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는 정신이 들고 보니, 낯선 곳에 있었다.
그곳엔 화려한 집씨도 없었다.
맛있는 밥씨도 없었다.
투명한 케이지 안, 최소한의 생활만이 가능하게끔만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감옥
앨리스는 그러한 곳에서 정신이 들었다.
"느으...? 여긴...?"
"드디어 깨어났구나, 기다리다 지칠 뻔했다고."
"오, 오빠야? 여긴 어딘가요?"
"환영한단다, 내 연구소에!"
그 남자의 집 지하실
분명히 조명이 밝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게 느껴지는 음산한 공간
각각의 역할이 나뉘어진 방들로 연결된 문
지하실의 중앙의 방 한가운데엔 커다란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고
한쪽 벽에는 또다른 테이블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 느긋할 수 없는 도구들이 놓여져 있었다
"여기가... 오빠야의 연구소? 아! 언니야! 파츄리 언니야는 어떻게 되었나요?"
"흐음? 분명 죽은 걸 봤을텐데, 잊었나? 아님 그 이후의 처리가 궁금한가? 갈았어, 저쪽의 분쇄기로."
"...네?"
"갈려져서 사료로 가공한 뒤, 보관되었다가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각 케이지에 투입되어
내가 보관중인 윳쿠리들의 한끼 식사가 되겠지. 커다란 덕분에 양이 많아서 제법 도움이 되었어."
"그, 그럴수가..."
"그딴건 아무래도 좋고, 이제 너도 깨어났으니 실험을 시작해볼까?"
"시, 실험이라니요?"
"인터넷상에선 이런 가설이 돌고 있었지. 금뱃지 윳쿠리가 어째서 새끼를 낳으면 게스화가 되는가?
누군가는 그 질문에 이런 가설을 내놓았지. 금뱃지가 개념100%일때 새깨 둘을 낳으면
어미는 개념80%, 새끼에겐 각각 10%의 개념이 나뉘어 새끼들은 게스가 되고 부모도 점차 게스가 된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이 가설은 비과학적이야. 과학적인 증거도 근거도 없지. 정밀하게 연구된 것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가 멋대로 내세운 소문에 불과하지. 난 그 질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해볼 생각이야.
금뱃지를 딸 정도로 교육받은 윳쿠리가 어째서 게스로 각성할 수 있는가.
난 이미 윳쿠리의 체내에서 이기성을 부추기는 호르몬인 게스 호르몬의 존재를 발견했어.
문제는 번식행위와 게스 호르몬의 분비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거야.
그래서 난 널 샀지. 금뱃지 윳쿠리인 널 모체로써 계속해서 새끼를 낳게 하고 게스 호르몬을 측정할거야.
좀 장기적인 실험이 될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조수를 만들 여력이 없겠어. 그녀석이 아직 반항하지 않았으면
이번 실험이 훨씬 수월했을텐데 말이지. 아아, 네번째는 좀 겁이 많고 순종적인 녀석을 베이스로 해야겠어.
개조는 어디까지나 육체적 능력과 내구성, 지식과 지혜를 높일 뿐, 성격이나 성향까지 바꾸진 못하니까 말야."
중간부터는 사실상 혼잣말에 가까워진 그의 장황하고 기나긴 말을 앨리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 남자의 눈빛에서, 표정에서, 태도에서, 이전에 파츄리가 자신에게 말해줬던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그 남자는 뼛속까지 미쳐있어.'
광기. 앨리스는 자기 앞에 있는 오빠야에게서 느긋함과는 극단적으로 반대쪽에 있는,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상 질질 끌어서 좋을 것 없지. 바로 시작하자."
항상 백의를 입고 다니는 그 남자는 케이지에서 앨리스를 꺼내어 한쪽 벽에 붙어있는 실험대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다른 방에서 어떻게 봐도 느긋하지 못한 이상한 앨리스종을 들고왔다.
"이녀석은 오랜기간 유전적 요소와 경험으로 완전하게 레이퍼로 각성한 앨리스야."
"그, 그 앨리스는 전혀 느긋하지 못해요! 대체 그 앨리스로 뭘 하시려는 건가요!?"
"뭐긴, 너량 얠 교미시키는거지. 종의 특이성이란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동종을 골랐다. 굳이 널 산 이유지."
"응호오오! 뎡말로 됴시파!저긴 앨리쭈네?"
남자가 들고 있는 레이퍼는 성체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능력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리고 그 레이퍼 앨리스의 페니페니는 기분나쁠 정도로 불끈불끈거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정자팥소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 고정시켜서 움직일 수 없는 녀석이다. 새끼를 가질 때까지 마음껏 뿌려보렴."
"응호오호호! 하라범은 뎡말 됴시파!저기네?"
"부, 부탁이예요, 오빠야! 그 느긋하지 못한 앨리스를 치워주세요!"
남자는 어느쪽의 앨리스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실험을 진행할 뿐이었다.
"응호오오오오! 유혹쩍인 엉뎡이찌라규! 앨리쭈와 쌍꽤! 하자꾸!"
"시, 싫어요! 싫어어어어어! 하지마아아아아! 느아아아아앙!!"
금뱃지를 단 앨리스는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철저하게 몸부림쳤다.
하지만 앨리스를 고정하고 있는 벨트는 앨리스를 꼼짝없이 레이퍼에게 상쾌당하게 만들었다.
그저 필사적인 몸부림이 레이퍼에게 유혹적인 엉덩이 흔들기로밖에 보이지 않게 만들어
레이퍼 앨리스의 추잡한 성욕에 더더욱 불을 붙일 뿐이었다.
"싫어어어어어어어어!"
"사사사사사, 상꽤애애애애애애!!!"
레이퍼가 폭발적으로 정자팥을 사정했고, 금뱃지 앨리스는 정자팥을 주입당한 지 단 몇초만에
이마에서 녹색의 줄기 하나가 자라고, 아기윳이 될 열매 3개가 맺혔다.
그리고 기세가 올라 더욱 교미를 행하려는 레이퍼를
남자는 줄기와 열매를 확인한 즉시 금뱃지 앨리스에게서 떼어냈다.
"모하눈 고냐구! 됴시파적이지 모타다꾸! 앨리쭈는 쫌 더 짱쾌!하고 싶따구!"
백의의 남자는 듣지도 않고 레이퍼 앨리스의 머리채를 잡아채고는 그대로 가공실로 향했다.
실의에 빠진 금뱃지 앨리스를 뒤로 하고, 남자는 가공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가공장면을 보이거나 들리게 하면, 실험체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말이지."
"당장 앨리쭈를 놔달라꾸!"
"그래."
남자는 소원대로, 레이퍼를 놔줬다.
분쇄기 바로 위에.
레이퍼 앨리스의 고통스런 비명이 가공실 안에서 울려퍼졌고
처음의 기고만장하고 음탕한 표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이 처절하게 살고자 버둥대며 울부짖는
여타 다른 갈려나간 재료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남자는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며 갈려나가는 앨리스를 보면서 어떠한 감정을 느낄까?
쾌감? 혐오? 멸시? 증오? 분노? 슬픔?
아니, 무감정이다. 사무원이 아무런 생각없이 서류를 복사하듯, 남자는 무감정으로 윳쿠리를 갈아낸다.
단지 그뿐이다. 이것은 단지 실험체의 유지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재활용적인 행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외의 어떠한 의미도 없다. 그렇기에 어떠한 감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
잔혹하게 찢어발겨지는 생명체를 눈앞에 두고도 남자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않는다.
사료로서의 처리는 끝났다. 지하실의 모든 방은 방음처리 되어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실험체에게 보여지거나 들려질 일도 없었다.
남자는 무심하게 가공실을 나와, 슬픔에 빠진 금뱃지 앨리스를 보았다.
이마에 난 녹색의 줄기엔 건장한 새끼가 될 열매 3개가 달려있다.
모체는 처녀성과 자유를 무자비하게 빼앗긴 것이 서글퍼 울고 있지만 상태는 양호하다.
남자는 흡족했다. 모체도 태아도 문제없이 원하는 대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눈물과 금뱃지가 반짝이는 이 앨리스의 구속을 풀고, 태아가 손상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고는
개체보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개체보관실엔 몇개의 구획이 있다.
특정 종만을 구분해 보관하는 종 보관구역, 장기실험용 윳쿠리를 보관하는 장기간 보관구역
여러 종을 넓은 케이지 한곳에 모아 작은 사회를 이루어 살게 만드는 사회적 보관구역
그리고 방 저편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격리보관하는 특별보관구역
이 금뱃지 앨리스는 장기간 보관구역의 한 케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머리장식에 954라는 태그를 뱃지 옆에 붙여졌다.
앨리스가 겨우 실의에서 헤어나오고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의 케이지 안엔 삶의 의욕을 상실한 듯한
기운없이 멍하니 허공만 보거나 하는 윳쿠리들이 케이지 당 하나씩, 아주 아주 가득했다.
바로 옆자리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낀 마리사가 말을 걸었다. 1016번이란 태그가 붙어있었다.
"여어, 신입이냐?"
"느, 느긋하게 있으라구요?"
"그런 인삿말은 잊어. 여기 온 이상 그 어떤 윳쿠리도 느긋할 수 없어."
"...마리사도 심한 일을 당했나요?"
"여긴 장기실험이라는, 오래오래 두고 결과를 지켜보는 식의 실험을 당하는 윳쿠리들이 갇혀사는 곳이야."
"장기실험...이요?"
"나같은 경우는 매운맛에 대한 내성강화실험이랬지. 매일 매운 걸 조금씩 먹으면서 익숙해지는 실험이야."
"매, 매운 건 느긋할 수 없어요!"
"원래는 그렇지. 하지만 난 그게 느긋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매운 정도를 높여가며 강제로 먹여질 뿐이야."
"그럴수가..."
"너도 그리 좋은 꼴을 당하진 않은 모양이군 그래."
"...레이퍼에게 원하지 않는 상쾌를 당해서 아가야가 생겼어요."
"후우... 확실히 좋은 꼴은 아니군."
"저어... 이제 저흰 어떻게 되나요?"
"여기 왔다는 건, 적어도 그 남자가 쉽게 죽게끔 두진 않는다는 거야.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다른 곳에 있는 윳쿠리들은요?"
"우리보다 빨리 죽지. 실험이란 명목으로 동원되어서, 성공해서 살아남거나 실패해서 죽거나."
"무큐... 그래도 여긴 적어도 오래 살 수는 있어요..."
앨리스에게서 1016번 마리사와는 반대쪽에 있는 파츄리가 말했다. 973번이다.
"장기적 실험이란 건, 오랜 기간을 두고 결과를 지켜보는 실험이라고 하니까... 죽지 않게 돌봐주거든요..."
"저...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느긋할 수는 없는거죠?"
"무큐..."
앨리스의 질문에 973번 파츄리는 답하지 않았다.
사실은 앨리스도 답을 알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가 부정해주길 바랐을 뿐이지만, 그런 희망을 가진 자는
여기엔 아무도 없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요...? 앨리스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아니다도, 여기있는 윳쿠리 중 그 인간씨에게 잘못한 윳쿠리는 없다도."
앨리스의 윗쪽 케이지엔 레미랴가 있었다. 태그숫자는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그 인간씨는 그냥 윳쿠리를 가지고 실험하는 걸 좋아해서 그럴 뿐이다도. 잘하든 잘못하든 관계없다도."
"애, 앨리스는 열심히 해서 금뱃지까지 땄어요! 주인님이랑 같이 느긋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 남자에게 걸린 이상, 뱃지는 그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도."
그러면서 윗층의 레미랴는 몸을 숙여, 자신의 머리장식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고 앨리스는 경악했다.
윗자리의 레미랴는, 플래티넘 뱃지를 달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뱃지를 달고 있어도, 그 남자에겐 실험에 관한 정보의 일부일 뿐, 그 외의 가치는 없다도."
"그럼... 앨리스가 오빠야에게 사진 건..."
"처음부터, 그 실험이란 걸 당하기 위해서였지."
1016번 마리사가 대답했다.
이제서야 앨리스는 모든 의문의 답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어째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한건지
파츄리 언니야가 어째서 자신을 도망치게 하려고 했던 것인지
언니야가 어째서 그토록 그 오빠야를 싫어하고 두려워했는지
앨리스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 남자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단 한가지. 그 미친 인간씨의 눈에 자신이 들어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겪는,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비극의 이유이다.
오직 그것만이 이유이다.
금뱃지 앨리스가 필요했던 그 남자의 눈에 들었던 것만이 지금 자신이 이 고통을 겪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그럼, 앨리스는... 앨리스는 무엇을 위해서 금뱃지 따위를..."
앨리스는, 불빛이 흐릿해지는 보관실의 케이지 안에서
자신의 노력을, 삶을, 다짐을 후회했다.
금뱃지를 딴 것을, 후회했다.



이렇게 험한지슬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