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 덕택일까, 방금전 본 환상 때문이였을까, 내가 입던 옷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생각치도 못한 복병에 내 단발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여 틀었다.
오늘만은 더이상 빨래를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입고 있던 후드와 바지 속옷은 고이접어 세탁기 안으로 집어 넣어 두었다. 그 이후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했지만, 머리가 깨질듯이 아퍼서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방에서 옷과 수건을 꺼내 샤워실로 향했다. 원래는 수건을 두개 정도 챙겼어야 했지만, 이이상은 빨래가 늘어나는 것은 사양한다. 손목시계는 방수가 되니까 차고 샤워실로 들어가도 상관은 없겠지.
옷과 수건을 선반에 올려두고 샤워기의 손잡이를 돌렸다.
잠시 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다가 따뜻한 물이 경쾌하게 뿜어져 나왔다. 혈관처럼 가늘고 얇은 물줄기가 쇄골에 고이다, 가슴을 타고 내려가, 골반을 지나 바닥에 있는 물과 하나가 된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아직 딱지도 아물지 않은 손과 팔을 가르는 경계와도 같은 손목에 있는 상처를 보았다. 내가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경계에 있다는 증거. 손목시계를 풀어서 오른손의 상처를 감추듯이 세게 조였다.
오른손에 끊어지는것 같은 통증과 함께 팔을 타고 핏물이 쉴새없이 흘러 물줄기에도 희석되지 않고 배수구를 타고 사라진다.
시작은 단순한 감정이였을지도 모른다. 시기,분노,슬픔, 여러 감정이 섞이고 섞여, 다른 사람을, 윳쿠리를, 내자신 마저도 믿을수 없게 되었다.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았다.
'2시 20분'
슬슬 준비를 해야한다. 눈물인지 물인지 모를 무언가를 팔안쪽으로 비비듯이 지워 내었다. 사소한 감정은 나를 나약하게만 할것이다.
'2시 30분'
공책으로 어제 쓰다만 글을 다시 손으로 써내리고 있다.
손글씨로 쓰지 않으면 유효성이 없다고 했었나? 확신은 못해도 만일을 위해서다.
같은 제목에 다른 내용이지만 모두 내가 살아있다는게 모순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나는 이 현실이라는 매정한 곳에 잔존하고 있는것이다.
'2시 45분'
이제 준비를 하자. 5번째 작품의 제목을 완성했다. 언제나 똑같은 제목이지만 생소하던 제목인 '유서' 이걸로 충분하다.
앉고 있었던 의자를 끌고 내방밖으로 나왔다. 부모님의 방을 지나 존재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새끼의 방을 지나려 했지만, 슬픔일까 분노일까, 복합적인 감정에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어 끌고가던 의자에 앉아 역겨운 감정이 사라지기를 숨을 천천히 들이내쉬며 기다렸다.
이제 아까보단 나아진 기분이다. 거실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내 시발점이자, 종착점 거실에 도작했다. 의자를 딛고 거실 한가운데 있는 올가미에 시선을 맞추었다. 케이블선으로 만든 올가미, 내 모든걸 끝내줄거라 믿고 나는 올가미에 목을 걸었다.
내 마지막이 될거라 그런지 높은곳에서 바라보는 우리집의 모습은 위화감이 들고 쓸쓸하게만 보였다. 죽기전에 마지막 시간을 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것이다.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오른손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3시 정각'
무엇이든 시작하기도 무르기도 애매한 시각. 이도저도 하지못한 나에게 이처럼 어울리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첫도약을 하는 날갯짓마냥 힘차게 의자를 밀어 넘어트렸다.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운 압박감에 줄을 끊어보려 생각을 해보았지만, 끊으면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일상속으로? 그건 더더욱 싫다.사라져만 가는 의식속에서 나는 마치 주마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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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권지은입니다. 친구에게 삽화를 요청했으나, 하나같이 다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그렸습니다... 행보칼수가 업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