 못써먹겠어."
"장기전이 될수록 녀석이 불리해진다는건가... 크윽!"
카이의 의수와 의족이 기능고장을 일으켰다
한계를 넘어선 가동은 업그레이드 된 의수를 과열시키고 망가뜨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엔 카이의 체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이를 무릎꿇게 만들었다
"게라! 카이 너..."
"면목없군... 아무래도 난 이 이상 전투를 지속하긴 힘들겠다."
"...다들 지쳤다게라. 도쿄 전역을 돌아다녔고, 강한 상대와 싸우면서 부상도 많이 입었다게라.
이 이상의 장기전은 우리도 불리하다게라. 그러니까, 다음 공격으로 승부를 낸다게라!"
"케헷, 의욕은 따라주는데 몸이 더 따라주질 못하네."
"특히 비몸첨부나 몸집이 작은 애들은 더 지쳤다해. 크사이도 자폭공격으로 전투불능이라 부활시켜야 하고..."
"저도 송구합니다. 맞힌 공격은 거의 없는데 반격만 맞아버려서... 검술 수련이 부족했습니다."
"우오옹! 델타는 멀쩡하다구! 느? 델타게리온이 둔해졌다구?"
양쪽 다 장기전으로 크게 지친 상황
특히 엘리니카는 아포칼립스보다 입은 피해가 큰 만큼 더더욱 불리하다
"야, 야, 저기 아니야?"
"진짜네! 인터넷에 올라온 거기야! 진짜 윳쿠리들끼리 싸우고 있어!"
"우와... 이걸 윳쿠리가 한거라고? 이거 진짜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주인... 이건?"
"쳇, 장기전이 되어서 괜한 이목을 끄는군."
길가에서, 주변의 빌딩에서, 그리고 제 1 가공소에서도 점점 구경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인파의 접근을 막고는 있지만 그정도 거리에서도 촬영하는 사람들은 다 찍어올리고 있었다
"저기요,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선생님! 어서 경찰들 뒤로 이동하시지요."
"주인, 경찰이 왔는데..."
"아아, 이젠 얘네에 대해서도 숨기긴 글렀구만. 전 여기 지휘관인데요?"
"지휘관이라니, 그게 무슨..."
"저기서 싸우는 윳쿠리들 주인이라고요. 아, 저 몸첨부 마리사같은 녀석은 이제부터 확보하려는 녀석이고요."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쨌든 여긴 위험하니까 피하시고, 이제부턴 경찰이 맡겠습니다!"
"저녀석 전투력 봤으면 일본 순경 수준으론 안될 거 알텐데요? 아주 드래곤볼 찍는 애 상대로 리볼버나 쏘게요?"
"고, 곧 경비경찰이 올 겁니다!"
"그 플라스틱 방패는 안뚫릴 거 같습니까? 내 애들은 무장은 저래도 전투센스는 특공대급이니까 잠자코 있으시지?"
시로이가 경찰 한명과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던 아포칼립스
그러다가 그 주변에서 기절한 채 차례대로 체포되고 있는 협회 인물들 중에 협회장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협회장! 분명 기절한 줄 알았는데 어딜 간거지!?"
"아포칼립스! 이번에 확실하게 제압해주겠다게라!"
"미안하지만 지금 너희한테 신경쓸 때가 아닌 것 같다."
그 말만 남긴 채 아포칼립스는 다리에 온 힘을 집중하고 하늘 위로 크게 도약했다
어지간한 회사 고층빌딩들 옥상과 비슷한 높이까지 도약한 아포칼립스는 이번엔 온 신경을 눈에 집중해
가공소 앞에서 사라진 협회장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저, 저자식! 저 미친 자식이!"
"우리한테 신경쓸 때가 아니라니 무슨 소리냐해!"
파이의 항의를 들은 척도 안하고 아포칼립스는 땅에 내려오자마자 자신이 확인한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그 앞엔 시민들의 진입을 통제하고 아포칼립스를 경계하던 경찰들이
경찰차와 함께 일렬로 서서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이 상황을 구경하던 약간의 인파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아포칼립스가 자신들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자 혼란에 빠졌다
경찰들은 황급히 권총을 아포칼립스에게 겨눴고
시민들은 혼비백산에 빠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이 이상 다가오면 쏘겠다!"
"저게 우리 말을 들을 것 같냐? 그냥 쏴! 시민들 안전이 먼저다!"
순식간에 경찰들 앞까지 다가간 아포칼립스
경찰들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그 순간 아포칼립스는 크게 도약하여 경찰들과 시민들을 한번에 뛰어넘고는 계속해서 고속으로 달려나갔다
"뭐.... 뭐지? 도망친건가?"
"아오씨! 야, 쫓아!"
저 너머로 사라진 아포칼립스를 멍하니 보던 경찰들 뒤로 시로이와 그 산하의 윳쿠리들이 뒤이어 달려왔다
"잠깐 경찰놈하고 쓸데없는 실랑이를 한 사이에 도망치다니, 절대 놓치지마!"
"다, 당신은 뭡니까!"
"아 길 막지말고 좀 비켜요! 저놈 쫓아야 하니까!"
"아, 안됩니다! 선생님께서 재미로 뒤쫓을만한 인물이 아니예요! 위험인물이라고요!"
"그보다 당신, 저녀석이랑 싸운 거 맞죠? 윳쿠리들 시켜서. 무슨 일인지 경위를 들어야겠습니다!"
"영장있냐!? 앙!? 저거 막을 수 있는거 내 애들뿐이니까 좀 비키라고!"
그렇게 시로이가 경찰과 또 실랑이가 붙느라 지체되는 동안...
"하! 여긴 아주 평화롭군 그래.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거지."
도쿄 국회의사당 앞
가공소들과는 거리가 먼 이곳은 테러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사당 바로 앞의 차도는 삼거리로 되어있고 의사당 정문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길 양옆엔 기념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 차선으로 윳쿠리 자유 협회의 협회장이 탈취한 탱크로리를 몰고 들어서고 있었다
"추악한 정책으로 가련한 윳쿠리들의 학살을 방관한 정부여! 오늘 너희를 불살라 일본을 정화해주마!"
기름을 가득 담은 탱크로리가 국회의사당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신호따위 무시한 채... 말이다
국회의사당 앞은 삼거리다. 당연히 신호등이 있고, 횡단보도도 있다
그리고 협회장이 운전하는 탱크로리는 빨간 신호를 띄운 차선을 달리는 차라고 여기기엔 심각하게 빨랐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위험하게 여겨 재빨리 횡단보도에서 벗어났다
...사람들에게 밀쳐져 탱크로리의 돌진경로에 넘어진 여자아이 한명만 빼고
"...에?"
"꺄아악! 누가 내 아이 좀 구해줘요!"
"으하하하하하하! 오늘 난, 일본을 정화하는 불꽃이 된다!"
콰앙
차량이 무언가에 부딛히는 소리가 났다
협회장이 운전하던 탱크로리는 정면이 찌그러지고, 횡단보도 앞에서 정지했다
아이는 무사했다
차량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큰 부상을 입고, 머리에선 피까지 흘리는 협회장
그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방해한 이 장애물의 정체라도 알고싶어 힘겹게 운전석의 문을 열고 기어나왔다
그것의 정체를 본 협회장은 놀랐다
이 돌발적인 상황을 본 주변의 사람들도 놀랐다
목숨이 구해진 아이도 놀랐다
아포칼립스를 추적해 이곳까지 도달한 시로이와 그의 윳쿠리들도 놀랐다
"네년...! 너 이 게스년이...!! 끝까지, 끝까지 날 방해하겠다는 것이냐아아아!!!"
아포칼립스는 탱크로리를 등진 채 온몸으로 차체를 막은 그 자세로 횡단보도에서 주저앉은 아이를 향해 미소지었다
"하하... 꼬마야, 다친 데는 없니...?"
그리고 한동안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협회장은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아포칼립스는 입에서 조금씩 팥소를 토하는 걸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황급히 아이에게 울면서 달려가 부둥켜 안았고
아이는 엄마에게 안긴 채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고 대신 죽어가는 존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와중에 한 철없는 청년은 이 장면을 녹화하면서 인터넷에 퍼트리고 있었다
매사가 확고하던 시로이는 이 상황에 대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난생 처음으로 혼란에 빠졌다
플라티나나 엘리니카 팀원들은 직전까지 자신들과 싸우던 적의 행동을 보고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스파클이 그곳에 왔다
"언니야..."
"에? 스, 스파클!?"
"무, 무큐... 죄송해요 주인님. 스파클을 말릴 수가 없었어요..."
"하아... 나 지금 좀 혼란스러우니까 내버려둬."
"스파클! 여, 여긴 어떻게..."
"언니야, 저 언니야가 맞지?"
스파클은 아포칼립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프사이가 다들 여기로 이동한다고 해서 급하게 왔어. 저기서 차를 막은 언니야가 아포칼립스 맞지?"
"어... 응... 근데 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스파클은 망설임 없이 아포칼립스를 향해 걸어갔다
탱크로리에 치일 뻔한 아이가 엄마에게 안긴 채 횡단보도에서 벗어나자
아포칼립스도 안심했다는 듯이 몸의 힘을 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쿨럭! 커억! 하아... 어차피 오늘 죽을 생각이었다만, 힘들긴 하네."
"언니야가 아포칼립스지?"
아포칼립스는 고개를 들어 스파클의 얼굴을 보았다
"아아... 플라티나의 여동생이군. 스파클."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한거야?"
"왜 그게 궁금해진거지?"
"당신은 나에게 시로이 오빠야의 연구실을 보라고 했어. 시로이 오빠야의 진짜 모습을 알라고, 모르고 지나치지 말라고.
그래서 난 오빠야의 연구실을 봤고, 또 오빠야의 연구논문을 읽어봤어. 그러다가 궁금해졌어. 당신은 왜 이런 일은 했어?"
"내가 혁명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건 아나?"
"응. 언니야도 오빠야도, 다른 윳쿠리들도 그걸 막겠다고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하지만... 대체 무슨 혁명이길래
오빠야가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건지를 모르겠어. 오빠야는 연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그걸 미루면서까지말야.
오빠야에겐 그럴 필요가 있던 거겠지? 당신의 혁명이란 건 오빠야에겐 연구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지?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오빠야는 제일 좋아하는 것조차 멈춘걸까? 당신은 오빠야에게 무엇을 하려고 한거야?"
아포칼립스는 팥소를 한주먹 정도 토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난 도스였지. 3m정도의 아종이 아닌, 6m가량의 진짜 도스. 나에겐 모든 윳쿠리들이 내 아이들 같았어. 소중했지.
하지만 도스로써 숲속에서만 살아왔었을 땐 알지 못했다. 내가 숲속에 은거해 내 눈앞의 동족에게만 애정을 쏟을 때,
내 영역의 바깥에서 내 동족은 점점 어리석어지고, 또한 추악해지고 있었다. 퇴화하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그것을 혐오한 인간들에게 유린당하고 학대당하고, 이윽고 살해당했다. 내가 가공소에 잡혀있었을 때
시로이 쿄우진을 통해 알게 되었지. 고통스러웠다. 슬펐다. 그리고 절망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이 한심했다.
내 눈앞의 무리의 안전만 보고 안도했던 과거의 자신이 역겨워졌다. 난... 난 단지 동족이 좀 더 행복하길 원했다.
하지만 말이야...? 행복이란 건 당장의 욕구만 충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그 차이는 종종 충돌하기도 하지. 누군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누군가의 욕구를 억제해야 할 때도 생겨.
양보라는 것이지. 하지만 내 동족들은 점점 그것을 인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 소위 말하는 게스라는 거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러한 게스 윳쿠리들의 모습에서, 같은 인식과 행위를 하는 인간들을 떠올리고 혐오하게 된거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선 윳쿠리란 당연히 죽어 마땅한, 오만하고 추악하며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더군.
그걸 바꾸고 싶었다. 윳쿠리들이 좀 더 인간들에게 사랑받길 원했다. 존중받길 원했다.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혁명을 일으킨거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힘을 써서 강제로?"
"하하하, 사실 이건 그냥 위장이야. 양동작전이지. 내가 손을 잡은 이 인간들은 내가 없어도 이런 짓을 벌일 작정이었어.
난 그걸 이용했을 뿐이지. 그리고 사실, 내 혁명은 나 이외의 누군가가 죽어선 안되는 거였어. 이 상종못할 악인조차도."
"그럼 지금 이건...?"
"이 혁명에서, 인간도 윳쿠리도 죽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일부러 힘을 조절하며 싸웠고, 테러의 대상이 된 가공소의
위치를 알려서 피해를 최소화하게끔 했지. 협회장놈이 이런 발악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네."
아포칼립스는 다시금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인간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우리들 윳쿠리들도 바뀌어야지. 우리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인간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가 있겠어? 내가 지금같은 모습이 되고서 다스렸던 무리가 있다. 그녀석들은 훌륭하게
내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고, 이젠 나 없이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적어도 야생의 윳쿠리들은
그녀석들을 시작으로 점차 바뀌어 나갈거다. 노숙윳과 애완윳 중엔 야생윳과 관련된 윳쿠리들도 있으니
야생윳의 인식이 진보하면 다른 생활권의 윳쿠리들도 간접적으로나마 진보하겠지. 너무 낙관적일 수도 있지만."
"그럼 당신이 혁명을 일으킨 이유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동족들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그럼으로써 인간과 공생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것 뿐이야."
"당신은... 윳쿠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거야?"
"너의 언니도 널 목숨걸고 구한 거 아니었나?"
"...!"
"뭐, 대충 그거랑 비슷한거야.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악역도 기꺼이 맡을 수 있어."
"당신은... 정말로 윳쿠리를 사랑하는구나."
"그렇다고 인간을 싫어하진 않아. 그저... 같은 지적 생명체끼리 잘 지내길 바랄뿐."
"...오빠야만 윳쿠리를 생명체라고 불렀지. 그것도 생물학적인 의미로."
"그것만큼은 시로이 쿄우진에게 고맙게 생각해. 존중은 안해도 인정은 해준 거니까."
"...대답해줘서 고마워.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 지 이제 알 것 같아."
"그런가... 네가 어떤 길을 가든 그것이 너의 확고한 결심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 길을 난 부정하지 않으마."
스파클이 플라티나 쪽으로 걸어가자, 이제는 시로이가 아포칼립스에게 다가왔다
경찰차들이 몰려왔고, 경찰들이 탱크로리 옆에서 기절한 협회장을 연행해갔다
"뭐, 스파클과의 대화, 대충은 들었다."
"그러냐? 뭐 느낀 거 없냐?"
"응 없어. 굳이 따지자면 이제야 널 확보했다는거? 화려하게 자폭해줘서 고마워."
"어차피 오늘 죽을 거였고, 어린 생명을 구한거다. 자폭도 아니고, 후회도 안해."
"알 게 뭐야. 이제부턴 내게 너의 모든 것을 알려달라고?"
"그렇겐 안되겠는데?"
아포칼립스의 전신에서 푸른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여기서 자폭을!?"
"그럴리가. 내가 역겨워하는 니놈이라도 죽어버리면 내 계획에 어긋나거든?"
아포칼립스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니놈에게 나에 대해 연구할 요소는 하나도 넘겨주지 않을거다."
"그럼 설마! 야! 당장 이놈 붙잡아!"
"너무 늦었어. 안녕이다 시로이 쿄우진."
아포칼립스는 하늘높이 최후의 도약을 했다
하늘 위로 저멀리 올라가서는 전신에서 발하던 빛이 점점 더 강해졌고
그녀는 하늘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미소지었다
도쿄 상공에서, 하늘빛의 불꽃이 하나 터져, 산산히 흩어진 빛의 가루들은 천천히 떨어지다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은 도쿄 어디에서든 희미하게나마 보일 정도로 밝았고
제 8 가공소 근처의 한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호다제."
"우우우... 대장..."
"첸, 안에 들어가서 알리라제. 아포의... 대장의 유언을 알릴 차례다제."
"응... 알았다냥..."
그 카페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4인석 자리
인간으로 위장한 두 몸첨부 윳쿠리와 한 해커가 그곳에 앉아있었다
변장한 몸첨부 첸이 그들에게 다가가 신호가 왔음을 알렸고
몸첨부 요우무가 건넨 테이프의 영상을 해커가 도쿄 상가의 대형 모니터를 해킹해서 틀었고
동시에 인터넷에도 해당 영상을 올렸다
아포칼립스의 최후의 메시지가 전세계에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