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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3 20:53

anko1691~1692 데이부가 온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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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 후타바 윳쿠리 괴롭히기 스레 주민
번역자 : ?
번역출처 : 구 윳쿠리 사이트



anko1691 1692 데이부가 온다구





―1― 
나무 밑둥에 뚫린 구멍은, 원래 야생토끼의 굴이었다.
그것을 약간의 확장과 보강을 거쳐 이용하고 있는 것이, 최근 짝짓기를 한 두 마리의 윳쿠리였다.
야생토끼의 굴에는 윳쿠리 자신이 판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공간이 있다. 때문에 구석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봤자, 입구에서는 개미소리만한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작은 목소리로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다.
크고 화난 목소리와 작은 비명소리.
그것은 아무리 봐도 험악한 분위기였다.

 

"무큐......뭐가 잘 안 풀리나, 저 둘......"

 

집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심코 귀를 기울이던 지나가는 파츄리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한편, 집 안쪽에서는 파츄리가 우려한 대로 부부싸움이 한창이었다.
물론 그것은 매우 일방적으로 전개됐다.

 

"이게 대체 뭐야, 마리사!"
"느히익!? 그, 그런 무서운 표정으로 소리 지르지 말라구......"
"마리사가 레이무를 화나게 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이건! 대체! 뭐냐고! 묻고 있잖아!!"
"느, 느와앗!?"

 

야생동물이 파놓은 튼튼한 굴이, 레이무가 저부로 바닥을 쿵쿵거릴 때마다 후두둑거리며 모래가루를 떨어뜨린다.
레이무의 몸집은 일반 사이즈 윳쿠리인 마리사보다 2배 이상 컸다.
더욱이 기 싸움에서 밀린 마리사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기 때문에 레이무는 한층 더 커 보였다. 마리사 눈에 레이무는 도스를 능가하는 거구로 보였다.
그런 레이무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친 숨결이 뺨을 쓰다듬은 시점에서 마리사의 공포는 한계를 넘었고,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그녀의 아래를 적셨다. 레이무의 발구르기가 계속되지 않았다면, 그 소리와 진동이 끊임없이 마리사를 뒤흔들지 않았다면 애저녁에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기절만 했다면 조금은 느긋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도피가 불가능한 이상, 마리사는 얌전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그거, 밥씨...라구?"

 

마리사와 레이무의 중간 쯤 되는 위치에 잡초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마리사가 모자 한가득 우겨넣고 가지고 온 그것이, 레이무의 화를 불러 일으켰다.
자칭 사냥이라는 들풀 채집에서 돌아와 웃는 낯으로 수확한 것들을 늘어놓은 순간, 어째서인지 레이무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모처럼 밥씨를 모아왔는데, 왜 레이무가 화를 내는지 마리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챙이 넓은 모자 그늘에서 오들거리면서 레이무의 안색을 살피며, 최대한 자극하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마리사의 얼굴에, 레이무가 걷어 찬 풀들이 쏟아졌다.
더 큰 욕설도 함께 쏟아졌다.

 

"밥씨는 부드럽고 쓴 맛이 적은 풀씨를 모아오라고 했잖아아! 어어째서 이렇게 질긴 풀만 모아 온 거야!"
"느힉!? 언제 그랬어!? 마리사는 그런 말 들은 적 없어!?"
"마리사가 레이무 하는 말을 제대로 안 들어서 그런 거잖아!!"
"느꺄아앙!"

 

들은 적 없는 말은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의 호소는, 그러나 가벼운 몸통 박치기로 각하되었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체격차를 생각하면 꽤 힘조절해서 때린 걸로 봐야 했으나, 통증에 약하고 좌절하기 쉬운 윳쿠리 입장에서는 참기 힘든 격통이 느껴졌다. 마리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며 대성통곡할 준비에 들어갔다.

 

"느삐......에?"
"――마리사, 느긋하게 울 시간이 있으면" 

 

그런 마리사의 눈 앞――말 그대로 눈과 눈이 마주 닿을 만큼의 거리에, 무표정한 모습의 레이무가 서 있었다.
윳쿠리답지 않은 박력에 눈물도 목소리도 쏙 들어가버리고 만 마리사는, 그저 이빨을 덜덜거리며 조용히 레이무 말을 듣는 것 뿐이었다.
그런 마리사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레이무는 검은 자위를 굴리며 굴 입구를 보고 말했다. 

 

"느긋하게 있지 말고 밥씨를 모아 오라구? 부드럽고, 쓴 맛 안 나는 풀씨만 가져 오라구? 많이 가져 오라구? 지금 한 말, 알겠지?"
"느, 느, 느히익!? 잘 알았어요오! 마리사 사냥 다녀 올게요오오오오오...!!"

 

무언의 '당장 다녀와!' 아이컨택트에 따라, 마리사는 윳쿠리답지 않은 기세로 굴을 빠져 나갔다.
바깥 바람을 맞으며 마리사는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레이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모아와야만 했다.
달콤달콤한 분위기로 가득했던 연인시대와 달리, 도저히 느긋할 수 없는 상황으로 격변해버린 신혼생활에 눈물 지으며, 마리사는 뛰었다.
 

 

 


―2― 
1주일 전까지, 마리사는 행복의 절정기에 있었다.
부모 덕에 부자유스러운 것 없이 자란 마리사는, 사냥 연습을 하러 나간 곳에서 레이무와 만났다.
집 구석에서 소중히 자란 한 마리의 아이 마리사에게, 그것은 동세대 윳쿠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레이무는 매우 느긋했고, 아름다운 윳쿠리였다. 윤기 나는 머리카락, 팽팽한 피부, 선명한 장식, 그 무엇 하나 이후에 만난 모든 윳쿠리를 능가했다.
한 눈에 반한 마리사는 즉석에서 레이무에게 프로포즈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레이무는 마리사를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도 마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을 어필해 나갔다.
응석받이로 자라 사냥 요령은 좋지 않은 마리사였지만, 반복되는 만남, 대화, 그리고 운 좋게 발견한 집과 열심히 모은 식량을 보여주자 얼마 뒤 레이무는 마리사를 받아들였다. 이때 마리사의 부모가 큰 힘을 쏟은 것은 레이무에게는 비밀이었다.
집도 장만하고 짝까지 찾은,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게 출발한 마리사의 신 생활. 앞으로 아가야를 이따만큼 만들어서 레이무와 함께 시끌벅적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마리사의 장밋빛 장래설계는,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너무도 상냥했던 레이무의 표변.
마리사가 열심히 모아온 밥씨를 보고 '질기다', '맛 없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부드럽고 먹기 좋은 먹을 것을 모아와도, 마리사는 입에도 대지 못했다.
피부를 맞대고 같이 잠을 자고 싶어도, 집 제일 안쪽에 있는 제일 넓은 방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살을 맞대고 함께 잔 기억은, 정식으로 짝이 되기 전의 풋풋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발견할 수 있었다.
항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상냥했던 레이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박력에 떡이 되도록 얻어 맞았다. 그 뒤 마리사는 그저 종순하게 레이무를 따를 뿐이었다.
해가 뜨고 하늘에 붉은 빛이 감돌 때까지, 오로지 밥씨를 모으는 일로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고독 속에 잠드는 밤. 
마리사의 일과에 느긋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이렇게 느긋할 수 없는 생활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무리 최고의 느긋한 색시를 얻고, 많은 아이를 만들고, 행복한 가정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듦으로써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느긋하게 지낸다.
그런 꿈을 꾸며 레이무에게 프로포즈 했는데, 현실은 꿈의 한 조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느긋하게 있고 싶다구......"

 

맛있어 보이는 풀을 물어 뜯으면서 마리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키 큰 풀이 우거진 작은 광장. 무리의 거주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마리사는 이곳을 전용 사냥터로 독점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냥 자체에 별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풀을 뜯으며 고민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풀을 뽑으며 중얼중얼 불만을 터뜨렸다.

 

"어째서 레이무는 마리사를 느긋하게 시켜주지 않는 걸까......? 같이 느긋하게 지내자구! 라고 맨날 말하는데......"

 

뽑아낸 풀이 어느 정도 산을 이루자 모자를 벗어 수확물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다 채우고 보니 용량에 조금 여유가 있어, 조금 더 풀을 뜯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불만도 터져 나왔다.
마리사의 머리 속에서 '왜'와 '어째서'가 맴돌았다.
하지만 모호한 마리사의 의문을 멍한 마리사의 머리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늣, 마리사잖아! 오랜만이야, 느긋하게 있다 가라구!"
"늣......? 앨리스......?"

 

바닥 없는 늪에 빠진 자를 구하려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니까.

 

 

―3― 
밥씨를 찾아 이 풀밭까지 원정나온 앨리스는, 다행히 마리사의 소꿉친구였다.
아는 사이라 그런지 어두운 표정의 마리사에게서 고민거리에 대해 모조리 캐낸 앨리스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이곳에 없는 레이무를 욕하기 시작했다.

 

"어쩜 그런 레이무가 다 있어......! 아니, 그런 건 레이무가 아니라 이미 데이부야, 데이부! 앨리스가 마리사를 포기해 준 은혜도 모르고......늣, 아니, 그런 건 됐고, 둘이 같이 느긋하지도 못한다니 뭐 그런 시골뜨기가 다 있어!!"
"애, 앨리스, 진정 하라구......?"

 

침울한 표정으로 상담하던 마리사도, 앨리스의 기세에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에 놀란 표정의 마리사를 본 앨리스는, 몇 번 심호흡을 하며 냉철함을 되찾았다.

 

"마리사, 보스한테 상담받자!"
"......늣?"
"안 됐지만, 앨리스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리사를 느긋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보스라면 분명히 아주 느긋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줄 거야!"

 

타력본원이라고는 하지만, 앨리스는 마리사의 눈을 마주 보며 강한 어조로 단언했다. 그만큼 초조한 표정의 마리사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앨리스가 기억하는 마리사의 모습은, 언제나 보는 쪽도 덩달아 힘이 날 것만 같은 밝고 활발한 윳쿠리였다.
이렇게 모자 그늘에 숨어 상대 기분이나 살피는, 소심하고 어두운 윳쿠리는 앨리스가 아는 마리사가 아니었다.

 

"레이무에게서 되찾는 거야, 마리사의 느긋함을!"
"마리사의......느긋함......!"

 

앨리스의 힘이 실린 말투에, 땅만 쳐다보고 있떤 마리사가 고개를 들었다.
느긋하고 싶다, 는 원망은 윳쿠리의 근간을 이루는 명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마리사는 전혀 느긋하지 못했다.
그것은 왜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마리사의 느긋함이 어처구니 없게도 레이무에게 짓밟혀버린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이무에 대한 공포로 사고가 정지되어 있던 마리사의 팥소가 열기를 머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긋하고 싶어. 마리사도 느긋하고 싶다구우우우우우우우!!"

 

지금까지 레이무에게 억압되었던 마리사의 소망이, 외침소리와 함께 단숨에 폭발했다. 이렇게 소리를 질러 본 게 대체 얼마만의 일인가.
앨리스와 마리사는 무리의 우두머리 곁으로 가, 마리사의 딱한 처지를 호소했다.
마리사의 눈물 섞인 탄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우두머리 파츄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무큐우. 최근 너희 집 근처를 지나다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

 

친구에서 연인으로 사이 좋게 지내던 두 마리가, 짝이 되자마자 격한 싸움을 벌이는 일은, 파츄리가 무리의 우두머리 직을 맡고 나서도 수 차례 있어왔다.
부부싸움은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신혼 1주일 째――아니, 이야기 상으로는 신혼 첫날부터 불협화음을 일으킨 짝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놀라기는 했으나 할 일마저 달라진 것은 아니다.
파츄리는 앨리스를 떨어뜨려 놓은 뒤, 마리사를 마주 보며 물었다.

 

"마리사. 마리사는 어떻게 하면 느긋할 수 있을까?"
"늣? 어떻게 하면이라니...무슨 소리야?"
"레이무와 화해하면 느긋할 수 있을까? 아니면 레이무와 헤어지면 느긋할 수 있을까?"
"늣......? 느으읏......"
"자, 잠깐만, 보스!"
"앨리스는 좀 가만히 있어 봐. 파쳬는 마리사한테 묻는 거니까."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던 마리사를 앨리스가 감싸려고 했지만, 파츄리는 단칼에 앨리스를 잠잠하게 했다.
화해하고 싶다면 레이무와 마리사, 쌍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득하게 해결책을 짤 필요가 있었다. 시간과 수고는 들겠지만, 레이무가 표변한 이유만 알면 부부 사이를 원래대로 돌리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파츄리는 생각했다.
헤어지겠다면, 이야기는 보다 간단해진다.

 

"마리사는......마리사는, 그런 레이무랑은 그만 헤어지고 싶다구."
"무큐......알았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어 대답하는 마리사의 모습에서 그녀의 굳은 각오가 느껴졌다.
파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 밖으로 저부를 향했다.
갑자기 이동을 시작한 파츄리를 허둥지둥 따라가는 마리사와 앨리스에게, 얼굴은 정면을 바라본 채 파츄리가 말했다.

 

"마리사, 앨리스. 무리의 모두를 마리사 집 앞까지 불러 와. 마지막에 파쳬가 레이무랑 이야기 해보고, 결정을 내릴테니까."

 

 

―4―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
마리사와 레이무의 집 앞에는 무리의 윳쿠리들이 모여 있었다. 어린 아가야와 이를 돌보는 어미 이외가 모두 모인 그 수는 50에 가까웠다.
이들은 마리사와 레이무의 절연식 보증 윳쿠리였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파츄리가 준비한 보디가드였다.
그들의 선두에 선 우두머리, 파츄리가 조용해진 무리를 대표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레이무! 할 말이 있으니까 밖으로 나와!"
"......파츄리?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야?"

 

잠시 뒤, 집 안쪽에서 레이무의 모습이 나타났다.
집 입구에 머리를 살짝 긁힐 정도의 거구에 무리의 윳쿠리들은 눈 까뒤집고 경악했다.
1주일 전만 해도 무리에서 비교적 작은 축에 속했던 레이무가, 자신들보다 한참이나 큰 거구가 되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레이무 역시 집을 나오자마자 무리의 모든 윳쿠리가 일제히 자신을 둘러싼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쌍방이 교착한 가운데, 홀로 평정심을 유지하던 파츄리가 입을 열었다.

 

"무큐, 느긋하게 있으라구. 오랜만이야, 레이무."
"늣!? 느긋하게 있으라구! 느응, 오랜만이야, 파츄리."

 

목소리를 듣고 제정신을 차린 레이무도, 방긋 웃으며 인사로 답했다.
하지만 주변의 이상한 상황에, 방긋 웃던 표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의혹의 눈길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에 파츄리 뒤에 숨듯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마리사를 보고, 그녀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겁에 질린 마리사를 앨리스가 위로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레이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다들 무슨 일이야? 마리사는 거기서 뭐해? 오늘은 왜 이리 늦나 해서 어디까지 사냥 나갔나 궁금했는데, 밥씨는 어떻게 됐어? 앨리스랑 무슨 짓 하는 거야?"
"느......느힉!?"
"뭇큥! 마리사한테 질문하기 전에, 파츄가 레이무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괜찮겠어?" 

 

레이무는 마리사에게 따지려고 했지만, 파츄의 기침소리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앞서의 기세도 레이무 앞에 온 것만으로 송두리째 날아가버리고 만 마리사는, 다행이다 안도하며 파츄리 뒤에서 몸을 울크렸다.
파츄리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마리사를 힐문해서 오늘 먹을 식량을 거둬들이려고 했지만, 상대는 오랫동안 신세를 진 무리의 우두머리였고, 주위에는 익숙한 얼굴도 많았다. 짜증은 났지만, 레이무는 일단 마리사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재차 파츄리와 대면했다.

 

"......느훗. 느긋하게 알겠다구. 파츄리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고마워, 레이무. 마리사한테 들었는데, 마리사를 느긋하게 안 시키고 하루 종일 사냥만 시킨다던데, 사실이야?"
"사실이야. 하지만, 부드럽고 맛있는 밥씨를 못 가져오는 마리사가 잘못이라구!"
"결혼하고 나서는 부~비부~비도 안 하고, 같이 새~근새~근도 한 적이 없다는데, 사실이야?"
"사실이야. 마리사랑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부~비부~비도, 새~근새~근도 해줄 생각이 없다구!"
"그럼 마지막으로, 그런 레이무의 태도에 불만을 이야기한 마리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게 사실이야?"
"그게 어쨌다는 거야? 레이무 말을 안 듣는 마리사가 잘못이라구!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마리사가 잘못이라구!"
"무큐, 잘 알았어......"

 

파츄리는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눈동자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레이무가 느긋하려고, 그토록 느긋하던 마리사를 조금도 느긋하게 시켜주지 않았어. 소중히 대해줘야 할 짝을,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도록 혹사시키는 윳쿠리는 '데이부'라구. 데이부는 언젠가 무리의 윳쿠리들한테도 피해를 끼칠 거야."
"......늣?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파쳬의 무리에 데이부는 필요 없어. 지금 이 자리에서 파쳬는 레이무를 무리에서 추방할 것을 선언할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즉석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눈알만 데굴거리는 레이무를 뒤로 하고, 파츄리가 말을 이어나갔다.

 

"마리사도 레이무랑 헤어지겠다고 파쳬한테 말했어. 그러니까 레이무는 혼자서 느긋하지 않게 파쳬의 무리에서 꺼져 버리라구!"
"무슨...무슨 말을 하는 거야아!!"
"얌전하게 나가지 않겠다면......"

 

그제서야 이해한 레이무가 격앙한 것과 거의 동시에, 무리에서도 싸움 잘 하는 윳쿠리들이 파츄리와 레이무 사이에 끼어 들었다. 레이무가 발광했을 때 휩쓸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면서도, 파츄리는 레이무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친 수단을 써서라도 나가게 하겠어. 레이무가 느긋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돼도 말야. 어렸을 때부터 널 알고 지낸 파쳬는, 가능하면 그런 난폭한 수단은 쓰고 싶지 않아. 얌전하게 무리에서 나가줬으면 좋겠어."
"...지마, 헛소리 하지마! 헛소리 하지마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을 에워싼 채 나뭇가지와 막대를 문 윳쿠리들의 모습은, 미쳐 날뛰는 레이무의 눈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만으로 윳쿠리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으로, 파츄리를――아니, 그 뒤에서 시시를 싸며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마리사만을 노려봤다.

 

"레이무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마리사도, 그런 마리사 말만 믿는 파츄리도! 그런 파츄리를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하는 모두도! 모두 모두 영원히 느긋해져 버리라구우우우우우우!!"
"무꺅!?"

 

중간에 가로 막고 선 윳쿠리들을 어렵지 않게 튕겨낸 레이무는 마리사를 향해 돌진했다.
싸움을 잘 하는 윳쿠리라고 해도 싸움에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체력이나 저부의 빠르기가 다른 윳쿠리들보다 뛰어날 뿐이었다.  무시무시한 분노로 닥쳐오는 레이무의 정면에 있던 윳쿠리들은, 너무도 무서운 나머지 파츄리의 명령을 무시하고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움직이지 않는 윳쿠리도 있었지만, 이들은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멍하니 있다가 레이무의 몸통 박치기에 저만치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파츄리의 얼굴빛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파츄리와 레이무 사이를 가로 막던 윳쿠리가 모두 사라진 순간, 파츄리의 팥소는 돌진을 맞고 너무도 간단히 튕겨나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환시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레이무 정면의 윳쿠리들은 도망쳤지만, 좌우와 뒤쪽에 포진해 있던 윳쿠리들이 열심히 그녀 뒤를 쫓은 것이다.
몸통 박치기를 한 뒤 머리카락을 물어 뜯거나, 막대를 휘둘러 레이무의 움직임을 막겠다고 쇄도하는 윳쿠리 무리. 눈 앞에 뾰족한 나뭇가지를 들이대거나, 뺨을 살짝 베어내 레이무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려고 시도했지만, 분노한 레이무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나뭇가지에 망설임없이 뛰어들며 몸에 박힌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오로지 앞으로. 깜빡임을 잊은 레이무의 두 눈꺼풀은, 오로지 마리사만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행속도는 느려져 있었다. 덕분에 레이무에게서 거리를 두었던 파츄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윳쿠리를 물리치며 서서히 다가오는 레이무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무큐우......무큐우......무큐. 가능하면 말로 해결하고 싶었어, 레이무......"

 

거리를 두긴 했지만, 우직하게 돌진하는 레이무가 육박하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파츄리는 온건한 수단을 포기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레이무 때문에 영원히 느긋해질 거야! 그 전에 레이무를 쓰러뜨리는 거야! 더 이상 봐줄 필요는 없다구!!"

 

레이무의 분노한 목소리를 뛰어넘는 포효가 윳쿠리들에게서 일어났다.
그 순간 견제의 의미로 볼만 살짝 긁을 뿐이던 나뭇가지가, 레이무에게 깊숙히 박혔다. 레이무 앞에 들이대기만 하던 나뭇가지도, 레이무가 아무리 다가가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레이무한테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아픔 따위 어딘가에 잊고 오기라도 한 듯, 머리카락 따위 뽑히건 말건, 뺨에 구멍을 낸 나뭇가지는 깨물어버리고, 눈동자에 찔린 나뭇가지를 물고 있던 윳쿠리를 마구잡이로 튕겨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쌍방 간에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전개되던 이 싸움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5― 
"고마워, 정말 고마워! 모두들, 마리사를 도와줘서 고마워!!"

 

격전의 상처를 뒤로 하는 무리의 윳쿠리들에게 마리사가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사의 집 주변은 평소의 조용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것은 이따금 신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는 점 정도.
레이무 단 한 마리가 상대였다고는 하지만, 격전이 끝난 뒤 무리의 윳쿠리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영원의 윳쿠리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윳쿠리도 적지 않았다.
상처에 신음하는 윳쿠리, 죽은 이를 애도하는 윳쿠리, 그 목소리는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 지금도 여전히 들려올 정도였다. 무리에서 피해를 당하지 않은 윳쿠리는 없었기에, 무리가 있는 숲 전체가 슬픔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목소리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들려올 것이다.
그런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치지 않은 몇 안 되는 윳쿠리 중 하나인 마리사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주위를 뿅뿅 뛰어 다녔다.
그리고 입구에서 우뚝 멈춰 서더니, 안으로 깡총 뛰어 들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는, 마리사의 집이라구! 마리사만의 집이라구우!!"

 

이곳은 원래 마리사의 집이었지만, 사실상 레이무가 점유하고 있었기에 자기 집이라는 실감이 마리사에게는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금 집 선언을 한 것이다.
공중에서 전력으로 집 선언을 한 마리사는, 착지하고 잠시 동안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들리는 것은 무리 윳쿠리들의 어두운 목소리 뿐, 집 선언에 대한 이의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 결과에 만족한 마리사는 모자 챙을 들어올리며 웃었다.

 

"느응! 그럼 마리사는 새집 청소를 하겠다구!"

 

발걸음도 가볍게, 마리사는 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마리사는 자각하는 것일까.
집 주변을 뛰어다닐 때에도, 집 선언을 한 뒤 주위를 둘러보며 귀를 기울였을 때에도, 어느 한 부분만은 애써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곳에 레이무가 있었다.
양쪽 귀밑털은 뜯겨져 나가고, 한쪽 눈은 뭉개졌으며, 몸 이곳저곳에 깊게 박힌 나뭇가지와 커다랗게 벌어진 상처가 보였다. 크게 벌린 입 안에도 나뭇가지가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처를 입으면서도, 레이무는 조용히 그곳에 있었다.
울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남은 한쪽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하늘만 멍하니 바라본 채, 벌어진 입에서 누더기가 된 혀가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죽어 있었다.
그런 레이무의 모습을, 마리사는 애써 의식에서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6― 
과일과 나무 열매를 큰 잎으로 감쌌다.
내용물 별로 구분한 몇 개의 꾸러미를 긴 줄기로 묶어 정리한 뒤, 한꺼번에 머리 위에 휙 하고 이었다.
조금 무거웠지만, 앨리스는 개의치 않고 밖으로 나는 듯 나갔다.

 

"어디, 지금까지 느긋하지 못했던 만큼, 마리사를 진짜 느긋하게 시켜줘야지!"

 

저부도 가벼웠고, 머리 위 짐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경쾌하게 뿅뿅 뛰며 앨리스는 나아갔다.
줄기 끝을 꽉 물고 있었기에, 실수로 떨어뜨려 잃어버릴 걱정도 없었다.
앨리스에게 있어, 마리사도 레이무도 친구임에는 틀림 없었다.
때문에 레이무의 표변에 그녀도 놀랐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리사를 그토록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혹사시켰던 레이무의 무자비함을 생각하면, 그다지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쨌든 느긋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방된 마리사와 함께 밥이라도 먹으며, 그런 레이무 따위 윳쿠리 다운 망각력으로 팥소의 귀퉁이로 몰아내 버리자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짐을 싼 것이다. 무거울 리 없었다.
나름 거리가 있는 마리사의 집도, 이상하게 길이 멀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무렵, 마찬가지로 마리사의 집을 향하는 윳쿠리가 있었다.
우두머리 파츄리와 성체 윳쿠리 몇 마리.
앨리스가 힘차게 뛰고 있는 것과 달리, 이쪽은 분위기도 어두웠고, 그야말로 느긋하지 못한 모습이 두드러졌다.

 

"무큐우......야단 났네. 마리사가 파쳬의 부탁을 들어줄까?"
"안 들어주면 큰일 난다구~나도 알아~"
"애초에 마리사를 도우려다가 모두 느긋하지 못하게 된거라묭. 마리사가 돕는 건 당연하묭."

 

고민의 이유는, 무리의 일꾼인 체력 좋은 윳쿠리들이 대부분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영원히 느긋해진 데 있었다.
이번 격전으로 최전선에 투입된 정예 윳쿠리들은, 모두 식량조달 능력이 뛰어났다. 그만큼 자기 외의 윳쿠리를 양육하는 윳쿠리가 많았다.
짝을 영원히 잃은 윳쿠리나, 상처를 입은 가장을 자신들이 먹여 살리게 된 가족 등, 앞으로의 생활을 비관하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파츄리는 우두머리로서 그들의 미래를 생각해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음 봄이 올 때까지 무리 전체가 모여 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사냥 가는 윳쿠리는 걱정 없이 나갈 수 있고, 중상의 다친 윳쿠리나 고아 윳쿠리를 돌보는 일도 애보기로 남아있는 윳쿠리들이 도와가며 할 수 있었다. 
그 방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사냥할 수 있는 힘이 남은 윳쿠리는 한 마리라도 많이 참가해주길 바랬다.
특히 이번 일의 발단이 된 마리사는 반드시 선두에 세우고 싶었다.
모두가 다치면서 싸울 때 파츄리 뒤에 숨어있던 마리사를 향한 무리 윳쿠리들의 시선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파츄리는, 마리사가 앞으로 무리의 일원으로서 느긋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협력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이 남아있었다.
파츄리는 마리사의 언동 어딘가에서 어렴풋하지만 느긋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이 파츄리의 표정에 그늘을 드리웠고, 일행의 분위기를 어둡게 했다.

 

"...그것도 확인해봐야만 알겠네. 무큐......"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파츄리는 저부를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 것도 들지 않은 가벼운 그녀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7― 
그 무렵, 마리사의 집 앞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레이무가 잠을 자던 마른 풀, 앨리스가 레이무에게 선물한 잡초 가방, 레이무가 모은 예쁜 조약돌 등의 보물 따위였다.
마리사는 그 일이 있은 뒤 둥지 깊숙한 곳에서 레이무가 애용하던 여러 물건을 끄집어 내 내다 버렸다.
아직 충분히 쓸만한 물건인데 내다 버리는 것은, 그만큼 레이무가 미웠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마리사의 심정을 헤아리며, 앨리스는 자신이 마리사에게 보다 힘이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잔뜩 기합을 넣었다. 

 


"......근데, 좀 아깝긴 하다. 쓸 수 있는 물건은 쓰는 게 도시파적인데......"

 

라며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며 앨리스는 집 입구에 다가섰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집 안쪽을 향해 큰 소리를 내질렀다. 마리사의 집은 원래 야생동물이 만든 굴이기에 안이 깊고 약간 미로처럼 되어있어서, 함부로 들어가는 것보다 입구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느긋하게 있다 가라구우! 마리사! 거기 있니이!?"
"......늣......늣.................."
"느긋하게 있다 가라구우! 늣, 그런 곳에 숨어 있었구나!! 앨리스, 느긋하게 기다리라구우!"
"......늣?"

 

어리둥절한 표정의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앨리스의 인사에 답한 목소리는 2개였다. 하나는 틀림없이 귀에 익은 마리사의 목소리.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들은 적이 없었다.
사교적인 생활을 보내는 앨리스는 대부분의 무리 윳쿠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때문에 한 번 이야기한 상대라면 그것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들은 적이 있나 없나 쯤은 기억해낼 수 있었다.
타지에서 흘러들어 온 윳쿠리가 마리사의 집에 잘못 들어왔나?
하지만 들리는 것은 어린 느낌의 목소리였다.

 

"길 잃은 아이......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앨리스였지만, 그 대답은 집에서 나온 마리사가 입에 물고 있었다.
댕기 머리는 두 개 있었지만, 검은 뾰족 모자와 머리 모양, 개암나무 빛 눈동자는 마리사를 빼닮았다.
모자에 감은 것과 댕기 머리를 묵은 리본, 그리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는 레이무의 그것을 느끼게 했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특징을 동시에 갖춘 그 어린 윳쿠리를, 마리사는 집 밖으로 아무렇게나 내다 버렸다.
얼굴부터 지면에 떨어진 어린 윳쿠리는 아픔을 참는 듯 잠시 바닥에 퍼진 채 떨고 있었지만,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더니 썩 자연스럽지는 않아도 웃는 낯을 지어보이며 마리사를 바라봤다.

 

"느읏!? 늣...느그......늣...느늣~?"
"닥쳐! 너 같은 게 있으면 마리사는 느긋할 수 없다구! 느긋히 이해하라구! 이해했으면 느긋하게 뒈져 버리라구!"
"늣......? 늣!? 기, 기다려, 마리사!!"

 

주저 없이 어린 윳쿠리 머리 위로 뛰어오르는 마리사를, 정신 차린 앨리스가 서둘러 몸으로 밀어냈다.
간신히 어린 윳쿠리 옆으로 마리사를 밀쳐내는 데 성공한 앨리스에게, 잔뜩 인상을 찡그린 마리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잠깐, 앨리스! 어째서 마리사를 방해하는 거야!?"
"늣!? 미안......한 게 아니라!! 뭐야, 이 아이는!"
"늣......!?"

 

잠깐 움찔하긴 했지만, 마리사 이상으로 험악하게 쏘아붙이는 앨리스에 마리사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거기 있었던 것은 앨리스가 잘 아는, 밝고 활기 차면서도, 그러나 매우 겁 많은 윳쿠리 마리사였다.
순식간에 울먹이는 마리사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앨리스는 강한 어조로 질문해 나갔다.

 

"이 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영원히 느긋하게 하려고 하다니 전혀 도시파적이지 않아!  거기에 이 아이, 마리사랑 레이무랑 닮았는데, 혹시......"
"늣!? 아니야, 아니라구! 그딴 거 마리사의 아가야가 아니라구! 그런 느긋하지 못한 아가야 따위, 마리사는 모른다구!"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이 서툴구나, 마리사......"
"몰라몰라, 모른다면 모르는 줄 알아아!!"

 

어느새 조용해진 앨리스의 말을, 마리사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다.
너무도 느긋할 수 없는 기세로 고개를 젓는 것을 보고 앨리스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붕붕 휘둘리는 귀밑털에 맞을 것 같아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마리사가 갑작스럽게 뛰어 들었다.

 

"앗......!"
"너 같은 거 난 몰라. 모르는 윳쿠리는 뒈져 버리라구우우우우우우!!"

 

당황한 앨리스의 옆을 스쳐 지나간 마리사는, 어린 윳쿠리의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뛰어 올랐다.
착지 직후, 앨리스는 움직일 수 없었다.
성체 윳쿠리에게 깔린 어린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앨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그만 하라구!!"
"느갹!?"

 

갑자기 메아리치는 파츄리의 목소리. 동시에 뛰쳐 나온 윳쿠리 두 마리가 정면에서 달려들어 마리사를 물리쳤다.
조심스럽게 눈을 뜬 앨리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느앵느앵 울기 시작한 어린 윳쿠리와, 거꾸로 추락해 볼썽사납게 아둥바둥 거리는 마리사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파츄리가 느긋한 저부걸음으로 다가갔다.

 

"원래는 마리사한테 부탁이 있어 찾아온 건데......마리사, 파쳬는 저 아이에 대해선 아무 말도 들은 적이 없어. 다시 한 번 마리사 이야기를 듣고 싶어. 느긋하고 자세하게, 이번엔 솔직하게 전부 이야기해줄래?"
"늣......느읏......느긋하게 이해했다구......"

 

좀처럼 볼 수 없는 무리 우두머리로서의 위엄 앞에, 마리사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8― 
1주일 전까지는 두 마리 모두 행복했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각자의 부모와 친구인 앨리스, 그리고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정식으로 짝이 되겠다는 사실을 선언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리사가 발견한――것이라고 레이무는 믿고 있는――토끼굴에서, 두 마리는 함께 집 선언을 했다.

 

"여기는 레이무와 마리사의 집이라구~♪"

 

물론 반론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에, 즉시 그 굴은 두 마리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미로 같은 어두운 통로에 빛나는 이끼를 바르고, 구석진 장소에 있던 넓은 공간 중 한 곳에 햇빛에 말린 푹신푹신한 마른 풀을 깔았다. 습기가 적고 바람도 잘 통하는 장소를 찾아 식량고로 삼았을 땐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마리사는 레이무와의 아기 만들기를 요구했다. 형제가 없던 마리사의, 수많은 가족에 대한 강한 선망이 빚어낸 욕구였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첫날이고, 식량 비축분도 없는 것을 이유로 레이무는 몇 번이고 말리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마리사에게 떠밀리는 식으로 두 마리는 아이를 만들었다.
안 된다 안 된다 마리사를 말리긴 했지만, 이왕 생겨난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귀엽기 짝이 없는 법.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향해, 레이무는 상냥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아가야, 느긋하게 자라나라구. 레이무의 뱃속에서 느긋하게 느긋하게 있다 나오라구......"

 

볼록하게 부푼 배를 향해, 마리사는 밝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마리사도 아가야랑 같이 느긋하게 있고 싶다구! 아가야는 느긋하게 있지 말고 빨리 태어나라구!"
"......늣?"

 

싱글벙글 하던 레이무의 표정이 이내 얼어붙었다.
그런 레이무의 표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마리사는 경묘하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있지 말고 나오라구~♪ 안 그러면 느긋할 수 없다구~♪"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리사! 아가야는 아직 레이무의 뱃속에서 느긋하게 지내야만 한다구? 그런데 어째서!?"
"느응? 왜 그래, 레이무?"

 

기분 좋게 노래하고 있는데 정색한 레이무에게 방해받은 마리사는 뿌꾹~하며 뺨을 부풀렸다.
마리사는 레이무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레이무는 마리사의 노래를 방해하는 것일까. 아가야는 느긋하지 있지 말고 태어나야만 하는데.
아, 맞다. 레이무는 이런 간단한 것도 몰랐던 거구나. 그렇다면 가르쳐 줘야지.
왜냐하면,

 

"레이무의 뱃속에 있으면, 마리사가 아가야랑 느긋하게 지낼 수 없잖아?"
"......마......리사.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실례되는 얘기 하지 말라구! 마리사는 언제나 진심이라구!!"
"........................."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쩍 벌린, 레이무의 조금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던 마리사는, 레이무가 꽁꽁 언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을 틈타 레이무의 배를 툭툭 치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나~오라구~나~오라구~♪ 느긋하게 있지 말고 나오라구~♪ 안 그러면 느긋할 수 없다구~♪ 마리사가 느긋할 수 없다구~♪"
"......늣? ......느기익!?"
"늣!? 왜 그래, 레이무. 괜찮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무표정하던 레이무의 얼굴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본 마리사는, 노래와 가벼운 몸통 박치기를 멈추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이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표정으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레이무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늣!? ......으아아아아아아아!!"
"느햐악!?"
"악!? 아악!? 안 돼......나오면 안 돼, 아가야! 아직 레이무 뱃속에서 느긋하게지갸아아아아아악!? 아...안 돼! 안 돼! 안......느으으아아아아아악!!"

 

레이무의 커다랗게 부푼 배가 꿈틀거리며 격렬하게 준동했다. 입가에 거품을 물면서도 레이무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뱃속을 향해 말을 했으나, 결국에는 몸을 찢는 듯한 격통을 이기지 못하고 의식의 끈을 놓고야 말았다.
초점을 잃은 두 눈을 부릅 뜬 채 포효하듯 계속해서 괴성을 지르는 레이무.
처음에 괴성을 내지른 시점에서 무서워진 마리사는 레이무를 등지고 방 구석에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레이무의 절규가 커질 때마다 질끈 감은 눈에 더욱 힘을 주던 마리사는, 무언가 졸졸 흐르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어느새 레이무의 괴성도 멈춰 있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불룩한 배를 위로 하고 힘 없이 쓰러져 있는 레이무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와 같은 격렬한 준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배는 이따금 배배 꼬이듯 뒤틀렸다. 그럴 때마다 레이무는 힘 없이 신음소리를 냈고, 안쪽에서 밀려나듯 벌어진 마무마무에서 검은 물체가 툭 하고 떨어졌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퍼지는 검은 물체.
그 위에 작고 둥근 하얀 물체가 올려져 있었다.
마리사는 이끌리듯 다가가 그것을 살펴봤지만, 대체 그것이 무언인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원래 있어야 할 장소에 놓여있지 않으며, 원래 있어야 할 물건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레이무의 불룩한 뱃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생각하면, 그것의 정체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느응. 도무지 모르겠다구~?"

 

결국 그것이 검은 자위 없는 눈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마리사는 작고 하얀 구슬에게서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 다음 순간,

 

"......느으..........으으으으윽!"

 

레이무의 신음소리가 근처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마리사의 소중한 모자가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모자가!?"

 

하얀 구슬에 이끌린 마리사는 무의식적으로 레이무 앞에 서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흔들리는 모자 끝부분의 정면 위치에 레이무의 마무마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무가 신음소리를 냄과 동시에 레이무의 배가 크게 한 번 뒤틀리더니, 무언가가 엄청난 기세로 마무마무를 통해 튀어나왔다. 모자에 명중한 '그것'은, 그대로 모자와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기다려, 기다리라구! 마리사의 모자 씨이!"
"......느......으.......?"

 

머리 위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마리사는 영문도 모른 채 날아가 버린 모자를 뒤쫓았다.
엄청났던 아픔과, 그 이후의 아픔이 사라진 덕분에 레이무가 어렴풋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뒤쪽 벽까지 날아간 모자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마리사는, 그곳에서 자신의 모자에 파묻혀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검은 모자에 묻혀있어 몰랐지만, 꿈틀꿈틀 움직이는, 마리사처럼 검은 뾰족 모자를 뒤집어 쓴 작은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늣!? 설마, 마리사의 아가야.......?"

 

환희의 목소리는 급속히 사그러들었다.
분명 모자는 마리사를 빼닮은 검은 뾰족 모자였다. 머리 모양도 댕기 머리가 양쪽에 있긴 했지만, 윤곽만 보면 그 아이는 마리사와 매우 닮았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모자에 뒤지지 않는 윤기 있는 흑발이었고, 모자에 묶인 리본은 선명한 붉은색, 댕기 머리에 매듭지어진 리본은 흰색이었다.
'그것'은 마리사의 모자에서 빠져나오는데 생고생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자 끄트머리 위까지 굴러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리사를 닮은 눈동자로 마리사를 쳐다보더니, 힘찬 첫 마디를 내뱉었다.

 

"느읏!"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가 있다구?"

 

마리사는 위에 느긋하지 않은 윳쿠리가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의 모자를 끌어 당겼다. 당연히 '그것'은 바닥을 향해 굴러 떨어졌다. 다만 떨어졌을 때의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는지 가볍게 헤롱거리는 선에서 머물러 있었다.
모자에 잡힌 주름을 당기고 밟고 하며 정성껏 편 뒤, 툭툭 털어내는 마리사. 그녀는 모자가 깨끗한 상태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뒤, 소중한 모자를 머리 위에 뒤집어 썼다. 그 사이 그녀 주위를 느긋하지 않은 윳쿠리가 다소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마리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로소 쳐다봤을 때가, '그것'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 뒤였다.

 

"느읏~! 느으읏~!!"
"시끄럽다구......!"
"느삐익!?"

 

마리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것'을 귀밑털로 뿌리쳤다. 자신의 전폭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나비의 댕기 머리로 직격을 당한 '그것'은 소리도 못 내보고 하늘을 날았다. 낙하지점이 푹신푹신한 침상이 아니었다면, 땅바닥에 처박힌 충격으로 터져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리사는 오히려 왜 터져 죽지 않는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그것'을 침상에서 끌어낸 뒤, 눈물을 흘리며 쳐다보는 '그것'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마리사는 처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마리사의 저부를, '그것'은 그저 덜덜 떨며 바라볼 뿐이었다. 머리 위에 마리사의 저부가 닿자, '그것'은 조심스럽게 뺨을 갖다대며 부~비부~비까지 했다.
서서히 찌부러져 가는 사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 못한 눈치였다. 그래서 마리사는 냉담하게 가르쳐주기로 했다.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는 필요 없다구. 느긋하게 있지 말고 뒈져 버리라구?"
"늣..........?"
"마리사아아아아아아아!!"
"느뷁!?"

 

'그것'을 뭉개 죽이기 직전, 의식을 되찾은 레이무가 옆에서 몸통 박치기를 해 마리사를 튕겨냈다.
살짝 팥소를 토하며 바닥에 나뒹구는 마리사. 그런 마리사와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것' 사이를, 분노한 레이무가 가로막았다.

 


"이 아이는 레이무와 마리사의 아가야라구! 어째서 이런 심한 짓을 하는 거야!?"
"느......느극......레, 레이무야말로 왜 마리사한테 아야아야 하는 거야!? 애초에 그런 느긋하지 않은 윳쿠리 따위, 마리사의 아가야가 아니라구!"
"......늣?"
"마리사를 느긋하게 해주는 것이 마리사의 아가야라구?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가, 마리사의 아가야일 리 없잖아아아아아!!"
"........................."

 

레이무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치면서도 격하게 반발하는 마리사의 말에, 레이무는 표정을 지우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 겨우 이해했나 보다 하고 생각한 마리사는, 웃음을 띄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저기, 레이무. 그런 건 느긋하지 않게 죽여버리고, 이번에야말로 느긋할 수 있는 아가야를 만들우뷁!?"

 

말을 마치려는 순간, 얼굴 중앙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몸을 살짝 늘렸다가 내려찍듯 박치기를 가해 마리사를 지면에 처박히게 한 레이무에게서, 어금니를 부득부득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빠진 마리사는, 레이무의 표정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담담한 목소리만이 레이무 쪽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마리사. 이 아이가 느긋하지 못한 모습으로 태어나 버린 건, 뱃속에서 느긋하게 지내야만 할 때 마리사가 느긋하게 있지 말고 태어나라고 재촉해서 그런 거라구? 임신한 레이무의 배를 툭툭 치며 돌아다니다니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 태어나기 전에 영원히 느긋해진 아가야도 있었다구. 보기나 했어?"
"......뀨우......?"
"그런데, 또 레이무한테 아가야를 만들라구? 그렇게 또 뱃속에 아가야가 생기면, 이번에도 같은 짓을 하겠지......그런 거 레이무는 싫다구."
"......느붉......빠하아!? 느하......느하......"

 

할 말을 마친 레이무는 마리사에게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휙하고 몸을 돌렸다.
방치된 아기 윳쿠리에게 다가간 레이무는, 지금까지 아비의 폭력에 시달린 영향으로 잔뜩 겁에 질린 아기 윳쿠리에게 따뜻하게 볼을 부비기 시작했다.

 

"아가야, 부~비부~비 하자구. 부~비부~비......"
"늣!? ......느읏......느으으으으읏!!"

 

처음엔 조심스러워하다가, 잠시 후 눈물을 흘리며 달려들 듯 뺨을 부벼대는 아가야 윳쿠리의 모습에, 레이무는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아가야가 피곤해 잠들 때까지 뺨을 부벼대던 레이무는, 아가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개삽질하며 뭉개진 얼굴을 혀로 핥고 있던 마리사를 향해 말했다.

 

"......마리사, 이 아이는 레이무가 키울 거야. 마리사한테도 책임이 있으니 도와달라구. 느긋하게 이해하라구."
"느응? 어째서 그런 짓을 마리사가 해야 하는 거야? 헛소리 하지 말라구!"
"헛소리 하는 건 마리사라구우우우우우우!!"
"느갸아아아아아아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즉답으로 거절한 마리사를 보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던 레이무의 인내심의 끈이 툭 끊어졌다.
그로부터 얼마 뒤, 소란스러운 나머지 아가야가 울며 깨어날 때까지 레이무는 출산으로 체력이 소모됐다고는 여기지지 않을 기세로 마리사를 두들겨 팼다.
마리사가 '그것'에게 감사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9―  
"레이무? 아니면 마리사?"
"느읏?"
"느응......그럼 레이사, 레리사, 마리무......"
"느읏?"
"마이무."
"느읏!"
"능, 아가야는 마이무로구나. 마이무, 느긋하게 있으라구!"
"느읏~♪"

 

레이무와 마리사의 아이는 태내에서 생겨난 직후 마리사에게 위협받고 폭행당한 나머지 조금도 느긋하지 못하고 어미 뱃속에서 태어나 버린 영향 때문인지, 레이무와 마리사의 특징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말도 할 수 없었다. '느긋하게 있다 가라구!'조차 말하지 못했고, 그저 '느읏~느긋~'라고 하거나 울 뿐 대화는 성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말만 못하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다는 걸 안 레이무는, 끈기 있게 말을 걸며 아이의 반응을 꼼꼼하게 관찰함으로써 간신히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켰다. 이 레이무인지 마리사인지 알 수 없는 아이의 마음에 드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런 노력의 성과였던 것이다.
생김새가 이상한 것과 말을 못한다는 것, 이 둘을 제외하면 마이무는 너무도 솔직하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마리사는 그 두 가지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레이무의 눈을 피해 마이무를 죽여버리려고 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레이무한테 두들겨 맞았고, 결국에는 침실에서도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은, 식량 조달이 가능한 것이 마리사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이무는 출산 후에 체력이 떨어져 있었고, 마리사와 마이무를 함께 내버려두면 자칫 마이무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사에게 간절히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사도 처음부터 가장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식량조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마리사에게서 멀어진 레이무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꿍꿍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느긋하게 돌아왔다구! 대단하지, 레이무! 마리사는 이렇게 한가득 먹을 것을 챙겨왔다구!"
"......마리사?"
"느응? 왜 그래, 레이무?"

 

의기양양하게 사냥 나간 마리사는, 불과 십수 분 만에 모자를 빵빵하게 채워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수확물을 한껏 자랑했으나, 레이무가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래? 어째서 그런 눈으로 마리사를 쳐다보는 거야......?"
"마리사는 레이무한테 사냥을 잘 한다고 말했었지......한 가득 한 가득 나무열매 씨나 과일 씨를 레이무의 집에 가지고 와서, '마리사는 이렇게 사냥을 잘 한다구!'라고 했었지......?"
"느............읏!? 마, 맞다구. 마리사는 사냥을 잘 한다구! 그게 뭐 어쨌다구!?"

 

일찍이 레이무에게 프로포즈 하기 위해 부모에게 졸라 모아오게 한 음식 예물에 대해 떠올린 마리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모조리 마리사 혼자 모아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꺼림직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리사의 수상한 태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레이무는 마리사의 수확물 중 한 다발의 풀을 골라냈다.

 

"그거, 먹어 봐."
"늣! 괜찮아!? 느~응, 피곤해서 돌아온 마리사한테 제일 먼저 밥씨를 챙겨주다니, 레이무는 역시 훌륭한 아내 씨구나♪ 그럼 느긋하게 잘 먹겠습니다~"

 

레이무가 대충 골라 집어던진 풀들은, 마리사 눈에느 더 없이 맛있는 음식처럼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사냥 때문에 피곤했고, 배도 고팠던 탓도 있어, 마리사는 덤벼들 듯이 레이무가 내던진 풀을 물어뜯었다.

 

"우~걱우~걱! 졸라마시이거머야도기드러써!?"
"......하아. 그건 먹으면 아주아주 기분이 나빠지는 풀이라고, 파츄리한테 못 배웠어? 레이무는 어렸을 때 무리의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다구?"
"바리자그런거몰라......우웩......"
"아가야 쯤 되는 윳쿠리는 영원히 느긋하게 될 수도 있지만, 어른 윳쿠리라면 기분이 나빠지는 정도라고 말했다구. 조금 있으면 나아질테니까, 느긋하게 얌전하게 있으라구."
"느읏......읏......"

 

웃으며 달려들었다가 웃으며 팥을 토한 마리사를 싸늘한 태도로 힐끔 쳐다본 뒤, 레이무는 마리사가 가져온 수확물을 묵묵히 구분했다. 예의 풀을 발견했을 땐 마이무를 독살하려고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의심한 레이무였지만, 아무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독초를 먹는 모습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니, 마리사에 대한 인식이 애초에 잘못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레이무도 조금씩 눈치 채고 있었다.
마리사가 가져온 풀들은 집 근처에서 자라나는, 독은 없지만 질기고 맛이 없는 풀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숲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야 캘 수 있는 나무열매나, 볕이 잘 드는 언덕까지 가면 딸 수 있는 달콤한 향이 나는 꽃 등의 맛있는 음식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기적으로 풀벌레도 많을텐데 그조차 없었다.
요컨대, 마리사의 사냥이란 집 밖에 나있는 풀들을 닥치는대로 따온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마이무는 소화기능이 매우 약해, 레이무가 아무리 그런 질긴 풀들을 잘게 물어 먹기 좋게 해줘도 소화시키지 못했다. 그런 마이무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부드럽고 씹기 좋은 풀이, 몇 개나마 섞여있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짝이 되기 전에 보여준 사냥의 성과는 거짓말이고, 현재 눈 앞에 있는 대충 찾은 산더미 같은 풀들이 마리사 본래의 실력. 돌이켜 보면, 레이무가 무리의 윳쿠리들과 사냥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마리사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함께 지내며 즐거운 일만 봐 오다가 이런 뻔한 거짓말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가 마이무이며, 태어나지도 못하고 영원히 느긋해진 아가야였다.

 

"......우~걱우~걱......느욱......꿀꺽. 우~걱......"

 

골라낸 풀들을 먹기 시작했다.
질긴 풀, 쓴 풀, 가시 난 풀, 역겨운 풀, 가끔씩 섞여있는 독이 든 풀. 쉴새없이 입 속에 치밀어오르는 팥소 째로 느긋하지 못한 산더미 같은 풀을 집어삼켰다. 최대한 많이 먹어서 출산으로 잃어버린 팥소와 체력을――그리고 앞으로 혼자 마이무를 길러나가기 위한 힘을 비축해두어야 했다.
마이무를 보고 느긋하지 못한 것은 마리사 뿐만이 아니었다. 윳쿠리라면 많든 적든 그러한 감정을 품을 것이라는 사실은 레이무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기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
남은 것은 부드럽고 먹기 좋은 풀과, 질기고 맛은 없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닌 풀.
전자는 당연히 마이무를 위해, 그리고 후자는 마리사를 위해 남겨두었다.

 

"느읏!? 레이무, 어째서 밥씨를 혼자서 우~걱우~걱 해버린 거야!?"
"......마리사 몫은 거기 남겨뒀잖아. 그걸 먹으면 또 다시 사냥하러 가라구. 느욹......한 가득, 사냥하라구."

 

레이무는 생각했다. 맛있는 먹을 것을 구분할 능력이 안 된다면, 최소한 닥치는대로 모아오게 시키자고.
그 중에서 맛있는 것을 마이무한테, 맛 없는 것은 레이무한테, 남는 것을 마리사한테 주자고.
마이무는 쑥쑥 자라야 하니까, 레이무는 힘을 비축해야 하니까, 마리사는 일을 해야 하니까.

 

"늣......이 정도 가지고는 배 부르게 행복~할 수 없다구......늣!? 그쪽에 맛있어 보이는 풀씨가 있다구! 마리사가 먹으웱!?"

 

말을 안 들을 때에는 느긋하진 않지만 폭력을 행사하자.
소심하고 겁 많은 마리사는 조금만 위협하면 자기 말을 들을 테니까.

 

"마리사 몫은 다 먹었잖아! 레이무가 준 밥씨 말고 다른 걸 훔쳐먹으면 혼내 줄테니까 그런 줄 알아! 느긋하게 이해하라구!"
"느히익!? 아라써요오오오오오!!"

 

레이무는 이제 엄마야가 됐으니 아가야를 느긋하게 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자고, 조용히 각오를 다졌다.
그 날부터 레이무와 마리사는 함께 느긋해 하는 적이 없어졌다.
그래도 레이무는 마이무와의 생활에서 작은 느긋함을 맛보고 있었다.
마리사가 끌고 온 무리의 윳쿠리들에게, 그 목숨이 산산이 깨지는 그 날까지는―― 

 

 

―10― 
파츄리, 앨리스, 그리고 무리의 윳쿠리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윳쿠리들의 시선이 마리사에게 모였고, 마리사는 도와줄 윳쿠리를 찾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모든 이의 관심 밖에 있던 마이무는, 엄마야였던 것의 시체 옆에 가 있었다.

 

"느으......느그......! 느그이......!"

 

뺨을 대고, 혀로 핥고, 서투르지만 열심히 엄마야를 부르는 작은 모습. '느긋하게 있다 가라구'라고 하면 대답해줄 줄 알았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무리의 윳쿠리들에게도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려고 하는 윳쿠리는 한 마리도 없었다.
마이무를 보려고 하면, 자신들이 힘을 합해 패죽여버린 레이무의 모습도 같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리사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레이무를 죽인 것은 너무도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와서 레이무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윳쿠리는 이 무리에 한 마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은 분노와 죄책감을 품고서 마리사에게 똑바로 향했다.
그리고 마리사는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다들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느읏......느긋하지 못한 꼬맹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 안 한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구. 하지만, 이런 느긋하지 못한 걸 레이무가 출산했다는 소리를 마리사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한 거라구...?"

 

나름 심사숙고 끝에 찾아낸 '모두들 화를 내는 이유'란 것이, 느긋하지 못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모두에게 숨겨왔기 때문에, 였다. 
분명 윳쿠리는 기형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예를 들어 윳쿠리는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장식물에 상처가 나는 것만으로도 모멸감을 가지며, 잃어버릴 경우 살의를 갖고 배척할 정도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특징을 뒤섞어놓은 모습의 마이무를 비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은 평범한 윳쿠리라면 공감할 만 했다. 마이무를 단숨에 죽여버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윳쿠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요점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마리사......"

 

파츄리가 힐문한, 레이무와 살았던 마리사의 1주일.
마리사는 생각나는 1주일 간의 모든 일을 하나도 숨김없이, 과장도 왜곡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레이무는 마리사를 느긋하게 시켜주지 않는, 못된 윳쿠리라구!' 라고.

 

"너는......네가, '데이부'야."
"늣......? 마리사는 마리사라구? 데이부는 레이무잖아? 마리사가 아니라구?"
"무큐, 그렇지 않아."

 

곤혹스러운 표정을 띄운 마리사에게, 파츄리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 슬픔은 마리사의 무지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레이무에 대한 회고인가.
그녀의 슬픔도 한 번 눈을 감았다 뜬 뒤에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무리의 우두머리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파츄리는 담담하게 마리사에게 알려주었다.

 

"데이부란 건 말야, 자신의 느긋함을 위해서라면 악의 없이 다른 윳쿠리를 짓밟는 '윳쿠리'를 가리키는 말이야. 그게 싱글마더 레이무 중에 많으니까 레이무들을 욕하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말야."
"느......늣?"
"파쳬는 잘못해서 레이무한테도 말해버렸지만...마리사한테도 말해줄게."

 

오만한 태도와 차가운 시선으로 마리사의 간절한 시선을 명확하게 거절하는 파츄리.

 

"파쳬의 무리에 데이부는 필요 없어! 마리사는 파쳬의 무리에서 추방할 거야!!"
"늣......"

 

파츄리의 선언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진 마리사는 마치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다 차츰 말 뜻을 이해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이 촉촉히 젖으며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런......그러면 느긋할 수 없다구......?"

 

오른쪽을 바라본다. 소꿉친구 앨리스가 눈물 젖은 눈에 적의를 담아 노려보고 있었다.

 

"마리사는 느긋하고 싶었을 뿐이라구? 마리사는 느긋하게 지내야만 한다구?"

 

왼쪽을 바라본다. 레이무의 가족이 살의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잘못한 건 레이무잖아? 마리사를 조금도 느긋하게 시켜주지 않은, 아주아주 못된 윳쿠리였다구?"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마리사를 동정하는 윳쿠리는 한 마리도 없었다.

 

"잘못한 건 느긋하지 못한 그녀석이잖아? 레이무가 그런 걸 낳아가지고 마리사는 느긋할 수 없었다구? 다들 저걸 보고 느긋할 수 없잖아!? 맞지!? 맞지!!"

 

마리사를 도와줄 것 같은 윳쿠리를 찾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제 편이 되어줄 자상한 부모는, 마리사와 레이무가 짝이 된 바로 그 날 영원히 느긋해져 있었다. 과로사였다는 걸 마리사는 알 리가 없었다.

 

"시러......시러......시러시러시러어어어어어어어!!"

 

그 다음은 더 이상 말이라고 볼 수 없었다.
큰 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도망치려던 마리사는, 주위의 윳쿠리에게 간단히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들어올려진 마리사는, 대성통곡하며 무리 밖으로 끌려나갔다.
중간에 몇 번이고 탈주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철저한 보복이 강해졌을 뿐 결국 도망치지도 못했다.
이때 가장 가열차게 공격한 것이 앨리스였다.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윳쿠리는 바위산 절벽에서 내던지는 것이 이 무리의 규칙이었다. 마리사도 규칙에 따라, 까마득한 높이에서 단단한 바위 위로 내던져졌다.
윳쿠리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낙차가 있는 건 아니라서, 마리사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의 윳쿠리들로부터 받은 폭행당한 상처와, 바위에 부딪혔을 때 생긴 터진 자국. 중상을 입은 마리사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조용히 쇠약해지기만 할 것이다.

 

"마리사......그냥......느긋하게......있고 싶었을 뿐......인데......"

 

그 소리를 듣는 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11― 
마리사를 옮기던 패거리와는 따로, 그 자리에 남은 윳쿠리들이 있었다.
앞서 레이무와의 격전으로 다친 윳쿠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중에는 파츄리도 남아있었다.
마리사는 앨리스들에게 맡기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토록 화를 내고 있었으니 쓸데없이 봐주거나 할 걱정도 없었다.
그렇기에 파츄리는 그 사이에 뒷처리를 해둘 생각이었다.
하나는 레이무의 시체 매장.
아무렇게다 내버려진 상태로는 너무 불쌍한데다, 오해로 인해 살윳을 저지른 무리의 윳쿠리들을 위로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의 배제.

 

"느그히! 느그히! 느그......느읏?"
"미안해."
"느뀻!?"

 

여전히 엄마야를 애타게 찾고 있던 마이무의 뒤로 슬며시 다가가, 마이무가 눈치 챘을 땐 이미 저부로 짓누르고 있었다. 이제 체중을 싣기만 하면 단숨에 뭉개져 죽을 것이다.

 

"파쳬의 무리에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는 필요 없다구."

 

모든 것은 파츄리의 무리가 보다 느긋해지기 위함이었다.

 

"느긋하지 못한 윳쿠리는 얌전히 뒈져 버리라구."
"――참 이상하네?" 
"......무......큐......?"

 

마이무를 죽이기 위해 중심을 앞으로 옮기던 파츄리의 귓가에, 기억에는 있지만 왠지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절대 들릴 리 없는 목소리.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
눈을 뒤집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자, 한쪽만 남은 눈과 마주쳤다.
입 속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시체의 입이 움직였다.
혓조각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지만, 오히려 발음은 더욱 확실해졌다.

 

"이RUN곳에제멋DAE로인윳쿠리를위해레이무의아가야RUL짓밟으려고하는, 데이부가있다GOO?"
"무큐......우, 레, 레, 레이무웃!?"
"저GI, 파츄리이......?"

 

파츄리는 안 그래도 하얀데 더욱 새하얗게 질린 채 몸을 떨었다.
뭐야이게뭐야이게뭐냔말이야이게!?
파츄리의 입은 덜덜덜덜덜덜덜 이빨을 부딪히는 데 정신이 팔려 말도 내뱉지 못했다. 때문에 마음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레이무는 영원히 느긋해졌잖아? 어째서 움직이는 거야? 살아있었어? 저렇게나 많은 나뭇가지에 고슴도치가 됐는데? 살아있을 리 없잖아? 어째서 살아있는 거야?
왜 다가오는 거지!? 레이무의 느긋하지 못한 아가야를 아직 못 죽였단 말야!?
여기 아가야 돌려줬잖아? 이쪽으로 오지 말라구. 느긋하지 못한 레이무는 느긋하지 못한 아가야랑 같이 파쳬의 무리 밖으로 알아서 느긋하게 나가라구. 이쪽으로 오지 말라구, 부탁이니까 이쪽으로 오지 말고 나가......

 

"무뀨우우우웃! 부타기니까무서운데이부는파쳬한태다가오지말라고오오오오오!"
"레이무의아가야를, 마이무를느긋하게해주지않는윳쿠리는..."

 

그저 떨고만 있는 파츄리에게 느긋하고 느긋하게 다가온 레이무는, 볼이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대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윳쿠리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레이무가......저어어어어어얼대로오오오용서하지않을거야아아아아아아아!!"
"느갸아아아아아아아!!"

 

마리사를 버리고 돌아온 앨리스가 본 것은, 거품과 팥소를 뿜어내고 졸도한 파츄리들의 모습.
그리고 파츄리 옆에서 반쯤 뭉개진 레이무의 모습과,

 

"느긋치! 느긋치이!!"

 

어미의 주검 옆에서,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느긋히'를 계속 불러대는 마이무의 모습이었다.

 

 

―12― 
숲 속 어떤 무리에, 아이를 혼낼 때 쓰는 어떤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 무리의 윳쿠리 팥소에 깊이 각인된 공포와 함께, 영원히 이 무리에 전해질 이야기.

 

"얘! 제멋대로 느긋하게 있다간, 데이부가 올 거야!"
"삐꺄아아아아아아아!? 데이부무서워어어어어어어어어!!"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인지, 이 무리는 숲에서 가장 느긋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붉은 리본을 두른, 검은 모자를 뒤집어 썼다고 하나, 진위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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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我慢あき

 

  • ?
    Tro 2016.06.04 10:04
    마리사 발암이 장난이아니넹...
  • ?
    얏얏 2018.01.31 21:35
    으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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