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느뺴애애애애애애애액!!!”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저 새된 목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짜증이 치민다. 평일 내내 업무에 시달린 몸은 무거웠다. 그냥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으니 그럴 수도 없다.
여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느으읏! 아가야! 진정하라구!”
“느휴... 다행히 아-야아-야한 것 같진 않다구...”
아기 마리사와 아기 레이무가 소파를 시시로 적시고 있다. 얌전히 제자리에서 울어대지도 않는다. 이리 저리 굴러 다니며 설탕물을 온 소파에 뿌려대고 있다. 바닥에는 컵이 깨져있고, 그 안에 들어있던 주스가 방바닥에 흘러있다. 마시다가 깜빡하고 소파 위에 놓아두었던 모양이다. 그 안에 들어있던 주스를 맛보고 싶어 이리저리 밀쳐대다가 떨어트린 것이리라.
일단 컵부터 치우자. 여자는 깨진 컵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뉴삐이이이이이!! 삐...삐이이이이잇!!!”
“늉냐아아아아아아!!! 무쪄어어어어어!!!”
그저 컵이 깨진 소리에 놀란 것만으로 이렇게나 울어대는 것인가. 여자는 머리가 아파왔다.
“느! 언니야! 아가야가 많이 놀란거라구!”
“늣! 그래도 괜찮다구! 다치지는 않았다구!”
드디어 사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굳이 거울을 볼 필요도 없이, 여자는 자신의 얼굴이 분노와 불쾌함과 피곤함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두 윳쿠리는 미안한 기색은커녕 안도하며 웃고 있다. ‘언니야’도 아가야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물론 여자는 아기 레이무가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아기 레이무가 다치는 바람에 더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일 뿐이었다.
“...대체 소파 위엔 어떻게 올라간 거야?”
“늣...! 느, 아가야들이 커다란 푹-신푹-신씨에 올라가고 싶다고 해서, 느, 마리사가, 높-이높-이를 한 다음에, 또 쭈-욱쭈-욱을 해서... 느...”
불쾌한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날카롭게 묻자, 그제서야 겨우 레이무와 마리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컵이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아가야들이 떨어졌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늣, 그, 그건...”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마리사를 보며 여자는 간신히 분을 삭였다.
“느, 느읏! 언니야! 아가야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거라구! 느긋이... 느긋이 이해하라구?”
레이무가 눈치를 보며 여자를 달래려 한다. 하지만 여자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애지중지 별 것 아닌 것에도 소란을 떨며 과보호를 해대면서도 정작 정말로 위험한 짓은 태연하게 한다. 감시를 소홀히 한 것을 지적하자 아가야를 핑계로 대며 슬쩍 넘어가려 한다.
정말로 아가야를 소중히 여기기는 하는 건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레이무와 마리사의 영특함에 놀라곤 했었지만, 이제는 멍청함에 놀라고 있다. 아가야와 함께 지능도 같이 빠져나가 버린걸까.
“하아...”
더 이상 말하기도 피곤하다. 여자는 일단 깨진 컵을 치우기로 했다.
내 윳쿠리는 다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건 실수였다.
금뱃지 윳쿠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후천적인 훈육에 의해 ‘금뱃지가 되는’ 윳쿠리와 처음부터 ‘금뱃지로 태어나는’ 윳쿠리. 만화 캐릭터로 말하자면 ‘노력형’과 ‘천재형’이라고나 할까. 물론 ‘노력형’ 금뱃지라 해도 윳쿠리 중에서는 최상급에 속하는 지능을 타고나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노력이라는 것도 사실 윳쿠리를 훈련시키는 훈육사가 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금뱃지로서의 우수함을 따지자면 후자의 ‘천재형’ 금뱃지가 훨씬 우수하다. 전자의 ‘노력형’ 금뱃지는 인간과 살아가는 내내 훈육을 통해 배운 규칙들을 되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점점 게스화가 진행되며, 규칙을 기억하느라 바쁜 팥소뇌에 다른 것을 입력할 여유는 거의 없다. 반면 후자인 ‘천재형’은 그저 자연스럽게 ‘느긋’하기만 해도 인간과 지내는데 별다른 문제가 생기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가능하다. 때문에 뱃지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는 쪽에서는 훈육에 의해 길들여진 펫윳쿠리는 금뱃지를 절대 주지 않기도 한다.
여자의 펫 윳쿠리인 레이무와 마리사는 ‘천재형’ 금뱃지들이었다. 하지만 펫윳쿠리의 사망 원인 제 1순위인 ‘아가야’들에게만은 이 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말하는 것은 여전히 공손하다.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안다. 사과도 계속 한다. 하지만 하는 짓 자체는 아가야를 낳고 게스화된 펫윳쿠리와 다를 것이 없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미안할 짓을 해대니 오히려 더 화가 난다. 이젠 그나마 사과조차 하질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 여자는 레이무와 마리사를 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레이무와 마리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람으로서, 펫 주인으로서 그것은 못할 짓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다.
안 되겠다. 쏘자. 아니, 쓰자. 윳쿠리숍에서 가르쳐준 그 방법을.
여자는 깨진 컵만 대충 치우고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물론 윳쿠리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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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여자는 현관에서 네 마리 윳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긋이 있으라구!!!””””
윳쿠리 네 마리가 소리 높여 인사를 한다. 잠시 서로의 모습을 눈에 새기듯 마주보다가 - 아기 레이무와 아기 마리사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제는 아기 레이무와 아기 마리사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두 마리는 이미 성체가 되었으니까.
“아, 지금 나갔습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통화를 종료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진작 이럴걸 그랬어~”
여자는 점점 작아지는 두 마리 윳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쭈욱 기지개를 폈다. 이제 더는 저 녀석들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저 두 마리는 ‘독립’을 했으니까.
애초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윳쿠리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기 윳쿠리가 성체가 될 때 까지는 대략 1년 정도가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기 레이무와 마리사는 1주일만에 성체가 되어 오늘 ‘독립’을 했다. 요컨대 무언가 인위적인 조작이 있었다는 뜻이다.
여자가 쓴 방법은 단순했다. 아기 윳쿠리들이 먹는 사료의 양을 대폭 늘리고 거기에 고농도의 성장 촉진제와 라무네를 섞은 것이다. 성장 촉진제에 더해 영양 공급과 수면 시간을 늘려 단기간에 성체로 만들어 독립하게 한다. 윳쿠리숍에서 두 번째로 추천해 주었던 방법이다. 혹시 아기 윳쿠리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혹시 레이무와 마리사가 1주일만에 성체가 된 아가야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의심이 되어 주저했지만 - 아무런 문제도 없이 1주일 만에 이렇게 귀찮은 녀석들을 전부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육아를 금지하면 펫윳쿠리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육아를 허락하면 사육주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면 육아 기간을 극단적으로 줄여 사육주가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역시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는 것이 최고다.
“레이무, 마리사, 슬슬 들어가야지?”
“느...느흣... 알았다구... 언니야...”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레이무와 마리사를 보며 여자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금뱃지인데 1주일만에 자라나는 아가야를 보고도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않다니.
“뭐 그게 윳쿠리의 귀여운 점이지... 레이무, 마리사, 이제 보이지도 않잖아.”
“느흐...흣... 느흐윽...! 아가야는... 분명히 느긋한 펫윳쿠리가 될거라구...!”
“마리사는... 느흑...! 알고 있다구...!”
저 두 놈 때문에 생고생을 했다 하지만 이대로 길윳쿠리가 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면 레이무와 마리사가 내버려 둘 리 없다. 레이무와 마리사에게는 두 마리 모두 펫윳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는 사실이었다. 이미 윳쿠리숍과는 약속이 되어 있다. 방금 전의 통화도 대기하고 있는 윳쿠리숍 직원과 한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벌써 윳쿠리숍 직원에게 회수되어있을 것이다. 금뱃지들의 자식이니 조금만 훈육을 받으면 부모처럼 금뱃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윳쿠리숍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인 것이다.
“정말~ 아가야 생기고 나서는 너무 말 안 듣는 거 아니니?”
““하늘을 날고 있어~!?””
여자는 결국 마리사와 레이무를 안아들어 집안으로 데려왔다.
“자 그럼, 언니야는 2주 만에 야무지게 낮잠을 잘 꺼니까. 알았지?”
“늣! 느긋이 알았다구.”
“늣! 느긋이 쉬는거네!”
오늘로 아기 윳쿠리가 태어난 지 딱 2주 째. 그리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음에도, 그 동안 쌓인 여자의 피로는 상당했다. 아기 윳쿠리 두 마리가 사라졌다는데서 오는 해방감은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늣... 레이무...!”
“마리사...!”
둘 만 남은 거실에서, 레이무와 마리사는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여운에 젖은 채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레이무와 마리사처럼, 정말로 느긋하게 자라준거라구...!"
"그렇다구...! 분명 마리사와 레이무처럼, 잔-뜩 느긋할 수 있는게 분명하다구...!"
“레이무와 마리사의 아가야는... 정말로 느긋하다구...!”
“늣...! 그렇다구... 마리사와 레이무의 아가야는... 정말로 느긋하다구...!”
속마음을 숨길 수 없는 윳쿠리들은 생각하는 것을 바로바로 입에 올린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두 윳쿠리는 서로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야는 느긋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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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여자는 세 마리의 윳쿠리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느~그탄 날~ 달~코만 날~”
“느후후후... 아가야의 노래는 느긋할 수 있다구...”
아기 레이무가 마리사의 모자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대지만 모자 위에서 굴러 떨어질 염려는 없다. 아기 레이무는 마리사의 모자에 부착한 아기 윳쿠리용 시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아기 윳쿠리를 밖으로 데려 나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말했지만 자칭 ‘육아의 베테랑’인 레이무와 마리사는 떼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육아 경험이란 것이 딱 한 번, 고작 2주일 동안의 일이었으며, 그나마 실제로 아기 윳쿠리를 실제로 ‘기른’ 것은 주인인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여자한테는 기도 안차는 헛소리일 뿐이었다. 여자는 약간이나마 자신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져 간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해도 레이무와 마리사를 버릴 생각은 없다. 어쨌든 기르기로 한 이상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윳쿠리를 설득하려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이 그저 짜증만 날 뿐이다. 그렇다고 산책을 데려 갔다가 ‘느긋한 아가야’가 박살나기라도 한다면 더욱 짜증나는 일이 될 것이다. 자신의 불편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여자는 아기 윳쿠리용 시트를 사고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윳쿠리들과 함께 공원까지 다녀오는 것을 선택했다.
“느흐흥~ 산후 우울증씨가 어디론가 가버리고 있다구~”
느려터진 윳쿠리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때때로 내뱉는 헛소리를 듣는다. 애석하게도, 짜증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했던 그 선택조차 여자의 예상보다는 훨씬 짜증나는 것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모자 위의 아기 윳쿠리를 바라본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느긋한 아가야의 모습을 보고 행보옥~!해진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차에 성공한 후 그 캐릭터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마리사 모자 위의 ‘아기 윳쿠리’는 사실 아기 윳쿠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체 ‘미니 윳쿠리’였다.
레이무와 마리사가 아가야들의 ‘독립’ 직후 다시 새끼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는 윳쿠리숍이 추천해 주었던 또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성장 촉진제와 라무네가 아직 꽤 남아있기는 했지만, 저번의 그 방법을 다시 한 번 쓸 생각은 없었다. 아가야를 독립시킨 다음 또 다시 새끼를 가질게 - 자신은 육아의 신님이니 뭐니 하면서 - 뻔하니까. 그 대신 여자는 새끼 윳쿠리를 윳쿠리숍에서 사온 ‘육아용 성체 미니 윳쿠리’로 ‘바꿔치기’ 했다. 아기 윳쿠리의 장식을 떼어 성체 콩윳쿠리에게 붙인 것이다. 장식물을 떼어내고 남은 진짜 새끼는 울분을 담아 집밖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워낙 지랄맞은 새끼였던지라 죄책감은 조금도 없었다.
물론 이 ‘육아용 성체 미니 윳쿠리’는 단순한 성체 미니 윳쿠리가 아니다. 육아용 성체 미니 윳쿠리는 줄기에 매달린 채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상태로, 즉 ‘태어나지 않은 채’로 성체 크기까지 자라나게 만든 것이다. 장식물 역시 극초기에 제거 되어 다른 윳쿠리의 장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성체의 몸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 윳쿠리의 정신을 담아 만들어진 육아용 성체 미니 윳쿠리들은 눈을 뜬 순간(즉 태어난 순간) 바로 옆에 있던 성체 윳쿠리들을 자연스럽게 부모라고 인식을 한다. 때문에 자신이 아기 취급을 당하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성체 윳쿠리들 역시 자기 아가야의 장식이 붙어 있으므로 자신의 아가야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성체가 되어있는 미니 윳쿠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쭈욱 아기 윳쿠리로서 살아가게 된다.
이건 육아 기간을 끝없이 늘린 것이니 주인의 스트레스를 줄이긴 커녕 늘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윳쿠리숍에서 이 방법을 추천할 리 없다. 그래도 나름 성체인 만큼 성체 미니 윳쿠리는 아기 윳쿠리보다는 손이 덜 간다. 조금 거칠지만 좀 더 와 닿는 표현을 쓰자면, 지랄이 훨씬 덜 한 것이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아기 윳쿠리와 다를 것이 없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정신이 육체의 성장을 따라잡으려는 듯이 순식간에 성숙해져 간다. 물론 차라리 원래 아기 윳쿠리가 나았다 싶을 정도로 질이 낮은 녀석이 걸릴 때도 있지만, 그러면 다시 한 번 바꿔치기를 하면 된다. 사실 한 번 만에 주인이 만족할 만한 레벨의 미니 윳쿠리가 걸리는 경우는 없다.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은’ 녀석들을 그대로 포장해 파는 것이다 보니 지능이나 성품을 체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윳쿠리의 대다수는 ‘저급품’이다. 운이 없는 경우 두 박스를 까고도 제대로 된 녀석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후후후...”
여자는 고작 네 번 만에 ‘당첨’을 뽑아냈다. 호구들을 낚기 위해 확률을 주작해놓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지금 여자와 살고 있는 ‘아기 레이무’는 원래의 아기 레이무와는 아예 다른 생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얌전하다. 시시와 응응을 제대로 가리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든다고 빼액 울어대지도 않고, 귀에 거슬리는 혀짤배기 소리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이 정도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저번의 ‘성장 촉진 후 독립’이 고통을 짧고 굵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번의 ‘가챠 후 바꿔치기’는 가늘고 길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느늣! 언니야도 아가야를 보고 느긋하고 있다제!”
“그럼 그럼~ 느긋이~”
마리사의 태평한 말을 흘려보낸다. 이제는 레이무와 마리사가 뭐라 하든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여자는 짜증날 정도로 느린 걸음을 유지하며 공원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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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아가야! 공원씨에 다 왔다구!”
“느늣! 아가야! 오늘은 어디를... 늣?”
공원에 도착한 윳쿠리들을 맞아준 것은 동족 아닌 동족, 길윳쿠리였다.
흔하디 흔한 레이무와 마리사 한 쌍. 장식물 한 귀퉁이는 뜯겨나가 있었다. 몸뚱이도 지저분하긴 했지만 저게 물로 씻기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때에 찌든 길윳쿠리 정도는 아니다. 모자와 머리 위에 얹고 있는 새끼 윳쿠리들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한 번의 상쾌로 태어난 것들이 아니란 뜻이다. 새끼 윳쿠리들의 상태도 제각각이었다. 아직 생기가 조금은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딱 봐도 더 이상 살기는 그른 것도 있고, 이미 죽어서 아냐루에서 팥소를 흘리고 있는 것도 있다. 부모 윳쿠리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느으... 길윳쿠리는 느긋할 수 없다구...”
“느으! 언니야! 저쪽으로 돌아가는 거라제! 느으! 언니야! ...언니야?”
여자는 마리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생각도 못한 만남에 얼어 붙어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종의 윳쿠리가 여럿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곤 한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똑같은 이름을 쓰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윳쿠리처럼 장식으로 윳쿠리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윳쿠리들도 개체마다 생김새가 다르다. 처음 보는 윳쿠리라면 몰라도 오랫동안 자주 본 윳쿠리라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 앞에 있는 저 길윳쿠리 레이무와 마리사는, 분명 ‘독립’했던 레이무와 마리사의 아가야들이었다.
윳쿠리숍이 자신을 속인 것인가. 여자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부모 길윳쿠리들의 장식에 뱃지가 뜯어져 나간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은 이렇게 버려졌지만, 이 둘은 어쨌든 한때는 펫윳쿠리였던 것이다.
사실, 애초에 윳쿠리숍은 레이무와 마리사를 금뱃지로 훈련시킬 생각은 없었다. 금뱃지 윳쿠리 훈련은 태어나는 직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오냐오냐하는 부모 밑에서 성체로 자라버린 윳쿠리를 훈련해 봤자 은뱃지가 될까 말까이다. 윳쿠리숍은 레이무와 마리사에게 아무런 훈련도 없이 동뱃지를 달아 준 다음, 스스로 윳쿠리를 훈련시켜보고 싶다던 손님에게 팔았다. 금뱃지의 새끼이니 약간만 훈련해도 금세 금뱃지 급이 될 것이라면서. 사기라 해도 될 만한 상법이었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동뱃지 윳쿠리 때문에 굳이 가게에 항의를 하러 오는 사람은 드물다. 레이무와 마리사를 사갔던 손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무와 마리사를 사갔던 사람은 가게에 항의를 하러 오는 대신 레이무와 마리사를 공원에 버렸다.
“느... 어재저... 마디자가... 느... 늣!?!?”
“데이부... 배히가... 꼬르...ㄱ...꼬... 느늣!?!?”
길윳쿠리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녀석들을 알아보았듯, 이 녀석들 역시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난처하기 짝이 없다. 독립한 자신의 아가야들이 길윳쿠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 레이무와 마리사는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느...느...!! 엉니야아아아아!! 느읏!! 사라따제에에에!!!”
“정마됴 엉니야라구우우우!! 데이부능 데이부라구우우우!! 엉니야으 데이부라구우우우!!”
아니나 다를까, 길윳쿠리들은 울부짖으며 여자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분명 이것들도 펫윳쿠리로 키워달라고 하겠지. 저 더러운 것들도 내가 씻기게 될 거고. 아니, 그것만은 안 되지. 생리적으로 무리라고. 그 정도는 레이무와 마리사에게 시키자.
그러한 생각들을 생각하면서도 사실 - 여자는 그리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제부터 짜증나는 일이 일어 날 것이라는 생각에 짜증이 날 뿐이었다. 정 안 된다면 윳쿠리숍에서 첫 번째로 추천하는 방법을 쓰면 될 일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자는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졔에엣!! 엉니야!! 마디자와 데이부으 아가야드리 킁닐인거다졔에에에!!! 얼릉 지브로 가능거졔!!!”
“망알 노예가 데이부를 버뎌다구우우우우!! 능!! 일단 달컴달컴을 가져오능거라구!! 당장이먼 댄다구우우우!!”
아가야를 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뾰옹 뾰옹 뛰어온다. 머리카락을 물고 버틸 힘이 없던 새끼 윳쿠리들이 굴러 떨어진다. 제발 저 새끼 윳쿠리들이라도 다 죽어버리기를, 여자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여자의 기우였다.
“느으으으읏!!! 갑자기 나타나선 무슨 헛소리냐제에에에!!!”
“언니야는, 레이무와 마리사의 언니야라구우우우!!”
“...응?”
레이무와 마리사가 자신들의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망알 데이부야 말로 무든 허쏘리냐제에에에!! 엉니야능 바디자으 엉니야인거라제에에에!”
“똥게스가아아아아아!! 감미 데이부으 자디릉 빼서어어어어!?!? 정부 텨듀겨준다구우우우!!”
자식 두 마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부모인 레이무와 마리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못알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들에게 부모가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여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윳쿠리들의 습성 상 당연한 일이었다.
자식 윳쿠리가 자신이 성체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모 역시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식 윳쿠리는 ‘독립’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독립을 하고 나면,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빠르게 잃어버리게 된다. 애초에 윳쿠리란 날것은 기존의 과학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일단 윳쿠리 연구자들은 이 현상이 윳쿠리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한다. 요컨대 가족끼리도 아무 문제 없이 새끼를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뿌꾸로 하때 얌저니 꺼디능게 조을꺼라제에에에!? 뿌꾸!!! 뿌꾸우우!!!”
“데이부능 마디자처덤 상냥아지 안타구우우우!!! 덩말로 발바듀거버딘다구우우우!?!?”
“느, 느히이이이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자식 윳쿠리들의 기색에 부모 윳쿠리들은 완전히 쫄아버린 상태였다. 인간의 경우에도 온 몸에 오물을 묻힌 노숙자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공포는 둘째 치더라도 혐오감 때문에 움츠러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노숙자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면? 게다가 자신은 아기까지 안고 있다면?
“느, 느, 느히이이잇!! 언니야! 어떻게 좀 해보라제!!”
무섭시시까지 지릴 정도로 겁을 먹은 마리사가 여자를 부르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저 자식 레이무와 마리사를, 아니 자신의 앞에 모여 온갖 거슬리는 것들을 뿜어대는 윳쿠리들 전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애정이라고 할까, 책임감이라고 할까. 근 두 달 동안 꾸준히 줄어들어 왔지만, 그래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분명히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무언가가 방금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여자는 느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억누르고 있던 생각들이 서서히 마음속으로 스며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역시.
“느... 느...? 언니야...? 느긋할 수 없는 길윳쿠리들 때문에 아가야가 무-셔무-셔하고 있다구...?”
이것들이 하는 것은 전부 흉내다.
고작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싸고돌며 핥아대던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빈말로라도 저것들을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었던 자신조차 알아보는데, 정작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당사자들은 정말 조금도 알아보지를 못한다. 육아의 베테랑이니 지껄여 대지만 사실 스스로 뭔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제멋대로 키워진 그 둘은 또 어떤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들끼리 교미를 해 새끼를 싸질러 놓았다. 자신이 새끼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도, 눈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느긋할 수’ 있다며 새끼를 까놓고서는 제대로 키우려는 노력은 조금도 없다. 짐승조차 하지 않는 짓이다. 짐승조차 가지고 있는 모성애를, 이것들은 가지고 있는 척만 엄청 해댈 뿐 실제로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갖고 있는 것은 그저 육아 놀이를 하고 싶다는 욕심뿐이다.
“느으으으!! 언니야! 뭐하고 있는 거냐제! 얼른 느긋할 수 없는 길윳쿠리들을 어디론가 사라지게 하는 거라제!?!?”
아가야가 일주일 만에 제 몸 만하게 자라나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가야의 생김새에 말투에 성격까지 모든 것이 바뀌어도 장식만 그대로 있으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말을 한다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 이것들이 다른 생물보다 지능이 높다고, 인간의 감정과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이었다.
“데이부으 마를 무시하능거냐아아아아!! 느그시 주거어어어어!!”
마침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나온 참이다. 산책을 하러 나온 거니 당연하다.
그러고 보니 그 때 깨졌던 컵은 꽤 아끼던 것이었다.
“게스능 제재라... 느부에겍!!”
여자는 달려드는 자식 레이무를 걷어 찼다.
“느...느아아아아!! 데이부우우우!!”
“으흐히이이이이이!?!?”
위쪽 앞니에 적중한 여자의 발이 그대로 면상의 오른쪽 절반을 위쪽으로 날려버린다. 충격에 찌그러진 눈알이 날아가 아스팔트위에 끈적한 액체를 뿌린다. 하나 남은 눈알은 누가 휘젓고 있는 것 마냥 돌아가고, 몸뚱이와 귀밑털은 쓰레기통에 꼬인 구더기처럼 혼란스럽고 역겨운 모습으로 꿈틀댄다.
“느히, 히... 느히이이이이잇!! 바디자 지베 도라갈래애애애애!!!”
바닥에 널부러진 제 새끼들을 뭉개며 도망가는 자식 마리사를 단 두 걸음 만에 따라 잡은 후, 여자는 응응을 지리고 있는 마리사의 아냐루를 발로 느긋이 밟았다.
“능가아아아아아아아!!! 그망더어어어!! 느그시 그망...느부옥!!”
여자가 발에 체중을 조금 싣자 팥소가 비어져나와 마리사의 입을 막아버린다. 마리사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귀밑털을 휘둘러 여자의 발을 쳐내려 했지만 그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가동범위의 바깥에 있어 닿을 수조차 없다. 여자는 조금씩 발에 싣는 체중을 늘려갔다. 마리사는 뭔가 붙잡으려는 듯 귀밑털을 뻗어 버둥대다가 - 이윽고 한계에 달한 입을 막아보려 했다.
“...! ....! 부고오오옥!!”
마침내 마리사의 입에서 팥소가 뿜어져 나온다. 팽팽해져 있던 몸뚱이가 쭈그러든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 여자의 발과 아스팔트 사이에서, 마리사의 중추팥소가 으깨졌다.
“느...느...느...늣...”
“느...느아...느아아아아...!”
팥소뇌 속에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들어있지 않던 레이무와 마리사에게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저 시시를 흘리며 여자를 올려다 볼 뿐이다. 꿈틀대던 레이무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다. 윗턱이 날아간 탓에 윳쿠리의 특유의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했다.
여자는 눈길을 돌려 레이무와 마리사를 향했다. 엄청나게 느긋할 수 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어쨌든 언니야는 우리를 지켜준 것이다. 이제 ‘괜찮아? 레이무, 마리사?’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어 줄 것이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여자의 미소에 마주 웃어주려 했다. 하지만 - 여자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은 길윳쿠리의 시체를 내려다 볼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레이무, 마리사.”
“느, 느으읏!?”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무와 마리사를 내려다 보며 여자는 말했다.
“그 아가야는, 정말로 소중히, 최선을 다해 기르는 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그 새끼가 마지막이거든. 만약 그 새끼가 죽고, 너희가 또 다시 새끼를 가지려 한다면, 나는 윳쿠리숍에서 첫 번째로 추천하는 방법에 따를 거야. 그러니 제발, 만에 하나라도 내가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계속 그 아이로 마음껏 소꿉 놀이나 하다가 조용히 죽으렴.
“느... 느휴... 느읏! 레이무는 어머니!라구! 레이무는 육아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구!?”
“느...느헤헤... 정말이지 언니야, 그런 말은 할 필요도 없는 거라제!”
“느늣! 엄먀야는 정먈로 느그탄 엄먀야랴구!”
여자의 마지막 자비가 담긴 말을, 윳쿠리들은 우습다는 듯이 흘려 넘겼다. 여자의 표정과 눈빛과 목소리 그 어디에도 ‘느긋함’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것은 이제 너무나 흔한 일이었기에 레이무와 마리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 역시, 레이무와 마리사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들은 원래 이런 것이다.
“그래. 그럼 이제 돌아가자.”
윳쿠리의 속도에 맞춰서 걷는 건, 사람에게는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이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윳쿠리들을 안아 들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