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 업체의 직원들은 기묘한 침묵에 당황하고 있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훈련소라면 모를까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모였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리 없다. 옆의 사람과 잡담을 하기만 해도, 뻐근해진 어깨를 두드리기만 해도,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기만 해도 소리는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내는 소리도 물론 있었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도 있다. 참새가 날아가며 수풀이 버석이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곳이 방금 윳쿠리 구제가 시작된 공원이라는 것을 고려하자면 이것은 확실히 침묵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뭐야 이거...”
같은 옷을 맞춰 입은 인간씨들이 잔뜩 공원에 몰려온다. 그것이 일제 구제를 뜻한다는 것은 길윳쿠리라면 다 알고 있다. 윳쿠리들의 집단 무의식에 그렇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 공원의 윳쿠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얘네 좀 이상한데요?”
일제 구제다아아아-! 하는 외침이 울려퍼지고, 공원은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윳쿠리들로 아수라장이 된다. 그것이 윳쿠리 일제 구제의 광경이다. 그러나 이 공원의 윳쿠리들은 달랐다. 윳쿠리들은 도망가기는커녕 마중이라도 하듯 직원들 앞에 모여들었다. 이것이 일제 구제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모여든 윳쿠리들 모두 부들부들 떨며 설탕물을 흘리고 있었으니까.
“도망가 봤자 소용없단 걸 아는 걸까요?”
“윳쿠리가?”
“것도 그렇죠-”
뭐가 어찌됐든 윳쿠리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지만, 직원들은 조금도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느읏...!”
시시덕거리며 스마트폰으로 윳쿠리들을 찍는 직원들 앞으로 마리사 한 마리가 나섰다.
“마리사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마리사들도 잘 알고 있는거제...!”
윳쿠리와 인간의 시선이 모두 마리사에게 집중되었다.
“마리사들이 약하다는 건... 마리사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거제...!”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설탕물을 흘려대면서도 - 마리사는 꾸물꾸물 직원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치만... 할 수바께 업능고제...? 마리사들바께 업능고제...? 이길 쑤 있느-”
“뭐냐 윳쿠리 주제에 뒈질라고 내가 좋아하는 명대사 치지마라.”
짓밟힌 마리사의 입에서 팥소가 쏟아져 나왔다. 마리사는 곧바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느...느아아아아아아!!”
“도시파아아아아!! 도시파아아아아!!”
“첸이 가족을 지키는거라구우우우!! 알고이써어어어어!!”
누가 시-작이라고 외치기라도 한 것처럼 윳쿠리들은 일제히 직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느긋할 수 없는 인간씨는 얼른 사라지라구우우!! 뿌꾸-! 뿌꾸게에에엑!!”
“마리사는 아가야들을 느긋이 지킨다구우우우! 느, 느그, 느부게에엑!!”
윳쿠리들을 생포하려는 직원은 아무도 없다. 가공소는 이제 길윳쿠리들을 받지 않는다. 무슨 상품이 되었든 길윳쿠리를 썼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곧바로 외면받기 때문이다. 기껏 생포해 봤자 어차피 보낼 곳이 없으니 살처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일단 한데 모은 뒤 한 번에 살처분 하는 것이 효율적일 테지만 그럴 수도 없다. 몇 년 전 구제 업체로 위장한 애호 단체가 길윳쿠리들을 살처분하지 않고 다른 곳에 풀어주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는 현장에서 즉각 처분하는 것으로 규칙이 바뀌었던 것이다.
5분도 되지 않아 윳쿠리의 절반이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느히이이이잇!! 무리였다구요오오!! 처음부터 무리였던 거라구요오오!?!?”
아직까지 멀쩡하던 윳쿠리 중 일부가 도망가려 하지만, 어차피 도망갈 만한 곳은 이미 직원들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느으으으으!! 마디자능 끄까지 싸우능거제에에에에!! 절대로 인간씨에게 굴보카지 안능거제에에에!! 느그시...! 느그시이이이이!!!”
나머지 윳쿠리들은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았지만, 그것은 작업에 드는 시간을 단축시켜주었을 뿐이었다. 윳쿠리들의 울부짖음은 빠르게 잦아들어갔다.
약 15분만에 구제 작업은 끝이 났다.
“여기도 끝났고... 청소 업체 분들 오셨나?”
“아직 안 오신 거 같은데요. 전 구역에 워낙 많았어 가지고...”
현장 처분이 원칙이 됨에 따라 구제 방식에도 달라졌다. ‘구제 업체’가 현장에서 윳쿠리들을 처분하면, ‘청소 업체’가 그 뒷정리를 하는 식으로 분업화가 된 것이다.
“저희끼리 이동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어차피 구역은 다 아실테고.”
“뭐 그렇긴 한데... 아, 저기 오시네.”
직원은 손을 들어 청소 업체 직원들을 불렀다.
“여긴 얼마 없어요. 저희도 여유가 좀 있어서 너무 지저분하게 해놓진 않았으니까 좀 편하실겁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청소 업체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청소 업체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신속하게 뭉개진 윳쿠리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니 뭐,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는데...”
“저기! 저 앨리스부터 옮겨!”
“조심, 조심해!”
“아니 뭐, 그렇게 조심하실 필요도... 그냥 대충 던져 넣으시면...”
청소 업체 직원들은 직원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음... 되게 열심히 하시는 게 보기 좋네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죠.”
정중한 미소를 유지한 채 청소 업체 대표는 대답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 그럼 저희는 바로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어딘지 아시죠?” “네.”
“그럼 다음 구역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 이동한다!”
쉬어야 할 만큼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구제 업체 직원들은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청소 업체 대표는 차가운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구제 업체 직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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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능~느응~ 느긋이~♩ 느응~능~능~ 느긋이~♪”
“늉! 먀리쨔으~! 쨔쨔쨔~! 뉴웅! 먀리쨔으~! 쨔쨔쨧~♬”
“뉴뀨탸은 냘~♩ 댜~쿄먀안 냘~♪ 늉! 댜쿔댜쿔쒸잇~♬”
도로변의 가로수 아래. 어느 윳쿠리 일가가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레이무들의 노래에 맞추어 마리사가 춤을 추고 있다, 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레이무 두 마리는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 게다가 어미 레이무의 노래는 사실 평소의 능능거리는 울음소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 새끼 마리사의 씰룩임은 노래와는 조금도 맞지 않았다. 출근 시간은 이미 지났고, 점심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때문에 도로는 한산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윳쿠리 일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인도 맞은편에 있는 가게의 주인뿐이었다.
“하아...”
가게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부쩍 저런 것들이 눈에 자주 띈다. 가게 앞에 있기만 해도 충분히 시각 공해인데 저렇게 소음 공해까지 일으키다니.
“잠깐 나갔다 온다.”
“어디 가시게요?”
“아... 하긴 슬슬 손님들 올 시간이니...”
직원의 물음에 말없이 윳쿠리들을 가리켜 보이는 것으로 대답한 다음, 가게 주인은 가게 밖으로 나섰다. 이제 슬슬 손님이 몰릴 시간이다. 그 전에 처리해 둘 필요가 있다.
“느늣! 인간씨! 느긋이 있으라구!”
“뉴뀨찌 이쓔랴졔!”
“뉴웃찌 이쓔랴뀨!”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간씨를 본 레이무가 인사를 건넨다. 그나마 노래 값을 내놓으라 하진 않는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주거나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새끼 마리사와 새끼 레이무도 따라서 인사를 한다. 세 마리 모두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환하게 웃고 있다. 곧 인간씨에게 밟혀 으깨질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민폐를 끼치는 존재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리라.
“늣! 레이무는 레이무라구! 레이무는 노래씨-!로 느긋할 수 없는 인간씨들에게 느긋함을 나눠주고 있다구!”
“뉴늉! 레-뮤뉸 레-뮤랴뀨!? 레-뮤됴 노래쒸-!료 뉴웃탸찌 묘탼 인갼쒸듈햔톄 뉴웃찌!률 냐뇨쥬꾜 있늉고녜!”
“챠챠챳-! 먀리쨔뉸...! 늉! 챠챠-챳! 늇, 먀리쨔인고졧! 늉! 먀리쨔뉸...! 챠챠챳! 댼-쓔쒸ㄹ”
엉덩이를 들이대며 인사를 하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가. 그것만이라면 모를까 들이댄 엉덩이를 씰룩대기 까지 하니 약을 올리려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게 주인은 발을 들어 새끼 마리사를 밟았다. 그리고 발에 체중을 실어 담배 꽁초를 끄듯 바닥에 문댔다.
“늣?” “늇?”
가게 주인의 매콤한 신발에 자비는 없었다. 레이무의 아가야는 인간씨의 신발로 대체되었다.
“느, 아, 아가... 아가야아...!?”
“언냐-아...? 뉴... 뉴뀨찌...?”
가게 주인이 발을 들자 레이무 두 마리는 주춤주춤 새끼 마리사(였던 것)에 다가갔다. 혀를 내민 채 새끼 마리사(였던 것)의 주위를 기웃거린다. 낼-름낼-름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차원의 얼룩이 되어버린 새끼 마리사(였던 것)에게는 핥을 만한 부분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윳쿠리만이 맡을 수 있는 죽음의 냄새가 피어오른다. 레이무들은 드디어 새끼 마리사가 짓이겨졌음을 깨달았다.
“느, 느, 느아아아아아아...!!! 아가야아아아아!!”
“언냐아아아아아!?!? 어쨰져어어어어!?!? 어째져 이룐 짓슐햐늉ㄱ”
“느가아아아아아아!! 데이부들 달믕 아가야까지이이이이!?!?”
새끼 레이무가 곧바로 언니야의 뒤를 따라간다. 가게 주인이 나온 지 1분도 지나기 전에 레이무는 아가야를 모두 잃고 혼자가 되었다.
“어재더 이던 지스- 느부엑!”
귀밑털을 파닥이며 울부짖던 레이무에게 가게 주인의 발이 날아들었다. 입 바로 위, 인간이라면 코가 있을 부분에 신발 앞코가 파고들었다.
“느그우우우우우웃!!”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다. 새끼라면 모를까 성체 윳쿠리는 뭉갠 것을 치우기 귀찮다. 가게 주인은 그저 적당히 겁을 줘 쫓아버릴 셈이었다.
“아, 아바, 아바아아아아아아!! 데이브으 어구이 아하아아아아!!”
그럼에도 가게 주인의 신발은 레이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혔다. 입 위가 함몰되며 반죽이 쭈그러든 탓에 레이무는 제대로 입을 다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발차기의 충격에 윗이빨도 몇 개인가 쑥 빠져버리고 말았다.
“쯧...”
가게 주인은 곧바로 가게로 돌아갔다. 바닥에 들러붙은 새끼 윳쿠리들을 치울 도구를 가져오려는 것이었다.
“저것들 요즘 너무 많이 보이네요, 진짜.”
직원은 눈치 빠르게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아주 미치겠다. 어제도 세 번이나 오더니만.”
가게 주인은 짜증을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뉴스 보니까 이번 겨울이 좀 따뜻해서 그렇다던데요. 작년 세 배쯤 된다던가.”
“세 배도 더 될 걸? 대체 얼마나 불어난 건지 원...”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돌아온 가게 주인을 보고, 레이무는 느히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레이무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서 바닥의 얼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쯧...”
홧김에 너무 세게 밟았던 것일까. 바닥에 들러붙은 납작 만쥬는 빗자루로는 잘 떼어지지 않았다. 혀를 차며 거칠게 빗자루를 놀리던 가게 주인은 아예 쓰레받이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이게 훨씬 낫구만... 응?”
“...흥,흥,흐읏, 흐으히... 흐응, 흥, 흐, 흐으히...!!”
모자 붙은 얼룩을 전부 긁어내고 이어서 리본 붙은 얼룩을 긁어 내려던 가게 주인에게 거슬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도망갔으리라 생각했던 레이무였다.
“얼씨구?”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눈빛으로 가게 주인을 바라보며 레이무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느긋한 노래로 느긋하지 못한 인간씨들에게 느긋함을 나누어준다. 레이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윳쿠리에게 관심이 많은 오니상들이었다면 눈을 빛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게 주인이 윳쿠리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혐오뿐이었다.
“야야! 여기 쓰레기 봉투 좀 갖다주라!”
종업원에게 그렇게 외치고 가게 주인은 빗자루를 들어올렸다.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레이무조차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공포에 질려 귀밑털을 파닥이면서도 레이무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모두 앨리스를 보는거라구요오오오오!!”
치켜들었던 빗자루가 내리치려던 순간, 또 다른 윳쿠리의 괴성이 레이무의 윳생을 조금 더 연장시켰다.
“앨리스는, 조금도 느긋할 수 없는거라구요오오!!”
한 마리의 앨리스가 악을 쓰며 인도 한복판을 꿈질꿈질 기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던 레이무와는 달랐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앨리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앨리스 스스로의 말대로 앨리스의 상태는 처참했다. 한 쪽 눈은 내려앉아 있고, 더러운 몸뚱이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가려움 때문에 까칠까칠한 곳에 마구 문질러댄 탓에 머리카락은 물론 머리띠조차 성한 곳이 없었다. 요식업자의 악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몸씨가 전부 아-야아-야라구요오오오!?!? 곰팡이씨는 정말로 가려워 가려워 라구요오오오!! 앨리스는... 앨리스는 곧 영원히 느긋해진다구요오오오!!”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몸뚱이었지만 거기서 나오는 광기어린 목소리는 사람도 얼굴을 찌푸릴 정도로 컸다.
“그치만... 그치만 앨리스는 느긋하고 있다구요오오오!! 그래도... 그래도 느긋하고 있다구요오오오!?!?”
확실히 그랬다. 가려움과 고통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몸뚱이를 부들부들 경련하면서도 - 앨리스는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앨리스는 가는거라구요!! 하늘에 있는 윳쿠리...”
펄펄 끓는 물이 쏟아져 앨리스의 목소리를 막았다.
“...느, 느, 느끼, 느끼이이...!!”
카페 주인은 앨리스의 비명이 높아지기도 전에 또 다시 끓는 물을 끼얹었다. 쩍 벌린 입 안에 쏟아져 들어간 끓는 물이 앨리스의 내부를 녹여냈다. 앨리스의 아냐루에서 크림과 물이 섞이 액체가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앨리스의 숨통은 이미 끊어졌지만 카페 주인은 멈추지 않았다.
“휴우... 하이고, 근데 이걸 이제 어쩐다?”
완전히 걸쭉해진 앨리스를 보며 카페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팽형당한 앨리스의 시체는 한 달 정도 상온에 방치한 스튜 같은 모양이었다. 손은 커녕 발도 대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은 물이나 좀 더 끓여와요. 이건 내가 치울 테니까.”
“아이고 그래요? 이거 감사합니다.”
“저기 저 빨간 거까지 마저 치우고 빗자루는 버려버리지 뭐. 안 그래도 바꿀 때가 됐어요.”
가게 주인은 빗자루로 녹아내린 앨리스를 쓸어 하수구에 흘려 보냈다. 아마 막히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장마철이 되면 수도 없는 윳쿠리 익사체가 흘러들지만 그것 때문에 하수도가 막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흐흐히-이! 흣, 흐흐히이!”
한편 레이무는 기쁨시시를 흘려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려던 인간이 갑자기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레이무가 나누어준 느긋함에 인간씨의 숨겨왔던 상냥함이 따뜻하게 피어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흐흣히! 힌한히! 흐흣히 히흐하후우!!!”
끼이이이이이익!!!
“꺄아아아악!”
“우아악! 뭐야, 뭐야?”
인도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차도에서 미끄러져 나온 자동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괜찮아요?”
황급히 달려온 가게 주인이 운전석을 들여다보았다. 충격이 그리 크진 않았던 모양인지 에어백도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운전자는 넋이 나가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하마터면 인도를 덮칠 뻔 했던 것이다.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봐요!”
가게 주인이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리자 운전자는 겨우 고개를 돌려 가게 주인쪽을 보았다. 운전자는 차의 시동을 끄고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허억... 허어... 죄송합니다. 사람은... 사람은 안 다쳤나요?”
“사람은 다 괜찮아요. 그쪽이야 말로 괜찮아요? 얼굴이 새하얗네.”
“예, 뭐... 아니 저기서 윳쿠리들이...”
“흐히이이이잇!! 히, 히이이잇!!”
비명이 운전자의 말을 끊었다. 멈추어선 자동차 앞바퀴에 깔린 레이무의 것이었다.
“헤-후으 할히하아아아아!! 흐, 흐...”
“또, 또, 또, 또 네놈들이냐!!”
운전자는 분노의 고함을 터트리며 레이무의 얼굴을 발로 차 터트렸다. 보통 사람들이 윳쿠리를 잡을 때는 힘조절을 하기 마련이다. 딱히 세게 치지 않아도 죽이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세게 쳐 봐야 이리저리 튄 파편을 치우기 귀찮아 질 뿐이다. 그러나 운전자는 있는 힘을 다해 이제 거의 남은 것도 없는 레이무를 짓밟아댔다.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죄송... 죄송합니다. 방금 윳쿠리를 밟고 미끄러져서 이렇게 된거라... 일주일 전에 똑같이 사고 날 뻔 했는데 이번에 또 이러니까 진짜...”
레이무를 소거하는 것으로 조금은 분이 풀린 것일까. 운전자는 털썩 주저 앉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올해 윳쿠리가 엄청 늘긴 했다더만. 여기도 그것들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파요.”
“네... 네.”
“그, 보험사에 연락이라도...”
“아, 네.... 해야죠. 감사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운전자를 보며 가게 주인은 자신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를 걸 곳은 말할 것도 없이 구청이었다.
윳쿠리가 많아졌다. 윳쿠리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을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윳쿠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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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해온 음식물 쓰레기를 우걱우걱하려 고개를 숙이던 레이무와 마리사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느…아…?”
그 무언가는, ‘발’이 없는 윳쿠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윳쿠리들을 땅바닥에 늘러 붙은 팥소 얼룩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신발’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고개를 든 레이무와 마리사의 눈이 인간씨의 눈과 마주쳤다.
“느, 이…인간,씨…?”
“느…느긋할 수…없다구…?”
레이무와 마리사는 인간씨를 올려다보며 부르르 떨었다. 인간씨는 레이무와 마리사를 내려다 보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미소란 것은 우호의 표시이다. 윳쿠리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레이무와 마리사는 인간씨의 미소에서 우호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뉴뉴웅! 먀리쨔으 슈-뻐 우꺽우꺽- 탸임민고졔!”
얼어붙은 레이무와 마리사. 그리고 그들을 조용히 내려다 보는 인간씨. 그 사이에 놓인 살얼음 같은 침묵 아래로 새끼 마리사가 기어간다. 곧 맛볼 맛있는 음식 쓰레기에 잔뜩 신이 난 목소리이다. 보란 듯이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이느라 좌우로 비틀비틀 똑바로 기지도 못한다.
“뉴-웅? 엄먀야? 아뺘야? 왜 구로뉸고제? 우꺽우꺼-”
형산(兄山)은 조용히 발을 들어 올려 최후까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새끼 마리사를 밟았다. 이렇다 할 소리도 없이 새끼 마리사는 완전히 으깨졌다.
“아, 아가야…?”
“느…느으으읏…!”
멍하니, 레이무와 마리사는 방금 전 까지 아가야였던 것을 보았다. 원형을 찾아볼 수도 없게 된 팥소와 반죽위에, 그 대신이라는 듯이 신발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가야… 아가야아아아아…!!”
“느긋이… 느긋이이이이…!!”
레이무와 마리사가 숨죽여 울기 시작한다. 이 녀석들도 반응이 시원찮다. 형산은 생각했다. 보통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훨씬 호들갑을 떨기 마련인데. 뭐, 아무렴 어때. 꽥꽥 울부짖어 대는 것 보단 낫지. 형산은 레이무를 걷어차 날렸다.
“느부웃!!”
“레, 레이무우우우! 느, 느깃…!”
굴러가는 레이무를 향해 귀밑털을 뻗는 마리사를 밟아 누른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 마리사는 뱃가죽과 등가죽이 붙었다. 하늘을 향해 치켜 올려진 입과 아냐루에서 동시에 팥소가 밀려나왔다.
“마디사아아아아아아아!!”
“데…데이. 부우…!”
중추 팥소는 피했나. 형산은 굳이 확인 사살을 해줄 만큼 윳쿠리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형산은 곧바로 레이무쪽을 향했다.
“ㄴ…히… 먼더… 가있능고뎨… 아가아당… 느ㄱ…히, 기다디고인능…고ㅈ…”
같지도 않은 신파극에 형산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요즘은 저 대사가 유행인건가? 이번 주에만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알았다구… 느긋이 알았다구, 마리사…! 레이무도 곧, 따라가는거라구우우우…!”
형산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레이무는 도망가지도,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공포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무섭 시시를 줄줄 흘리면서도, 레이무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윳쿠리는, 드물긴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형산이 자신도 모르게 멈춰선 이유는 정 반대였다. 이런 광경을 요즘 들어 너무나 자주, 이상할 정도로 많이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녀석들… 뭔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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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는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ㄴ…느, 히이…! 듀…거… 마디자…두거버뎌…”
힘없이 꿈틀대며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을 흘리는 마리사에게 오니상의 발차기가 또 다시 날아들었다. 프드득, 하는 얼빠진 소리와 함께 팥소가 아냐루에서 비어져 나왔다.
“느부헤엑…!! 느, 느그디, 느, 느그히…이…”
고통으로 구겨진 마리사의 면상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 같은 얼굴과 달리 마리사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윳쿠리를 상대로 단련해 온 오니상의 발차기는 팥소를 토해내거나 반죽을 손상시키는 일 없이 마리사의 중추 팥소에 강력한 충격을 전달했다. 한 발 한 발 맞을 때 마다 중추 팥소가 거세게 흔들린다. 목숨 그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마리사는 걷어차이는 몸뚱이의 고통보다도 중추팥소에 너무나도 뚜렷이 전달되는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느ㄱ…ㅎ…”
마리사는 땅바닥에 뻗은 채 간신히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거의 삼도천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태였다. 오니상은 기다렸다.
“느게…ㅎ…엑…느그…히…”
겨우겨우 삼도천 기슭으로 기어 올라온 마리사는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끌고 오니상으로부터 도망가려 했다. 오니상은 딱 두 걸음을 움직여 마리사의 앞을 막아섰다.
“모자 내놔.”
절망에 면상을 일그러트리는 마리사를 향해, 오니상은 짧게 말했다. 그 이외의 말은 윳쿠리에게 하지 않는다. 그 이외의 것은 윳쿠리에게서 받지 않는다. 그것이 오니상의 원칙이었다. 마리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없었다. 삼도천 물맛을 너무 많이 본 탓에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재더… 어재더 그던마를 하능거제…? 모다씨능… 마디자으, 보물씨인거다제…?”
고통과 공포로 허덕이면서도, 마리사는 오니상의 명령을 거부했다. 지금까지 마리사에게 가해진 타격은 다섯 번. 보통은 세 번째 발차기에서 오니상에게 굴복하기 마련이지만(아마 ‘셀수도 없을 만큼’ 맞았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마리사는 보통 윳쿠리의 두 배 정도 근성이 있는 모양이다.
오니상은 담담히 작업을 반복했다. 모자 내놔, 퍼억. 모자 내놔, 퍼억. 일곱 번째에도 마리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녀석도 꽤나 근성이 있군. 오니상은 생각했다. 여덟 번째에도 마리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고 기록 갱신. 오니상은 감탄했다. 아홉 번째에도 마리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녀석 정말로 윳쿠리인가? 오니상은 당황했다.
“…모자 내놔.”
무표정한 얼굴 안쪽에 당황을 숨기고, 오니상은 다시 한 번 말했다. 마리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리사가 대답을 할 때 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모댜…씨ㄴ… 마디ㅅㅏ…으… 느그…한, 보무히…인…제…! 저대도… 주 쑤 엄는…거인…ㅈ…!”
마리사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지만, 웅얼대는 윳쿠리의 목소리에 익숙한 오니상은 그것이 확실한 거부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혹과 분노가 오니상의 집중을 흐트러트렸다.
“브헥”
열 번째 발차기가 마리사에게 날아들었다. 힘 조절이 완벽하지 않은 발차기가 마리사의 몸뚱이에 박혀든 순간 마리사의 몸뚱이는 누군가가 뒤통수를 짓누른 것처럼 반으로 접혔다. 자신의 아냐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마리사는 자신의 엉덩이 위에 팥소를 토해냈다. 한계에 달해 있던 마리사의 중추 팥소는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되었다.
“느…ㅎ…이제부…터 느그…하느…고제…”
처음 들어보는 윳쿠리의 단말마였다. 이제부터 느긋한다고? 윳쿠리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굴욕감에 사로잡혀 있던 오니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자신의 발차기를 몇 방씩 견디는 윳쿠리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아졌다. 여태껏 살아남은 녀석들이니 근성이나 맷집이 평균 이상인 것도 당연하다. 오니상은 그렇게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넘겨 버렸었다. 하지만 길윳쿠리의 생존이란, 거의 100% 운에 달려있다. 윳생의 난이도는 겨우 근성이나 맷집이 좀 있는 정도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이 아니다. 길윳쿠리의 개체수는 징글징글한 윳쿠리의 번식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지, 윳쿠리 개개의 능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발차기 한 방에 능능대며 모자를 바치는 놈들 보다 발차기 네 다섯 방을 버텨내는 놈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윳쿠리들에게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오니상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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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이이이이잇!!”
시궁쥐가 찍찍거리는 듯 거슬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귀삼(鬼三)은 시궁쥐의 울음소리 같은 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 시궁쥐의 울음이 이것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궁쥐는 이렇게 크게 울지는 못할테니까.
“그만듀라졔! 엄먀야률 개료피묜 마리샤갸 용셔하지안는고졔!”
“어째셔 이련짓슐 햐능고야아아아!! 이련거 느긋탸쓔없다규!?”
“쥬꼬시픈꼬냐쪳!?!? 쀼뀨-! 쀼뀨-웃!!”
“엄먀아아!! 뉴-찌이쓔랴뀨! 뷰-비, 뷰-비- 늉냐아아앗!?”
어미 레이무를 ‘치료’해보려던 새끼 레이무는 격렬하게 씰룩이는 어미 레이무의 엉덩이에 맞아 데굴데굴 굴러 갔다. 귀삼의 왼손에 억눌린 어미 레이무의 위로 귀삼의 오른손이 움직인다.
“느끼이이, 느그시, 그만, ㄷ, 끼잇, 느끼이이이이잇!!!”
자작 필러(야채의 껍질을 벗기는데 쓰는 주방 도구)가 어미 레이무의 몸뚱이 반죽을 얇게 벗겨낸다. 세심하고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새끼 마리사 한 마리가 엄마야를 구하겠다며 능능 귀삼의 손에 제 몸뚱이를 문질러 댄다. 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흠.”
어미 레이무의 뒤통수에서 출발한 필러는 등을 지나 아냐루 앞에서 멈추었다. 귀삼은 필러에 붙어있는 반죽피 한 가닥을 떼어 냈다. 어미 레이무가 발광하고 있었음에도, 벗겨진 어미 레이무의 ‘껍질’은 중간에 끊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두께와 넓이도 균일했다. 네 번 연속 성공이었다. 귀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느, 끼, 끼기이잇… 끼. 히이…히이잇…!”
귀삼은 억누르고 있던 어미 레이무를 놓아 주었다. 어미 레이무는 낏낏거리며 도망가려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쭈욱 몸을 늘린 순간, 벗겨진 등가죽이 불타올랐다. 어미 레이무는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퍼덕였다.
“엄먀아아! 뉴-찌! 뉴찌이이!! 뉴뀨찌이쓔랴뀨! 늉!!”
“마리쨔꺄 낼-륨낼-륨해쥬늉고쪠! 뉴-찌 냣뉸고쪠!”
“이미 늦즌고쪠! 똥닌갼쒸뉸 갹오햐늉고졔!”
인간씨가 자신의 ‘뿌꾸-!’에 압도당해 엄마야를 놓아 준 것을 보고, 새끼 마리사는 귀삼을 향해 꼬물꼬물 돌진했다. 윳질 같은 비겁한 수를 쓰다니, 이런 똥인간씨는 마리사에게 제재당해 마땅하다. 새끼 마리사는 우쭐-!하고 눈꼬리를 치켜올린 채 귀삼의 손을 향해 기었다. 살의나 분노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개미에 시시를 싸갈기고서 마리사는 최강이니 뭐니 지껄여댈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엄먀야를 괴롭히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지껄여 댔지만, 정작 새끼 마리사는 엄마야가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감이나 상상도 어느 정도의 지능을 필요로 한다. 새끼 마리사의 지능은 공감이나 상상 같은 고등한 정신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한뉼률 냐고있쪠~!?”
원래 말하려던 대사(느긋이 제재한다제)와는 다른 말을 외치게 되었지만, 새끼 마리사는 그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귀삼이 자신을 집어 들었다는 것조차 아직 깨닫지 못한 새끼 마리사는 열심히 저부를 허공에 문질러댔다.
“이 다음은 이 녀석으로 할까? 어때, 레이무. 네가 정해라.”
“늉!?!? 뇨, 뇹땨쪠엣!?!? 무셥땨쪠에에엣!?!? 엄먀아아아아!!”
그제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새끼 마리사가 비명을 지른다. 고통으로 울부짖던 어미 레이무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벗겨진 등가죽이 또 다시 불타올랐다.
“응? 레이무. 네가 정해. 이번엔 누구한테 할까?”
“엄먀아아아!! 눂푼고쪠엣!! 무쎠운고쪠엣!! 언늉 구햬쥰늉고쪠에엣!?!?”
귀삼은 필러를 흔들어 보였다, 어미 레이무의 마무마무에서 설탕물이 비싯 새어나온다. 어미 레이무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새끼 마리사도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설탕물을 흩뿌린다.
“늣… 느긋…! 느긋이…! 느으읏…!”
어미 레이무는 고뇌했다. 어미 레이무의 시선이 새끼 마리사와 필러 사이를 왕복한다. 새끼 마리사가 삐잇 울면 새끼 마리사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가, 귀삼이 필러를 흔들어 보이면 필러를 보며 움찔움찔 시시를 핏핏 지려댄다. 박자에 맞추어 어미 레이무의 시시를 연주하는 듯한 모습에 귀삼은 피식 웃었다.
“빨리 정해. 누구야? 누구든 상관 없으니 얼른 정해. 안 그럼 몽땅 다 한다?”
“느으으읏!!”
귀삼의 최후 통첩에 어미 레이무는 이를 악물었다.
“…레이무에게… 하는거라구…!”
어미 레이무의 대답은 조금 전과 같았다. 이번에도 어미 레이무는 아가야 대신 자신을 귀삼에게 내놓았다.
“레이무는… 마리사와 약속!한 거라구… 아가야들을… 반드시… 반드시 지키는거라구…! 느긋이 약속!한거라구!”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귀삼은 며칠 전 부터 계속 품어왔던 의문에 결론을 내렸다. 살짝 올라가 있던 귀삼의 입꼬리가 굳었다.
“그러니까 레이무는 느긋이 아가야들을 지킨다구! 그런 느긋할 수 없는 일… 죽어도 아가야에게 하게 하지 않는다구!”
특출나게 모성애가 강한 레이무도, 물론 존재한다. 귀삼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딱히 모성애가 강한 것도 아니다. 어미 레이무의 표정은 방금 전 새끼 마리사의 표정과 똑같았다. 우쭐!하고 눈꼬리와 입꼬리를 치켜 세운, 자신만만한 미소. ‘아가야들을 지키는 느긋한 엄마야’라는 놀이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느긋한 아가야들이 계속 느긋할 수만 있다면… 레이무는 무적!인거네! 느응! 어머니!의 귀감이라 미안해!”
자기의 말에 자기가 감동해 귀밑털을 파르르 떤다. 찔끔찔끔 흘려대던 무섭시시도 어느샌가 질질 새어나오는 황홀시시로 바뀌어있었다. 이미 네 번. 어미 레이무는 이미 네 번이나 필러 맛을 보았다. 한 번 맛 보는 것만으로도 하늘위의 윳쿠리 플레이스가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에게 취한 윳쿠리쯤은 단번에 벌떡 깨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미 레이무는 반죽피를 네 가닥이나 뜯기고도 아직도 그 같잖은 놀이를 그만두질 않고 있었다.
“능! 겨우 어머니의 강함!을 느긋이 이해 한거냐구? 느흥! 그러면 얼른 레이무에게 느긋이 사죄하는 거네? 그리고 달콤달콤을 가져오는 거네?”
“뉴뉴웃! 마리쨔꺄 무-쪄무-쪄인곶쪠에에에!?!? 멀 뉴뀨탸꼬 있늉고냐쪠에엣!!”
어미 레이무가 더욱 기세를 올린다. 엄마야의 모성애는 느긋할 수 없는 학대 똥인간조차 감싸안고 마는 것이다… 감동한 윳쿠리 일가는 일제히 황홀 시시를 뿜어내며 느긋해 했다. 귀삼의 손에 붙잡힌 새끼 마리사 한 마리만 빼고.
“달콤달콤? 그래.”
귀삼은 새끼 마리사를 내려 놓고 탁자 아래로 몸을 숙였다. 필러를 네 번 견뎌내고도 느긋한 자신에 취할 수 있는 윳쿠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 녀석 팥소뇌는 에지간히 꽃밭이구만, 하고 굴복할 때 까지 껍질을 벗겨 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세 번 연속으로 이런 놈들을 보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스크바 룰. 특이한 일이 한 번 일어나는 것은 일상이고, 두 번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세 번 일어난다면 적의 공격인 것이다.
“뉴늇! 먕햘 인갼쒸꺄 안보이게 됐댜뀨!?”
“쪠, 쪠엣! 역쒸 먀리쨔으 쀼뀨-!에 쪼라보린고럊쪠!!”
“느응! 레이무의 모성애!를 보고 부끄러워 도망간 거네! 느긋이… 느으읏!! 똥인간씨가 다시 나타났다구우우!?!?”
귀삼이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꺄꺄 떠들던 윳쿠리 일가는 다시 몸을 일으킨 귀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귀삼은 탁자 밑에서 집어 든 라무네 스프레이를 윳쿠리 일가에 뿌렸다. 어미 레이무와 새끼 윳쿠리들은 경악한 얼굴 그대로 숙면에 빠져 들었다.
“네 놈들은 좀 있다가 다시 보자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 사태가 종료된 다음에 말이지. 귀삼은 어미 레이무를 집어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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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자면, 윳쿠리들에게 종교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 화면 안에서, 윳쿠리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N은 그렇게 말했다.
“종교...라고 할까요. 정확히 말하면 사후 세계관이 생겨났다고 해야겠군요. 소위 말하는 ‘하늘 위의 윳쿠리 플레이스’라는 겁니다. 이쪽 업계에서는 윷국이라고 줄여 말하죠.”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앵커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N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N은 꿀꺽 침을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그 ‘윷국’이란건 예전부터 계속 윳쿠리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던 개념이었습니다만 그렇게 뚜렷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윷국 같은 게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윳쿠리는 거의 없었을 겁니다.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사망했을 때 새끼들을 달래려고 가끔 이야기하는 정도였겠죠.”
“믿는 윳쿠리는 거의 없었다, 는 것은 지금은 믿는 다는 말씀이신가요?”
좋은 질문이었다. N은 테이블 위에 있던 물병을 집어 목을 축였다.
“네, 그렇습니다. 최근 들어 윷국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윳쿠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 윳쿠리들이 예전보다 죽음을 덜 두려워하게 되고, 따라서 더 적극적으로 ‘느긋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나서게 된 것이죠. 최근 윳쿠리가 많이 보이는 것은 개체수의 증가보다는 저렇게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윳쿠리들이 많아진 탓일 겁니다.”
“갑자기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제가 조사한 바로는... 윳쿠리 애호 단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앵커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또?’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윳쿠리 애호 단체가 할 수 있는 활동 자체가 거의 없을 텐데요. 길윳쿠리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도 이제 경범죄가 되었고, 구제 당할 윳쿠리들을 빼돌리는 것도 이제 불가능 하구요. 그래서 윳쿠리들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하하, 설마요.”
앵커의 말대로 이제 윳쿠리 애호 단체가 길윳쿠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아직 빠져 나갈 구멍은 있다.
“최근 윳쿠리 구제 방식이 바뀌면서 구제 업체와 청소 업체가 나뉘게 되었습니다만,”
“네 그렇죠. 그럼 혹시...”
“네. 이 청소 업체 중 일부가 애호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정황이 있습니다.”
윳쿠리의 목숨은 허약하면서도 질기다. 너무나도 쉽게 생명의 위기에 처하지만, 정말로 죽을 때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람에게 밟혀 팥소를 왕창 토해내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더라도 중추 팥소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면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은 윳쿠리 의료 기술이 워낙 발달했고, 또 그렇게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도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하지 않습니까.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병원 한 번 가면 사람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데 윳쿠리의 경우 사실 식재료비 수준이죠.”
치료하는데 필요한 기술도 의술보다는 제과제빵 쪽에 가깝다. 조금만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조금만 연습하면 어지간한 상처는 쉽게 치료할 수 있다.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윳쿠리들도 비교적 쉽게 살려 낼 수 있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걸 정리해 보자면, 윳쿠리 애호 단체가 운영하는 일부 청소 업체가 구제 후 빈사 상태가 된 윳쿠리들을 수거해서 치료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꼭 구제 작업 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순찰을 다니면서 그런 윳쿠리들을 수거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현행법 상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쪽은 제 전공은 아닙니다만, 일단 그렇지 않을까요. 수거한 ‘윳쿠리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청소 업체의 자유니까요. 그렇게 치료한 윳쿠리들을 어딘가에 풀어주지 않는 한은 법적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풀어준다 해도 과태료 처분 정도에서 끝나기도 하구요.”
“시민들 입장에서는 조금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치료받은 윳쿠리들이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일제 구제에 의해 자신은 죽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윳쿠리들을 ‘청소 업체’들이 살려낸다. 그렇게 살아난 윳쿠리들은 자신이 죽어서 윷국에 온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지붕이 있고 밥씨가 나오기만 하면 그게 바로 길윳쿠리들의 천국이니까.
“그렇게 아주 명확한 ‘사후 세계 경험’이 윳쿠리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면서, 이제...”
“다수의 윳쿠리들이 ‘윷국’이 실존한다고 믿게 되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아무리 힘들어도 느긋하려고 노력을 계속 한다면 죽은 다음 윷국에 간다던가, 느긋이 있으려고 하다가 죽으면 윷국에 간다던가, 현세에서 느긋할 수 없으면 없을수록 윷국에서는 더 느긋할 수 있다던가.”
“하하... 그럼 장식이 없는 윳쿠리는 윷국에 무조건 가게 되겠군요.”
“그게 또 그렇진 않습니다. 장식이란게 윳쿠리에게는 워낙 중요한 것이라 그런지 장식 없는 윳쿠리는 윷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교리’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만 그 ‘느긋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극히 윳쿠리 중심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다.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대는 것도 느긋할 수 있는 일이고, 인간에게서 달콤달콤을 뺏으려 하는 것도 느긋할 수 있는 일이고, 쓰레기장을 헤집고 화단의 꽃을 우-걱우-걱하는 것도 전부 느긋할 수 있는 일이고, 게스 윳쿠리를 제재하고 밥씨를 빼앗는 것도 느긋할 수 있는 일이다. 종교 비슷한 것이 생겼다고 해서 딱히 윳쿠리들의 도덕성이나 이타심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습니다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글쎄요...”
N은 다시 한 번 목을 축였다. 답은 간단하다. 그 믿음을 박살내 주면 되는 것이다.
“일단 저는 음료 회사 주식을 사놓긴 했습니다.”
“네?”
“농담입니다. 우선 일제 구제에 동원되는 인력을 확충해 윳쿠리들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겠죠. 그리고...”
N은 실제로 별다른 도움이 되지도 않는 원론적인 대처들을 늘어놓았다. 윳쿠리들의 믿음을 박살내는 방법은, 전 국민이 시청하고 있는 생방송 뉴스에서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윳쿠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이 이상 현상은 그리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N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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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 뉴스에 나온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윳쿠리들의 이상 현상은 사라졌다. 애호 단체가 운영하던 ‘청소 업체’들 역시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성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윳쿠리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고소와 고발을 하기 시작했다. 법원은 ‘윳쿠리 쓰레기’들을 치료하는 것이 불법 행위는 아니라고 판결 했지만 여론의 악화를 막을 순 없었다. ‘위장 청소 업체’들의 이름과 소재지가 공개되었고 그 앞에 성난 사람들이 모였다. 위장 청소 업체들은 영업 방해로 시위대를 고소했고, 법원은 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위장 청소 업체들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장이 되었고, 그에 따라 인건비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인건비는 올랐지만 일거리는 사라졌다. 길윳쿠리를 치료해 주는 청소 업체에게 청소를 맡길 리 없는 것이다. 위장 청소 업체들은 폐업의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애호파들의 재정적 지원이 끊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애호파들의 대다수는 펫윳쿠리를 기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애호파들의 기부금은 애호 단체의 주된 자금 조달원이다. 그런데 그 애호파들이 애호 단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끊어 버린 것이다. ‘교리’가 펫윳쿠리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길윳쿠리들이 펫윳쿠리에게 가지는 원한과 질투는 무시무시하다. ‘펫윳쿠리는 윷국에 갈 수 없다’는 교리가 생겨난 것은 당연했다. 자신의 펫윳쿠리가 죽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는 것을 본 애호파들은 애호 단체를 직접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위장 청소 업체는 물론 애호 단체 역시 존립의 위기에 몰리게 되고 말았다.
마무리 일격을 넣은 것은 학대파였다.
자금난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위장 청소 업체가 사람을 가릴 여유가 있을 리 없다. 학대파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위장 청소 업체에 침투했다. 위장 청소 업체에 위장 취업을 한 것이다. 시급 때문에 잠깐 일하고 마는 비숙련 인력들 사이에서 일하며 학대파들은 조용히 신뢰를 쌓아 갔다. 학대파라면 보통 윳쿠리 치료 기술에는 일가견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숨죽이고 있던 학대파들은 일제히 업체에 비수를 꽂았다. 치료해서 보호하고 있던 윳쿠리들을 일제히 밖에 풀어 놓은 다음 업체 측에서 시킨 일이라고 증언했던 것이다. 업체와 애호 단체들은 필사적으로 항변했지만 이미 윳쿠리로 인한 피해에 분노할 대로 분노한 시민들에게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거의 모든 위장 청소 업체가 폐업했고, 몇 개의 애호 단체 역시 해산하게 되었다.
물론 학대파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음료 회사의 주가는 연일 상승했다. 학대파들이 라무네와 오렌지 주스를 대량으로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사라진 위장 청소 업체들 대신 학대파들이 빈사 상태의 길윳쿠리들을 되살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윳쿠리가 죽기 직전까지 가는지는 잘 알고 있다. 빈사상태로 만든 윳쿠리들을 라무네로 확실히 재운 다음 오렌지 주스로 되살려낸다. 다시 눈을 뜬 윳쿠리 앞에 펼쳐지는 것은 윷국이 아닌, 윳지옥이다. 화염에 불타고 냉기에 얼어붙는다. 뾰-족뾰-족에 찔리고 서-걱서-걱에 잘린다.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달콤달콤을 향해 귀밑털을 뻗고, 마실 수 없는 물을 향해 혀를 내민다. 응응과 시시로 가득 찬 구덩이에 갇혀 개미에게 서서히 갉아 먹힌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 대량의 윳쿠리를 몰아넣고 방치한다. 소규모로 나마 가공소를 재현한 사람도 있었다. 죽음도 윳지옥에서 윳쿠리를 구해주진 못한다. 라무네에 ‘죽었던’ 윳쿠리들은 오렌지 주스로 다시 ‘되살아나’ 또 다시 고통 받았다.
‘윳지옥’이라는 개념이 ‘윷국’이란 개념을 윳쿠리들의 팥소뇌에서 밀어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자 내놔.”
오니상은 마리사에게 짧게 말했다.
“느, 느, 느히!? 느긋이이이!?!?”
오니상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호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악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말을 걸어 온 것만으로도 마리사는 완전히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다. 딱딱하게 경직된 몸뚱이는 설탕물을 흘리는 것 조차 잊고 있었다. 죽음과 윳지옥,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포는 그 정도로 컸다.
“모자 내놔.”
단련해온 발차기를 보일 필요도 없었다. 마리사의 팥소뇌가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니상이 다시 목소리를 낸 순간, 마리사는 그저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니상은 마리사가 내민 모자를 낚아채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윳쿠리를 찾아 떠나갔다.
“느...아...?”
앨리스는 형산의 발 아래에서 납작해진 아가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형산은 다시 발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좀 알아보기 쉽게 해 줄까. 어미와 마찬가지로 멍하니 바닥의 얼룩이 된 언니야를 보고 있던 새끼 앨리스의 하반신이 형산의 발 아래로 사라졌다. 중추 팥소가 분쇄된 새끼 앨리스는 즉사했다. 크기가 절반 정도로 줄긴 했지만 얼굴과 장식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윳쿠리도 그것이 윳쿠리(의 시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박자 늦게, 앨리스의 팥소뇌는 현실을 인지했다.
“거, 거, 거, 거짓말이라구요오오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구요오오오!?!?”
그리고 앨리스는 그 현실을 부정했다.
“도시파!인 윳쿠리는 죽지 않는거라구요오오오!?!? 느긋이 도시파인 아가야들이 죽을 리 없는거라구요오오오!! 느긋이이이!! 느긋이이이!?!?”
윷국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참한 길윳쿠리의 삶의 끝에 있는 것은 그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윳지옥이다. 죽음이라는 도피처조차 막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팥소뇌는 방법을 찾아냈다. ‘정말로 느긋한 윳쿠리는 죽지 않는다.’ 그것이 최근 윳쿠리들 사이의 ‘교리’였다. 죽음으로 도망 갈 수 없게 되었으니 죽음으로 부터라도 도망가겠다는 것이었다.
“느긋한 도시파인 앨리스들은 불로불사!씨인게 당연하겠죠오오오!?!? 느늣! 아가야들! 느긋이 얼른 일어나는 거네요! 당장 이면-”
새끼 윳쿠리를 낼-름낼-름하려는 앨리스의 얼굴에 형산의 신발이 처박혔다. 앨리스는 커스타드와 설탕물을 흩뿌리며 튕겨 나갔다.
“엇.”
앨리스는 그대로 골목길의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느긋하다고 자부한 것이 헛말은 아니었던 것일까. 그 속도는 꽤나 느긋했다. 앨리스는 계단 한 단 한 단 전부에 부딪히며 굴러 내려갔다.
“흠.”
놀랍게도 - 다행히도, 라고 말 하긴 힘들다 - 앨리스는 죽지 않았다. 계단의 아래쪽에서 꿈틀대는 앨리스를 잠시 바라보던 형산은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고작 윳쿠리 한 마리 잡자고 계단을 오르 내리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느그시...! 느그...시...!”
“뉴삐이이이이이이잇!!”
귀삼은 필러로 새끼 마리사를 깎아내고 있는 레이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그시...! 느그시 있으라구우우우! 아가야아아!!”
“아퓨댜졔에에에에에!! 느끼이이잇!?! 뉴뀨찌 규먄듀늉고졔에에에!!”
라무네 스프레이에 잠들었던 레이무 일가는 그대로 냉동실에 보관되었다. 대략 1년 후, 윳지옥이 윳쿠리들의 집단 무의식에 완전히 자리잡게 되자 귀삼은 얼어있던 레이무 일가를 해동했다. 귀삼에게는 1년이었지만, 레이무 일가에게는 한 순간이었다. 방금 전 까지 하고 있던 엄마야 놀이를 계속하는 레이무의 눈 앞에서, 형삼은 새끼 레이무 한 마리를 꽈배기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레이무는 죽어도 아가야가 당하게 하지 않겠다던 그 짓을 스스로 아가야에게 하게 되었다.
“느그시... 느그시... 느... 느... 늣...!”
“뉴뺘아아아아아!!!”
레이무가 필러를 휙 잡아 당겼다. 새끼 마리사의 반죽에 파묻혀 있던 필러의 날이 해방되고, 깎여 나온 마리사의 껍질이 툭 떨어졌다. 레이무는 눈을 까뒤집은 채 경련하고 있는 새끼 마리사를 밀쳐내고선 벗겨낸 새끼 마리사의 껍질을 입에 물었다.
“느, 느느읏! 느그시...! 느그시 부탁한다구우우우...!”
테이블 한 켠에는 귀삼이 붙여 놓은 종이 조각이 있었다. 레이무는 새끼 마리사의 껍질을 종이 조각 옆에 나란히 놓고 길이를 비교했다. 껍질이 조금 더 길었다.
“느, 느, 느으으읏!! 느그시...! 느그시 해낸거라구우우우!! 느읏! 인간씨! 보라구!!”
“오... 그래. 느긋이 느긋이.”
“느으읏! 한 방에 성공!씨인 거라구!! 그러니까 얼른 밥씨를 달라구! 당장이면 된다구!”
귀삼은 기절한 새끼 마리사에게 오렌지 주스를 뿌린 다음 윳쿠리 사료가 담긴 그릇을 꺼냈다. 하루 가까이 배를 곯고 있던 레이무 일가는 그릇을 테이블 위에 채 놓이기도 전에 달려 들었다. 그래도 계속 반복하니 실력이 조금 나아지기는 하네? 그릇에 면상을 처박은 레이무를 보며 귀삼은 종이 조각을 조금 더 긴 것으로 바꾸었다.
“해, 행보-옥!!”
우걱대던 윳쿠리 사료조각을 흩뿌리며 레이무는 외쳤다. 그 표정은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죽어도 지킨다던 아가야의 껍질을 벗긴 대가로 받은 밥을 먹으며, 레이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느긋했다. 오니상에게 모자를 뺏긴 마리사도, 계단에서 굴러 만신창이 된 앨리스도, 그 어느 때 보다도 느긋해하고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자신은 살아있다. 윳지옥에 가는 것은, 오늘이 아니다. 윷국이라는 허상에 매달려 비참한 매일을 참아내는 것은 불가능 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윳쿠리들은 하루 하루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느긋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결국 길윳쿠리의 삶이란 딱히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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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가 힘들군요. 이 다음은 클래식한걸 좀 해볼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