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20.01.19 03:04

1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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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후후후... 마리사는 느긋하다제."

 

1월. 윳쿠리들에게는 가혹한 계절. 땅은 얼어서 뛰어다니는 것조차 고통스럽고. 바람에 머리장식이 날아가며. 뾰족하게 솟은 고드름에 몸이 꿰뚫려 죽어가는 계절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마리사는 느긋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 이유야 당연히 월동 준비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골판지 상자에 천을 두르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자기 몸보다 무거운 돌덩이를 가져다 놓고. 여름과 가을에 잠조차 줄여가며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식량을 모아놓고. 인간들이 가져다 버린 페트병에 물을 받아 얼지 않게 낙옆과 신문지로 잘 말아놓은 마리사의 노력은 모히칸 학대파들도 엄지를 들어 올릴 정도로 철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마리사가 철저하게 독신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가지면 먹을 입이 늘어나고. 동시에 말할 입도 늘어난다. 분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가족을 죽이는 것은 하수. 아예 혼자서 살아남는 것이 고수라는 것을 이 마리사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밥을 먹는 것조차 이 마리사는 조심스러웠다. 겨울은 인간도 박해지는 계절. 시끄럽다는 이유로 그동안 모은 것이 단번에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리사는 최대한 소리를 줄여가며 봉지에 담겨있는 감자칩을 오물오물 녹여가며 목으로 넘겼다.

 

짭잘함과 눅눅함이 섞여있는 감자침의 맛. 중추팥소에 각인된 그녀의 본능이 '상쾌애애애~!'를 외치고 싶었지만. 장하게도 마리사의 이성은 그것을 억누를 수 있었다.

 

입에 묻은 부스러기도 혀가 아니라 신문지 조각을 이용해 떼어낸다. 침은 얼어버려 얇은 피부가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추,,ㅡㅍㄹㅍ추추춘룽ㅍ 사사ㅡㅏ흐가하ㅡ사흐ㅏㅅ....."

 

그 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온다. 문득 호기심이 동한 마리사가 천을 열고 바깥을 들여다보자. 그곳에는 몸의 한 8할 정도가 얼어있는 바짝 마른 레이무가 있었다.

 

눈은 퀭하게 말라붙어있었고. 레이무 종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귀밑털 한 쌍도 너덜너덜하니 금방이라도 뜯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입가 주위는 희미하게 살얼음이 끼어있었고. 입술은 오히려 바짝 말라서 주름이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느늣. 겨울나기 준비를 안한 멍청이라제."

 

그것 뿐이었다. 어쩌면 저 레이무도 자신같이 풍족하게는 아니더라도 저렇게 비참한 꼴로 죽어가지는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스윽.

 

오싸아아악.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득 레이무와 마리사의 눈이 마주쳤다. 저 눈빛. 마리사는 저 눈빛을 알고 있다. 질투에 가득찬 눈. 나는 배고픈데. 어째서 너는 배부른 거야. 나는 추운데. 왜 너는 따뜻한 거야.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왜 너는 느긋한 거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런 말하지 못한 증오와 질투와 시기가 눈빛을 향해 전해져왔다. 마리사는 집으로 들어가 날카롭게 갈아놓은 생선 가시뼈를 잡아들었다. 

 

팍! 팍!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귀밑털로 힘을 실어가며 마리사의 골판지 상자로 다가온다. 살기 위한 발악. 먹기 위한 발악. 느긋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레ㅔ렏이ㅜㅇㅊ나ㅓㅜ무두ㅜㅜ도ㅗㅗㅗ 느ㅡㅡ그ㅡㅡ지ㅡㅣ치ㅣㅔㅣㅣㅣ"

 

이미 언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괴성을 내지르며 레이무는 계속해서 상자로 다가왔다. 한 뼘. 그리고 또 한 뼘. 천천히 레이무는 다가왔다.

 

툭.

 

하지만 더 이상 그녀는 나아갈 수 없었다. 너덜너덜하던 귀밑털 하나가 드디어 한 많은 의무를 마치고 레이무의 곁에서 그 존재 의의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레이무는 잠시 멍한 얼굴로 그것을 쳐다보다. 자신의 것이었던 것을 줍기 위해 다른 쪽 귀밑털로 그것을 잡아올렸다.

 

툭.

 

그러나 그것조차. 한 없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갔다.

 

"......"

 

레이무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더니. 다시 몸을 돌려 마리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레이무의 말라버린 눈에서 마지막으로 쥐어짜낸 듯한 눈물이 흘려내렸다.

 

"느그타게.....느그타게 이쓰라구!"

 

마치 악을 쓰듯.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듯 레이무는 그나마 정확한 발음으로 마리사를 향해 말했다.

 

"느그타게 이쓰라구! 느그타게 이쓰라구! 느그타게 이쓰라구!"

 

콰앙!

 

그렇게 한 서너번을 말했을까.  지나가던 트럭에 의해 레이무는 그 짧은 생을 마감했다. 트럭의 바퀴자국을 따라 갈색 팥소가 얼어붙은 길거리에 흩뿌려졌다.

 

"..느긋하게 있으라제."

 

마리사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천을 여물었다.

 

1월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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