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8.02.11 12:47

느구우 - 고마워, 마리사

조회 수 1598 추천 수 3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원작자 : kar89k (느구우)
원출처 : NAVER CAFE 숨은 은신처

 

고마워, 마리사.
느구우(kar8****)
2014.08.12 18:31
http://cafe.naver.com/yukurenai/1126


 “...경제, 사회적 책임 능력이 전무하다는 점, 자발적으로 구제를 하거나 구청에 구제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등 일반 국민들에게 사실상 해수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윳쿠리에게 인간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동시에 이는 통칭 ‘윳권’을 인정할 경우 발생할 경제적 손실과 행정력의 낭비를 예방하기 위한...”


 “드디어 끝이 났구만...”

 앵커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예전에 결정난 일을 아득바득 여기까지 끌고 온 것에 불과했던 일이다. 애초에 정부가 그 많은 구조금을 모두 지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직 돈 때문에 인권이 무시되는 일도 비일비재한 마당에 ‘윳권’쯤이야 짓밟든 무시하든 알게 무언가.

 “...”

 슬쩍 앨리스쪽을 돌아보았지만 앨리스는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뉴스를 본다고 그걸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둘이 사는데 뭐 이리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지...”


 모아두었던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옮겨 담는다. 실제로는 나 혼자서 만들어내는 음식물 쓰레기이다. 앨리스는 먹을 것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물론 그것은 내가 주의 깊게 먹이의 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애완 윳쿠리는 단순히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는 키울 수 없다. 맛있는 먹이를 배불리 먹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주인과 윳쿠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고 해서 인간정도의 이해력이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또한, 산책을 시키는 것은 의외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운동을 시키려면 실내에서 하는 것이 낫다. 이건 최근에 들어 깨달은 점이다.

 “느읏! 오빠야?! 어디 가는 건가요?”


 

 앨리스가 창문 밖을 바라보는 틈을 타 슬그머니 집을 나서려했으나, 마악 신발을 신으려 허리를 굽히는 찰나, 앨리스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 뿐이야.”

 “느읏! 앨리스도 간다구요!”

 앨리스 몰래 한숨을 내쉬느라 대답이 늦었던 나와는 달리, 앨리스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외친다.

 “그냥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는 거라니까.”

 “도시파적인 레이디는 매일 산책을 하는 거라구요! 얼른 가는거네요!”

 꽤나 깔끔을 떠는 성격이라 이제껏 키우는 내내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는 데 따라온 적은 없던 녀석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먼저 현관으로 뛰쳐나갈 기세로 나를 재촉한다.

 “후우...”


 다시 한숨이 나온다. 요즘 들어 앨리스는 틈만 나면 바깥에 나가려 한다. 집안에 있을 때는 창 밖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소위 말하는 ‘자유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이다. 야생윳의 실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끔찍하고 오래 걸리는 자살방법에 대한 동경’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지만, 앨리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해시키기는커녕 앨리스가 밖에 나가려 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들킬까 한숨도 몰래 쉬는 형편이다.

 “그 레이무들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가야들은 정말로 도시파적이라구요!”

 “하하...그럼, 그럼.”


 ‘그 레이무들’이란 얼마 전 공원에서 만났던 레이무 모녀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앨리스도 레이무도 그 레이무의 주인도 그저 아기 윳쿠리들이 귀여워 어쩔줄을 몰라하더라만은,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어이구, 난리 나겠구만...’하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자, 얼른 갔다오자. 쓰레기만 버리고 바로 돌아 올거다?”

 “느긋이 알았다구요!”

 저번 놈과는 달리 키운지 2년이 다 되도록 말썽 한 번 안 부려서 안심하고 있었건만,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나마 ‘앨리스도 아가야가 있었으면 한다구요!’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

 “느~느능~ 느능~ 정말로 도시파적인 야경이라구요!”

 “야경은 무슨...”

 그저 골목길일 뿐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이라야 모퉁이 한 번 돌면 되는 거리에 있지만, 잔뜩 흥분해서 사방팔방 두리번대고 뛰어다니는 앨리스를 앞세우고 걷다 보니 꽤나 시간이 걸린다. 나로서는 미소가 지어지는 동시에 한숨이 나오는 모습이다.

 “엇...”

 “늣!?”

 평소의 세 배정도 되는 시간을 걸어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에 도착한 순간, 나와 앨리스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느그으읏...! 밥씨이... 느긋이 나오는 거라제...! 아가야들이... 아가야들이...”

 마리사 한 마리가 음식물 쓰레기 더미에 얼굴을 묻은 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우리 쪽을 향해 있는 엉덩이가 씰룩 씰룩 움직인다. 거리 윳쿠리 치고는 그럭저럭 깨끗한 편이지만, 어쨌든 혐오감이 드는 것은 막을 순 없다.

 “오, 오빠야...! 마리사가 있다구요?”

 앨리스가 나를 올려다보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짜고짜 마리사에게 다가가지는 않아 다행이다. 금뱃지 윳쿠리에 걸맞는 처신이다.

 “음... 이거 참...”


 난처한 상황이다. 평소라면 마리사를 ‘처리’한 다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 끝날 일이다. 요즘은 애완 윳쿠리를 기른다고 하면 은근히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애완 윳쿠리의 주인들 중 거리 윳쿠리까지 옹호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더욱 적대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거리 윳쿠리는 애완 윳쿠리에게 잠재적인 위협이니까. 그러나 앨리스가 보는 앞에서 저 마리사를 처리할 수는 없다.

 “앨리스, 일단은..”

 “느으... 전부 비닐씨가 막고 있는 거라제... 어쩔 수 없다제... 뾰-족뾰-족씨를... 느... 느으읏!”

 일단 마리사가 사라질 때 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으나, 마침 뒤를 돌아본 마리사가 우리를 보고 말았다. 이건 좋지 않다. 내가 앨리스를 기른다는 것을 눈치채고 끈덕지게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이런 망할...”

 “느...느아아아...! 두기지 마다두제에...! 마디자에게늣 레이무아 아가야가 이쓰미다제에에!!”

 마리사는 주저없이 얼굴을 땅에 처박으며 목숨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살이를 대충은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여차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던져버린 다음 앨리스를 안고 도망가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거리 윳쿠리를 피해 도망간다는 치욕스러운 일은 면한 듯하다.

 “마디자능 뾰-족뾰-족씨도 쓰지아나떤거라제에에! 호씨 잉간씨의 구역을 더러펴따면 마디자가 치우게씀미다제에!! 그더니까... 그더니까아아...!”

 “...글쎄, 그거야 어떨지.”


 인간과 자신의 격차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찢어대는 걸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거기에다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존댓말을 쓰고 있다.

 “사뎌주제에에...! 부타김미다제에...!”

 “느읏! 오빠야는 정말로 느긋한 사람이라구요! 마리사를 죽이거나 하지 않는다구요!”
 “느...느아아...”

결국 앨리스가 뿅뿅 뛰어가 마리사에게 말을 걸고야 말았지만, 마리사는 부들부들 떨며 나를 올려다 보기만 한다. 정말로 영리한 녀석이다. 거리 윳쿠리 중에서는 거의 다이아급이라고 봐도 될 듯 하다. ‘영리한데다가 처새끼가 딸린 마리사‘. 그것을 본 순간 어떤 계획이 떠올랐다.

“...마리사.”

“네, 네에에!!”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데, 들어 줄 수 있을까?”

“느읏?”

-----------------------------------------------------------------------------

 “느늣... 이쪽이라제...”

 “느읏! 기대되는거라구요! 앨리스는 다른 윳쿠리의 집에 가보는게 처음이라구요!”

 “조, 조금만 조용히 하는 거라제... 인간씨들이 듣는다제...!”

 우리는 마리사를 따라 마리사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아직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마리사와는 대조적으로, 앨리스는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있다.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나 역시, 솔직히 말해 기대가 된다.


 “여기라제... 레이무... 레이무...? 느긋이 돌아왔다제...”

 “마리사...?”

 마리사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쓰레기 버리는 곳 거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공터였다. 사람 한 두명이서는 도저히 치우지 못할 건축자재나 대형쓰레기들이 방치 되어있는 곳이다. 마리사는 공터 구석의 벽에 기대져 있는 합판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자 이윽고 희마하게 레이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실례합니다.”

 “느... 느아아아아!! 어째서 인간씨가아아!?”
 “쉿! 쉬잇! 레이무! 안심하라제! 이 인간씨는 괜찮다제!”

 “오빠야! 도시파적이지 못하다구요!”

 “뭐어, 그렇지만... 너도 궁금하잖아? 한 번 들어가 봐.”

 “도시파적인 레이디는 초대받기 전에는 들어가지 않는 거라구요!”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앨리스.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마리사의 집을 곁눈질하는 것이 귀엽다. 도시파적이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호기심을 만족시키기로 했다. 허리를 숙여 합판 아래를 들여다 본다. 상당히 깊숙한 곳에 골판지 상자가 놓여져 있다. 집안에는 레이무가 있다. 레이무는 누더기더미를 깔고 엎드린채 내 쪽으로 불안한 눈빛을 보내온다. 저 누더기 더미는 소위 말하는 ‘침대’라는 건가? 그런 것 치곤 영 자세가 불편해 보이는데...

 “느읏... 아가야들은 아직도 울고 있는 거냐제...?”

 “그렇다구... 계속 우-걱우-걱씨를 하지 못한거라구...?”

 아가야들은 보이지 않는데...? 그때 레이무가 누더기더미에서 몸을 일으킨다. 누더기더미를 치우자, 그 밑에는 컵라면 용기가 하나 엎어져 있다. 레이무가 조심스레 컵라면 용기를 치우자, 그 밑에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끼 윳쿠리들이 있었다.

 “뉴애애애앵~!! 뱨쒸 꾜-륙꾜-류캰댜규우...!!”

 “뉴히...뉴...뉴...”

 주먹보다 조금 작은 아기 윳쿠리가 두 마리, 성체의 반 정도 크기의 꼬마 윳쿠리가 한 마리. 딱 봐도 시들시들한 녀석들이지만 울음소리는 의외로 크다. 방금 누더기더미로 새끼 윳쿠리들을 덮어놓은 것은 울음소리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컵라면 용기는 레이무의 체중에 새끼 윳쿠리들이 뭉개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리라.

 “아, 아가야들...! 뚝! 뚜욱!이라제! 아빠야가 밥씨를 가져온거라제! 인간씨! 얼른 밥씨를 달라제! 아가야들이 울고 있는 거라제?”

 “그건 보면 안다고. 그보다도 앨리스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라고.”

 “느... 느읏... 알았다제. 앨리스! 여기가 마리사와 레이무의 집이라제? 느긋이 들어오라제!”


 사실 집 구경이야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굳이 약 올리듯이 말을 하고 만 것은 ‘자신이 밥씨를 가져왔다’는 마리사의 말에 살짝 빈정이 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앨리스를 조금 놀려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느? 느, 느읏, 괘, 괜찮...다구요? 구경은 밖에서도 할 수 있다구요? 앨리스까지 들어가면 너무 복잡할거라구요!”


 마리사가 초대를 했음에도, 앨리스는 집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집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상은 습기를 먹어 썩어가는 골판지 상자에 불과하다. 이런 저런 잡동사니가 가구마냥 놓여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근처에서 주워온 쓰레기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새끼 윳쿠리들도 있지만, 예전에 공원에서 봤던 것들과는 다르다. 공원에서 만났던 새끼 윳쿠리들이야 찹쌀떡 마냥 뽀얗고 방긋방긋 웃고 있었지만, 지금 골판지 상자 안에 있는 새끼 윳쿠리들은 꼬질꼬질 때가 낀 채로 설탕물을 흘려대며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흐음... 뭐 그렇다면야. 자, 약속했던 밥씨다.”


 

 맨 처음,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집을 보게 해달라는 나의 말에, 마리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가족까지 싹 없애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리사의 집 구경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앨리스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열심히 말해준 덕도 있겠지만, 그 대가로 내가 버리려 했던 음식물 쓰레기를 주겠다는 제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리사의 입안에 가득 채워봤자 이 쓰레기 봉투의 절반도 채우기 힘들다. 거기다가 이 안에 들어있는 그저께 먹고 남은 피자 두 조각은 거리 윳쿠리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으리라.

 “아가야들! 밥씨... 밥씨라제! 우-걱우-걱이라제?!”

 “뱝쒸이...? 뱝쒸이...!”

 “레이무도 얼른 먹는 거라제! 오늘은 밥씨가 잔뜩인 거라제!”

 “느긋이 알았다구! 마리사도 느긋이 먹으라구!”

 친절하게 묶어놓았던 봉투 입구까지 풀어 마리사의 집 앞에 내려놓자, 굶주리고 있던 일가족이 즉시 달려든다. 밥씨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앨리스는 마리사 일가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새하얗게 질린다. 애완 윳쿠리인 앨리스에게 있어 음식물 쓰레기는 응응이나 마찬가지인데... 눈 앞에서 그것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느아...아...! 느아...? 대체 무슨 일을...!”

 “앨리스, 잠깐.”

 “느으으! 오빠야...! 저건... 저건...”


 마리사 일가를 말리려드는 앨리스를 제지한 다음,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거리 윳쿠리들에게는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저렇게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었지만, 앨리스는 믿기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정말이야, 앨리스. 생각해봐. 만약...”

 “우-걱, 우-ㄱ... 컈,컈,캥뽀-옥!!”

 “느히이익...!!!”

 앨리스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는 순간, 꼬마 레이무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소리높여 행복~!을 외친다. 피자라도 핥은 모양이다. 기쁨시시까지 실실 흘려대는 모습을 본 앨리스의 표정은 혐오나 충격을 넘어 공포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실로 완벽한 타이밍의 행복~!이었다. 저런 모습을 본 이상, 앨리스도 마리사 일가가 ‘진심으로 맛있게’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봐, 마리사.”

 “느읏? 인간씨, 뭐냐제?”


 가족의 식사를 그저 바라보고 있던 마리사에게 말을 걸었다. 가장다운 모습이다. 입에 서 넘쳐 흐르고 있는 침만 빼면. 어쩐지 아까보다 말이 짧아진 것 같지만 나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이라 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집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느! 느긋이 구경하라제!”

 “그래, 그럼...”

 “느! 느긋이 기다리라제! 그러면...”

 “괜찮아. 가기 전에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까.”

 당황하는 마리사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장 바깥쪽에 있던 합판을 들어 옆으로 치운다. 그러자 골판지 상자가 드러났다. 집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것은 사실 핑계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어쨌든 집안을 들여다보기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 쪼그리고 앉기만 해도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흠, 대단한걸.”

 “느으...”

 별 다른 대답은 없었지만, 마리사가 꽤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거리 윳쿠리치고는 대단하다고 말할 만한 것이었다. 거리 윳쿠리의 집이라 해봐야 풀과 신문지 뭉치에 가까운 ‘자칭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집에는 이런 저런 잡동사니들이 많이 놓여 있다.

 “저건... 밥그릇인가 보네?”

 “느읏! 그렇다제! 아가야들의 밥그릇씨라제! 원래는 밥그릇씨로 느긋이 우-걱우-걱하는 거라제! 그치만 오늘은...”

 그 밥그릇이란 페트병 뚜껑들이다. 그 옆에 놓인 건... 에프킬라 뚜껑같은데?

 “저건 뭐지?”

 “욕조라제! 큰 아가야는 이제 무리지만, 작은 아가야들은 아직 괜찮다제!”

 “흠. 저건 침대로군.”

 “맞다제. 정말로 푹-신푹-신인 거라제?”


 침대도 되는대로 풀잎을 쌓아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상자를 틀로 삼아 그 안에 풀잎을 채운 다음 손수건을 위에 깔아 만든 것이다.

 “손난로도 있네?”
 “느늣! 그렇다제! 지금은 따-끈따-끈씨가 아니지만, 겨울씨가 오면 다시 따-끈따-끈씨가 될 거라제! 어차피 지금은 겨울씨가 아니니까 상관없다제!”

 “저건...”


 내가 가리킨 것은 땅에 반쯤 파묻힌 안경집이었다. 나로서는 도통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냉장고씨라제! 저기 밥씨를 넣어두면 오래 동안 먹을 수 있는거라제!”

 “어... 그래.”

 뚜껑을 닫아 두면 습기를 조금이라도 막아 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냉장고씨는 엄청 크고... 서 있는 거라구요...?”


 

 묵묵히 마리사의 설명을 듣던 앨리스가 우물거린다. 조그맣게 말한 것은 혹시나 마리사의 기분이 상할까 걱정해서일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칭찬으로 사탕이라도 하나 줘야겠다.

 “뉴우웅!! 뱨쒸갸 갸-듁뺭뺭!이랴뀨! 뉴뉴~웅!”

 “뉴웃! 정먈료 느그탼 뱝씨여땨규!”

 “느늣! 마리사! 모두들 잔뜩 우-걱우-걱했는데도 밥씨가 남았다구! 마리사는 정말 대단하네!”


 어느새 식사를 마친 레이무와 새끼 윳쿠리들이 집으로 향해왔다. 앨리스는 레이무들을 피하려는 듯이 슬슬 뒷걸음치지만, 새끼 윳쿠리들의 눈에 띄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뉴웃! 쳐음보뉸 유꾸리갸 이땨구! 먀리쨔뉸 먀리쨔랴졔! 뉴꾸찌 이쓔랴규!”

 “뉴뀨찌 이쮸랴규!”

 “느그치 있으랴규!”

 “느긋이 있으라구!”


 세 마리의 윳쿠리가 일제히 인사를 하자, 앨리스 역시 윳쿠리의 본능에 따라 인사를 하고 만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이것만은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한다.

 “뉴우... 갱장히 이쁀 유꾸리랴쪠...?”

 “먼가 갱장히 조은 냄섀가 냔댜규!”

 “뉴늉! 레-뮤 뷰-삐뷰-삐햐럐애!”

 새끼 윳쿠리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며 앨리스를 향해 꼬물꼬물 기어오기 시작한다. 이대로 뒀다가는 앨리스에게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주면 안될까?”

 “뉴!?”

 “뉴우...?”

 멈칫했던 새끼 윳쿠리들이 내 목소리가 난 곳을 향해 시선을 올린다. 고개를(그런게 있다면 말이지만) 거의 뒤로 넘어갈 정도까지 젖힌 후에야, 새끼 윳쿠리들은 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인갼쒸...? 뉴아...”

 “잉갼쮜?!”

 “졔엣!?”

 장녀 레이무의 얼굴이 흐려진다. 그러나 나머지 아기 두 마리는 되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시선을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이며 나를 살핀다. 장녀 레이무는 인간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아기 윳쿠리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뉴웃! 잉갼쮜! 먀리쨔뉸 먀리쨔랴쪠! 뉴뀨찌 이쓔랴뀨!”

 “례-뮤뉸 레-뮤랴뀨! 뉴뀨찌 이쮸랴뀨!”

 “느...느그치 이쓔라규!”

 “그래... 느긋이 있으라구.”

 그다지 내키진 않았지만 앨리스에 대한 관심을 돌려놓기 위해 적당히 인사에 대답해 주었더니 이제는 나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한다. 마리사를 향해 눈짓을 보내보았지만, 마리사는 해맑은 미소로 답해올 뿐이다. 집을 칭찬해 주었더니 나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모양이다. 맨발에 슬리퍼라 이것들에 닿고 싶진 않은데...

 “느느읏! 아가야들! 배씨 가-득빵빵!했으니까 이제 응응체조!의 시간이라구! 자! 아가야들! 얼른 이쪽으로 오라구! 안 그러면 엄마 혼자 해버린다구?”

 “뉴우웃! 기댜뎌어! 레-뮤 웅웅체쬬 햐꺼야!”

 “먀리쨔! 먀리쨔갸 면져 햐껴야!!”

 ...생각지도 못한 도움이다. 레이무와 새끼 윳쿠리들이 이리저리 뛰고 구르기 시작한다. 어느새 마리사도 다가와 같이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거리 윳쿠리를 싫어하는 나에게 조차 그것은 화목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느긋한 모습이라구요...”

 “...아차...”

 “느?”


 하물며 앨리스에게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앨리스 역시 미소를 띈 채 그 모습을 지켜본다. 방금 전까지 억지로 지었던 어색한 미소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이건... 좋지 않다. 거리 윳쿠리의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래서야 말짱 헛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뉴...뉴... 냐온댜규...! 웅웅쮜 쟌뜍 냐온댜뀨...! 샤...샤...샹캐애애!!”

 “뉴웅~! 오늘도 건강한 응응씨네!”

 “먀리쨔... 먀리쨔됴 햐꺼랴뀨...! 뉴...뀽... 뉴...뀽...!”


 ...라고 생각했으나, 타이밍 좋게 레이무가 응응을 잔뜩 짜내기 시작한다. 저것이 그저 팥소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도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니, 앨리스에게는 더 심할 것이다.

 "느응~! 아가야! 느긋이 깨-끗깨-끗하자구! 낼-름, 낼-름!"

 "뉴꺄아~♡"

 “느...아...?”

 응응까지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앨리스도 레이무가 그 응응을 핥기 시작하는 것 까지는 넘어가지 못했다. 앨리스가 설명을 요구하듯이 나를 올려다 본다.

 “저게 왜? 아가야들 스스로 응응을 처리할 순 없잖아?”

 “그, 그치만 그 레이무들은...”

 “걔네가 응응한 건 본 적 없잖아. 걔네도 응응하면 레이무가 저렇게 한다구.”

 “느에...”

 어쩌면 그 레이무의 경우 주인이 대신 해줄지도 모른다. 애초에 번식을 허락할 정도로 무지한 주인이었으니까. 그러나 정말 그랬다가는 어느새 애완동물이 아니라 상전노릇을 하려들 것이다. 내 알바야 아니지만.


 “뉴늇! 레-뮤 바써? 레-뮤 밨나뀨?”

 “엉?”

 “뉴뉴웃! 레-뮤 웅웅쮜 쟌뜌캐땨규! 대댜냐지? 대댜냐찌!”


 어느샌가 이쪽으로 기어온 아기 레이무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응응자랑을 시작한다. 앨리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배변 훈련은 애완 윳쿠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응응과 시시를 조용히, 자기 스스로 처리하는 법을 아기 윳쿠리일 때부터 배워온 앨리스다. 그 앞에서 응응 자랑이라니...

 “뉴우! 갱쟝히 죠은 냼섀쒸랴꾸! 뷰-삐뷰-삐햔댜뀨!”

 “먀리쨔됴 햣래! 먀리쨔됴 뷰비뷰비햔댜쪠!”
 “레, 레이뮤됴 햐고시따규...!”


 이번에야 말로 부비부비를 하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기어온다. 몸이 가벼워져서 그런지 속도도 빨라진 것 같다. 그건 곤란하다. 나는 자세를 낮추어 얼굴을 아기 윳쿠리들 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다시 한 번 말했다.

 “이쪽으로 오지 말았으면 하는데. 앨리스가 곤란해 하잖아.”

 “뉴!?”

 “뉴웃! 머냐뀨! 먀리쨔률 뱡햬햐찌 먈랴쪠!”

 “아, 아가야들! 응응씨를 했으니 이제 새-근새-근타임!이라제? 배씨가 가-득빵빵!이니까 정말로 느긋하게 쿨-쿨-할 수 있을 거라제!”

 마리사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이번에는 내 기색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마리사가 새끼 윳쿠리들을 달래어 멈추어 보려 했으나...

 “먀리쨔률 뱡해햐찌 먈랴교 햔거랴쪠!? 쀼뀻!”

 “느아...!!!!”

 간발의 차로 아기 마리사가 내게 뿌꾹!을 날리고 말았다. 아비의 영리함이나 신중함은 죄다 응응으로 싸내지른 모양이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건 없었을지도 모르고.

 “대체...! 정말로 촌것이네요!!”

 앨리스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인간에게는 리븐이 데캡을 가는 것만치도 영향이 없지만, 윳쿠리에게 있어 뿌꾹!은 상당한 수준의 모욕(혹은 위협)이다.

 “아...아... 아가야...! 인간씨에게 뿌꾹을 하면 안 되는 거라제에에!!?”

 “뉴삣?!”

 “뉴애애애앵! 레-뮤 뷰-삐뷰-삐햐꾜 시땨규우우!!”

 새파랗게 질려 고함을 치는 마리사. 아기 레이무는 벌렁 드러누운채 시시를 흘리며 울부짖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앨리스는 차가운 눈초리로 아기 마리사를 노려보고 있다.

 “아가야! 느긋이 울지 말라구! 느긋이!”

 “느으! 이, 인간씨! 아가야는 아직 아가야라서 그런거라제! 인간씨는 느긋한 인간씨니까 느긋이 이해하라제! 느, 느읏! 그, 그렇다제! 이, 인간씨! 마리사의 보물씨을 보여주겠다제! 아가야! 아가야의 보물씨도 인간씨에게 보여주는게 어떻냐제?”

 “느...느끄치 아라따구!”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꼬마 레이무와 마리사는 집 뒤쪽으로 사라졌다. ‘보물씨’로 내 주의를 돌려보겠다는 걸까. 당초의 목적도 달성했으니 슬슬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 마리사의 보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지가 약간 궁금하긴 하다.

 “느...! 마리사의 보물 1호! 엄청나게 큰 비닐씨라제!”

 “...”

 마리사가 가지고 나온 것은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였다. 과연... 윳쿠리 입장에서는 멀쩡한 비닐이 상당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작 이슬비라도 윳쿠리에게는 방사능 낙진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그리고... 쭈-욱쭈-욱씨라제!”

 그리고 고무줄이 다섯 개. 어디다 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나저나 윳쿠리 혼자서는 고무줄을 늘릴 수도 없지 않나?

 “이건 정말로 대단한거라제! 뾰-족폭-신씨!인 거라제!”

 “오... 이건 정말... 별일이군”

 이번에는 면봉 한 묶음. 이건 꽤나 쓸모있을 듯도 하다. 아니 그보다는 어디서 이걸 주웠는지가 궁금하다. 보통 면봉을 버리는 일은 없으니까. 마리사가 내 눈치를 살핀다. 별달리 해 줄 말은 없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나나 앨리스 입장에서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뉴끄...찌! 뉴끄...찌!”

 그리고 마지막으로, 꼬마 레이무가 열심히 굴려온 자신의 ‘보물씨’는 다 쓴 스카치 테이프 심이었다. 은은한 우윳빛이랄까... 여튼 윳쿠리의 눈에는 예뻐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실로 맥빠지는 결말이었다. 

 "어... 뭐어... 잘 봤어, 마리사."

 슬슬 돌아갈 시간이니, 마무리를 하기로 하자.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치기 시작했다.

 “하아... 오빠야... 느긋이 돌아가는거네요.”

 “어... 어, 그래.”

 한숨을 푹 내쉰 후, (처음으로 들어보는 앨리스의 한숨이었다) 앨리스는 작별인사도 없이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급히 쓰던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다음, 나는 마리사를 내려다 보았다.

 “으음... 뭐랄까... 마리사.”

 “느읏?”

 얼른 작별인사를 해 버려야 할 것이다. 먼저 가버린 앨리스를 따라잡아야 되기도 하거니와, 혹여라도 마리사가 합판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달라고 하면 난감하다. 하지만,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마리사의 모습을 보니,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고마웠다, 마리사.”

 “느읏! 마리사도, 인간씨한테는 고마워하고 있는거라제!”

 일단, 숨김없는 진심을 말한다. 어찌됐든, 마리사가 큰 도움이된 것은 사실이다. 앨리스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막연히 바깥생활이나 아가야들을 원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잘 가라.”

 “느읏? 인간씨도 느긋이 잘 가라제!”
 어째서 떠나가는 내가 ‘잘 가라’고 말하는 것인가. 마리사는 잠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씩씩하게 작별인사를 해왔다. 아무리 똑똑한 윳쿠리라도 그 의미를 읽어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앨리스를 쫓았다.

-----------------------------------------------------------------------------

 “굉장하던데, 그 마리사의 집.”

 “느? 그다지...”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


 “거리 윳쿠리 중에서는 저 정도면 정말 대단한 거야.”

 “...”

 앨리스는 대답이 없다. 이걸로 바깥 생활이나 아가야 같은 것들은 싹 잊어버렸으면 좋겠지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앨리스의 얼굴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나대로 괜한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찝찝한 느낌을 떨쳐버리듯이, 나는 문자를 연달아 보냈다.

 “어라, N?”

 “어, 형! 안녕하세요! 앨리스도 느긋이 있으라구!”

 “느긋이 있으라구!”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와 방금 전까지 문자를 주고받던 사람이다. 그러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N이라는 남자는 내 문자를 보고 여기를 지나가고 있던 것일 테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 거기를 가보려고?”

 “문자를 보니 아무래도 호기심이 생겨서 말이죠.”

 N이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 눈은 그의 말처럼 호기심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시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곤란하겠네요.”


 눈짓으로 앨리스를 가리키며, N은 그렇게 말했다. N과 눈이 마주친 앨리스는 움찔 하더니 내 쪽으로 몸을 붙여 온다.

 “뭐어... 그렇지. 집에 들어가서 문자로 더 해 줄게.”

 “감사합니다. 그럼...”

 “그래, 그래.”

 “앨리스, 만나서 반가웠다구!”

 “...”

 N의 작별인사에 대답하는 대신, 앨리스는 더욱 더 내 다리 뒤에 몸을 숨긴 채 움츠러든다. N은 그런 앨리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잰 걸음으로 우리 앞을 지나쳐갔다.

-----------------------------------------------------------------------------


 “앨리스, 왜 N한테는 인사를 안 하는거야?”

 “느으?”

 집에 돌아와 앨리스를 목욕 시킨 다음, 나는 문득 생각난 것을 앨리스에게 물어보았다.

 “느으... 그치만... 그 인간씨는...”

 우물거리는 앨리스.

 “그 인간씨는 어쩐지... 느긋할 수 없다구요.”

 “흠... 그래?”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은 아니었다. N은 원래 전공도 팽개쳐두고 윳쿠리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도 이 밤중에 집을 나설 정도로 열심히. 그 연구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윳쿠리 구제나 마찬가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N의 몸에는 알게 모르게 윳쿠리들의 시취(尸臭)가 배이게 되었을 것이고, 앨리스는 아마 그것에 반응한 것이리라.

 “함부로 다른 사람을 느긋하지 못하다고 하면 안돼, 앨리스.”


 윳쿠리에게 있어 ‘느긋하지 못하다’는 말은 꽤나 강도 높은 비난이다. 인간이 듣기에 별 것 아니라고 해서 인간을 '느긋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을 방치해 두면 인간을 깔보게 될 수 도 있다.


“느읏... 죄송해요.”

앨리스가 더욱 움츠러든다. 혼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뭐... 다음에는 앨리스가 먼저 인사하는 거다?”
 “느긋이 알았다구요...”

 “그래 그래, 착하다, 착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앨리스가 살며시 웃는다. 평소라면 좀 더 어라광을 부렸을텐데... 역시 풀이 죽은 모양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힘이 나게 해 주고 싶다. 나는 준비해 두었던 윳쿠리 사탕을 꺼내 보였다.


 “느으?! 달콤달콤씨라구요?”


 사탕을 본 앨리스가 눈을 빛낸다. 눈은 열망으로 반짝이고 있지만, 사탕을 향해 달려들거나 하지 않고 얌전히 앉은 채 내 말을 기다린다. 예절 교육을 다소 과할 정도로 시킨 덕분이다. 윳쿠리용 사탕이라고는 하지만, 흔히 애완 윳쿠리 숍에서 파는 머리 아플 정도로 단 것이 아닌, 윳쿠리 트레이너들이 쓰는 훈련용 사탕이다. 이 훈련용 사탕은 꿀물 정도의 단 맛 밖에는 없지만, 달지 않은 사료를 먹는 앨리스에게는 충분하다.

 “아까 마리사의 집에 갔을 때, 마리사의 집을 보고도 비웃지 않았었지? 정말로 느긋하고 예의바른 행동이었어, 앨리스. 상으로 사탕을 줄게.”

 “느응! 레이디로서 당연한 일이었다구요!”

 “그리고...”


 앨리스의 앞에 사탕을 놓는다. 하지만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내 말을 기다린다. 몸을 움찔움찔 거리는 걸 보니 사탕을 보지 않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까지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안간힘을 써가며 내 말을 지키려 한다는 점이 기특할 뿐이다.


 “그리고, 아까 아기 마리사가 나한테 뿌꾹을 했을 때, 앨리스가 화를 내줘서 정말로 기뻤어. 그러니까 이건 감사의 표시야.”

 “느늣! 앨리스의 상냥한 오빠야한테 뿌꾹!하다니 말도 안되는 게스였다구요!”

 나는 사탕을 하나 더, 앨리스의 앞에 놓았다. 앨리스의 눈은 이제 거의 불타고 있다. 사탕 두 개를 한 번에 준 것은 처음이라 그런 듯 하다. 앨리스는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하지만 아직은 먹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하지만...”

 “느응!?”


 충분히 뜸을 들인 다음, 사탕 한 개를 다시 가져간다.


 “방금 전 N에 대해서 나쁜 말을 했으니까. 벌로 사탕 하나는 못 먹게 할 거니까. 느긋이 이해했어?”

 “느응... 느으응... 느긋이 알았다구요...!”

 “좋아. 그럼 이제 먹어도 돼, 앨리스.”

 “느늣! 느긋이 고맙다구요, 오빠야! 느긋이 잘먹겠습니다!”

 감사 인사까지 확실히 외친 후, 앨리스는 고개를 숙여 사탕을 입에 넣는다. 앨리스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나와 앨리스가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에는 N의 역할이 컸다. 상벌은 확실하게. 상을 주더라도 예의 범절은 언제나 엄격하게. 사료는 단 맛이 없는 것을 먹이고, 상으로는 훈련용 사탕을 쓴다. 사소한 일이지만, 먹을 것을 줄 때에도 손으로 직접 건네지 않고 반드시 바닥이나 접시 위에 놓아 준다.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 준 것이 N이다. 애완 윳쿠리 샵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N은... 지금쯤 그 마리사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테지. 마리사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겠지만, 딱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지능이 높다한들 거리 윳쿠리이다. 혹여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그때 그 쓰레기 장에 앨리스만 있었다면, 그 마리사는 오히려 ‘지능이 높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앨리스를 죽였을 것이 틀림없다.

 “낼-름낼-름!”


 내가 아무리 머리를 쓰다듬어 줘도, 저렇게 까지 행복한 표정을 짓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씁쓸하지만, 나라고 해서 여자친구가 안아준다고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니까.


 “행보-옥!”

 ...어이쿠, 행복시시가 흘러 나왔다. 너무 오랜만에 줘서 그런건가? 이 씁쓸함은 이걸로 앨리스를 놀리는 걸로 풀도록 하자. 근 며칠간 앨리스 때문에 고민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해야 수지가 맞을 것 같다.


-----------------------------------------------------------------------------

작가 후기 : 


뭔가 맘에 안들어서 다시 씁니다. 뒷부분도 따로 다시 써서 올릴 생각입니다. 

  • profile
    류민혜 2018.02.11 12:48
    이거 개정판(?)이 있었을텐데... 백업이 안 되었던가, 느구우님 본인이 삭제하신 것 같습니다.
  • ?
    느왁스 2018.02.11 14:03
    찾아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 ?
    saelosc 2018.02.11 17:07
    장문의 학대글은 언제나 감사
  • ?
    얏얏 2018.03.28 16:12
    느긋한 글씨였다구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공지 ~~은신처 창작글 통합 텍본~~ 3 file 류민혜 2015.10.18 1109 1
공지 공지 ~~구윳사 창작글 통합 텍본~~ file 류민혜 2015.10.05 1066 0
공지 공지 창작 유물 게시판 이용안내 3 류민혜 2015.09.05 881 0
512 학대 발칸 - 평화로운 윳쿠리 마을 file XzLie 2022.10.12 1194 2
» 학대 느구우 - 고마워, 마리사 4 류민혜 2018.02.11 1598 3
510 학대 불끈매 - 강변의 윳쿠리 8 류민혜 2016.08.11 1824 6
509 학대 불끈매 - 윳쿠리와 먹기 대회 6 류민혜 2016.08.11 1128 4
508 학대 불끈매 - 뻥튀기 3 류민혜 2016.08.09 747 3
507 학대 불끈매 - 물레방아 1 류민혜 2016.08.09 662 2
506 학대 불끈매 - 느긋하게 노동하라구 2 류민혜 2016.07.31 1010 4
505 일반 불끈매 - 도시파가 되고 싶었던 앨리스 2 류민혜 2016.07.31 865 4
504 학대 불끈매 - 윳쿠리 빙수 류민혜 2016.07.29 774 6
503 학대 불끈매 - 도시파가 될 수 없었던 앨리스 4 류민혜 2016.07.29 929 5
502 학대 불끈매 - 느긋하게 영락하라구! 6-10 완 5 류민혜 2016.07.25 1030 4
501 학대 불끈매 - 느긋하게 영락하라구! 1-5 2 류민혜 2016.07.24 1368 3
500 학대 불끈매 - 필요없는 아기의 활용법 류민혜 2016.07.24 1183 6
499 일반 불끈매 - 게스게스단의 비밀 2 류민혜 2016.07.24 661 4
498 일반 불끈매 - 윳쿠리 캠프 2 류민혜 2016.07.24 834 5
497 일반 불끈매 - 윳쿠리 하트 류민혜 2016.07.24 693 3
496 학대 불끈매 - 아기와 윳쿠리 3 류민혜 2016.06.03 994 2
495 일반 불끈매 - 윳쿠리의 복수 4 류민혜 2016.06.03 816 4
494 일반 불끈매 - 윳쿠리의 꿈 2 류민혜 2016.06.03 724 3
493 학대 불끈매 - 과연 느긋해질 수 있을까? 3 류민혜 2016.06.02 875 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6 Next
/ 26

도레미는 사랑입니다
비로그인
비로그인
느긋함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