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밥씨가 없는고야아아아아아아아!!!!”
레이무가 이런 비명을 지른 것은 마리챠가 응응노예로 추락한지 한달 정도 지난 뒤였다.
레이무는 자신의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았었던, 윳쿠리 푸드가 천장까지 쌓여있었던 식량창고가 바닥을 훤히 보이고 있다니!
아무리 봐도 가족이 한두끼 먹을 정도의 분량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레이무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옆의 식량창고로 뛴다.
여기는 아까의 창고처럼 바닥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거의 바닥에 가깝다.
세번째 창고도 마찬가지로 여분이 많지 않다.
“어, 어떻게 된거야?! 왜 밥씨가 없어진거냐구.”
비명을 듣고 달려온 마리사도 상황판단이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명백하다.
남은 식량은 고작 몇일 분량이 전부라는 것.
아직 봄이 오기는 커녕, 바깥은 온통 눈에 덮여있는 시기인데,
아가야들도 어느새 아이 윳쿠리라고 부를만한 크기가 되어 더 먹성이 좋아졌는데.
사실 식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고갈된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그 아가야들.
아가야들은 비록 아주 작지만 폭풍성장을 하기 위해 몸 크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음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 아가야들이 처음에는 넷, 중간부터는 셋이었으니 그들의 식사량을 다 합치면 결코 성체 윳쿠리 하나의 식사량에 떨어지지 않는다.
성체 윳쿠리 둘이 세달동안 먹을 식량을 성체 윳쿠리 셋이 먹었으니 지금 상황은 산술적으로 당연한 결과.
실제론 성체 윳쿠리 둘이 세달동안 먹고 조금 여유가 있는 양이었지만, 그 정도는 레이무가 임신했다고 팍 늘린 식사량을 출산후에도 줄이지 않은 것으로 까먹은지 오래다.
그런데 어째서 레이무와 마리사는 식량이 바닥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 많던 식량이 두달에 걸쳐 줄어드는 것을 아무리 윳쿠리가 팥소뇌라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리라.
그러나 몇개의 요소가 시너지를 일으켜 이런 결과를 나은 것이다.
일단 이 집은 어둡다.
외풍을 막기 위해 외부와 차단된 이 집에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는 입구의 반투명 아크릴판 뿐이다.
그나마 방이라면 밖이 환할때는 사물이 보일 정도는 되지만,
방의 안쪽, 빛이 들어오는 입구에서 반대편이 되는 식량창고는 매우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윳쿠리들의 밥씨가 ‘잔뜩’ 들어간 식량 창고가 ‘잔뜩’있다는 인식이 그 보이지 않음을 문제없음으로 여기게 했다.
또 식량창고가 여럿인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만약 식량 창고가 하나라면 그나마 밝을때 식량더미의 줄어듬을 보고서 나름대로 경각심을 가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량 창고가 여럿이기에, 이 창고의 식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다른 창고에 ‘잔뜩’있다고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다.
만약 한 창고에서만 식량을 꺼내왔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겠으나 실제로는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아무 식량창고에서 꺼내왓으므로 모든 창고에서 식량이 줄어들어가고 있었는데.
이상의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윳쿠리들은 그날 레이무가 비명을 지르기 까지 누구도 남은 식량의 양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마리사! 어떻게 해야해에......”
“그, 그건 마리사도 잘 모르겠다구.....”
레이무 마리사 모두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식량의 고갈.
“밥씨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건 겨울씨도 다 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레이무는 희망찬 예상을 내놓는다.
하지만 마리사는 입구쪽을 흘끔 바라보고, 아크릴판의 아래쪽 절반까지 쌓여있는 눈을 보곤 고개를 저을수 밖에 없었다.
“이, 일단 먹는 밥씨를 줄여야해. 봄씨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구.”
“유우..... 다이어트씨는 느긋할수가 없다구.....”
느긋하지 않더라도 대안은 없다.
아니, 사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식량이 떨어진 윳쿠리들에게도 죽음외의 대안이 있다.
동면이 바로 그것이다.
봄이 오기까지 남은 기간은 약 한달.
이 가족이 정말 동면을 한다면 훨씬 긴 기간을 동면해야하는 야생 윳쿠리의 경우와는 생존률이 크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은 인간이 만든 밀폐된 집.
한겨울인 지금도 윳쿠리들의 체온으로 일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겨울에도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이 완벽!한 집이 그들에게 다른 대안을 빼앗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가족의 식사량은 전에 먹던 것에 삼분의 일 이하.
원래라면 레이무 혼자 먹던 양보다도 적은 분량이 되었다.
밥이 적다고 불평하는 아가야들을 달래고, 자신들도 부족함을 느낀 식사를 마친뒤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 이르지만 잠을 청하는 레이무와 마리사.
아가야들의 허기와 불만을 달래기 위해 레이무는 자장가를 불러주고 마리사는 옛 이야기를 해준다.
“유유~ 인간씌의 집은 정말 대다내~”
아빠야의 사육 윳쿠리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이는 마리샤.
레이뮤와 레무는 자장가를 듣고 잠들었지만, 이 아가야는 호기심이 많은듯 하다.
“그래. 인간씨의 집은 밝고, 테레비씨도 있고 에어컨씨도 있었다구. 하지만 아빠야는 그곳에서 결코 느긋할수가 없었다구. 왠지 알겠니?”
“유유? 인간씌가 느긋하지 못한 인간씌래서어?”
아가야의 순진한 대답에 웃으며 뺨을 갖다댄 마리사.
“아니야. 오빠야는 좋은 인간씨였다구.
하지만 거기서는 아가야를 만들 수 없었던거야.
마리사와 레이무가 있고 둘의 아가야들과 함께 모두 느긋해하는 것, 인간씨의 집에서 그건 이룰수 없는 꿈이었던 거라구.
아무리 달콤달콤이 있어도 꿈이 없으면 진정으로 느긋할수는 없는거야.
하지만 이제 아빠야의 보물인 아가야들이 있으니 아빠야의 꿈도 이뤄진거라구!”
“유와이~”
기뻐하는 마리샤와 부-비 부-비하는 마리사.
‘그래. 마리사의 보물인 아이들. 마리사가 이 아이들을 반드시 지킬거라구!“
마리사는 속으로 다짐했다.
사육 윳쿠리였기 때문에 없었던, 한 가정을 책임진 아빠야로서의 각오와 책임감이 마리사 안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다만, 극한상황이 왔을때 각오와 책임감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절식을 시작한뒤 하루가 지났다.
확실히 궁핍하지만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을 식사량이고,
식량이 떨어질때 쯤엔 겨울도 끄트머리일 것이니 밖에서 식량을 구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갖고 굶주림을 참고 견디는 레이무와 마리사였다.
하지만.
“레이뮤 배가 꼬륵꼬륵 하다구! 빨리 밥씨를 달라구!”
“유.... 아가야.... 남은 밥씨는 아껴 먹어야해요.....”
“꾸물대지 말구 레무에게 밥씨를 달라구! 잔뜩이면 조아!”
막내 마리샤를 제외한 아이들, 레이뮤와 레무가 드러누워 밥을 조르길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부모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해도 애초에 들으려는 생각도 없다.
그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게, 이 아이 윳쿠리들은 태어난 이래, 일체의 궁핍이나 인내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야 물론 아가야들은 어디서나 모자람없이 애지중지 다뤄지기 마련.
그러나 현실적으로 야생 윳쿠리라면 아가야라도 항상 배불리 먹을수 없는 법이며
또 부모로부터 사냥 이야기를 듣거나, 교육을 받아 가면서 욕망이 바라는대로 만족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참고 견뎌야한 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의 경우, 그 부모 자체가 궁핍을 모른다!
마리사와 레이무는 펫샵에서 태어난 사육 윳쿠리로 펫샵에선 가벼운 교육을 받은 정도이고
오빠야는 자취하는 대학생 새내기다운 허술함이 있어 윳쿠리는 자유방임에 가까웠다.
지금까지의 월동도 오빠야가 인간의 도구로 만든 집에서 구비된 윳쿠리 푸드를 먹으며 지낸 것뿐, 결코 진정한 야생생활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가야들에게 느긋하지 않은 것을 참고 기다려야할 때가 있단 것을 가르칠 수 있을리 없지.
“유....아가야... 조금만 참으라구. 봄씨가 오면 달콤달콤을 먹을수 있을거야.”
“그래 아가야. 지금 배부르게 먹으면 겨울씨한테 영원히 느긋해져 버린다구......”
“시끄럽다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 하지 말구 밥씨 가져오라규!”
“기여운 아가들한테 밥씌도 주지 못하는 무능! 쑤레기!”
바닥을 뒹굴며 귀밑털을 파닥거리고 소리치는 레이무와 레무.
처음엔 미안해하며 설득하던 부모들이 점점 조용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렇게 레이뮤가 배가 고픈데 멀 꾸물대고 있어!! 바보인거야? 주글꼬야? 대답해보라규!”
“.....없는 밥씨를 뭐 어떻게 내오라는 거야!? 바보인거야? 죽을거야?”
말로만 그러는게 아니라 귀밑털을 있는 힘껏 휘둘러 레이뮤를 후려치는 레이무.
“유삐이이이잇!!!”
바닥에 뒹굴고 있던 레이뮤는 그 일격에 그대로 벽면으로 날아가 얼굴부터 벽에 부딫친다.
“아퍄아아아아아!!! 레이뮤의 쁘리티한 얼굴씌가아아아아!!!”
비명을 지리는 레이뮤의 입에서 이빨이 몇개 후두둑 떨어진다.
마리챠의 때도 그랬고, 아무래도 이 레이무는 울컥해버리면 자식이고 뭐고 안보이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사육 윳쿠리 시절에는 별 부족함 없이 살아왔기에 나타나지 않았던 일면이
지금 진정한 야생생활이 시작되자 겉으로 드러난 듯하다.
지금까지 몰랐던 레이무의 이런 모습을 보고 레무, 마리샤는 물론 마리사도 두려움을 느낀다.
“레, 레이무! 아가야에게 그렇게 손찌검을 하면은......”
“윳! 이, 이건 아가야가 나쁜 말을 해서. 아가야가 느긋하지 못해서니까....”
뒤늦게 너무 심했다는걸 깨닳은 레이무는 비명을 지르는 레이뮤에게 다가간다.
“융야야아아아아아!!! 레이뮤의 순백의 이빨씌가아아아아!!!”
“아가야. 엄마야가 햘쨕 햘쨕 해주겠다구우.....”
햘쨕 햘쨕으로 부러진 이빨이 도로 붙지는 않지만 아무튼 진통 효과가 있는건지 심리적인지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레이뮤.
레무도 겁이 나서 밥투정을 그만두고 조용해졌다.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었나 싶었지만 이 일의 영향은 바로 다음 밥시간에 나타났다.
“유삐이이이이!!! 이빨씌가 아퍄아아아아!!! 머글슈가 없다규!!!”
이 가족의 식량은 건식 윳쿠리 푸드.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이빨이 여러개 부러진 레이뮤가 먹으려하며 찌르는 듯한 통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유우,... 아가야. 엄마야가 밥씨를 먹기 좋게 만들어주겠다구.”
“.....레이무 잠깐만.”
윳쿠리 푸드를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어주려는 레이무를 조용히 낮춘 목소리로 말리는 마리사.
“레이무.... 마리사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라구. 아직 겨울씨가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밥씨는 너무 부족하다구. 이대로라면 아가야들이 모두 영원히 느긋해져 버려.....”
“유유! 그래선 안돼!”
“그래. 그러니 입을 줄여야한다구. 지금 저 아가야는 이빨이 망가져서 겨울을 넘겨도 느긋할수가 없어. 저 아가야에게 밥씨를 주지 않으면 다른 아가야들이 살수 있다구.”
“하, 하지만 레이무의 보물인 아가야인데.....”
그 아가야를 전력을 다해 후려쳐 장애로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란걸 잊어버린 듯한 레이무.
“그 보물 이대로라면 모두 다 잃어버린다구. 두개의 보물이라도 건지는게 낫다구. 레이무와 마리사는 더이상 사육 윳쿠리가 아니야. 엄격!한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비정!해져야 한다구.”
아가야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춘 마리사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차갑고 굳은 의지가 실려있었다.
레이무는 기가 죽어 더 반론하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도 설득되었다.
마리사는 울며 뒹굴고 있는 레이뮤에게 다가가 혀로 푸드를 가져간다.
“아가야는 이빨이 아프니까 지금은 밥씨를 먹으면 안된다구.”
“유,윳?! 아쁘지만 배는 꼬프다구! 밥씨를 안아프게 만들어주묜-”
“안돼. 지금 밥씨를 먹으면 이빨이 낫지 않는다구.”
“융야아아아아!!!”
레이뮤의 비명을 뒤로 마리사는 바로 푸드를 물고 식량창고로 가버린다.
레이뮤는 그후로도 한참을 울고 보챘지만 레이무도 마리사도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그날밤. 언제나처럼 모두 모여서 잠든 윳쿠리 가족 가운데 한마리가 슬쩍 움직인다.
“레이뮤는 몰래 밥씌를 머그러 간다구. 슐-금 슐-금”
배가 고팠던 레이뮤는 부모 몰래 밥씨를 먹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슐-금 슐-금 레이뮤, 못머근만큼 슈퍼 우-걱 우-걱 타임을 할꼬야!”
식량창고에서 그렇게 외친 레이뮤는 갑자기 몸이 공중에 뜨는 것을 느꼈다.
“윳?! 하느를---- 유삐이이이이!!!”
갑작스런 고통에 비명지르는 레이뮤.
마리사가 조용히 레이뮤의 뒤를 따라가 리본을 물고 방으로 내던진 것이다.
“유융? 무슨 일이냐구?”
레이뮤의 비명소리를 듣고 레이무와 레무, 마리샤도 일어난다.
그들 앞에 마리사는 선언한다.
“모두 들으라구. 이 아가야는 가족들 몰래 귀중한 밥씨를 도둑질 하려고 했다구.”
“윳?! 밥씨 도둑은 느긋할수 없어!”
“맞아. 도둑질을 하는 게슈는.....”
마리사는 모자 안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꺼냈다.
“제재!”
푸욱-
“유삐이이이이!!!!”
마리사는 입에 문 가지로 레이뮤의 뺨을 사정없이 찔렀다.
“아퍄아아아아아!!! 레이뮤의 뺘미이이이이이!!!”
뺨의 상처서 팥소를 흘리며 나뒹구는 레이뮤.
“제재!”
용서없이 다음 공격이 들어온다.
“유삐이이이이잇!!!”
그리고 3번째, 4번째, 셀수도 없이 가지가 찔러지고 비명이 울려퍼진다.
단번에 중추팥소를 찔러서 절명시키는 기술 같은걸 마리사가 갖고 있을리 없고
그저 죽을때까지 찌르는 것 뿐.
“제재!”
“유삣......”
마리사의 외침은 여전히 우렁찼지만 레이뮤의 비명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 엄마야 무서버.....”
“느그탈 슈업쪄.....”
레무와 마리샤는 레이무의 옆에 딱 붙어서 울면서 부비부비를 했다.
레이무 역시 이 상황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지만 살기등등한 마리사의 모습에 두려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뎌....느그치.....”
레이뮤가 죽었다.
전신이 구멍투성이가 되어서 사방에 팥소를 흘리는 그 모습, 선명한 붉은 리본만 아니면 그 사체가 한때 사랑받던 아가야의 모습이었다는걸 알아볼수 없었으리라.
마리사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가족들에게 돌리고.
레무와 마리샤는 마리사의 시선이 자신들쪽으로 오자 움찔하며 시-시를 흘린다.
‘....아가야들 불쌍하게도 겁을 먹었네. 하지만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마리사는 비정!해질거라구!’
그렇게 다짐한 마리사는 선언한다.
“잘들 봤겠지? 밥씨 도둑질을 하면 제재!라구. 다들 명심해두라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