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5.09.29 12:09

노력의 증거 (完)

조회 수 533 추천 수 3 댓글 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노력의 증거

w/ 라디

 

 

 

보통 마리사처럼 파양당하는 애완 윳쿠리는 일찌감치 폐기 절차를 밟기 마련이다. 애완 윳쿠리 샵에서 애완 윳쿠리로 적합하지 않은 개체가 나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샵의 명성에 흠집을 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리사는 몇 번이고 살아남았다. 처분당하는 일은 없었다.

 

이곳은 가공소 부설 윳쿠리 샵.

 

한국에 애완 윳쿠리 붐이 일자 여기저기 윳쿠리 샵이 난립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가공소 부설 샵에서 길러낸 윳쿠리의 질을 따를 수 없었다. 일본에서 직접 연수를 받은 전문 인력의 노하우는 차원을 달리했다. 이곳의 브리더들은 각자 개성 넘치면서도 순종적인 애완 윳쿠리들을 길러 냈다. 그들은 모두 윳쿠리를 사랑했다. 정확히는 인간에게 고분고분한 개체만을 사랑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밤낮으로 머리를 쥐어짜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최상의 애완 윳쿠리를 길러내면서도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의 결과로써 제시되어 크게 호평을 받은 것이 바로 ‘윳쿠리 렌탈 서비스’였다. 말 그대로 일정 기간 동안 윳쿠리를 빌려서 사육한 뒤 샵으로 반납하는 시스템이다. 가공소 부설 샵에서만 제공하는 특화 서비스이자 킬러 콘텐츠이기도 했다.

 

윳쿠리에 대해 잘 모르는 어정쩡한 애호파도 적은 돈만 가지고 윳쿠리 사육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 렌탈 서비스의 장점이다. 금뱃지 윳쿠리는 수십만 원대를 호가한다.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될 정도로 특별히 영리한 개체는 수백만 원대에 이른다. 반면 렌탈 서비스 비용은 물품비와 사료비까지 다 포함하더라도 십만 원을 넘지 않는다. 고객들이 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객들은 대체로 넌더리를 내며 렌탈 윳쿠리를 반납한 뒤, 제대로 된 금뱃지 윳쿠리를 분양해 간다. 이 경우 샵에서는 렌탈 비용만큼의 금액을 분양비에서 할인해 준다. 고객들에 대한 위로 차원에서다.

 

아예 학대파로 전향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 샵에서 몹시 반기는 것이 바로 이 경우다. 학대파는 애호파에 비해 상품 수요가 많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학대용 윳쿠리를 소비하고, 학대 관련 물품에도 아낌없이 돈을 지불한다. 따라서 렌탈 윳쿠리는, 렌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게스화하는 은뱃지나 동뱃지로 한정된다.

 

금뱃지와의 생활을 ‘간접 체험’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렌탈 윳쿠리는 수요가 있다. 이 경우 주로 반납된 경험이 있는 은뱃지 윳쿠리 위주로 대여된다. 인간의 비위를 필사적으로 맞춘다는 점에서 금뱃지와 일견 비슷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조차도 곧 은뱃지들의 멍청함과 비굴함에 질려 버려서, 돈을 모아 금뱃지를 분양받으러 오지만.

 

정진정명의 학대파에게는, 렌탈 윳쿠리가 샵으로 반납된 뒤 재교육하는 과정을 찍은 동영상을 DVD로 제작해 판매한다. ‘올렸다 떨어뜨려진’ 개체는 절망감 때문에 반응이 각별하여 학대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동영상은, 올리기는 귀찮지만 떨어진 개체를 학대하고 싶은 학대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물론 재교육을 받은 렌탈 윳쿠리를 올렸다 떨어뜨리기 용도로 팔기도 한다.

 

보잘것없는 은뱃지 이하의 윳쿠리 한 마리로부터 파생되는 이윤 창출 효과란 이토록 막대하다. 그야말로 창조경제가 따로 없다. 게다가 윳쿠리를 빌렸던 사람들도 결과적으로는 모두 행복해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무큐, 언니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최신작이 나왔다구요.”

“톰 크루즈도 많이 늙었네……. 여전히 잘생겼지만. 그래도 왠지 가슴이 아프다.”

“무, 무큣, 설마 진짜로 매달려 있는 거냐구요?!”

“그래서 니콜 키드먼이 싫어했잖아. 굳이 액션 신을 직접 찍을 필요가 있냐면서.”

“무큐우……. 영화배우란 건 힘들다구요…….”

 

마리사를 처음으로 빌렸던 언니야는 금뱃지 윳쿠리를 분양받았다. 무척 영리한 파츄리였다. 파츄리는 자신을 입양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언니야에게 감사했다. 언니야도 얌전하고 눈치가 빠른 파츄리가 퍽 마음에 들었다. 둘은 곧 친해져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파츄리는 언니야가 주는 넘치는 사랑에 감복할 줄 알며 언니야를 마음 속 깊은 곳부터 느긋하게 해줄 것이다.

 

“첸, 다용도실에서 휴지 좀 가져다줄래?”

“아빠야는 휴지가 필요한 거네! 알고 있어!”

“첸, ‘마이 리틀 텔레비전’ 할 시간 됐다. 채널 좀 돌려놔 줄래?”

“MBC는 11번이라구. 안다구!”

“어쩜, 우리 첸은 똑똑하기도 하지!”

“엄마야, 첸은 백주부님이 제일 좋다구! 백주부님의 요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느긋할 수 있다구! 안다구!”

“엄마, 치사해! 혼자서만 첸이랑 놀면 안 돼! 나도 첸이랑 놀 거야!”

“느으으, 첸은 엄마야도 언니야도 좋다구.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구…….”

“하하하하.”

 

마리사를 두 번째로 빌렸던 가족도 금뱃지 윳쿠리를 분양받았다. 몹시 귀여운 첸이었다. 첸은 고양이와 강아지의 장점만을 섞어 놓은 것처럼 애교가 많았다. 게다가 머리까지 좋아서, 두 개의 꼬리를 손처럼 써 간단한 심부름을 곧잘 해냈다. 시시 사건 이후로 윳쿠리에 질려 버릴 뻔했던 가족들은 이내 첸의 재롱에 푹 빠졌다. 이 첸은 사랑이 넘치는 가족들을 위한 최고의 애완동물이 되어서 가족들을 마음 속 깊은 곳부터 느긋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마리사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마리사는 ‘노력 여하에 따라 사육 윳쿠리로 만들어 주겠다’는 브리더씨의 거짓말을 아직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금뱃지만이 애완용으로 팔린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애초에 마리사는, 윳쿠리 샵의 상품과 금뱃지 윳쿠리를 팔기 위해 사용되는 소모품, 렌탈 윳쿠리일 뿐이었다.

 

“마리사는 느긋한 윳쿠리임니다!”

 

‘노력의 증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것은 금뱃지뿐이다. 하찮은 은뱃지 따위가 아니다. 마리사에게 ‘노력의 증거’ 따위가 주어질 일은 평생 없다. 마리사는 똑똑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인간을 사랑하지도 않으니까.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니까.

 

“인간님을 느긋하게 하는 노래도 부를 수 이씀니다아!”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사는 오늘도 케이지에서 호소한다. 인간님을 느긋하게 해 주겠다고. 그러니 인간님도 자신을 느긋하게 해 달라고.

 

“마리사는 느긋할 수 있는 쭈-욱쭈-욱도 할 수 이씀니다아아아!!!”

 

현행법상 개나 고양이와 같은 살아 있는 애완동물을 빌려 주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적발 시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윳쿠리는?

 

“이 아이로 주세요.”

“오, 오빠야……?”

 

생명권?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윳쿠리는 살아있지 않으니까. 이 점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윳쿠리 샵의 문턱을 드나든다.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느긋하게 있으라구, 마리사.”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마리사가 든 이동장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느긋하게, 느긋하게 있으라구우! 느와아아앙! 느그치! 느그칫! 오빠야, 느긋하게 고맙다구!!!”

 

그 웃음이 어딘지 비릿한 기운을 품은 것을, 마리사는 알아채지 못했다.

 

(끝) 

  • profile
    김병투 2015.11.24 04:50
    안될안..
  • ?
    안드라스 2015.11.24 04:50
    학대파...??
  • ?
    보툭스 2015.11.24 04:50
    ㄷㄷ..읽는 동안 번역한 글인줄 알았네요..
    창작물란에 있어서 놀랐습니당...
  • ?
    zbono 2015.11.24 04:50
    와 진짜 수준높은 창작글에 놀랏습니다
    엔간한 번역물보다 훨씬 느긋할수잇는
    달콤달콤이엇다구!
  • ?
    광신 2015.11.24 04:50
    므아아 매우 느긋한 글이었다구요. 중간까지는 저 마리사가 너무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까지 보니까 납득했다고요!
  • ?
    느긋한철수 2015.11.24 04:50
    렌탈 윳쿠리의 마지막은 학대파 오빠야의 손아귀인가요. 느긋할 수 있는 글이였다구!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공지 글 창작물 게시판 이용안내 2 류민혜 2015.09.05 1143 0
50 일반 랑의 이야기 - 1 8 다도스 2015.10.17 352 2
49 애호 유카는 귀엽죠??저도 좋아해요!! 2 깁밥먹는유카 2015.10.15 319 0
48 학대 사회 건설 (시즌2) -4- 6 곰복 2015.10.07 522 1
47 학대 목격윳 4 하하로디 2015.10.07 400 1
46 일반 내가 윳쿠리로 변했다?!-3 2 체엔 2015.10.07 215 0
45 학대 강가 청소 6 김병투 2015.10.06 560 4
44 애호 거친 야생의 마리사와 농사꾼 앨리스 01 1 느긋한철수 2015.10.05 268 1
43 학대 [추석] 추석 사냥 3 곰복 2015.10.05 480 4
42 일반 추석을 알게된 들윳들 5 느긋한철수 2015.10.01 455 6
41 학대 사자 농장, 도스 농장. 8 김병투 2015.10.05 439 6
40 학대 윳쿠리 레이무의 신랑감뽑기 4 하하로디 2015.10.05 558 4
39 일반 생명은 소중한거야! 3 김병투 2015.10.04 294 1
38 학대 사회 건설 (시즌2) -3- 6 곰복 2015.10.04 495 1
37 일반 윳능 3 Rinkaru 2015.10.01 486 1
36 애호 민트와 다크 초콜릿과 레몬 1~4 2 Rinkaru 2015.10.01 308 0
» 학대 노력의 증거 (完) 6 라디 2015.09.29 533 3
34 학대 노력의 증거 (5) 1 라디 2015.09.29 412 1
33 학대 노력의 증거 (4) 1 라디 2015.09.29 377 2
32 학대 노력의 증거 (3) 1 라디 2015.09.29 389 1
31 학대 노력의 증거 (2) 1 라디 2015.09.29 488 2
Board Pagination Prev 1 ...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Next
/ 81

느긋하게 있다가라구!
비로그인
비로그인
느긋함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