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3.02 21:31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9-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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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생활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혀사는 부자유함만 빼면 먹을 것도 제때 나오고 잠도 아무렇게나 잘 수 있었다.

매일같이 반대편의, 종별로 나뉘어 갇힌 윳쿠리들이 끌려가는 데에 비해

자신이 포함된 장기실험용 개체들은 그 남자가 특별히 손대는 일이 없었다.

그저 수시로 상태를 확인하고, 오히려 병들거나 하는 개체는 치료해주기도 하였다.

물론 그 남자가 선의로 치료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건, 이젠 앨리스도 잘 아는 일이다.

그곳에 갇히고서 며칠 뒤, 새끼들이 태어나기 직전, 그 남자가 앨리스를 약품으로 잠재우고 꺼내갔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앨리스는 모른다. 단지, 깨어나고 보니 자신은 그 케이지에 다시 갇혔고, 아가야들은 없어졌다.

그뿐이었다.

앨리스가 잠든 동안엔...

 

"드디어 이 개체의 자손들이 태어날 때가 되었군. 원래대로라면 좀 더 풍족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게 해야 했지만

아쉽게도 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니... 풍족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개체는 다음에 살 앨리스한테 맡기도록 하고,

지금은 이 개체의 새끼에게 집중해야지. 자아, 그럼 슬슬 태어날 때가 됐는데..."

 

954라는 번호가 매겨진 금뱃지 앨리스.

비록 본인은 잠들어 있지만 새끼들은 어미에게서 계속 양분을 받으며, 곧 태어날 때가 되었다.

남자는 새끼들이 떨어질 자리에 윳쿠리용 쿠션을 두고 기다렸다.

몇분 뒤, 녹색의 가지에서 한마리씩, 총 세마리의 앨리스가 떨어졌다.

갓 태어난 아기 앨리스들은 기지개라도 하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남자는 그 즉시 세마리의 아기 앨리스 모두를 약품을 적신 솜으로 입을 막아 잠재웠다.

'느긋하게 있으라구!' 라는 첫마디를 할 새도 없이, 세마리의 새끼 앨리스들은 그대로 실험에 동원되었다.

즉, 해부되었다. 남자는 새끼들을 갈라 팥소를 꺼내어 그 성분을 분석했고,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 다음엔 954번 앨리스를 살짝 갈라 약간의 팥소를 파낸 뒤 그 상처를 봉합하고

어미되는 954번 앨리스의 팥소 역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저장했다.

이후, 남자는 이 앨리스를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백의의 남자, 시로이 쿄우진은 자신의 컴퓨터로 이번에 도출한 데이터들을 살펴보고 있다.

 

"흐음, 어미의 게스 호르몬 분비는 촉진되지 않았군. 적어도 새끼에게 올바른 정신이 나뉘어진다는 설이

거짓된 설이라는 것의 근거는 되겠어. 데이터는 더 필요하겠지만.

그에 비해 새끼들은... 좀 제각각이지만 게스 호르몬이 다소 분비되어 있군. 원인은 어버이인 레이퍼인가.

어버이쪽 유전자에서 게스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유전자가 전이되었군. 전이된 정도는 제각각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세마리 다 레이퍼로 자랄 가능성이... 최소 54%인가. 절반이 넘는군.

윳쿠리는 내장기관이 소화와 근육과 신경계 등의 기능을 거의 전부 담당하는, 다세포지만 단세포적 생리를 가진 생명체.

후천적인 요소가 유전자에 새겨져 그 자손에게 전이시켜 선천적으로 해당 요소를 가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적어도 애완윳이 바깥의 윳쿠리와 교미해 낳은 자식이 게스일 확률이 높은 이유는 설명되는군.

노숙윳이나 야생윳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 이기성이 강해야 하는 탓에 게스 호르몬이 분비되기 쉽고,

그렇게 분비된 게스 호르몬의 영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이후 낳는 새끼에게 전이시키는건가."

 

남자는 컴퓨터의 자료를 정리하고 전원을 끈 뒤, 지하실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954번 앨리스가 깨어났다.

 

"애, 앨리스의 아가야가 없어졌어요!"

"너 아까 그 남자한테 꺼내어졌었지? 분명 새끼들이 실험에 동원된거야."

 

옆자리의 1016번 마리사가 자신이 추측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럴수가... 비록 원치않는 방법으로 가진 아가야였어도 앨리스의 아가야였어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거야 그 남자는.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돼."

"익숙해져야 한다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래. 미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거든."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비 윳쿠리증. 너무 느긋하지 못하면 미쳐버리고, 결국엔 죽는 윳쿠리들의 병이지."

"그리고 그 남자는 비 윳쿠리증의 치료제와 예방약을 완성했다도. 우린 미쳐죽는다는 도망조차 못한다도."

 

윗자리의 플래티넘 레미랴가 덧붙여 설명해줬다.

시로이 쿄우진은 이미 오래전에 비윳쿠리증을 치료하고, 또 아예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약품을 완성했다.

그것은 자신의 실험체가 미쳐서 죽어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막아버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완성품이 나오자,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것 외에도 해당 약품의 제조법을

특허를 낸 뒤, 한 제약회사와 계약하여 애완윳들을 위한 비윳쿠리증 예방약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 수익의 일부를, 특허의 소유자인 본인이 받아가고 있다. 그의 수많은 자금줄 중 하나이다.

 

소심한 973번 파츄리가 겨우 들릴듯한, 자신감 없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무, 무큐...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파츄리는 생각해요... 모든 실험이 죽음으로 끝나진 않거든요..."

"그건 그렇다도. 우리같은 장기실험체들은 특히 더 오래 두고 관찰하고, 경우에 따라선 풀려나기도 하니까도."

"그, 그런 일도 있는 건가요?"

"가장 좋은 예가 있다도. 개조 파츄리. 보통 파츄리보다 크고 강하고 똑똑하게 개조된 그녀석들은

그 남자의 조수로 살아야 하는 보이지 않는 족쇄이 묶인 것 외에는 완전히 자유롭거든."

"파츄리 언니야...! 앨리스를 도망치게 하려고 했던 언니야도 그렇게 컸어요!"

"도망치게 하려 했다고!? 그 개조 파츄리 미친건가!? 그 남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실험이 방해되는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언니야는 죽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각오했다고..."

"...그 파츄리, 대단한 결심을 한 거다도. 죽을 걸 알면서도 널 도망치게 하려고 했던 거다도."

"언니야... 미안해요... 앨리스는 결국, 언니야의 도움에 보답하지 못했어요..."

 

954번 앨리스는 소리를 죽여 울었다.

깜빡이는 불빛에 머리장식의 금뱃지와 흐르는 눈물이 번갈아가며 반짝인다.

한편, 시로이 쿄우진은 스스로에게 잠깐의 휴식을 취하게 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계획도 짜야 하고, 그동안 밤샘연구를 너무 많이 했던 탓에 쌓인 피로도 풀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연구욕에 미친 광인이라도 몸의 한계를 오래 둘 만큼 튼튼하진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연구 성과로 먹고사는 일종의 프리랜서. 출근할 회사도 없고, 좀 나태하게 지낸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그는 오늘 느긋하게 낮잠을 자도 된다.

그의 낮잠계획을 멋들어지게 방해한 건 다름아닌 그의 거의 유일한 절친, 마츠다 마사오였다.

미친듯이 초인종을 눌러대고 있다. 별 수 없이 현관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

 

"나 졸려 임마. 오늘은 잠 좀 재워줘."

"내 집에 집윳이 들끓는다 임마. 좀 도와줘."

"아오, 좀 사라 나한테 빌붙지 말고."

"야, 친구 좋은게 뭐냐? 이럴때 좀 도와줘라. 나도 나중에 도와줄테니까."

"어으, 알았어. 물건 챙기고 갈게."

 

평범한 일본식 아파트에 사는 마츠다 마사오.

그의 집은 대충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현재 그의 집안 곳곳엔 집윳쿠리들이 정복한 상황이다.

옷장이든 냉장고든 서랍이든 틈새란 틈새는 다 메워져 있고, 수가 너무 많아 집윳 퇴치용 윳쿠리로도 방법이 없다.

이만한 수의 윳쿠리를 뿌리뽑을 수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터무니없이 비싸 마츠다로썬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미치광이 친구, 시로이 쿄우진은 비교적 싼 값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물건을 내놨다.

 

"집에 초콜릿 있냐?"

"어, 몇개 있어.

"한 조각만 접시 위에 놓고 바닥에 놔줘."

"왜 그런 것까지 시키는..."

"니 집이잖아. 난 졸린데 피곤한 몸 이끌고 니 집 청소하러 와줬고. 이정도는 해줘야지?"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마츠다는 냉장고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고 쪼개 작은 한 조각을 집어선 작은 접시 위에 놓았다.

그 접시는 마츠다의 집의 탁 트인 거실바닥에 살포시 놓여졌다.

이젠 일상 속에서도 흰 가운을 입고 사는 그 남자의 차례.

주머니에서 스프레이 하나를 꺼내더니 초콜릿이 놓여진 접시에 분사했다.

이걸로 준비는 끝. 두 사람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가만히 초콜릿이 놓여진 접시를 응시했다.

 

"느삐이이~ 배고파~ 배고프다구~!"

"능후후, 아가야들이 잔뜩 배가 고픈 모양이네?"

"레이무! 다녀왔다제! 잔뜩이라제!"

"마리사! 늦었잖아! 아가야들이 배고프다구!"

"느후후, 마리사가 잘못했다제. 아가야들, 아빠야가 잔!뜩! 과자씨를 가져왔다제! 마음껏 먹으라제!"

"느와아! 과자씨라구! 느긋하다구!"

"능챠! 능챠! 마리쨔가 먼쩌 머글꼬다제!"

"젼부 레뮤꼬야! 손대지마!"

 

"느삐이! 엄마야 정말좋아!"

"능후후, 아가야는 정말 어리광쟁이네! 귀엽다구! 도시파적이라구!"

"무큐! 파츄리와 앨리스의 아가야, 정말 느긋한거네!"

 

"친구랑 싸우면 안된다묭! 자, 아가야는 친구인 첸한테 사과하는 거다묭!"

"첸, 미안하다묭."

"첸도 잘못한거네! 알고있어!"

"첸의 아가야도, 묭의 아가야도 사이가 좋은거네! 우린 정말 느긋한거네! 첸은 알고있어!"

 

집안의 곳곳, 작디작은 집윳쿠리들은 무서~운 인간씨를 피해서 사이좋게 살고있다.

인간씨는 무섭지만 느긋하지 못하게 덩치가 크고 둔하고 멍청해서 느긋한 집윳쿠리들을 괴롭힐 수 없다.

그래서 집윳쿠리들은 느긋하게 멍청한 인간씨의 집 곳곳의 구석에서 느긋하게, 한가하게 살고 있었다.

 

"느?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구?"

"그렇다제! 정말로 느긋하다제!"

"어머나? 어디서 이런 도시파적인 냄새가 나는걸까요?"

"이 냄새는 묭이 따라간다구!"

"첸도 가는거네! 이 냄새는 분명 첸을 느긋하게 해줄 무언가가 있는거네! 첸은 알고있어!"

 

집안의 곳곳에서, 구석이란 구석에서 수많은 집윳쿠리들이 바글바글 뛰쳐나왔다.

 

"우왁! 징그러! 넘쳐난단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집에 이렇게 잔뜩 있었던거야!?"

"흐음, 한 백여마리는 되어 보이네. 이 넓은 범위가 다 커버되는 걸 보면 효과는 확실하구만."

 

접시에 뿌려진 것은 집윳쿠리들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는 어떤 약품.

인간은 물론이요, 다른 동물이나 심지어 집윳쿠리가 아닌 윳쿠리에게까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순수히 집윳쿠리에게만 효과를 발휘하는 물질이며, 어느 한 곳에 뿌리면 곳곳으로 향이 퍼져 집윳들을 유인한다.

하지만 이 약품의 효과는 단순히 유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느와아! 정말로 느긋한 초콜릿씨가 있다구!"

"비키라제! 저 초콜릿은 마리사님의 것이라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이좋은 부부였던 레이무와 마리사.

하지만 지금 마리사는 레이무를 밀치고 초콜릿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리사가 접시에 다가갈때 마리사를 물어뜯어 죽인 것은 이웃이었던 윳쿠리 요우무.

 

"이 초콜릿은 묭이 것이라구! 누구에게도 안넘겨준다구!"

"첸의 것을 뺏어가겠다 선언하는 게스는 죽는거네! 알고있어!"

 

그 요우무를 바로 전까지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 첸이 뒤에서 물어뜯었다.

수많은 집윳쿠리들이 나이도, 종도 불문하고 접시의 초콜릿을 향해 돌진했으며

자신이 독차지하고자 하는 초콜릿을 노리는 다른 경쟁자들은 자비없이 죽여버렸다.

바로 직전까지 사이좋은 가족이며 이웃이었다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자기 새끼를 죽이는 윳쿠리도 있었다.

자기 부모를 죽이는 윳쿠리도 있었다.

아직 알에서 깰 때가 아닌 어린 윳쿠리조차 억지로 알을 깨고 나와 초콜릿 쟁탈전에 참전했다.

 

접시에, 그리고 그 위의 초콜릿에 뿌려진 것은 <집윳쿠리 파멸유도제>

이 역시 그 백의의 미치광이가 개발하여 특허내고 계약하여 판매하는 물건으로

개발의 계기는 일반 윳쿠리와 집윳쿠리의 유전적 차이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그 차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 집윳쿠리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약품의 개발로 이어졌다.

윳쿠리를 유도할 미끼를 두고, 그 위에 뿌리는 것이 사용법인 이 약품은 한번 뿌리는 걸로 집안 구석구석에 퍼져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 집윳쿠리를 미끼쪽으로 유인하고

또한 동시에 집윳쿠리들의 게스 호르몬을 극단적으로 촉진시켜 자기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못알아보고

오직 미끼에 대한 독점만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직 알 속에 있는 새끼들까지 끌고오기 때문에 현재 집안에 있는 집윳의 씨를 말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더이상 나오는 놈이 없는 걸 봐선 전부 다 나오고, 또 전부 죽은 모양이군."

"그러게."

"그럼 난 간다. 치우는 건 니가 해라."

"야, 얌마! 그래도 치우는 것까진 좀..."

"졸리다고! 난 이제 집 가서 잘거야!"

 

미끼를 중심으로 수많은 집윳의 사체가 수두룩해 이걸 직접 치워야 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그래도 집윳쿠리 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수많은 것들 중엔 가장 싼 물건이라 판매량은 높지만

이러한 지저분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의 연출 등의 문제때문에 비윳쿠리증 치료약, 예방약보단 수익이 적단 모양이다.

그럼에도 상당한 수익을 이 백의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의 자금줄 중 하나이다.

오직 연구에 대한 욕망밖에 없는 그이지만, 그 연구와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이러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덕에

의외로 사람들은 그의 광기의 덕택을 보곤 한다.

물론 자신들이 유용하게 쓰는 이 은혜로운 물건이 한 미치광이의 창조물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오늘 그 미치광이는 간만에 피로에 쩔어있다.

이때만큼은 그 광기가 사그라든, 그냥 피로에 쩐 사회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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