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20.05.05 01:49

5월의 기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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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한 남자가 공휴일 아침의 공원을 가로지른다.

 

“쓰읍…”

 

남자는 출근 중이었다. 공휴일인데 왜 출근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공휴일일수록 - 어린이날이라면 더더욱 - 더 바쁜 직종도 있다. 솔직히 말할 것도 없이, 정말로 출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습관이란 무서웠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근무 시간 30분 전에 도착할 시간에 집을 나섰던 것이다.

 

“늉~! 온뉴륜~ 아가야으~ 냘~♩ 뉴뀨탼~ 레-뮤으~ 냘~♬ 뉴늉!”

“아, 아가야! 조용히 하는 거제! 너무 큰 소리를 내면, 느긋할 수 없는거제!”

“뉴…! 아랴땨졔! 먀리샤 조용히 햐늉고졔!”

 

터덜터덜 걷는 남자 앞으로 윳쿠리 일가가 지나간다. 부모는 마리사와 레이무 한 쌍이었고, 자식 또한 마리사와 레이무 한 쌍이었다. 새끼 마리사는 흔히들 ‘꼬마’라고 부르는 정도의 크기였고, 새끼 레이무는 ‘아기’라고 부르는 정도의 크기였다. 새끼 레이무는 아직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모양인지 마리사의 모자 위에 올라타 있었다. 펫윳쿠리 기준으로는 대략 3개월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양 상태가 열악한 길윳쿠리인 만큼 정확히 얼마나 나이 차이가 날 지는 알 수 없다.

 

마리사와 레이무가 늉늉 떠들어대는 아기 레이무에게 주의를 주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동안, 남자는 윳쿠리 일가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여어, 너희도 어린이날에 소풍 나가는 거야?”

 

시답잖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남자는 윳쿠리 일가에게 말을 걸었다.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새끼 윳쿠리들을 보고 자신의 조카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조카들을 상당히 귀여워했다. 원래는 같이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지만, 갑자기 남자의 근무 시간이 조정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늉! 구러탸뀨! 오뉼은 아가야으 냘!이랴뀨! 레-뮤갸 쥬인굥!쒸인 냐리랴뀨! 뉴늇! 구로니꺄 레-뮤갸 먈햐뉸건 모듀 들어죠야 햐늉고랴뀨!”

 

남자의 말에 대답한 것은 새끼 레이무였다. 나머지 윳쿠리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인간씨에게 놀라 입과 아냐루를 뻐끔대고만 있었다. 방금 전에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들었던 것은 전혀 기억하지 않은 채 마리사의 모자 위에서 목청을 높인다. 지가 한 말에 지가 또 신이나 마침표라도 찍는 양 찌익 기쁨 시시를 뿜어 마리사의 모자 위에 얼룩을 하나 더 추가한다.

 

“늇! 구로니꺄 댜쿔댜쿔 댤랴규! 쟌뜌기면 댼댜규!”

“아, 아가야아아아아!?!?”

“인간씨에게 말을 걸면 안돼라고 말한거제에에에!?!?”

“뉴삐이이잇!!”

 

 

새파랗게 질린 레이무와 마리사가 새끼 레이무를 다그친다. 바로 옆에서 터져나온 노성에 새끼 레이무는 깜짝 놀라 삐잇삐잇 울기 시작했다.

 

“늉애애애애앵!! 어쨰쪄 먠냘 레-뮤먄 이뇸~!햐늉고냐뀨우우우우!! 늉애애애애애앵!!”

 

아둥바둥 흔들 수 있는 곳을 전부 흔들며 (그래봤자 귀밑털과 엉덩이 뿐이지만) 모자를 적신다. 자신이 지금 자기 몸높이의 5배도 더 되는 곳에 있다는 것은, 애초에 알고 있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새끼 레이무가 떨어질까 허둥댔다. 윳쿠리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끼 레이무가 폐급 새끼임을 곧바로 알아봤을 테지만, 남자는 윳쿠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조카에게 사다줘 볼까 하는 생각에 펫윳쿠리 샵을 몇 번 기웃거렸던게 거의 전부였다.

 

“음... 먹을 건 없는데. 이거라도 줄게.”

 

남자는 새끼 레이무를 보며 전화기 너머에서 울고불던 작은 조카를 떠올렸다. (동생 부부가 그것을 알았다면 그리 유쾌해 하진 않을 것이다) 남자는 주머니에 있던 포켓 티슈를 꺼내 윳쿠리들 앞에 놓았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진 못했다.

 

“느, 느으읏!! 이, 이건...!”

“느, 티, 티슈-, 설마 티슈-씨인거냐졔!?”

“티슈-씨가 잔-뜩이라구!”

 

티슈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레이무와 마리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티슈는 사용이 끝난 후 버려진 것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꾸깃꾸깃 뭉쳐져 있고 반드시 무언가가 묻어 있는 것이다. 원래는 이렇게나 새하얗고 나풀댔던 것인가. 레이무와 마리사는 그 순백의 자태에 넋을 잃었다.

 

“레-뮤꺄 뎨-귤뎨-귤이랴규우우우!?!?”

“뉴? 늇!? 여둉섕!?”

 

마리사가 티슈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바람에 새끼 레이무가 모자에서 굴러 떨어진다. 레이무도 마리사도 반응하지 못했다. 애초에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나마 새끼 마리사는 새끼 레이무의 목소리에 반응했지만,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모자 위에는 시시 자국만 남아 있었다.

 

“뉴우우우웃!! 뉴, 뉴! 뉴...?”

“느늣! 아가야가 티슈-씨에 느긋이 올라왔다구!”

“느응! 느긋한 아가야에게 딱인고졔!!”

“늇! 여둉섕이 뉴뀨탸고 있뉸졔!!”

 

굴러 떨어진 새끼 레이무는 티슈 위에 안착했다. 조금만 삐끗했어도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되었겠지만, 네 마리 중 그 누구도 그 기적에 감사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뉴우웅!! 졍먈료 늇-탼 퓩-씬퓩-씬쒸인고녜!! 늇! 레=뮤으 새 침댸쒸!료 햬쥰댜뀨우웃!!”

“늉! 먀리샤됴! 먀리샤, 뉴우우웃!! 꾸료오오오오!?!?”

 

새끼 레이무가 귀밑털을 파닥이며 기쁨시시를 찌익 쏘아낸다. 티슈에 접근하던 새끼 마리사가 새끼 레이무의 시시에 맞아 울부짖는다. 레이무가 퉷퉷 입에 들어간 설탕물을 뱉어내는 새끼 마리사를 낼-름낼-름하기 시작한다. 마리사는 오랜만에 보는 가족의 느긋한 모습에 느긋해 했다. 기껏 손에 넣은 티슈씨가 새끼 레이무의 시시에 젖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직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도 온갖 오물이 묻은 휴지 뭉치에 비하면 아직 충분히 선녀 같으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소풍은 어디로 가는 거야?”

“늣!? 이, 인간씨!?!? 어째서어어어!?”

“뭐?”

 

티슈에 넋이 나가있던 레이무와 마리사는 갑자기(?)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펄쩍 뛰었다. 느긋한 티슈-씨...! 느긋할 수 없는 인간씨...? 다행히 마리사의 팥소뇌는 금방 작동을 재개했다. 마리사는 방금 전 인간씨가 티슈-씨를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느, 느으, 느읏...!”

 

윳생 내내 귀밑털 한 번 못대 볼 만한 물건을 넙죽 받아 놓고도 레이무와 마리사는 아직 남자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늦추지 않았다. 이래뵈도 한 일가를 이루는 데 성공할 정도의 능력은 있는 길윳쿠리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는 되려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

 

방금 전 까지 포켓 티슈를 받고 거의 울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던가...? 새끼 레이무랑 이야기 하는 것도 분명히 봤을 텐데...? 그런데 왜 갑자기 자신이 여기 있던 것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인가. 윳쿠리의 지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던 남자는 마리사를 보며 살짝 당황했다. 길윳쿠리 생활은 엄청 힘들다고 하던데, 그래서 뭔가 지능 쪽에 장애라도 생긴 걸까.

 

“느, 이, 인간씨...! 느긋이 있으라구!”

 

레이무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우선 자신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이것은 말하자면 윳쿠리들의 암구어같은 것이기도 하다. 상대가 인사를 제대로 받아 준다면, 일단 그 상대는 느긋하다고 간주 할 수 있다. - 물론 인간은 ‘느긋하게 있으라구!’라고 외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윳쿠리를 세 번은 죽일 수 있지만 - 팥소뇌에는 그렇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응? 어, 그래. 느긋이 있어라.”

“느! 느긋이 있으라제!”

 

잔뜩 경계하더니 이 시점에 인사를 한다고? 떨떠름해 하면서도 남자는 인사에 답해주었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정말로 뭔가 문제가 있는 윳쿠리들인가? 느휴, 하고 숨을 돌리는 레이무와 마리사를 보며 남자는 생각했다. 자신과 이야기를 한 직후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잔뜩 경계하나 싶더니 갑자기 인사를 해온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반응은 평범한 윳쿠리의 이상할 것 없는 반응이었지만, 윳쿠리를 ‘사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조금 기묘한 동물’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남자로서는 도저히 앞뒤가 맞아 보이질 않았다.

 

“엄먀아...? 아뺘아...?”

“느응! 괜찮다구! 이 인간씨는 느긋할 수 있다구!”

부모를 따라 숨죽이고 있던 새끼 마리사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레이무는 아직 긴장하고 있는 새끼 마리사를 부비부비로 달래기 시작했다.

 

“...”

“느...”

“뉴뉴-웅! 퓩-쒼퓩-쒼쒸뉸 뉴뀨탸쓔 있녜!! 뉴늉!!”

 

레이무는 새끼 마리사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 자연히 남자와 마리사만이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주위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한결같이 티슈-씨를 만끽하고 있던 새끼 레이무의 새된 목소리를 배경으로 한 채 남자와 마리사는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보았다.

 

“그... 그래서 소풍은 어디로 가는 거야? 인간은 여기로 소풍을 오는데 말이지... 사는 게 여기니까 소풍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건가?”

“늣...!”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보려 했지만, 마리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소풍씨 같은게... 아닌거제...”

“응?”

“소풍씨 같은 건... 마리사들에겐 무리인거제... 하루라도 사냥씨를 쉴 수는 없는거제...”

“...”

 

곤궁함이 묻어나는 마리사의 목소리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윳쿠리란 것은 매일 매일 아무런 걱정 없이 ‘느긋이’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마리사도 어린이 날에 쉴 수 없는 건가. 남자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은 말이었다.

 

“괜히 마리사가 아가야의 날-!같은 소리를 해버려서... 그치만... 그치만 아가야들이 너무 느긋이 기대하고 있어서... 느흑...!”

 

조금이라도 아가야들을 느긋하게 해 주고 싶어서 ‘아가야의 날-!’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새끼 마리사와 새끼 레이무는 지금 처음으로 가는 ‘소풍’에 잔뜩 들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느긋함도 얼마나 갈지 모른다. 마리사가 말했듯이 이것은 소풍이 아니었다. 그저 마리사의 사냥에 일가족이 전부 따라왔을 뿐인 것이다. 맏이인 새끼 마리사도 아직 뾰옹뾰옹 뛰어다닐 만큼 자라지 않았다. 새끼 레이무는 꾸물꾸물 기어다니는 것이 고작이다. 태어난 직후와 다를 것이 거의 없다. 그런 새끼 윳쿠리들을 밖에 데리고 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레이무와 마리사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리사는 일단 달콤달콤을 약속하는 것으로 새끼 레이무를 달래보려 했지만, 새끼 레이무는 달콤달콤씨는 물론 소풍씨와 선물씨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주장했다. 근처의 지나가는 인간씨를 전부 불러 모으겠다는 것처럼 악을 써대는 새끼 레이무의 강경한 태도에 마리사는 일단 새끼 레이무를 어디로든 데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느읏... 선물씨라느니... 달콤달콤씨라느니... 밥씨를 얻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거제...! 느흐... 느흐응...! 느흐으으윽...!”

 

결국 마리사가 눈물을 찔끔대기 시작했다. 가볍게 인사나 나눠 보려던 것 뿐 인데,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아침부터 기분이 찝찝해진 남자는 난처해하며 마리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괜히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남자의 눈에, 버려진 라무네 병이 들어왔다.

 

“음...”

 

남자는 펫윳쿠리 샵을 기웃거리던 때를 기억해냈다. 분명 진열장 안에 있던 레이무는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봐.”

“늣?”

“이걸로... 응?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축축해...”

“뉴!? 뉴우웃! 뉴뀨 먐댸료 레-뮤으 뉴뀨탼 침대쒸에 쇼늘 댸냐뀨! 늉? 뉴우웅!? 늇! 그껸 레-뮤으 침댸쒸랴뀨! 댱쨩 댜씨 됼려노으랴뀨! 쀼뀨! 쀼뀨우웃!!”

 

남자는 티슈를 몇 장 뽑았다. 위에서 뒹굴고 있던 새끼 레이무는 대노하여 몸뚱이를 부풀려 댔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다시 사색이 되었지만, 뿌꾸-가 뭔지도 모르는 남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러면 파편이 튀진 않겠지...”

 

남자는 라무네 병의 목 부분에 휴지를 감았다. 남자는 근처에 있던 돌 위에 라무네 병의 목 부분을 걸쳐 놓은 다음 힘껏 발로 밟았다. 쨍강, 하는 소리와 함께 병목이 깨져 나갔다.

 

“자. 선물이야.”

 

다행히 라무네 병은 한 번 만에 남자가 의도대로 깨졌다. 남자는 깨진 라무네 병 조각 사이에서 구슬을 집어 윳쿠리들에게 건넸다.

 

“뉴! 레-뮤! 레-뮤꺼랴뀨! 레-뮤으 보뮬!쒸랴뀨!! 내냐!! 내냐아아!!”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라 울먹이고 있던 새끼 레이무는 남자가 건넨 구슬을 보자마자 눈물 대신 시시를 흘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몸뚱이와 혀를 쭈욱 늘린 채 귀밑털을 파닥대는 새끼 레이무 바로 앞에 구슬을 놓아 주었다.

 

“느와아... 정말로 동-그랗다구...!”

“뉴와아... 정말로 반-짝반-짝인졔...!”

 

여태껏 ‘보물’씨라며 가지고 있던 조금 매끈매끈할 뿐인 돌멩이는 차원이 달랐다. 돌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반투명한 파랑색. 완전한 구형인 구슬은 조금만 밀어도 데굴데굴 멀리 굴러갈 것이다. 거기에다가 희미하게 라무네의 달콤한 냄새가 난다. 레이무와 새끼 마리사도 구슬의 자태에 홀릴 수 밖에 없었다.

 

“느, 느...에...? 말도 안 되는... 거제...?”

 

그러나 마리사 만은 경악으로 입을 벌린 채 깨진 라무네 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것이, 저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었나...?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길윳쿠리인 만큼, 마리사는 갖가지 쓰레기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캔이나 페트병 정도는, 마리사도 큰 무리 없이 옮길 수 있다. 있는 힘을 다하면 찌그러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저것은 무슨 짓을 해도 무리이다. 깨기는커녕 들어 옮기기도 힘들다. 그런 단단한 병씨를, 인간씨는 그다지 힘을 들이지도 않고 깨버렸다. 마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뉴뉴뉴늉!! 구슐쒸뉸 걩쟝히 뉴뀨탸땨뀨!! 레-뮤처렴 똥-구랴코 기엽녜!! 늉!”

“느늣! 거기다 뭔가 느긋한 냄새가 난다구! 정말로 느긋한 기분이든다구!”

“뉴! 먀리샤... 먀리샤됴... 늉...”

 

구슬을 가지고 노는 새끼 레이무를 보며 울상을 짓는 새끼 마리사를 보며, 남자는 큰 조카를 떠올렸다. 동생이 생겼다고 제법 의젓한 척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이다. 저러다 싸움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물을 무조건 똑같은 것을 두 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 봐도 라무네 병은 더 보이지 않았다. 가만 있어보자... 그때 옆에 있던 마리사는 분명히...

 

“대충은 만들 수 있으려나...”

 

얼마 전 까지도 이상할 정도로 날씨가 추웠던 탓에 공원의 나무 주위에는 아직도 짚이 둘러져 있었다. 남자는 거기서 지푸라기를 한 움큼 뽑았다. 이어서 남자는 주위를 뒤져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를 찾았다. 나뭇가지의 한쪽 끝에 지푸라기를 놓은 다음 지푸라기 두 가닥으로 묶어 고정시킨다.

 

“뉴...뉴와아아아앗!! 빗쨔류!! 빗쨔류쒸인고졔에에에!!”

“느으으읏!! 정말로 빗자루인거제엣!? 인간씨가 빗자루를 만든거제!!”

“빗자루 같아 보여? 다행이네.”

 

남자가 만들어낸 무언가를 보고 마리사와 새끼 마리사는 탄성을 질렀다. 새끼 마리사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댈 정도였다. 역시 마리사종은 빗자루를 좋아하는 거였군... 펫윳쿠리 샵의 마리사가 장난감 빗자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는 것을 남자는 기억하고 있었다.

 

“느에...엣? 어떻게... 느...?”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뻐하는 마리사들과는 달리, 레이무는 조용했다. 레이무는 윳쿠리 일가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었다. 마리사가 모아온 것으로 윳쿠리들에게 유용한 것들을 만드는 것이 레이무의 일이었다. 무언가 만드는 데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가족들의 침대를 만든 것도 레이무이다. 페트병에서 뚜껑을 분리해 물그릇을 만든 것도 레이무이다. 마리사가 모아온 밥씨로 경단씨를 만드는 것도 레이무이다. 하지만 레이무는 인간씨가 어떻게 빗자루를 만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라면, 레이무에게도 친숙한 재료들이다. 하지만 전혀 알 수 없었다.

 

“자. 이건 너한테 줄게.”

“늇...! 늇... 뉴... 뉴아아아아...!”

 

남자가 빗자루를 건네주자, 새끼 마리사는 결국 설탕물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고먑땨졔 인갼쒸이이이!! 뉴...뉴앙...! 고먑땨졔에!! 뉴뀨찌... 뉴뀨찌 이쓔랴쪠!! 졍먈료, 졍먈료 뉴뀨탼 빗쨔류쒸인고졔에엥!! 뉴히잇...! 먀리샤, 졍먈료 뉴뀨탸쓔 있늉고졔에엥!!”

 

설탕물을 줄줄 흘리며 새끼 마리사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의 절규하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감사했다. 너무나 격렬한 반응에 남자는 새끼 마리사가 기절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나보다도 부모님한테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렴. 부모님이 소풍에 데려온 덕에 이렇게 선물을 받은거니까 말이야.”

“뉴우우웅!! 엄먀아앙!! 아뺘아아!! 교먀운교졔에에엥!! 뉴뀨찌 소풍쒸 해죠쪄 고먀운고졔에에!! 뉴뀨찌 냐아죠셔 고먀운고졔에에에에!!”

 

남자가 말한대로 새끼 마리사는 레이무와 마리사에게도 격렬한 감사를 표했다. 부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도 중요하지... 어쨌든 이 새끼 윳쿠리들을 키우는 것은 레이무와 마리사인 것이다. 남자는 레이무와 마리사에게 한 쪽 눈을 찡긋 감으며 살짝 웃어 보였다.

 

“느, 느후후... 아가야가 느긋하면 엄마야도 느긋하다구!!”

“느, 느읏! 그런거제! 마리사는 아가야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거제!!”

 

조금 어색하게, 레이무와 마리사 역시 웃어 보였다. 새끼 마리사는 늉늉 눈물을 흘리며 빗자루에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혹시 작은 녀석이 이 빗자루까지 탐내진 않으려나. 남자는 새끼 레이무 쪽을 흘깃 살펴보았다.

 

“어라. 쟤는 잠든 것 같은데.” “느읏? 느, 정말이라구? 느응... 느긋이 자고 있는거제.”

 

새끼 레이무는 구슬에 몸을 딱 붙인 채로 잠들어 있었다. 구슬에 남아있던 라무네 냄새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삐잇삐잇 악을 쓰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하기도 했다. 새끼 레이무는 완전히 곯아 떨어져 있었다.

 

“느흥! 좀 전까지는 느긋할 수 없더니... 정말이지 아가야는 못 말린 다구!”

“늣! 잘된거제! 이대로 아가야가 깨기 전에, 느긋이 집씨로 돌아가는 거제!”

 

레이무와 마리사는 허둥지둥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집에 갈 준비라고는 했지만 딱히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늉늉 울고 있는 새끼 마리사에게 집에 돌아간다고 말을 하고, 새끼 레이무를 레이무의 머리 위에 태우기만 하면 된다.

 

“느, 느읏...! 느, 느읏! 자, 잠깐! 잠깐이라구! 아가야가 데-굴데-굴해버린다구!”

“느, 느긋이 알았다제! 느읏... 아가야가 깨면 느긋할 수 없는거라제...”

 

그러나 그것조차 레이무와 마리사에게는 쉽지 않았다. 새끼 레이무 만이라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지만, 지금은 티슈와 구슬까지 챙겨야한다. 레이무의 양쪽 귀밑털과 마리사의 입을 동원해 티슈를 들어 올리려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러나 노련한 길윳쿠리답게 두 마리는 곧 해결책을 찾아냈다.

 

“느! 마리사 알았다구! 우선 티슈-씨만 레이무 위에 놓는 거제! 그런 다음 아가야를 티슈-씨 위에 놓으면 되는거제!!”

“느늣! 그렇다구! 구슬씨는 레이무가 입씨에 넣어가면 된다구! 역시 마리사는 스마-트한거네!”

 

아가야가 깨어나 버릴 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 리스크는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윳생이란 위험의 연속이다. 마리사는 느후우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레이무가 어... 들고? 싣고? 아니 이고 가는건가...?  여튼 레이무 머리 위에 놓으면 되지? 내가 해 줄게.”

“늣!?”

 

남자의 손이 쑤욱 새끼 레이무쪽으로 뻗어왔다. 마리사는 화들짝 놀라 남자를 막으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남자가 티슈와 새끼 레이무와 구슬을 전부 집어든 후였다.

 

“느으읏! 조심! 조심하는거제! 느긋이! 느긋이!”

“느으으! 인간씨! 느긋이! 느긋이 있으라구!”

“걱정 마 걱정 마. 두 손으로 하고 있잖아.”

 

티슈는 새끼 레이무와 구슬을 태운 채 (윳쿠리 기준으로) 순식간에 레이무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새끼 레이무가 잠에서 깨어나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제 난 가봐야겠다.”

 

30분 정도 있던 여유는 이제 다 써버렸다. 슬슬 뛰지 않으면 지각하고 말 것이다. 남자는 윳쿠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늉...? 인갼쒸 갸벼리늉고졔...?”

“엉. 나도 그, 사냥하러 가던 중이었거든. 난 갈게! 잘 지내!”

“뉴우웅!! 인갼쒸!! 졍먈료 교맙쓥니댜-인고졔엣!!”

“그래 그래. 부모님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라. 삼 일 후면 어버이 날이니까 꼭 챙기고.”

“뉴웅...? 샤-밀...? 어벼의 냘...?”

“어... 그러니까, 내일의 내일의 내일은, 그, 엄마야와 아빠야의 날이야. 오늘이 아가야의 날인 것처럼. 아니 뭐, 모르면 됐어! 여튼 간다!”

“뉴늉! 뉴뀨찌 아랴땨뀨! 인갼쒸!! 뉴꾸찌...”

 

남자는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새끼 마리사가 채 인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남자는 윳쿠리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씨는 순식간에 떠나가 사라졌다.

 

“이쓔랴... 뉴? 인갼쒸이...?”

 

새끼 마리사가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동체 시력과 반응이 더욱 떨어지는 새끼 윳쿠리에게는 정말로 남자가 뿅하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꿈을 꾼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새끼 마리사의 옆에는 느긋한 빗자루씨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새끼 마리사는 다시 기쁨시시를 졸졸 흘리며 빗자루씨에 몸을 부볐다.

 

“느으... 인간씨... 느긋하지 않게 가버렸다구...?”

“느읏... 그래도, 느긋한 인간씨였던 거제...?”

 

레이무와 마리사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느긋한 인간씨였다. 팥소뇌에 새겨진 ‘인간씨는 느긋할 수 없다’는 길윳쿠리의 원칙이 흔들릴 정도로 느긋한 인간씨였다. 아무런 혐오도 경멸도 보이지 않고 자신들을 진심으로 느긋하게 대해 주었다. 길윳쿠리는 평생 하나도 가져 보지 못할 보물씨들을 잔뜩 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조금도 생색을 내지 않고, 이런 것쯤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느으, 그럼, 마리사는, 느긋이 사냥씨를 가는거라제...”

“느읏... 알았다구. 조심하는거라구...”

 

레이무와 마리사는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씨를 만나고도 죽기는 커녕 선물을 받았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윳생에 있어 이런 기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일어난 것도 믿기 힘들다. 그러나 레이무와 마리사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가 아니다. 인간씨에게 이런 것쯤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그것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길윳쿠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도, 인간씨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째서 인간씨만, 저렇게 느긋할 수 있는 일을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 만으로도 윳쿠리들은 이렇게나 행복-!해 질 수 있는데,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을, 어째서 다른 인간들은 윳쿠리에게 해 주지 않는 것일까.

 

같은 생각을 팥소뇌에 품은 채, 레이무와 마리사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것이 마리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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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썼지만 뭔가 분량이 나누기 좋아서 나눠 올려 봅니다. 어린이날 특집이니 어린이날이 끝나기 전에 이어 올리겠습니다. 

  • ?
    륭돵 2020.05.05 08:50
    다른 인간씨한테도 함부로 이것저것 해달라고 말하다가 자멸하는 엔딩이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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