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4.17 11:19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38-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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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력검사부터 하도록 하지."

 

시로이는 도스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 멀이진 뒤 노트북에 시력검사용 그림을 띄우고 도스에게 보여줬다.

한쪽 눈을 가리는 것은 플라티나가 담당했다. 도스의 위에 올라타 큰 도화지로 눈 한쪽을 가리는 것이다.

 

"모든 그림의 단어를 이해할 것 같진 않으니, 보이는 대로 그리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하지."

 

도스에게 그림 그릴 연필을 쥐어주고, 그림을 그릴 도화지를 교체하는 건 맛치가 담당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보이는 그대로 정직하게 그려주도록."

"네놈 치고는 점잖게 시작하는 것 같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편하잖아?"

 

다행히랄지 도스의 그림실력은 썩 괜찮았다.

자신이 보이는 수준에선 확실하게 그려나갔다.

그렇게 측정한 결과, 양 눈의 시력 모두 1.0으로 나왔다.

 

"그래서, 내 보는 능력을 측정한다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거지?"

"없어, 지금은."

"하아?"

"지금은 그저 너의 신체능력을 설명하는 하나의 데이터일 뿐. 하지만 앞으로 생길 새로운 데이터와 비교하면서 결과를 낳겠지."

"무큐, 주인님. 그럼 다음 실험은 무엇으로 넘어갈 건가요?"

"흐음, 청각은 공사가 끝나고 나서가 좋겠지. 오감의 나머지는 현 시점에선 할 필요가 없고."

"그럼 뭘로 할건데 주인? 논문 사본만 가져다주러 온 건 아니잖아?"

"질의응답. 도스, 그 몸을 차지하는 동안 너 자신이 느꼈던 것을 전부 이야기해주실까?"

"네놈이 왜 그 질문을 안하나 했다."

 

도스는 잠시 한숨을 크게 쉰 뒤, 입을 열었다.

 

"네놈이 내 중추팥소를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도스에게 박아넣고 난 뒤의 일이다. 그때의 내 몸은 중추팥뿐이었지.

그 중추팥으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의 기억, 생각, 감각. 나 자신이 그 아이의 몸 속에 들어갔음을.

그리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정신이 그 아이의 정신을 침식해감을 알 수 있었다.

팥소의 반응이 변해갔거든. 그 아이의 고유의 것에서, 나에게 익숙한 내 몸의 감각으로. 중추팥이 스스로 확장해간 것이지.

정신을 잡아먹은 셈이야. 너희 인간이 이해할 진 모르겠지만 내 중추팥을 중심으로 그 아이의 팥소는 변해간 것이야."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나는 알지. 팥소세포의 유전자가 변이한거지? 너의 것으로."

"...그런 수준의 전문용어로는 모르겠다만, 팥소 하나하나에 각인된 자아가 나의 것으로 교체되어갔지.

그 아인 처음엔 공포를 느꼈다. 당연하겠지. 자신이 사라지는데. 그것도 내부에서부터. 여태껏 경험해본 적 없는 공포였겠지.

하지만 신체의 팥소 절반정도가 나의 것으로 바뀌어가니 그 아이의 공포도 가라앉더군. 왜인지는 알아.

도스는 느긋 오오라를 뿜는다. 하지만 넌 아종은 그런 힘이 없는, 덩치만 커진 평범한 윳쿠리라고 했지?

내가 신체를 지배하면서, 내가 느긋 오오라를 뿜을 수 있는 힘도 더욱 강해진거야. 아니,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해야하나?

그래서 그 아인 내 느긋 오오라를 느끼고 점점 편안해진 것이었겠지. 결국엔 어미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평온하게 사라졌다.

그 지배현상은, 내 의지로 제어할 수 없었어. 난 그 아이의 자아의 소멸을 막을 수 없었어. 공생조차 시도할 수 없었지.

이윽고 신체의 외부에 있는 기관까지 내 제어 하에 들어오자, 난 눈을 뜰 수 있었다.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 않더군. 그것은, 한 아이의 정신을 잡아먹어서, 죽여서 얻은 신체였으니까."

"흐음, 그런가."

 

시로이는 죄책감에 씁쓸해하는 도스의 표정을 대충 보고는 그런 감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노트북에 기록을 해나갔다.

 

"새로운 신체는, 본래의 신체에 비해선 작게 느껴졌지만 금세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도주를 시도한건가."

"그래. 어물쩡하다간 네놈에게 잡혀 또 좋을대로 이용당할 게 뻔할 테니까. 뭐, 실패했지만."

"이전의 도스의 기억은 간직하고 있나?"

"아니, 전부 사라졌어. 신체가 완전히 내것이 되었을 때. 자아는 물론 기억까지도."

"윳쿠리는 기억도 유전자나 그 가까이에 새기니까."

"적어도 신체를 지배해가는 동안엔 단편적으로나마 보기는 했지만, 너무 짧고 적어서 기억을 봤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

"신체에 대한 적응은 어떻지?"

"현 시점에선 완벽하다고 해야 하겠군. 본래의 몸인 것처럼 다룰 수 있어. 크기가 작아졌지만 그만큼 빨라졌고."

"도스 스파크같은 경우는 이전의 능력대로 발현한 것 같은데? 그리 두껍진 않았지만 콘크리트 벽을 부순 걸 보면."

"이전 신체에서 발휘할 수 있었던 능력은 전부 가능한 것 같더군. 느긋 오오라며 도스 스파크며..."

"말 그대로 덩치만 작아진 원종 도스로군. 작아진 만큼 무게감은 줄었지만 대신 속도가 오른거지."

 

오늘의 마지막 테스트로, 시로이는 메스와 시험관을 꺼내 도스에게 다가갔다.

입을 통해 팥소를 채취하는 것이다.

 

"너의 팥소를 좀 채취해 연구할거다. 입을 벌려주겠나?"

"거부한다면?"

"다른 델 째서 퍼가야지 뭐."

"네놈답군. 뭐, 나도 거부할 생각은 없다."

 

도스는 순순히 입을 열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시로이가 쉽게 손을 댈 수 있게 하였고

시로이는 메스로 입안의 팥소를 약간 긁어내 시험관에 담아갔다.

신체 내부를 칼로 긁는 것이기 때문에 아플 법도 하지만 도스는 크게 아픈 기색도 안내고 참았다.

보통의 윳쿠리라면, 설령 도스라 할지라도 아프다며 날뛰었을 법한데도 말이다.

이 도스의 인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너의 팥소에선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군."

"난 내 예전 무리가 무사한지가 걱정이다만."

"그걸 알려줄 수 없는 건 유감이군. 나도 그 이후로 살펴본 적은 없어서 말이야."

"...그때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미안해 도스."

"아니, 괜찮아 레미랴. 너도 이 남자에게 어쩔 수 없이 협력할 수밖에 없었잖나."

"뭐, 그 무리가 살아남을 의지가 강하다면 너의 시체라도 먹지 않겠어? 양도 많고 열량도 높으니까."

"시로이 쿄우진, 네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소릴 잘도 하는군."

"그런 존재야, 나는."

 

그렇게 시로이는 자신의 두 조수와 함께 제 26 가공소를 나갔다.

그곳에 남은 도스는 주변의 공사로 들려오는 소음에도 아랑곳않고 그 남자, 시료이 쿄우진의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이용은 도스가 뚫은 구멍을 보수하면서 그 부분에 설치해준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된다.

도스는 시로이 쿄우진이란 윳쿠리를 연구하는 남자가 작성한 연구결과들을 정리한 글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도 도스는, 점점 그 남자가 알아낸 윳쿠리라는 존재의 본질을, 특징을, 가능성을 알아갔다.

 

"......그런가. 우리는 이러한 존재고 이러한 것도 가능했던 것인가."

 

어느새 날이 저물고 밤이 깊었다.

방의 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사라지고, 빛이라곤 자신이 뚫어놓아서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은 벽의 구멍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달빛만이 유일했다. 도스는 그 밤하늘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시로이 쿄우진, 너는 확실히 대단한 자다. 수많은 인간들이 윳쿠리를 제대로 된 생물로써 대접하지 않았을 때,

네녀석만큼은 끈질기게 우리가 생명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구나. 네놈은 잔악한 자이지만, 동시에 위대한 자였다.

윳쿠리를 사랑하지 않으나, 증오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생명체로써 여기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지만 여기까지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아내다니. 우리 자신도 모르는 것들을 밝혀내다니...

허나 그렇다고 나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널 이대로 방치하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 그 잔혹한 실험에 종지부를 찍고, 윳쿠리들을 위한 세상을 세울 것이다.

그때까진, 그때가 될 때까진 얼마든지 엎드리고 날 내어주마. 하지만 반드시 나는 일어설 것이다.

윳쿠리들을 위한 세상이 도래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진 너의 지식, 그리고 인간의 지식을 쌓아두마."

 

그렇게 도스는 언젠가 일으킬 반란의 칼을 속으로 갈며 기다리고 있다.

 

그날 밤, 시로이의 침실. 잠잘 시간임에도 맛치는 계속 무언가를 걱정하며 잠에 들질 못하고 있다.

 

"무큐우..."

"무슨 일이냐 맛치."

"무큐! 주, 주인님!"

"오늘 진행할 실험은 없을텐데?"

"무큐... 그게..."

"흐음, 뭔가 고민하는 모양이군. 나한테 말할만한 것인가?"

"무, 무큐... 역시 예리하시네요 주인님...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자기 전에 좀 떠드는 정도야."

"그... 26 가공소에 있는 도스가... 좀 걱정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님에 대한 적의라던가..."

"그걸 걱정하고 있던 건가?"

"그 도스, 무언가 엄청난 걸 꾸미는 것 같아요 무큐..."

"당연히 엄청난거겠지. 윳쿠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나서려는 모양이니까. 쉽게 말해 반란의 준비랄까?"

"무, 무큐!? 주, 주인님은 알고 계신건가요!? 그 도스가 무엇을 꾸미는지?"

"뭐, 확증은 없지만. 하지만 그녀석은 내 논문과 인간들의 지식정보가 모이는 인터넷을 요구했어.

원체 원종 도스였던 만큼 윳쿠리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가공소에서 착취되는 윳쿠리들을 보며 이를 갈았지.

새 몸을 차지하자마자 도주하려고 했고, 분노의 표출로써 가공소 벽에 구멍을 뚫었지. 나에게 강한 적의를 가졌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지만 이것만 해도 대략 짐작은 가지. 녀석이 뭘 꾸미는지는."

"그, 그럼 주인님은 그걸 알면서도 도스에게 협조하신 건가요!?"

"응."

 

맛치는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자신의 주인이 연구에 물불 안가리는 미치광이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아니, 애당초 무엇을 위해? 동족인 인간에게도 위해가 될 행위가 될 것이다. 그것을 도운 것이다. 왜?

 

"맛치는 모르겠어요... 주인님은, 그걸 알면서도 왜..."

"뭐, 너 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알 리가 없겠지. 난 인간. 동족에게 반기를 드려는 도스 윳쿠리에게 협력한다. 왜?

근데 그 답은 간단해. 난 말야, 그저 보고싶거든. 그녀석이 어디까지 해내는지를. 윳쿠리가 진정,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지를.

인간은 지금껏 윳쿠리보다 우월하다고만 생각해왔지. 하지만 난 윳쿠리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봐왔어.

그래서 난 그녀석에게 일부러 지식을 전해준거야. 녀석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녀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래서 일부러 녀석의 잠재력을 끝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거야.

녀석을 굳이 윳쿠리 학대파가 대다수인 제 26 가공소에 가둔 것도, 녀석에게 내 논문사본을 건넨 것도.

기대되지 않니? 녀석이 대체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지를. 윳쿠리로써 오를 수 있는 최대치를.

유일하게 신체구성 주성분이 탄수화물인 생명체이자 현생 생물 중 신인류에 가장 가까운 존재. 그것이 윳쿠리다.

그래서 나는 기대하는 거란다. 윳쿠리가 진정 신인류로 각성할 수 있는지를 말이지."

"무큐... 맛치는 주인님 덕분에 많은 걸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주인님의 생각은 잘 모르겠어요..."

"걱정마, 나 말고는 아무도 이해 못하니까. 뭐 요약하자면 난 녀석이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픈 것 뿐이야."

"그게... 다른 인간씨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하더라도요?"

"오히려 지금껏 없던 수준의 피해를 기대할 정도인걸? 크크크크크..."

 

달빛이 환한 오늘밤, 두 존재가 두가지 생각을 품으며 잠에 든다.

하나는 자신의 동족의 해방을.

다른 하나는 그들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가를.

  • profile
    미리내미르 2017.04.17 18:52
    지식이 모이는 사이트를 요구해서 네이버 지식인을 보여준다면? 혹은 나무위키를 보여준다면?ㅎㅎ
    일본이니까 2ch을 연결해주는것도 재밌겠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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