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증거
w/ 라디
마리사에게 있어 한 가지 호재라면, 케이지로 돌아온 바로 그 날이 어린이날이었다는 점이다.
윳쿠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이후, 윳쿠리는 애완동물 시장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사람의 머리만 떨어져 나온 것 같은 형상에 기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의사소통이 되는 애완동물’이란 다른 찜찜함을 단번에 지워 없앨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을 원하느냐는 설문에서 윳쿠리가 전통의 강호인 강아지를 누르고 1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매년 어린이날에는 혼자 지내는 자녀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맞벌이 부부, 부모를 졸라 윳쿠리를 사러 온 어린이들로 샵이 붐빈다. 이 날은 샵의 윳쿠리들에게도 기쁜 날이다. 평소라면 늘 후순위로 밀렸을 은뱃지, 동뱃지 윳쿠리들이 한 번이라도 눈길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사는 어린이날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샵의 분위기와 평소와 다르게 활기차다는 것은 알았다. 왠지 팥소가 두근거렸다. 오래지 않아 마리사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 마리사 주세요!”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케이지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며 크게 외쳤다. 아이는 친구네 집에서 기르는 레이무를 보고 윳쿠리에 푹 빠져 버렸다. 그리고 몇날 며칠을 졸라서 겨우 부모로부터 윳쿠리를 기를 수 있도록 허락을 얻어냈다. 중학교 입학 전 마지막으로 맞은 어린이날인지라, 부모도 아이에게 크게 인심을 쓰기로 했다.
“마리사 말씀이십니까, 손님? 이 녀석은…….”
이들 가족을 응대한 사람은 ‘이달의 크루’ 상을 몇 번이나 받은, 친절하기로 유명한 샵의 점원. 그런 점원이 드물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점원의 눈이 마리사의 모자에 달린 은뱃지에 머물렀다. 점원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눈치 챈 부모도 점원을 거들었다.
“그래, 서영아. 얘는 은뱃지잖아. 소희네 레이무는 금뱃지고. 마리사가 좋은 거면 저쪽에 금뱃지 마리사도 있으니까…….”
“싫어어! 이건 운명적인 만남이야! 얘한테 첫눈에 반했단 말이야!”
마리사의 어떤 점이 아이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고집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이의 부모가 난처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친구 부모가 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아이의 부모는 금뱃지 윳쿠리가 아니면 살 생각이 없었다. 그때 점원이 부모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무엇인가를 한참 속삭였다. 부모는 잠시 놀랐다가 곧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점원으로부터 서류 한 장을 받아들었다. 아버지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어머니는 계산을 했다. 점원은 마리사를 이동장에 넣었다. 아이는 이동장 틈새를 들여다보며 안달복달했다.
“안녕, 마리사! 넌 이제 우리 집에서 사는 거야!”
“느읏, 느긋하게 있으라구, 언니야!”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마리사를 잘 돌봐 주려 했다. 밥을 제때 꼬박꼬박 주었고, 산책을 주기적으로 시켜 주었고, 산책을 다녀오면 저부를 깨끗이 닦아 주었다. 아이는 난생 처음 갖게 된 윳쿠리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기 때문에, 어딜 가든 마리사를 데리고 다니려 했다.
그러나 마리사는 실망하고 또 당황했다. 마리사는 언니야로부터 왕처럼 떠받들어질 당시의 환경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그 때를 생각한다면 지금 같은 대접은 케이지에 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매 끼니 달콤달콤을 먹기는커녕, 늘 먹는 윳쿠리 푸드조차도 달콤하지 않았다. 푸드는 애완 윳쿠리의 입맛이 높아지지 않도록 맛도, 냄새도 넣지 않은 기본형이었다. 전신 마사지를 받은 적도 없었다. 가족들 중 누구도 고급 윳쿠리용 샴푸로 마리사의 머리를 감겨 준 뒤 머리를 예쁘게 다시 땋아 주지 않았다. 그저 저녁마다 머리를 빗겨 줄 뿐이었다.
전혀 느긋할 수 없었지만, 마리사는 가족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훈육실로 돌아가는 것은 느긋하지 못한 가족들과 사는 것보다 몇 배쯤 더 끔찍하게 싫었다. 안타깝게도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반 이상 이기심에서 비롯된 마리사의 행동은 가족들을 크게 당황시켰다.
“늣, 아빠야! 마리사가 신문씨를 가져왔다제! 마리사는 느긋할 수 있는 윳쿠리다제! 늣헴!”
마리사가 물고 온 신문은 끈적거리는 설탕물 침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리사의 잇자국이 선명했다. 아빠는 한 장도 펴 보지 못한 신문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그대로 집어넣어야 했다.
“엄마야는 바쁘니까 마리사가 빨래씨를 갰다제!”
기껏 바삭바삭하게 잘 말려서 개어 놓은 빨래더미가 엉망이 되었다. 엄마는 빨래들을 일일이 다시 펴서 개거나 다림질을 한 번 더 해야만 했다.
“공놀이는 느긋할 수 있다제! 마리사는 느긋한 윳쿠리니까 언니야가 먼저 던지라제!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제!”
아이가 가장 친한 친구와 학교에서 크게 싸우고 돌아온 날이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울던 아이는, 옆에서 알짱거리는 마리사를 홱 쏘아보더니 방 밖으로 들고 나갔다. 그리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아이가 우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더 크게 들려 왔다.
이외에도 배변패드를 스스로 치우겠다고 나서다가 휴지통을 응응 범벅으로 만들거나,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며 김치냉장고의 코드를 물어뜯어 빼 놓거나, 짜지도 않은 물걸레로 청소를 하겠다고 설치다가 거실을 물 범벅으로 만드는 등, 마리사의 기행은 계속됐다.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심부름씨’를 하고 나서, 마리사는 늘 칭찬과 상을 바라는 눈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마리사를 보는 눈은 점점 차가워졌다. 아이 역시 초기의 열광이 사라지자 마리사를 대하는 태도가 영 시큰둥해졌다. 마리사는 초조했다. 자신은 가족들을 느긋하게 해 주었을 뿐인데, 가족들은 전혀 느긋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안 된다. 이대로라면 다시 훈육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세상은 팥소뇌의 생각대로만은 움직여 주지 않는 법이다.
알록달록한 종이에 난해한 선을 그리던 마리사에게, 별안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늣, 마리사는 언니야의 숙제씨를…….”
마리사는 숙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단지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투덜거리며 종이에 무엇인가를 끼적이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아이가 그 일을 할 때마다 느긋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기에, 마리사는 아이를 느긋하게 해 주려 했다. 아이가 마리사 덕분에 느긋해지면 달콤달콤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훈육실에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마리사의 계산이었지만, 아이의 얼굴은 마리사가 그 전에 보지 못했던 노여움으로 가득했다.
“내 노트…… 혜리랑 교환일기 쓰려고 아껴 둔 건데…….”
“느으으, 마리사 숙제씨 다 했다구, 언니야. 그러니까 달콤달콤씨 먹고 싶…….”
“시끄러워, 이 멍청아!”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노트를 쓸어 만지던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마리사를 밀쳤다. 마리사는 책상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강한 충격이 마리사를 덮쳤다. 바닥으로 떨어질 때 한 번, 벽에 부딪힐 때 두 번. 그간 마리사는 ‘애완 윳쿠리가 되면 맞지 않는다’는 명제를 마치 신의 말씀이나 된 것처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랬기에 몸보다는 마음에 받은 충격이 더 컸다. 맞았어? 마리사는 애완 윳쿠리인데? 느긋한 은뱃지씨인데? 언니야는 느긋할 수 없는 거야? 설마 마리사가 느긋할 수 없어서? 브리더씨한테 데려가는 거야? 설마? 설마? 설마?
마리사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가, 곧 초점이 사라져 갔다. 마리사의 마무마무에서 약간 누런 액체가 흘러나왔다.
쉬이이이…….
“꺄아악!”
아이가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리사의 시시가 원을 그리며 둥글게 퍼졌다. 시시는 흘러 흘러 아이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겉옷에까지 닿았다. 겉옷이 시시로 거무칙칙하게 물들었다.
“엄마! 얘 오줌 쌌어!”
“뭐?”
“난 몰라, 내 가디건! 이게 뭐야. 내일도 입어야 되는데!”
거실에 있던 엄마가 허겁지겁 아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도 마리사 쪽을 보고는 표정을 확 굳혔다.
“갑자기 왜 저러니?”
“몰라! 화장실 가리는 법 배운 거 맞아?”
윳쿠리의 시시는 설탕물로, 응응은 묵은 팥소로 되어 있다. 윳쿠리의 특징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윳쿠리의 신체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실제로 보았을 때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윳쿠리 사육 초보자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는데, 자신의 물건에 뜨끈한 ‘오줌’ 세례를 받았다면 어떨까. 아이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얘 진짜 이상해. 방금 전에는 내 노트도 망쳐 놓더니 오줌까지 싸고, 왜 저러는데!”
“너 엄마랑 공부했던 거 벌써 잊어버렸니? 윳쿠리는 원래 저렇다고 책에 쓰여 있었잖아.”
“눈치 없게 군다는 얘긴 안 쓰여 있었어! 그리고 소희네 레이무는 안 저랬단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그때 그랬지. 윳쿠리는 금뱃지로…….”
“느익!”
‘금뱃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리사의 눈에 희번득 빛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마리사는 시시로 젖어 오글오글해진 저부를 용케 똑바로 세웠다.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미친 윳쿠리처럼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마리사는, 시시가 퍼진 방바닥에 이마를 처박으며 소리를 질렀다.
“언니야아아아아!!! 엄마야아아아아아아!!!!!!”
“으앗!”
“마디쟈눈 느그탄 유쿠디임니다아아!!!! 마디쟈눈, 마디쟈눈 은빼찌씨지마아아안!!!!! 금빼찌씨보다도 느그탈 수 이씀니다아아아아!!!!!”
“엄마, 마리사가…….”
“마디쟈 느그타게 심부름씨 할쑤 이씀니다!!! 언니야를 느그타게 할쑤 이씀니다아!!!!”
“…….”
“구로니까 쩨발, 마디쟈를 버리지 말아주십씨요오오오오오!!!!!”
마리사가 계속 이마를 바닥에 부딪혀댔기에, 바닥에 고인 시시가 사방으로 튀었다. 기껏 빗어 준 금발이 엉망으로 젖었다. 마리사의 광태를 보고 속절없이 굳어 있던 엄마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일단 마리사부터 씻기고 나서 걸레질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의 손에 붙잡히자마자 마리사는 온몸을 뒤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눈이 하얗게 뒤집어졌다. 쩍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러어어어어어어어어!!!!! 오빠야 재성해여!!!! 시시 지려서, 시시, 못 가서, 화장실, 화장실씨, 가야 대, 바디자눈, 시시가, 시시, 시시…… 느아아아아악!!!! 시러어!!!!!! 시러어어어어어어어어!!!!!!”
“서영아, 사이다 가져와. 빨리!”
아이가 잽싸게 부엌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왔다. 엄마가 사이다를 급하게 따 마리사의 벌어진 입에 들이부었다. 탄산의 톡 쏘는 맛과 설탕물의 단맛을 한꺼번에 받아들인 마리사의 중추팥소는 과부하를 일으켜 잠시 활동을 정지했다. 마리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엄마와 아이는 지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샵의 케이지에 되돌려진 자신을 알아차렸을 때 마리사가 보인 반응은 말이 필요 없는 발광이었다. 마리사는 온몸을 내던져 유리벽과 천장, 바닥에 부딪치며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다른 케이지에 있는 윳쿠리들이 짜증을 내는 소리는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느아아아아아아악!!!!! 마디쟈 애완 유꾸지인데에에에에에에에!!!!! 느그타게 해주고 이썬는데에에에에에에!!!!!! 마디쟈를, 마디쟈를 배신했게따아아아아아아!!!!!! 느아아아아아아아아!!!!!”
“스톱, 스톱.”
마리사의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 무렵, 갑자기 케이지의 문이 열렸다. 마리사는 핏발이 선 눈으로 그 쪽을 올려다보았다. 브리더씨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거참 안됐네, 마리사.”
“느그그그그, 오빠야…….”
“그래도 자해를 하면 쓰나. 넌 우리 샵의 소중한 상품이라고.”
“느?”
“뭐, 그 집에서는 엄청나게 문제가 있거나 떼를 썼던 것 같지는 않으니까, 특별히 재훈육은 면해 주마. 잘 좀 해 봐라, 임마. 다음번에는 얄짤없을 줄 알아. 너도 훈육실로 가는 건 싫지?”
마리사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번씩이나 반납됐다면 세 번, 네 번도 쉽다. 마침내 다섯 번째로 반납되었을 때, 마리사는 자신이 다시 케이지로 돌아와 있다는 데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 때부터는 그저 케이지 구석에 멍하니 처박혀서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고객이 들어오면 유리벽에 달라붙어 아양을 떨길 반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