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6.12.29 21:50

아포칼립스 속 윳쿠리 -1-

mad
조회 수 452 추천 수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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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멸망했다.

 

문명은 소실되고, 건물은 풍화되며, 도시엔 잡초만 무성하고

동물의 흔적은 찾아보는 것조차 힘들다.

인간에 의해 초래된 멸망의 시대

나는 거기서 운좋게 살아남은 인간

그리고 운나쁘게 이 매마른 지옥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

문명의 흔적이 남은 몇가지 물건들로 짐을 꾸려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마지막 안식처를 찾아 헤메이는 남자다.

다만...

 

"어이 할아범! 천천히 가라제! 레이무는 아가야를 잔뜩 임신해서 느긋하게 가야 한다제!"

"맞아! 불쌍한 레이무를 위해 할아범은 들고 가라구! 지금 바로면 돼!"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오는 게스 윳쿠리 두마리랑 함께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그러니까 아직 문명이란 녀석이 만연해 평화롭던 시대에

나는 소위 말하는 학대 오니이상이었다.

자신의 그릇의 정도도 모른채, 인간과의 힘의 차이도 모른채

오만함과 무지로 넘쳐나 인간에게 대들고 기어오르는 놈들을 온갖 고문기술로 괴롭히는게

삶의 낙이었던 한가한 녀석이었다.

그런 내가 내 성질을 박박 긁는 저것들을 내버려두는 이유는

저것들이 현재 내게 주어진 유일한 식량이기 때문이다.

 

윳쿠리는 그 특히한 생태덕분에 잡초나 음식쓰레기를 먹어도

적당히 소화만 하면 체내에서 팥소로 치환할 수 있다.

또한 허구헌날 하는 교미행위, 지들 말로는 상쾌! 라는 걸 하면

몇분만에 태아가 생기고 며칠이면 어느정도 활동력이 생기는 아기윳들이 태어난다.

그 아기윳들이 현재 내 유일한 식량이다.

저것들에게 먹일 잡초는 넘쳐나니 근처에 남아도는 풀이나 뜯게 하면 된다.

그럼 저것들은 알아서 배가 부르고 그만큼 쌓인 팥소로 새끼들을 양산해주면 된다.

난 그걸 먹으면 된다.

짜증은 나지만 생존을 위해 이 짓을 반복하며 버텨온 지 몇주째

이젠 학대파로서의 의욕도 풍화된건지 저 멍청이들의 게스짓에도 별 짜증이 안난다

아니, 그냥 그럴 기운도 아까울 뿐이지만.

 

"어이, 망할 할아범! 듣고 있냐제!?"

"오늘은 여기서 쉬면 되겠구만. 거의 다 왔으니까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웃기지 말라제! 할아범이 뭔데 마리사들한테 이래라저래라..."

"말했었지... 이젠 너넨 나 없인 살 수 없고 난 너네없이 살 수 없는 운명공동체니까 적당히 하라고."

"느구으..."

"오늘밤은 이 폐건물에서 지낸다. 따라와."

"...알겠다제"

 

게스도 머리가 좋아야 살아남기 좋다.

이 게스 윳쿠리 부부는 생존에 필요한 지능이 다른 윳쿠리에 비하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것들에게 현상황을 설명하자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며 나한테서 도망쳤다가

반나절만에 먼지투성이가 돼서 나한테 돌아왔다.

그 이후론 저놈들도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다.

게스의 습성이 사라지진 않아서 허구헌날 기어오르지만

살기 위해서 나라는 인간씨의 힘과 판단은 필수불가결하다, 뭐 이렇게 결론내린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말은 많아도 내 명령엔 절대적이다. 그 명령을 따르면 지들도 어찌어찌 살아남으니까.

 

반쯤 기울어 떨어질랑 말랑한 간판을 보았다.

여긴 이전엔 무슨 마트였던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선 움직임이 둔한 두 윳쿠리를 위해 잠시 문을 잡아줬다.

그러는 동안 잠시 내부를 대충 둘러보았다.

길가에 인접한 벽은 깨진 유리창조각이 많아 윳쿠리들은 저곳에 두면 안되겠다.

상품 진열대는 대부분이 비어 있었고, 그나마 남은 것도 생필품이랄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번에도 꽝인가..."

 

속으로 하려던 한탄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가게 안쪽 깊이 들어가니 스태프룸같은 방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당시엔 점장이나 직원들의 휴게실이었을 것이다.

문을 열어보니 여기 상태는 썩 나쁘진 않았다.

먼지쌓이고 가구들은 망가졌지만 바닥이 평평하고 유리조각도 없다.

다소 찢어졌지만 사람 하나 눕기에 부족함 없는 소파도 하나 있고

팬은 돌아가지 않지만 밖으로 통하는 통풍구가 하나 있어 완전밀폐된 공간도 아니다.

건물의 안쪽의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이라 추위를 막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간만에 좋은 임시 보금자리가 생겼다. 어지간하면 이런 덴 발견하지도 못하니까.

 

"여기가 좋겠군. 여러모로 적당하겠어."

"무슨 개소리냐제! 위대하신 마리사님이 살기엔 좁고 허름한 방이지 않냐제!"

"하지만 지나가는 은신처로는 제일 적당하지."

"여긴 아가야한테는 너무 좋지 않은 환경이라구! 이런 먼지나는 데서 아가야들이 뛰놀게 할 순 없잖아!"

"그 아가야들... 완전한 정착지를 찾기 전엔 전부 내 식량이라는 거 잊었냐?"

 

그렇다. 난 이녀석들과 약속했다.

더이상 떠돌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정착지, 이녀석들에겐 윳쿠리 플레이스라고 할 만한 곳을 찾을 때까진

낳는 아가야는 전부 내 식량이다.

제대로 된 정착지를 찾으면 니들 마음대로 불려도 되지만 그 전엔 다 내가 먹어치운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한 약속이다.

나한테 기어오르느라 종종 잊어먹곤 하지만 이렇게 상기시켜 줄 때마다

이녀석들은 자기 처지를 곧바로 떠올리고는 순순히 자기 자식을 내게 바쳐준다.

저들도 잠깐의 느긋함을 위해 무작정 새끼를 불리다간 자멸할 거란 걸 깨달아준건 솔직히 고맙다.

덕분에 나도 저놈들도 여태까지 무사히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가방에서 수건 하나를 꺼내 바닥에 평평하게 펼치고는 방을 나서면서 놈들에게 말했다.

 

"난 이 주변에서 쓸만한 거나 니들 쳐먹을 풀떼기 구해올테니까 거기서 얌전히 기다려."

"아, 알았다제..."

 

두 윳쿠리는 암전히 수건 위로 올라가선 휴식을 취하고, 나는 방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문 위에 휴게실이라 써 있다. 그래 참 정말 고마운 휴게실이다.

먼지만 가득한 텅 빈 진열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나는 가방 옆에 달린 주머니에서

작은 천으로 싸놓은 덩어리를 꺼냈다.

매듭을 풀자 둥글게 뭉쳐진 팥소덩어리가 있었다.

그 게스놈들의 응응덩어리다.

윳쿠리의 배설물은 실상은 그냥 좀 묵은 팥소에 지나지 않는다.

윳쿠리는 그걸 응응이라 부르며 기피하지만 지들도 응응이란 걸 모르면 잘만 먹는다.

사람에게도 그냥 좀 묵은 팥소일 뿐 몸에 해롭긴 커녕 당분 덩어리다.

그걸 알았어도 옛날 같았으면 윳쿠리들이 응응노예니 뭐니 기어오르니까 입에도 안댔겠지만

지금은 나에게 있어선 또 다른 비상식일 뿐이다.

단지 저것들 앞에서 대놓고 먹으면 분명 날 내리깔고 볼테니 저것들 몰래 먹을 뿐이다.

 

팥소덩이를 먹으며 좀 둘러보니,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쓸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다.

진열대에 있는 거라곤 먼지와 거미줄뿐, 식료품은 커녕 기타 다른 생필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일하게 건진 거라곤 카운터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던 성냥갑 하나와 담배진열대의 말보로 한갑.

담배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나 해충 기피용으로 쓸 수 있겠고, 성냥은 뭐, 불의 유용성은 이제와서 말해봐야...

이걸로 현재 내가 가진 성냥은 두갑 반 정도 되겠다. 그나마 오늘은 불 피울 일이 없으니 성냥 하나 더 아끼겠다.

 

잠깐 가게 밖으로 나와 담배 한대를 태우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파란 하늘에 옅은 구름이 수채화 물감의 흔적마냥 퍼져있다.

도시에선 잿빛 하늘만 봐왔는데, 이거 하나만큼은 좋은 거려나...

그렇게 사색에 빠져 잠시 넉놓고 있는데, 내 앞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야! 분명 조금만 더 가면 윳쿠리 플레이스가 있을거야! 그러니까 느긋하게 가자구!"

"응! 레이뮤는 엄마야 열심히 따라갈거야!"

"엉마야! 엉니야! 가치가아아~!"

 

레이무 모녀가 태평하게 지나가고 있다.

가끔 가다가 보면, 이 번식력만큼은 바퀴벌레 뺨치는 윳쿠리들이 폐허속을 싸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

워낙 개체수를 잔뜩 불려놔선지, 이런 난리통에도 살아남는 놈들이 있다는 거겠지.

분명 저것들도 살려서 두면 오래도록 좋은 식량을 제공해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레이무개체는 필요없다.

데리고 다닐 각 종의 윳쿠리는 하나면 족하다. 그 이상은 필요없단 게 내 판단이다.

레이무종이 더 있어봐야 아무런 메리트도 없고, 내 눈앞의 저 모녀가 내게 쓸모있을 거란 생각도 안든다.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지도 않는 것 같다. 그냥 과거 길가의 노숙 윳쿠리랑 별반 다를 바 없어보인다.

그럼 내가 할 행동은 단 하나.

저것들을 학대해서 고생길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끝에는 먹어서 배나 불리자.

더이상 망설일 필요 없다. 저것들이 게스든 아니든 알 바 아니고, 지금 저건 내 먹잇감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먼저 가볍게 인사해주자.

 

"여어, 느긋하게 있으라구!"

 

느긋하게 있으라구. 이 한마디에 모든 윳쿠리들은 자기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인사를 맞받아쳐준다.

설령 그걸로 무언가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참으로 웃긴 놈들이다.

 

"느늣? 느긋하게 있으라구!"

"느긋하게 있으라구!"

"느그따게 이쯔라규!"

 

세마리 동시에 인사하는 그 사이, 나는 어미로 보이는 제일 큰 레이무의 이마 비스무리한 데에

담배빵 하나 먹여주었다.

 

"느? 느갸아아아! 이마씨가 뜨거워어어어!"

"어, 엄마야?"

 

오오, 반응 좋은데? 뜨거움을 못참고 거친 돌판을 신나게 굴러다닌다.

보통의 아스팔트가 아닌, 군데군데 갈라진 길가다 보니 저부보단 얇은 표피에 상처가 나는것도 당연지사.

 

"느아아앙! 아파아! 어째서 볼씨가 아픈거야아!"

"엄마야! 느긋하게! 느긋하게 있으라구!"

 

큰 소리로 웃고 싶은 걸 겨우 참아냈다. 담배빵 맞은 이유를 모르는거라면 모를까

자기가 거친 아스팔트를 굴러다녀 생긴 상처를 왜 아프냐고 하는 꼬라지는 참으로 웃기다.

아프다고 설치는 어미랑 그런 어미를 달래는 아이 레이무는 잠시 두고, 제일 어려보이는 아기 레이무를 봤다.

 

"느느? 인간찌가 이따규?"

"그래 인간씨란다. 넌 누구니?"

"느느! 레이뮤는 레이뮤라규?"

"그렇구나, 레이뮤구나? 레이뮤는 느긋하니?"

"느느! 그러따구! 레이뮤는 뎡말로 느그따다구!"

"헤에? 어째서?"

"구거야 레이뮤가 쩰루 조아하는 엉마야랑 엉니야랑 가치 이쓰이까!"

"그렇구나아- 그럼 레이뮤는 엄마야랑 언니야의 사랑을 잔뜩 받겠네?"

"느느! 그러타구! 엉마야도 엉니야도 레이뮤를 뎡말로 사랑한댜구! 그야 레이뮤는 세께의 아이돌찌니까!"

 

아 이제보니 이녀석 와사종이다.

어째선지 모르지만 귀밑털이 복슬한 레이무종, 소위 와사종이라 불리는 녀석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십중팔구, 아니 99.9%는 게스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이녀석도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은근슬쩍 자길 추켜세우는 걸 보면 게스의 자질이 있다.

이걸 자극하지 않을 순 없지ㅋㅋㅋㅋ

 

"그럼 레이뮤는 엄마야랑 언니야가 맛있는것도 많-이 주겠네?"

"느느... 레이뮤는 풀씨바께 먹찌 모태따구... 엉마야는 이제 풀씨바께 업다구 해쪄..."

"저런~ 아무래도 레이뮤는 사실은 사랑받지 못하는 모양이네?"

"느늣!? 그게 무슌 소리냐규?"

 

난 손에 남아있던 응응덩어리를 그 와사종 아기에에 보여줬다.

 

"이것보렴? 이건 달콤달콤씨란다. 맛있는 냄새가 나지? 사랑받는 윳쿠리는 이런 걸 먹는단다?"

"느느! 댜콤댜콤! 댜콤한 냄새가 냔다구!"

"나는 사랑받는 인간씨라서 이런 걸 먹는데, 너는 사랑받지 않는 윳쿠리라서 풀만 먹는구나~"

"느...? 레이뮤, 샤랑바찌 못하는고야?"

"그래, 미움받는 거란다."

"느느? 레이뮤 미움밧는고야?"

"그래, 레이뮤는 미움받으니까 달콤달콤을 못먹는거야. 엄마야나 언니야는 분명 몰래 달콤달콤을 먹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어미와 아이 레이무 쪽을 보았다.

어미는 어찌어찌 진정하고 아이 레이무가 어미의 상처를 핥으면서 위로해주고 있다.

 

"엄마야, 괜찮아?

"느늣! 엄마야는 괜찮아! 왜냐하면 아가야가 엄마야를 위로해주니까!"

 

나는 손을 뻗어 아이 레이무의 리본을 떼어냈다.

 

"느? 레이무의 리본씨?"

"이, 인간씨 뭐하는거야! 그건 아가야의 리본씨라구!"

 

난 리본을 손안에 꽉 쥐에 숨기고, 와사종 아기 레이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뮤, 저기 리본이 없는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가 보이지?"

"느느? 졍마리네? 리본찌 업는 느그타지 모탄 유꾸리가 이따구? 껠껠껠껠껠~"

 

이 와사종, 웃는 소리가 애기라손 생각 안될 정도로 정말 깬다. 혀짧은 3류 악당의 웃음소리같다.

 

"저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를 제제하면 달콤달콤씨가 가득 나온다구?"

"느느? 졍말?"

"그럼! 정말이고 말고. 어차피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 살아갈 가치도 없잖아? 빨리 제제하고 달콤달콤을 먹어"

"느느! 느그타지 모탄 쮸레기는 쩨계의 아이도루인 레이뮤에게 쩨!쩨! 당해셔 당쟝 댜콤댜콤 내노라구!"

 

그렇게 와사종 아기 레이무는 자기 언니인 레이무를 일말의 자비없이 물어뜯었다.

윳쿠리는 머리장식이 없으면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나마 눈앞에서 장식이 없어지는 걸 보면 어느정도는 해당 윳쿠리인걸 인지하지만

지금 이 와사종은 내가 지 언니의 리본을 떼어낸 걸 보지 못했다.

 

"뭐, 뭐하는거야! 언니야를 먹으면 안되잖아!"

"느아아앙! 언니야를 먹으면 안돼!"

"우꺽우꺽, 캥뽀옥~!!"

 

어미의 눈에는 내게 리본을 빼앗긴 아이 윳쿠리를

아기 윳쿠리가 갑자기 덮쳐들어 먹어치우는 광경이 보일 것이다.

아이를 구해야 하지만,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우왕좌왕하는 어미의 꼴이 우습기만 하다.

그 와중에도 아기 레이무는 제 언니를 게걸스레 먹는 걸 멈추지 않는다.

입에서 슬슬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우꺽우꺽! 캥뽀오오옥!!!"

"그, 그만두지 못하겠니?"

 

어미 레이무가 아기 레이무를 쳐내 몸이 이미 반쯤 파인 아이 레이무에게서 떼어놓았다.

갑작스레 어미한테 맞은 아기 레이무는 어안이 벙벙한 듯하다.

난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이 게스끼에 눈뜨기 시작한 와사종에게 속삭였다.

 

"봐봐, 엄마야가 널 싫어하면 널 이렇게 때리겠어? 엄마야는 널 싫어하는거야."

 

와사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미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아기를 때린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듯하다.

몇초의 정적이 지나자 와사종 아기 레이무가 뭔가 결연(笑)한 표정을 짓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엉마야도 엉니야도 다 피료업쪄! 레이뮤는 세계의 아이돌찌니까 혼자셔도 샬아갈 쮸 이쪄!"

"느느!? 아가야? 그게 무슨 소리니?"

"쮸레기가튼 엉마야는 쮸그라구! 게슈는 이딴 멍지날리는 꼴통에서 쥬그라구!

레이뮤는 레이뮤만의 윳쿠리 프레이쭈를 차즈러 갈꺼라구!"

"아, 아가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아가야?"

"잘 뒈지라규, 쮸레기들!"

 

그 말을 끝으로 아기 와사종 레이무는 뒤를 돌아 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어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반쯤 파인 아이 레이무는 숨이 가늘어진게 목숨이 간당간당한 모양이다.

나는 이 아이 레이무를 집어들고 먼지를 털어냈다.

그제서야 어미가 나를 인지하고는 이렇게 빌었다.

 

"이, 인간씨! 부탁이 있다구! 제발 레이무의 아가야를 살려달라구! 레이무의 소중한 아가야라구!"

"흐~응?"

"인간씨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들었다구! 죽어가는 윳쿠리도 살릴 수 있다고 들었다구!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먼지를 털어낸 아이 윳쿠리를 입속에 넣어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벙벙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본 어미 윳쿠리는 생각이 정지한 듯 하다.

 

"...에?"

"너 말이야, 언제적 얘기를 하는거야?"

"어재서 아가야를 머거버린거야아아아아아!!!"

"분노로 혀까지 꼬였나..."

"어재서... 어재서...! 인간씨는 아가야를 구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인간씨는 윳쿠리를 살릴 수 있댔는데...!"

"..."

"어째서! 어째서 아가야를 그냥 먹어버린거야아아아아!!!"

"인간은 더이상 윳쿠리를 살릴 수 없으니까."

"......에? 그게 무슨..."

"주변을 둘러봐라. 뭐가 보이냐?"

"에? 그야 길씨하고, 돌씨하고, 풀씨하고..."

"그 길씨와 돌씨와 풀씨의 정체를 말해주지."

"정체라니...?"

"인간이 만들고 닦아낸 길씨와 인간의 집을 이루던 돌씨, 인간의 관리로 성장을 제어당해왔던 풀씨다."

"그게 무슨소리냐구?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구!"

"인간이 윳쿠리를 살릴 수 있었던 건 인간이 그만큼의 기술이란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술...?"

"그래. 너희가 사냥하고, 집을 찾거나 짓듯이 인간도 집을 짓고 먹을 걸 키워 식량을 비축했지.

죽어가는 윳쿠리를 살려주는 오렌지 주스도 그 기술 속에서 나온거다.

너희가 잃은 팥소와 소맥분 피부를 새로 채우고 붙일 수 있는 것도 그 기술 속에서 나온거다."

"전부 기술씨가 만든 거라는 거야?"

"그래.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인간은 그 기술의 대부분을 잃었지"

"잃었다니 무슨소리냐구?"

"나도 그 원인은 잘 모르지만, 그 날 이후로 많은 인간들이 죽고, 많은 집들이 무너지고, 많은 기술이 사라졌다.

너희를 살릴 오렌지주스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팥소와 소맥분도 존재하지 않아.

저 돌조각들은 모두 인간들의 집씨가 무너져 생긴 잔해들이다.

이 거칠고 뾰족한 길도 인간들이 망하면서 부서진 결과다.

즉, 인간은 여전히 윳쿠리를 손쉽게 죽일 만큼 힘이 있지만, 더이상 윳쿠리를 살릴 힘은 없다는 거다."

"그... 그럼..."

"그리고 그건 인간끼리도 마찬가지지. 너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보았지?"

"....전혀 못보았다구."

"그래, 그렇겠지. 여긴 인간들이 바글바글 모여사는 도시인데 말이야. 왜인지 알아?"

 

나는 잔해를 둘러보다 잔해 틈새에서 삐져나온 하얗고 둥근 물체를 집었다.

인간의 두개돌이었다.

 

"인간이 기술을 잃은 그 날, 인간의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이다."

"인간씨가... 죽었다구?"

"그래.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지. 그래서 넌 여기까지 기어오면서 본 인간이 나 하나밖에 없는거다."

"인간씨가... 잔뜩... 죽었다구...?"

"널 도울 인간씨도, 널 해칠 인간씨도 말이지."

 

어미 레이무는 내 얘길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만 그래도 뭔가 일이 심각하단 것만은 깨달은 것 같다.

 

"이제 너희나 우리나 살기 위해선 최대한 안 다치고 안 위험하게 지내는게 최고인거지."

"어째서?"

"인간도 윳쿠리도, 이젠 다치면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까."

 

어미의 눈이 어두워졌다. 이제서야 자신이 지옥 속에 떨어졌단 걸 인지한 걸지도 모르지.

 

"살기 위해선 먹어야지. 그리고 너희 윳쿠리는..."

 

난 잠깐 숨을 고른 뒤, 어미 레이무의 귀밑털을 잡아​ 무너진 건물 한편에 튀어나온 철근에 묶어버렸다.

 

"나에게 있어선 얼마없는 식량이란 말이지."

"느, 느아아..."

"하지만 말야, 인간은 스트레스란 게 쌓이고 그걸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거든?"

"느아아아...!"

"그리고 너희 윳쿠리는 고통받을수록 달콤해지고 말이지."

"느아아아아아!!! 하지마아아아!!!"

"지금 널 실컷 패서 스트레스도 풀고, 달콤해진 널 잡아먹어주마!!!"

"느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언가 물렁한 것이 얻어맞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10여분 뒤, 나는 곤죽이 되다 시피 한 어미 레이무를 두 손으로 들고 게걸스럽게 씹어먹으며 걷고 있다.

아까전의 그 와사종 새끼가 어찌됐을지 궁금해서였다.

10여분이란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작은 몸뚱아리론 얼마 못가는건지 금세 따라잡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금살금 미행했다. 이미 죽은 어미 레이무를 뜯어먹으며.

 

"느규탄 날~ 한가한 냘~ 레이뮤는 느그타게 윳꾸리 프레이쮸를 차즈꺼야~♪"

 

음정 박자 하나도 안맞는 노래를 신나게 흥얼거리며 이 오만하고 작은 생물은 잔해로 뒤덮인 틈새로 들어갔다.

 

"느느! 여기뉸 널꼬 아누카네? 여기를 레이뮤의 유꾸리 프레이쭈로 하꼬야!"

 

신나서 틈새 안에서 콩콩 뛰는 와사 레이무

그 뜀박질의 진동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잔해의 균형이 위태로웠던 건지

어린 와사종 레이무가 보금자리로 삼은 틈새의 잔해들이 바스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모른 채 내 덕분에 게스성격이 완전히 각성한 저 어린 와사종은

혀짧은 발음의 집선언을 끝내고 신나서는 이렇게 외쳤다.

 

"느그타게 이쯔라구!"

 

그 직후 잔해가 무너져 묵직한 콘크리트 돌덩이들이 와사종 아기 레이무를 덮쳤다.

찍소리조차 하지 못한 채 잔해에 깔려 죽어버린 것이다.

독립 선언을 한지 불과 10여분만의 일이다.

 

"...느긋하게 있어라."

 

난 그 자리에서 잔해에 묻힌 것의 어미였던 만쥬를 모두 먹어치우고

내가 데리고 다니는 비상식량들에게 먹일 잡초를 구하러 자리를 떠났다.

 

"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었구만."

 

세상이 멸망하고 나서, 처음으로 맛본 학대의 맛이었다.

  • profile
    심심한인간 2016.12.31 08:31
    저것들도 살아남는구나...
  • profile
    luxel 2016.12.31 08:31
    살아남는게 희안한 신체스펙인데도 살아남긴하는구나....
  • ?
    앙기무띠 2016.12.31 08:31
    오옹 신선하네요ㅋㅋ
    풀만 먹어도 살 수 있고 번식능력도 뛰어난 놈들이니 끈질긴건 바퀴벌레랑 동급이겠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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