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군. 흥미로워."
백의를 걸친 한 남자는 모니터를 보며 섬뜩하게 미소짓고 있다.
자신의 새로운 조수를 통해서 채취한 6m급 도스의 표본 일부를 분석한 결과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내 오렌지주스로 가득한 밀폐용기에 담긴 축구공만한 중추팥소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걸었다.
"넌 정말 흥미롭구나, 원종 도스. 넌 도스야. 맞아, 아종과는 달리 진짜 도스이지."
"......"
중추팥소는 말이 없다.
당연한 것이다. 입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 중추팥소는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투명한 설탕의 벽 속에 가득찬 팥소가 공포에 떠는 듯 요동쳤다.
"도스는 원종과 아종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작년에 알아냈지. 아종은 그저 원종을 갈망한 윳쿠리가 멋대로 각성한
일종의 복제품. 거짓된 존재. 스스로도 도스라고 믿고 다른 모두도 도스라고 불러주지만 그 실상은 그저 평범한,
유전적으로 일반적인 윳쿠리 마리사와 다르지 않은 덩치만 큰 윳쿠리. 그것이 지금 우리가 자주 보는 3m의 아종이지.
너가 아닌, 너와 같은 종족이 아닌, 너를 흉내내는 아종들이, 거짓된 도스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아, 물론 그 아종들이 완전히 평범하고 덩치만 큰 마리사인 건 아니야. 도스 스파크를 쏘긴 하니까.
단지 그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원종 도스에 대한 기억. 그 중에 도스 스파크에 대한 잠재된 기억이 아종 도스로 각성하면서
깨어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던 것일 뿐이지. 어차피 체내의 열량을 소모해 구강 내부의 체온을 크게 올려서
200dB(데시벨)의 충격파로 쏘아내는 것이 그 정체이니까 말이야. 원리만 알면 그딴 건 인간도 기계로 흉내낼 수 있어.
근데 넌 달라. 원종은 다르다고. 유전자가, 종 자체가 다른 유전자야! 그래! 원종 도스! 그것은 엄연한 별개의 존재!
도스를 갈망해 멋대로 각성해버린 아종따위와는 달리, 너희는 처음부터 도스라는 종족으로써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유전자의 차이만큼 너희의 세포 역시 다른 윳쿠리와는 차별을 보이지."
그리고 시로이 쿄우진은 모니터에서 과거 자신이 작성한 한 논문을 띄웠다.
1년 전, 그는 윳쿠리의 가청음역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야생 윳쿠리 무리가 있는 곳에 길리슈트를 입고 음파측정기를 들고 가 몇시간동안 은폐한 채 꼼짝않고 소리를 측정했다.
몇개의 무리를 그렇게 그들 몰래 숨어서 그들이 내는 소리들을 측정해 기록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실험체 윳쿠리 100마리를 종과 연령을 무작위로 골라서
윳쿠리의 인지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실험체에 꽃고 특수한 스피커로 폭넓은 주파수의 음파를 들려주었다.
그 결과 그가 알아낸 것.
윳쿠리의 가청음역대는 10Hz(헤르츠)에서 50000Hz. 이 중 평소에 쓰이는 것은 20~50000Hz.
인간의 가청음역대는 20~20000Hz이며 이는 윳쿠리의 기본적인 인식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20000~50000사이의 음역대는 윳쿠리가 의식하진 못하지만 엄연히 윳쿠리가 실생활에 사용하는 주파수.
인간은 듣지 못하는 이 초음파는 윳쿠리의 무의식에 작용하는데, 그 역할은 바로 개체의 특정이다.
가령 레이무종 한마리가 5마리의 마리사종 가운데 자신의 배우자 마리사를 불렀다고 하자.
어째선지 그 5마리의 마리사들 중 오직 배우자 마리사만이 응답을 한다. 그 이유가 이것이었다.
윳쿠리를 특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20000~50000Hz의 음역대. 윳쿠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초음파를 낸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진동을 몸으로 받아들여 그 초음파 섞인 부름이 어떤 개체를 특정하는지 인식한다.
만약 배우자 마리사를 특정하는 초음파가 45000Hz정도라면 레이무가 말하는 '마리사'라는 단어엔 45000Hz의 초음파가
섞여서 울려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5마리의 마리사 중 오진 단 한마리, 그 초음파에 해당하는 본인이
응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체를 특정하는 초음파는 본인 스스로가 알리고 다닌다.
수많은 윳쿠리들이 이렇게들 말한다.
"레이무는 레이무라구!"
"마리사는 마리사다제!"
"앨리스는 앨리스라구요!"
태어날때조차 '느긋하게 있으라구'보다 자기 이름을 외치며 태어나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순서만 바뀌었을 뿐 어쨌든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 이름을 스스로 밝힌다.
그리고 이때 자신의 입에서 윳쿠리의 무의식에 작용하는 초음파가 퍼진다.
자기 자신을 특정하는 주파수의 초음파가 말이다.
위의 예로 다시 들자면
"레이무는 레이무라구!" - 레이무란 단어에 35000Hz의 초음파가 섞임
"마리사는 마리사다제!" - 마리사란 단어에 42700Hz의 초음파가 섞임
"앨리스는 앨리스라구요!" - 앨리스란 단어에 27920Hz의 초음파가 섞임
이런 식이다. 윳쿠리에게 자기 이름을 밝히는 행위는 인간이 봤을 땐 그저 그놈이 그놈인 의미없는 행위이지만
윳쿠리에겐 자신을 특정하는 주파수의 초음파를 발산해, 주변의 윳쿠리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 그 주파수의 초음파를
알리는 행위였던 것이다. 벌써 1년도 더 된, 그가 완성한 이론이다.
다만 그 이후로 그가 계속 의문을 가졌던 것이 하나.
"그렇다면 10~20Hz의 음역대는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이지? 나는 그것을 계속 고민해왔지. 다른 실험도 하면서 말야.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모든 윳쿠리는 도스에게서 느긋 오오라가 발산한다고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윳쿠리의 형편좋은 착각이라고들 하지만, 난 다르지. 그것은 윳쿠리의 기억에 각인된 것이야.
윳쿠리는 기억을 유전자에 각인하곤 하지. 그래서 어미가 얼핏 들은 단어를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알고있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윳쿠리가 생각하는 것에 틀린 건 없을거야. 도스는 분명 느긋 오오라를 발산했어. 그들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아종 도스는 기억의 각성으로 도스 스파크의 사용원리만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덩치만 큰 평범한 마리사종.
그렇다면 느긋 오오라는 원종에게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 남은 초저주파 속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시로이 쿄우진은 원종 도스의 중추팥소를 밀폐용기에서 꺼내어 탄산수가 가득찬 새로운 용기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오렌지주스로 건강은 충분히 회복했겠지? 그럼 이제 이산화탄소를 듬뿍 마시고 잠들렴. 편하게 말이야.
그리고 그 느긋한 상태에서 알려주렴. 나의 가설이 맞는지를 말이야."
공포에 떨듯 격동하던 중추팥소는 탄산수에 담궈지고 나니 이내 서서히 그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아직 미동은 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경련이나 발작이 아닌, 마치 편히 잠든 사람이 숨쉴때의 움직임처럼
편안하고 느릿하고 고요했다.
"이산화탄소는 윳쿠리의 세포의 활동성을 떨어트리지. 세포에 일정농도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녹아들면
강제적으로 의식을 잃는다. 마취되는 것이지. 잠과는 비슷한, 하지만 엄연히 다른 의식의 불명상태로 말이야.
그러니 이산화탄소가 녹아든 모든 탄산음료가 다 마취제로써의 효능을 기대할 순 있지만 역시 제일 확실한 건
순수한 탄산수이지. 드라이아이스나 이산화탄소만 담은 통을 사는 건 가격이 비싸니 어차피 같은 효능인거 탄산수가 낫지."
이 사실은 그가 윳쿠리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연구해 그 이론을 완성한 것으로
아마 세번째나 네번째 논문 쯤 되었을 것이다.
윳쿠리의 호흡은 여타 생물과는 다르다. 직접적으로 생명활동에 필요한 행위는 내뱉는 '호'만 필요하며
생명활동에 산소가 필요없기에 '흡'은 내뱉는 행위를 위한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세포의 활동으로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체외로 내보내는 것만이 기본적인 윳쿠리의 호흡행위의 목적. 이산화탄소가 세포 내에 과도하게 있으면
세포의 활동이 점점 떨어져 잠을 자는 듯한 마취상태가 되기 때문에 윳쿠리는 일단 숨쉰다는 행위는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몰랐지만 이러한 윳쿠리의 세포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 바로 탄산음료를 통한 수면유도.
처음에는 라무네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시로이 쿄우진은 온갖 탄산음료로 실험해봤다.
가장 확실하게 잠재우는 것은 순수한 탄산수. 다른 것 없이 이산화탄소만 녹아든 물이기에 가장 효과적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라무네. 레모네이드의 탄산음료버전인 이것은 확실히 레몬보다 탄산의 힘이 더 강했다.
함유된 레몬즙은 윳쿠리를 제대로 각성시킬 정도로 강하지 않았고 설탕의 힘으로 목넘김이 좋은 이것은
윳쿠리가 아무 의심없이 맛있는 물이라고 여기고 들이켜 쉽게 잠들게 할 수 있었다.
라무네의 장점은 탄산수에 비해 윳쿠리의 접근성이 높다는 것. 달기 때문에 톡 쏘기만 한 무미의 탄산수보다 윳쿠리가
마시려고 하기 좋아한다. 단점이라면 역시 레몬즙. 강하진 않지만 어쨌든 함유된 레몬즙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찍 깨어버린다.
그밖의 탄산음료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콜라든 사이다는 다른 과일맛 탄산음료든
특유의 높은 당도와 탄산으로 윳쿠리가 멋모르고 좋다고 마시고 잠들어버린다.
다만 높은 당도는 윳쿠리의 몸에 확실하게 에너지를 축적해주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일찍 깨거나 깬 뒤에 더 활발해지는
그런 정도의 현상이 다소 나타날 뿐이다.
여하튼 이것이 밝혀진 뒤, 시로이 쿄우진이 윳쿠리를 잠재우는 약품으로 애용하는 것이 바로 탄산수이다.
잠재울 필요가 있으면 허구헌날 천에다 탄산수를 부어 입을 막아버린다. 마치 추리소설의 납치범같은 행위이다.
어쨌든 중추팥소가 마취상태에 빠진 것을 확인한 시로이 쿄우진은 중추팥소를 조심스레 꺼내어 음파측정기와 함께
가공실로 들어갔다. 지하연구실의 모든 방이 방음처리되어 있지만 가공실은 특히 더욱 강력하게 방음처리 되어있다.
실험체가 가공실에서 분쇄되는 윳쿠리의 비명을 듣고 그 영향으로 정신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이 가공실이야말로 기계만 전부 꺼두면 가장 조용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원종도스의 중추팥소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음파측정기로 중추팥이 내보내는 음파를 측정했다.
0.1dB에 14~16Hz의 저주파가 계속해서 울려퍼지고 있다. 그걸 그 자리에서 그대로 1시간이나 측정했다.
중추팥이 잠들어있는 그동안, 그것은 계속해서 동일한 범위의 저주파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이 백의의 남자는 광기가득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원하던 가설에 한발짝 다가섰다. 남은 것은 최후의 검증 뿐.
"무, 무큐!? 주, 주인님 안녕하세요?"
"아아, 맛치냐. 지금 몇시지?"
"1시 반이다 주인. 하루하고도 6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원하던 실험은 마쳤나?"
"아아, 최후검증만 남았을 뿐이지."
"최후검증?"
"너흰 따라올 필요 없어. 집 보는 거나 부탁한다. 나 없는동안 가구 도착하면 전화좀 해주고."
"네, 네! 주인님 핸드폰 번호는 맛치가 기억해놨습니다!"
"그럼, 수고해."
그는 저번에 얻은 원종 도스의 모자를 가방에 욱여넣고 한 가공소로 향했다.
지난번 몸첨부화 약품을 만든 곳과는 다른 가공소이다. 이곳 역시 그와 안면이 있는 가공소.
"어머나, 시로이씨 아니신가요?"
"예에, 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곳의 가공소장은 20대 여성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아 취직 5년만에 소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시로이는 이곳에서 몇가지 장비를 부탁했다.
바로, 0.1dB에 14~16Hz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장비이다.
소리를 이용해 노숙윳들을 유인해 구제하는 방식을 애용하던 이 가공소이기에 구할 수 있는 특수한 장비이다.
트럭에 윳쿠리 유인용 스피커를 싣고 백의의 남자는 여소장과 몇몇 직원과 함께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엔 규율을 잘 지켜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노숙윳 무리가 숨어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요?"
"물론 실험이죠. 스피커의 출력을 0.1dB에 14~16Hz로 맞춰주세요."
"그건... 꽤나 약하고 낮은 소리네요. 저희쪽 장비로 내지 못할 건 없지만... 왜죠?"
"뭐, 보시면 아실 겁니다."
트럭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울렸다.
물론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범위의 소리이다.
하지만 기계의 계기판은 시로이가 원하던 범위의 소리를 출력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리를 스피커로 출력한 지 30초 정도 지나자 근처의 모든 윳쿠리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왔다.
"세, 세상에! 이게 무슨...!?"
"놀라시긴 이릅니다. 좀 더 조용히 지켜보시죠."
몰려나온 윳쿠리들은 매우 다양했다.
종도, 나이도, 성격도. 부모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나왔고, 인간 상대로 도발하려던 게스들도 이곳으로 모였다.
"느느? 이건 도스의 느긋 오오라라구!"
"그런데 도스의 모습이 안보인다제."
"분명 도스는 부끄럼쟁이인거예요! 앨리스가 도시파적으로 환영할테니까 나와도 좋아요!"
"이 윳쿠리들... 무슨 소릴 하는거죠?"
"이 주파수가 느긋 오오라의 정체입니다."
"...네?"
"이 스피커, 지금 내는 음파를 내면서도 다른 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죠?"
"예... 윳쿠리 유인용이라 그정도 기능은 있어서..."
시로이는 자기 가방에서 구겨서 넣어놓은 커다란 원종 도스의 모자를 스피커 위에 올려 씌웠다.
"느느! 도스라구! 커다란 도스씨라구!"
"도스다묭! 분명하게 도스다묭!"
"첸은 알고 있어! 이 느긋한 오오라, 분명히 도스인거네!"
시로이는 마이크를 통해 그 낮은 음파를 내는 스피커에 자신의 목소리를 추가로 출력했다.
"아아, 이곳의 윳쿠리들, 도스가 왔다제!"
"느와아! 도스다! 역시 도스인거라구!"
"시, 시로이씨! 이건 대체!?"
"쉬잇, 지금부터가 재밌어질 겁니다."
시로이는 마이크로 도스인 척 연기하며 윳쿠리들에게 연설을 했다.
"도스는 이곳의 윳쿠리들이 정말로 고생했다는 걸 안다제! 그래서 도스가 느긋 오오라를 뿜으며 친절하게 찾아와줬다제!"
"굉장하다제! 도스가 마리사를 구해주러 왔다제! 이제 느긋하게 살 수 있다제!"
"이제부터 모두들 도스를 따르라제! 그러면 모두들 느긋할 수 있다제!"
"느와이! 도스는 굉장해!"
"하지만 그러려면 도스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한다제."
"맡겨달라묭! 도스의 명령이면 뭐든 하겠다묭!"
"이 공원씨에 무리를 이끌던 윳쿠리를 끌고오라제! 그 윳쿠리는 사실 모두를 속이고 혼자 인간씨의 도움으로 느긋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제! 도스는 그 배신윳을 혼내줘야 한다제!"
그 말에 모든 윳쿠리가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공원의 무리를 이끌던 무리장 파츄리를 트럭 앞으로 끌고왔다.
"무, 무큐... 도, 도스? 파츄리는 아무런 나쁜 짓도 안했어 무큐!"
"이 게스는 반성을 하지 않는다제! 모두가 이 게스를 제제하라제!"
"도스의 말대로 하면 느긋해지는거네!"
"썩을 게스 파츄리는 느긋하지 않게 제제당하라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동안 무리의 선망을 받으며 현명한 지도자로써 군림하던 무리의 대장이
인간과 아무런 마찰도 빚지 않고 동시에 무리 모두가 최대한 느긋하게 살 수 있게 배려한 이 파츄리가
이 스피커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의 명령 한번에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모든 윳쿠리에게 처참히 살해된 것이다.
짓밟히고, 물어뜯기고, 나뭇가지에 맞고 꿰이고. 단 몇초만에 그 무리장 파츄리는 질척한 음식쓰레기가 되었다.
그동안 시로이는 재빨리 스피커에 올려놓은 모자를 도로 치워 자기 가방안에 집어넣었다.
"느후훗, 게스 파츄리, 지금껏 레이무를 잘도 속였지만 도스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구!"
"냐? 근데 도스가 없어졌다구! 도스가 어디갔는지 첸은 모르겠어!"
"도스는 잠시 도스의 힘으로 투명해졌다제."
"묘묭!? 그러면 묭이 도스를 볼 수 없다묭!"
"괜찮다제. 도스의 느긋 오오라를 따라오면 무리 모두가 느긋해질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겠다제."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도스가 안내해주는 곳이면 정말로 도시파적일 거예요!"
시로이는 마이크를 끄고 차량 운전수에게 말했다.
"이제 천천히 가공소로 돌아가주세요. 윳쿠리들 페이스에 맞춰서 천천히요."
"알겠습니다 시로이 선생님."
"그럼 시로이씨, 그동안 이 상황 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네, 저도 이걸로 제 가설이 증명된 참이니까요."
윳쿠리마냥 천천히 움직이는 트럭.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대량의 무리.
심지어 트럭이 지나가는 길의 윳쿠리들까지 따라붙어 따라오는 무리의 수는 점점 불어났다.
"저는 과거 어떠한 논문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윳쿠리가 어떻게 특정개체를 지정해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죠."
"아, 그 논문이라면 저도 본 적이 있어요. 설마 윳쿠리가 그런 초음파를 쓸 줄은 몰랐었죠."
"하지만 그 논문을 낸 이후, 한가지 의문이 들더군요."
"의문이요?"
"윳쿠리의 가청음역대 중 10~20Hz의 주파수의 역할을 모르겠다는 거였죠."
"하긴, 논문에도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직 미지라고 하셨죠."
"이번에 6m급 원종 도스를 신체의 일부분이나마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걸로 측정해봤죠."
"측정이요? 어떤 걸요?"
"그 도스가 내는 주파수요. 정확히는 중추팥소에서 내는 주파수라고 해야 하지만."
"그, 그럼 혹시?"
"네, 윳쿠리들이 말하는 느긋 오오라를 원종 도스는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체가..."
"0.5데시벨에 14~16헤르츠의 초저주파... 로군요?"
"맞습니다. 윳쿠리들은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에 도스와 느긋 오오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종은 그 수가 매우 적고, 윳쿠리는 너무 많은데다 서식범위도 지나치게 넓었죠.
그래서 윳쿠리들은 도스를 바랬을 겁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흔히 아는 아종, 3m급 도스죠.
하지만 아종은 유전적으로는 평범하게 덩치만 큰 윳쿠리 마리사. 느긋 오오라를 내뿜을 능력이 없었죠.
그럼에도 윳쿠리들은 이 아종 도스를 보며 느긋 오오라에 대한 추억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려 착각했겠죠.
도스 곁에 있으면 느긋할 수 있다. 고 말이죠. 실제로 원종 주변의 윳쿠리들은 게스 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되고
윳쿠리의 행복감을 담당하는 호르몬인 세로파민의 분비가 활발하며 또 오래 유지되었습니다.
윳쿠리의 세포는 이 느긋 오오라라 불릴 수 있는 음파에 노출되면 호르몬 분비가 행복이란 방향으로 촉진되어
거의 모든 윳쿠리가 소위 말하는 개념종이 되고 역경에 처해도 남탓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현명함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이 실험으로 최종적으로 증명된거죠."
"이 음파가 바로 느긋 오오라... 이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트럭은 이윽고 가공소 앞에 도착했다.
트럭이 가공소 안으로 들어가자 뒤따르던 윳쿠리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트럭을 따라 가공소로 들어갔다.
이 윳쿠리들은 노숙윳이다. 몇몇은 모를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가공소의 존재를 안다.
보통이라면 가공소 앞에 온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트럭을 뒤따르는 윳쿠리들은 스피커가 울리는 느긋 오오라의 파장에 정신이 팔려
자신들이 향하는 곳이 지옥문의 아가리인지도 모르고 있다.
"가공소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군요. 아니면 가공소임을 알아도 도스가 느긋하게 했을거라 착각한건지."
"모자를 치웠는데도 음파만으로 쫓아오는 걸 보면 확실히 당신의 가설이 사실인 것 같네요."
"실례지만 이 윳쿠리들의 처분을 맡겨도 되는지요? 전 이걸로 검증이 다 끝난지라 볼 일이 없어서요."
"아, 마침 저희도 쓸만한 윳쿠리 자원이 모자란데 구제요청도 없었고 마땅히 보충해올 핑곗거리고 없었는데 잘됐죠."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논문을 완성해야 해서 말이죠."
"수고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시로이씨."
트럭을 뒤따르던 모든 윳쿠리가 가공소로 들어오고, 시로이 쿄우진이 백의를 휘날리며 가공소를 나가자
경비원들이 가공소의 문을 닫았고, 트럭의 스피커도 꺼졌다.
"느? 도스의 느긋 오오라가 사라졌다구?"
"느아아아아! 여, 여긴 가공소씨라제에에에에!"
"어, 어째서 앨리스가 가공소씨에 와 있는건가요!!"
"우후훗, 여왕님의 궁전에 어서와요 제군들. 여러분들은 어떻게 절 재미있게 해줄 노예들인가요?
"능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로이 쿄우진은 연구실에서 논문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느긋 오오라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고마워, 도스. 네 덕분에 멋진 논문이 완성되었어."
"......"
"앞으로도 해볼 연구가 많아. 잘 부탁해, 도스! 으하, 으하하! 으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
오렌지주스에 담긴 채 팥소가 격동하는 중추팥소가 하나.
그것은 이제 눈도 입도 촉각을 느낄 몸도 없지만
그 중추팥소는 소리만은 들을 수 있었다.
중추팥에 전해지는 진동으로 듣고, 보고, 또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가둔 남자의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그 음산하고 공포스런 웃음소리를



이번편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