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1.03 23:15

아포칼립스 속 윳쿠리 -5-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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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당신 동료였던 사람들입니까?"

"옛날엔. 지금은 아니지만."

 

어쩐지 침대 중에 갈색의 얼룩이 크게 있는 침대가 있었다.

그냥 낡아선가 했더니 변색된 핏자국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아마 자기 동료가 자고 있을 때 살해해서...

 

"잡아먹은 겁니까?"

"이 좁디 좁은 지옥에서 이 많은 식량을 여럿이 먹기엔 부족하지 않니?"

"극한의 상황이 당신을 여기까지 내몬겁니까?"

"어머? 그건 아니야. 실은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거거든."

"전부터라니..."

"생명을 고통줘서 괴롭히고 죽이는 것 말이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재밌었거든.

잠자리의 날개를 뜯고 개구리의 다리를 분지르고 길가의 잡견의 배에 칼도 쑤셔봤지."

"언제적 일입니까?"

"곤충은 유치원때, 개구리는 초등학생때, 개나 고양이는 중학생때."

"......"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더라고. 그때, 고등학생이 된 내 눈에 들어온 게 윳쿠리야."

"당신도 학대파였습니까? 전 당신한테 차인 뒤로 윳쿠리 학대에 눈뜨긴 했습니다만..."

"그것들은 있지? 내가 원했었던 반응을 보여줬어. 신음하고, 비명지르고, 공포에 떨었지."​ 

"그 얘기, 게스만 학대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게스니 개념이니 아무래도 좋아. 통상종이든 희귀종이든 상관없어.

그녀석들은 말이지? 사람과도 같은 반응을 해준단 말이야! 아파하고, 신음하고, 두려워하고, 미쳐 발광하고!

살겠다고 자기 새끼를 팔아넘기는 녀석들도 있었지. 아무 잘못도 안했지만 잘못했다고 싹싹 빌던 녀석도 있었지.

나를 노예로 삼겠다고 기어오르던 녀석도, 아무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숲속에서 태평하게 살던 녀석도,

내가 원했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줬단 말이야! 그 공포에 질린 모습! 떨고 있는 두 눈!

몸이 찢겨나갈때 전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모습! 그야말로 사람이나 보여줄 법한 고통에 겨운 모습!

동물들은 말이지? 인간의 언어를 못하니까 그런 반응을 안해.

솔직하게 고통스러워하면 더 만만해 보이니까 일부러 더 참고 강한 척 한다고.

하지만 윳쿠리는 그렇지 않아. 솔직하게 모두 보여주지. 그 지옥을 겪는 과정의 감각 하나하나를 다!"

 

이제야 알겠다.

이 년은 미친년이다.

뿌리부터가 미친년이다.

그 곱상한 외모와 당찬 행동에 가려진 잔악한 본심을 숨겨왔던 것이다.

 

"...내가 당신한테 차인 게 다행이었네요."

"하지만 말이지...? 그 윳쿠리로도 더이상 만족이 안돼... 도스도 죽여봤어. 온갖 희귀종도 죽여봤어.

마을 소속으로 봉사하는 몸첨부 플랑도 죽여봤어. 모두 재밌었지만, 결국 내용물은 팥소야...

그것들은 재밌는 반응을 보여주지만, 다른 동물처럼 피와 내장을 흩뿌리진 않는다고. 슬슬 질려버렸지."

"그럼 그냥 그대로 관뒀으면 좋았을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거야! 내가 진짜로 죽이고 싶은 건 사람이라고! 붉은 피와 내장을 흘리며 고통에 겨워하는 모습을

나는 보고싶었던거야! 동물의 육체로 윳쿠리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사람을! 인간을!"

"...그래서 죽인 겁니까? 당신을 믿었었을 이 사람들을 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사람들도 있었지. 너처럼 중간에 들어온 사람도 있었지.

처음에 무리지어 다녔을 때의 사람들은 가장 약한 녀석들만 빼고 자고 있을때 다 죽여놨어.

힘 센 양반들 여럿이서 날 막으면 안되니까 말이야. 시체들을 숨기고 나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처음엔 잘 대해줘서 방심했을 때 묶어버리고 서서히 고문해서 즐기고 죽였어. 너도 그렇게 해주려고 했는데..."

"당신 막장이군요. 어디까지 막장입니까?"

"저 시체들 중 최연소가 5살이라면 이해하려나?"

"...당신 쓰레기야. 게스 윳쿠리 이하의 쓰레기 괴물이라고."

"너도 살기 위해 윳쿠리의 새끼를 잡아먹잖아? 피차일반이라고."

"당신은 그냥 흥미위주일 뿐이잖아!"

"너도 윳쿠리 학대파였다면서?"

"적어도 개념종은 안건드렸습니다."

"그게 변명은 안돼. 결국 무언가를 죽인 건 맞잖아?"

"그것들은..."

"만쥬라는 변명은 안돼☆ 뭘로 이루어졌든 말하고 생각하고 자아있는 걸 죽인 거니까 말이야."

 

반박할 수가 없다.

게스이네 뭐네, 인간에게 피해를 줬네 뭐네, 어떤 이유에서든 난 살려달라고 비는 그것들을 죽여왔다.

살윳자.

여태껏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가 내 어깨를 눌러왔다.

게스라지만 윳쿠리를 동료삼아 생사를 함께했더니 정이 든건가

아니면 저 여자의 논리를 논파할 수 없어서인가

내가 윳쿠리라는, 생물인지 논란은 많아도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자아를 가진 유기체를 죽인 건 사실이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살윳자라는 것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 윳쿠리를 모두 사람으로 치환해보면 나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였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한테 순순히 죽어줄 순 없겠는데요."

"공포가 아닌 다짐이라~ 그 반응은 처음이네~? 넌 좀 죽이는 맛이 있겠어♥"

"전 안죽습니다. 살아서 도망쳐드리죠!"

"해봐! 어디 한번 해보자고!"

 

...라고는 했지만 이 대치상황 어쩌지?

나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지만 체력조루에 소지품은 전기랜턴 하나

저쪽은 사람 여럿 죽여온 능숙한 살인자에 부엌칼을 들고 있고 신체스펙은 불명

어쩐다...

그래! 전기랜턴을 저년 얼굴에 던진다! 그때 휘청거리는 틈을 노려 오른손을 제압, 칼을 빼앗는다!

멋진 작전이군. 그럼 남은 건 실행뿐.

틈을 보다 무언으로 재빨리 저년의 얼굴을 향해 전기랜턴을 던졌다.

왼손으로 가뿐히 잡아주시네.

윳쿠리들이 멍청한 전략을 짜서 인간한테 도전하는 심리를 알겠다.

 

"후후? 생각대로 안된 모양이네."

"아 씁 제발..."

"우-! 레미랴가 막겠다도-!"

 

레미랴가 부들대며 돌진했다.

겁에 질린 것 같지만 그럼에도 용기있게 맞서 싸운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뭐, 왼손의 랜턴을 버리고 그 빈 왼손으로 다시 붙잡은 그 여자였지만.

 

"우, 우우우!?"

"우후후, 너흰 어떻게 처리할까나~? 저 아일 죽이고서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네~"

"아직 안죽었거든요!?"

 

레미랴한테 시야가 팔린 틈을 타 온몸을 날린 드롭킥을 그 여자의 배에다 먹여줬다.

제대로 들어갔는지 침대방 문앞까지 날아가 고꾸라졌다.

그 충격으로 레미랴는 놓아줬지만 칼은 끝까지 안놓네. 진짜 얼마나 날 죽이고 싶은거야 저 여자...

창고 밖으로 나왔더니 침대방에 있었어야 할 윳쿠리들이 다 가운뎃방에 나와있었다.

 

"니들은 또 왜 나와있는거야!"

"프, 플랑은 갑자기 시끄럽길래 오빠야가 걱정돼서..."

"시끄러워서 느긋하게 잘 수가 없다제!"

"화장실 어디더라?"

"아오씨... 레미랴! 빨리 그 여자한테서 떨어져!"

"아, 알았다도-!"

"크으~ 정말 아프네~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목숨걸고 싸우는 것도 스릴있는걸?"

"당신 뇌는 어떻게 된겁니까? 시궁창물 먹고 뇌가 중금속에 중독되기라도 한겁니까?"

"그럴지도? 내 식수라곤 저기 흐르는 하수도물 뿐이니까."

 

차라리 중금속 중독으로 미친거면 다행이지, 이 여자의 아까전 발언으론 뼛속까지 살인귀다.

젠장, 짐을 놓더라도 일단 도망칠 궁리부터 해야지. 난 바깥의 하수도관으로 향하는 철문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잠겨있지도, 닫혀있지도 않았다. 저 여자가 닫지도 않은 채 바로 창고로 온 모양이다.

난 슬금슬금 열린 문으로 뒷걸음질쳤다.

 

"어딜 도망가니!!"

"당신 없는 데로요!"

 

그새 달려오네 진짜. 어느새 나랑 딱 붙어 몸싸움이 시작됐다.

이년은 어떻게든 내 배때지에 칼을 박고싶어 안달난 모양이다. 칼끝이 배를 향한 채 어긋나질 않네.

이 소란에 플랑은 테이블 밑에 숨고 레미랴는 천장 구석에 딱 붙었다.

이번엔 마리사도 겁먹은건지 플랑 옆에 딱 붙어 테이블에 숨어있다.

근데 레이무는 어디에...

 

"레이무 더는 못참겠어! 그냥 이대로 시시할거야!"

 

왜 ㅆㅂ 내 발치에 싸는건데.

내 발뒷굼치에 작은 설탕물 웅덩이가 고였고, 난 몸싸움 도중 뒷걸음치다 결국 그걸 밟고 넘어졌다.

내쪽으로 힘을 주던 그년도 내쪽으로 엎어졌다.

등을 돌바닥에 부딛혔다. 머리는 부딛히기 직전에 겨우 자력으로 멈췄지만...

넘어진 충격으로 내 배때지에 칼이 박혀있다.

 

"후우, 드디어 한방 먹였네."

"어..."

"어때? 배에 칼이 박힌 기분은? 아파? 차가워? 차갑고 날카로운 쇳덩이가 뱃속에 박힌 느낌이 어때? 응?"

"기분이 썩 좋진 않네요."

"아하하하하! 살길 바라는 녀석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 여잔 칼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칼을 돌렸다. 더 파고들진 않은 채.

 

"넌 죽을거야. 서~서히 고통받다가 말이지. 배에 칼이 박혔으니 이제 도망가도 오래 못살거야. 그렇지?"

"끄으... 그렇겠죠."

"옛날에 얽힌 정도 있고 하니, 제정신이 남아있을 때 유언정돈 들어줄게.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 말입니까?"

"그래, 유언 말이야, 유언. 고통에 겨워 이성을 잃고 비명만 지르게 될 땐 못할 거 아냐? 지금 들어줄게."

"오, 오빠야...! 언니야, 오빠야에게 심한 짓 하면 안돼요!"

"마, 마리사도 할아범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런 상황은 느긋하지 못하다제!"

"우... 언니야, 오빠야를 살려달라도-!"

"늣!? 이게 뭔 일이야!? 뭔가 심각한 것 같은데!?"

"아하하하? 너의 작고 동그란 식구들이 네 걱정을 해주네? 역시 너도 저녀석들이 걱정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죠. 이젠 학대파의 정신도 무뎌져서 말이죠."

"흐~음? 그럼 너의 유언은 저 아이들을 살려달라는 걸까?"

"아니, 너가 나보다 먼저 지옥에 떨어지라고."

 

혼신을 다해 내 위에 올라탄 그년을 뒤집어 던졌다.

온 힘을 다해. 사력을 다해. 하수도 한가운데에 흐르는 물속에 던져넣었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악마년이 살짝 연두빛이 도는 하수돗물에 빠졌다.

그년이 빠지는 걸 보고, 나는 내 배에 박힌 칼을 보았다.

칼날 대부분이 보인다. 깊게 박히질 않은거다. 그년은 눈치채질 못한걸까?

그러고 보니 왠지 배에 칼이 박힌 것 치곤 아프다는 느낌이 없다.

칼을 뽑아보았다. 피는 칼끝중의 가장 끝자락에만 살짝 묻어있을 뿐이었다.

설마해서 옷을 들춰보니 숨기겠다고 배에 딱 붙여놓은 에로잡지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잡지를 꺼내 내 배때지의 피부를 보니 피가 좀 새어나오지만 상처가 얕았다.

뭐랄까, 종이접기시간때 커터칼로 종이 자르다 베인 것 같은 정도로만?

그것보단 살짝 깊지만 별 차이는 없다. 죽을 상처는 아니다.

 

"푸핫!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본 적은 많아도 내가 궁지에 몰려본 적은 없네?"

 

그년이 물속에서 나와 이쪽으로 기어오르려 하고 있다.

이제 칼은 내 손에 있다. 그리고 저년은 지금 몸 가누기도 힘들고. 주도권은 내게 있다.

 

"이제 어떡할거니? 날 죽일거야?"

"저까지 살인자가 되긴 싫거든요?"

"하지만 난 널 어떻게든 죽일거야. 재밌을 것 같거든."

"살고 싶음 죽이라는 소립니까?"

"넌 딜레마에 빠지는거지. 살인은 하기 싫지만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

"그렇게까지 절 죽이고 싶은 겁니까? 누군가를 죽이는 게 그렇게 즐겁습니까?"

"넌 게스 윳쿠리를 죽일 때 어땠니? 그냥 고통없이 보냈니, 고문하고 학대해서 그걸 즐기면서 죽였니?"

"..."

"나도 마찬가지야. 단지 이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 뿐이지."

"그런 겁니까..."

"그나저나 설마 배에 미리 책을 넣어뒀다니, 처음부터 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거야?'

"그런 걸 상정했다면 전화번호부라도 넣어놨어야겠죠. 일단 좋아하던 사람한테 들키기 싫었던 책이었을 뿐입니다."

"그렇네~ 그런 에로한 잡지를 들키면 여자들한테 미움받겠지. 난 상관없지만."

"당신은 살인이란 더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겁니까?"

"맞아. 그럼 이제 2라운드 시작해볼까?"

 

그렇게 기어올라 오려던 그년은 올라오지 못했다.

전에 말해줬던, 여기 가끔 급류가 온다는 말.

그 말대로 지금 그녀를 하수도의 급류가 덮쳤다.

 

"부헠! 이런 제길...!"

 

이게 내가 그녀의 입에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내 시선은 급류에 따라 휩쓸려가는 그녀를 따라갔다.

전에 말해줬던, 맨홀뚜껑을 뚫고 그 구멍으로 쏟아진 콘크리트 잔해 중 하나가 다리처럼, 댐처럼 된 곳.

그녀는 급류에 몸을 가누지 못하다 그곳에 부딛혔다.

등, 팔, 다리, 뒷통수 모두 다. 잔해로 이루어진 댐 너머로 붉은 물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의식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와줄까?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또 고문하고, 태연하게 잡아먹은 저 괴물을

내 목숨조차 위협했던 그 괴물을 내가 이제와서 왜. 애당초 가방의 짐이 사라졌나 확인하는 습관도

언제 누군가가 몰래 나타나 내 짐을 훔쳐갈까봐 생긴 불안에서 생긴 습관인데.

저 여잔 절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믿어선 안되는 사람이다.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진 않지만 살릴 가치가 없다.

의식이 흐려져가는 그 여자가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두번째 급류가 그녀를 덮쳤다.

급류의 충격을 못이기고 잔해가 무너졌다.

엄청난 양과 세기의 물이 그녀와 콘크리트 잔해를 품고 저편으로 사라졌다.

내 첫사랑과의 재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아쉽지가 않다. 차라리 이런 괴물이 죽는 꼴을 직접 본 게 안심이지.

 

"저... 오빠야?"

"어, 어이 할아범, 괜찮냐제?"

 

이럴 때 날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게 사람이 아닌 윳쿠리라니.

 

"우... 오빠야 다친 것 같은데 괜찮냐도-?"

"다, 다쳤어? 죽지 말라고? 인간씨가 죽으면 레이무도 살아가기 힘들다고?"

 

이젠 이녀석들이 내 동료인 것이다. 가족인 것이다.

게스든 개념이든 상관없어. 이녀석들하고 같이 그 윳쿠리 플레이슨지 뭔지 하는 곳을 찾아가주마.

 

"두 금뱃지는 그렇더라도 이젠 너희 둘도 내 걱정을 해주는구나."

"당연하다제! 할아범이 죽으면 이딴 냄새나는 데서 어떻게 살아가냐제!"

"레이무도 그렇다고? 지금껏 인간씨가 밥씨 가져왔는데 어떻게 먹고 사냐고? 마리사는 사냥 못하니까 말야."

"잠깐 레이무, 그게 무슨..."

"그치만 여태껏 풀씨를 사냥해온 건 마리사가 아니라 인간씨잖아."

"마, 마리사도 진심으로 하면 사냥할 수 있다제!"

"그럼 이제 너가 나 대신 사냥하면 되겠네."

"마리사가 거짓말했다제 봐달라제."

 

이젠 이 꽁냥꽁냥한 말다툼도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왠지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건 그렇고 얕지만 상처가 생겼으니 어떻게든 해야겠는데...

서랍장에서 그릇과 젓가락을 꺼냈었지. 혹시 다른 건 없으려나?

빙고. 의약품이 있는 서랍이 있다. 소독약과 면봉, 반창고를 꺼내서 상처를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였다.

소독할 때 꽤 따갑긴 했지만 이제 감염걱정은 안해도 되겠지... 아마도?

 

"내 상처는 이제 괜찮아. 완전히 아물려면 좀 걸리겠지만 너무 무리만 안하면 괜찮겠지 뭐."

"이제 앞으로 어떡할거냐제? 다시 거친 바깥씨로 나가는거냐제?"

"그래야지. 여긴 꽤 여러가지가 있지만 언젠가는 바닥을 보일거다. 여기가 계속 안전하리란 보장도 없고."

"레이무도 여기 왠지 무서워. 아까부터 진한 시취도 나는 것 같고..."

 

창고의 시체들을 말하는건가.

아까 레미랴의 후각도 그렇고 어쩌면 윳쿠리는 죽음을 감지하는 데에 인간보다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몇가지만 챙기고 나서 떠나자. 물 흐르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빨리 챙기라제! 마리사도 슬슬 무서워서 못참겠다제!"

 

평소엔 당당한 척 하더니 겁많은 녀석.

하긴 나라고 다를 것도 없지만.

가방에 많은 것이 있진 않으니 몇가지 더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의약품과 통조림을 챙기고, 창고를 뒤져보니 지금은 죽은 생존자들의 소지품들이 보인다.

적당한 굵기의 밧줄이 있다. 길이도 적당하니 가방 옆에 달고 가자.

옷가지도 꽤나 있다. 사이즈는 내 몸에 대보고 적당히 맞을만한 것으로 몇벌 챙기자.

상하지 않은 오렌지주스가 있다. 혹시 저녀석들이 다쳤을 때 응급처치라도 할 수 있겠지. 챙기자.

아까의 그 부엌칼... 맥가이버칼은 작으니까 이건 이것대로 쓸 데가 있겠지. 천으로 잘 싸서 넣어놓자.

마지막으로 냄비와 전기램프는 가방 옆의 남는 공간에 묶어서 가져가자.

가방이 꽤나 묵직해졌지만 이게 다 생존할 수 있는 물품의 무게인 것이니까.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체가 쌓인 그곳에 가서 묵념을 했다.

부디 당신들은 평안한 안식을 취하기를...

 

"가자. 이제 이곳엔 볼일이 없어."

"천천히 가라제. 레이무는 아가야가 있다제."

"대체 언제 씀풍씀풍한거냐. 말이 나온 김에, 레미랴랑 플랑은 안하는거야?"

"하, 함부로 아가야를 만들면 안되지 않나요?"

"지금은 내 식량으로 삼아야 하니까 오히려 낳아줬으면 하는데. 그런 약속이잖아?"

"죄, 죄송해요..."

"미안해할 건 없어. 단지 이 지옥을 살아나가는 방식일 뿐이야."

 

여긴 지옥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수시로 죽음과 마주하고,

기껏 만난 생명의 은인이자 첫사랑이 미치광이 살인마에

나도 결국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아간다. 이 네마리의 윳쿠리와 나아간다.

인간도 윳쿠리도 오래오래 느긋할 수 있는 곳을 찾으러.

죽은 자들의 몫만큼 살아남는 게 나같은, 우리같은 몇없는 생존자들의 역할일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 하수도를 건너간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지만

이 하수도 끝이 땅보다 한참 높은 데에 있을 줄이야.

신이란 새낀 진짜 이럴때라도 좀 자비를 베풀어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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