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무의 의식에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느긋이’였다. 정확히는 단어가 아닌 개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어’란 언어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레이무는 아직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갓 태어난 레이무의 의식은 그 안에 들어있는 유일한 것, 즉 ‘느긋함’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느긋이. 느긋이. 느긋이. 조금도 질리지 않는다. 애초에 ‘조금’이라는 개념도, ‘질린다’는 개념도, 아직 레이무의 의식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레이무의 의식에 ‘레이무’, 즉 ‘나’라는 개념이 태어났다. 그와 동시에 중추팥소에 내장되어 있던 언어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레-뮤뉸, 레-뮤라구… 느그찌… 레-뮤… 느그찌…)
느긋이 - 그것은 레이무가 최초로 인지한 개념이자 최초로 떠올린 단어였으며, 자신의 생명의 형태(윳쿠리)이며 목적이었다. 느긋이… 느긋이… 레이무는 이제 단어의 형태를 갖추게 된 그것을 계속해서 되내었다.
(레-뮤… 뉴-찌… 레뮤… 뉴-찌…)
정신과 마찬가지로 레이무의 육체 역시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원래 윳쿠리는 ‘우걱우걱’을 통해 자신의 팥소와 반죽을 보충하지만, 아직 태어나기 전인 레이무는 아직 ‘우걱우걱’을 할 수 없다. 몸뚱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라고는 아직 중추 팥소와 약간의 팥소 밖에 없는 것이다. ‘우걱우걱’은 할 수 없지만, 그 대신 레이무의 중추팥소는 줄기로부터 전해지는 영양을 직접 자신의 팥소로 바꿀 수 있다. 레이무는 조금씩 자신을 키워나갔다.
(레-뮤…뉴-찌…쟈란댜규…뉴-찌…태어나기률…뉴-찌…)
또 다시 시간이 지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는 모른다. 태어나기 전의, 잠을 잘 때의 의식보다도 희미한 레이무의 의식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뉴…레-뮤…뉴…뉴…?)
날이 서서히 밝아 오듯이, 희미한 레이무의 이식에 조금씩 빛이 들어온다. 레이무는 본능적으로 때가 거의 되었음을 알았다.
(뉴…레-뮤…뉴-찌 태어냔댜규…뉴-찌…태어냔댜규…)
서서히 밝아지던 빛이 마침내 레이무의 의식을 완전히 채웠다.
(뉴…! 기여운 레-뮤갸 뉴꾸찌 세샹쒸에 턔어난댜규!)
그다지 특별한 것 없는 탄생 대사와 함께, 레이무의 의식은 완전히 각성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늇-찌 있쓔랴규!!)
생애 처음으로 외친 인사는, 오로지 레이무의 의식 속에서만 울려 퍼졌다. 아가야의 첫 인사에 답하는 부모의 인사. 아가야의 탄생에 대비해 깔아놓았을 푹신푹신의 감촉. 갓 태어난 아가야를 낼-름낼-름해주는 부모 윳쿠리의 혀. 달콤하고 부드러워 갓 태어난 아기 윳쿠리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줄기씨의 달콤한 맛과 냄새. 아가야의 탄생에 눈물 흘리며 기뻐할 부모 윳쿠리의 얼굴. 그것들 중 어느 것도 레이무의 의식에 감지되지 않았다.
(늉…? 레-뮤, 뉴-찌 턔어냔고랴규…? 먐먀량 뺩뺘, 오디있늉고냐규…?)
레이무의 중얼거림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레이무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원래 윳쿠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바로바로 입 밖으로 내뱉는다. ‘생각’과 ‘발언’의 구별이 거의 없는 것이다. 완전히 성장한 윳쿠리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그것을 구별할 수 있다. 이제 막 태어난 레이무가 그런 것이 가능할 리 없다.
(뉴웅…? 먐먀됴, 뺩뺘됴…)
보이질 않는다, 라고 말(생각)하려던 레이무는 당황했다. ‘보인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각에 입력되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시각에 입력되는 정보가 0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0이라는 정보의 값은 존재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암흑 - 그것이 0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무에게는 그것 조차도 없었다. 비유하자면 널(Null)값 - 즉 정보가 아예 입력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아니, 사실 널(Null)값조차 아니었다. 애초에 레이무에게는, 정보를 입력할 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보다’라는 개념은 레이무에게 있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뉴…뉴…?)
눈 뿐만이 아니었다. 레이무에게는 감각 기관이 없었다. 촉각과 후각과 청각 모두를 담당할 피부도, 레이무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각을 담당하는 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레이무는 자신에게 감각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다. 윳쿠리는 이런저런 개념과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채 태어난다고 하지만, ‘보인다’는게 어떤 것이며 ‘눈’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그런 ‘팥소의 기억’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옆에 멀쩡한 윳쿠리가 하나 있다고 해도, 그 윳쿠리의 존재를 알아챌 수도 없다. 당연히 자신과 비교해 볼 수도 없다. 자신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레이무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늉…먐먀야…? 뺩뺘야…?)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레이무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꽤나 긴 시간이었다.
(뉴웅… 뉴웅… 아무됴 업늉고냐규…)
보통 윳쿠리가 갑자기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하루도 견디지 못했겠지만, 레이무는 부모가 없다는 것 이외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 쓰일 리 없다. 마악 수정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레이무에게 몸뚱이라 할 만한 것은 중추팥소와 그 주변의 팥소밖에 없었다. 사실상 육체 없이 정신만이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상태이다. 끊임없이 빨빨대며 돌아다닐 수도 없고, 별 것 아닌 일에 빽빽 지쳐 널부러질 때 까지 울어 댈 수도 없으니 에너지를 소모할 일이 없다. 아냐루도 마무마무도 없으니 팥소와 물이 빠져나갈 일도 없고, 그것을 다시 채울 필요도 없다. 아무런 자극도 없는, 아니 자극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정적은, 윳쿠리에게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고독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레이무는 그럭저럭 ‘느긋할’ 수 있었다.
그렇게 느긋하고 있던 레이무에게, 갑자기 어떠한 자극이 가해졌다.
(레-뮤… 하뉴률 냐고이쎠어어어…!?)
레이무는 환희에 차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레이무에게 자극을 전달한 감각은, 중력을 감지하는 ‘평형 감각’이었다. 포유류의 경우 귀 안의 반고리관이 평형 감각을 담당하지만, 반고리관은 커녕 귀도 없는 윳쿠리는 중추 팥소 자체가 평형 감각을 담당한다. 중추 팥소밖에 없는 레이무라도 평형 감각은 남아있는 것이다.
(뉴웅! 레-뮤 뎨-귤뎨-귤햐교 이쎠! 뉴늉! 뎨-귤뎨-귤…! 뎨-귤뎨-귤…!)
이어서 평형 감각은 자신의 몸이 이리 저리 돌려지고 있다는 것을 레이무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보통 윳쿠리들이 느끼는 것에 비하자면 상당히 미약한 것이었다. 보통 윳쿠리였다면 시각과 촉각을 통해 그 ‘회전’을 훨씬 더 강렬하게, 말 그대로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것은 레이무가 윳생 최초로 맛보는 ‘자극’이었다. 레이무는 환희에 몸을 -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 떨었다. 마무마무가 있었다면 기쁨 시시를 길-게 뽑아냈을 것이 분명했다.
(뉴뉴우웅!! 뎨-귤뎨-귤! 뎨-귤ㄷ…)
또 다른 ‘감각’중 하나가 신체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것은 정확히 어떠한 감각이라고 말 하기는 힘든 감각이었다. 그러나 레이무는 그 감각이 자신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뉴…아…아…?)
자신의 팥소가, 사라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전체의 절반 정도가.
곧 이어 레이무에게 남아있던 또 하나의 감각이 레이무에게 자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중추 팥소와 팥소로도 느낄 수 있는 감각.
그것은 통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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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멀쩡하네?
잘라낸 만쥬 반 쪽을 들여다보며 연구원은 생각했다. 팥소를 약간 덜어 당도 측정도 해 보았다. 연구원의 예상과 달리 평범했다. 이 만쥬 안에 들어있던 ‘팥소’는, 연구원의 예상보다는 훨씬 ‘느긋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이것도 얼마 버티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연구원의 목표는, 윳쿠리를 이용해 만쥬의 유통기한을 크게 늘리는 것이었다. 외피가 제거되어 팥소가 드러나더라도, 중추 팥소 주변의 팥소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윳쿠리는 생각보다 훨씬 길게 생존할 수 있다. 으깨져서 쓰레기 봉투에 처박힌 윳쿠리가 쓰레기 봉투를 ‘외피’삼아 연명하는 - 윳쿠리 입장에서는 연명‘당하는’ 것이겠지만 -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윳쿠리는 상하지 않는다. 그럼 길거리에 널린 곰팡이 핀 길윳쿠리들은 뭐냐, 하겠지만, 그 곰팡이는 윳쿠리에 피는 것이 아니라 윳쿠리의 표면에 묻은 설탕물과 오물에 피는 것이다. 연구원을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윳쿠리의 외피를 일반 만쥬피로 통째로 바꿔 안에 든 윳쿠리가 계속 생존하게 만듦으로써 만쥬가 상하지 않게 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실험의 결과는 전부 신통치 못했다.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라무네로 푹 재운 다음 외피를 교체했지만, 그후 깨어난 순간부터 윳쿠리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어갔다.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상품으로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당도가 상승해 버린다. 물론 계속 라무네를 주사해서 재워 놓으면 괜찮지만, 그러면 만쥬가 라무네 맛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라무네도 공짜는 아니다.
흠… 혹시나 하고 해 본건데 대성공이라니.
이번 실험에서 연구원은, 갓 중추 팥소가 생겨나 육체/정신적 발달이 제로인 극초기의 새끼 윳쿠리를 그대로 만쥬피 속으로옮긴 후, 인공줄기를 통해 영양을 공급해 성장시켰다. 연구원 스스로 인정했듯이 스스로의 상상만을 근거로 해서 시도한 방법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거의 만쥬가 한 달 가까이 상하지 않은 채 보존되었던 것이다. 라무네를 들이 부을 필요도 없고, 당도가 극단적으로 상승하는 경우도 없다.
이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 보고 싶은데 말이지…
실험대 가득히 놓여 있는 샘플들을 둘러보며 연구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 샘플들의 중추팥소는 제대로 된 몸뚱이와 ‘연결’되지 못한 채 성장을 마쳐버렸다. 동물로 치자면 신경 조직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 팥소가 들어 있던 자신의 몸뚱이에 다시 되돌려 놓고 오렌지 주스를 퍼붓는다 해도, 이미 끝나버린 성장의 단계를 다시 밟아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
연구원의 코에 희미한 단내가 포착되었다. 설마 샘플 중 하나가 사망해서 발효하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코를 킁킁대며 실험대 위를 둘러보던 연구원은 그 단내가 방금 전 반으로 잘랐던 만쥬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갑자기… 아, 설마.
연구원이 만쥬의 남은 반쪽을 헤집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중추 팥소가 남아있었다. 이 만쥬가 아직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이 만쥬의 마지막 몇 분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 혹은 고통스러울 - 것이 분명했다. 포장지에 한 입에 먹으라고 써놓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역으로 한 입 먹으면 더 달아진다는 걸 포인트로 잡아서 선전하거나. 연구원은 피식 웃었다.
무슨 짓을 해도 이게 잘 팔릴 수는 없겠지.
실험은 대성공이었지만, 이 기술을 적용해 만든 만쥬가 상품으로 가치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연구원은 이 만쥬가 잘 팔릴리 없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애초에 만쥬라는 상품이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맛이다. 상온에 한 달간 방치해 둬도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인가. 그냥 신선하고 맛있는 만쥬를 사와서 바로 먹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윳쿠리가 재료로 쓰였다는 점에 혐오감을 가질 사람들도 많다. 아니 거의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윳쿠리를 재료로 한 만쥬 따위는 먹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위생적인 환경에서 키웠다고 강조해 본들 소용없다.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윳쿠리의 이미지는 거무죽죽한 길윳쿠리이다.위생적으로 키웠다고 해서 바퀴벌레를 먹으려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뭐,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상품을 어떻게 팔지는 연구원의 전공분야가 아니다. 그런 건 다른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샘플들을 둘러 본 후 연구실을 나갔다.
실험대 위를 꽉 채운 만쥬들 한 마리 한 마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모두 고독했다. 그 만쥬들은 하나같이 느긋느긋 중얼대고 있었지만, 연구실은 언제나 그랬듯이 완전히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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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던게 잘 나아가질 않아 짧게 다른 걸 써보았습니다. 오타나 오류가 있으면 부담없이 지적해주셔도 됩니다. 감상과 추천은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