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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7:15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48-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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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무의 잎사귀들도 거의 다 낙엽이 되어 떨어져갔다.

흙바닥에 자라던 풀들도 그 색이 바랜 지 오래되었고

마냥 풍요롭기만 할 것 같았던 열매들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제 슬슬 가을이 끝나가는 시기인가."

 

그동안 아포의 무리는 많은 것이 변했다.

비축된 식량은 그 어느 윳쿠리 무리들보다 차원이 다른 양을 자랑하였고

길고 뾰족한 자갈을 나뭇가지에 송진으로 붙인 칼이나 창은 무리의 전투력을 한층 높였다.

주변을 홀로 떠돌던 떠돌이 윳쿠리들 중 우수한 이들을 무리에 받아들이고

무리장인 아포의 교육으로 무리의 지적 수준도 서서히 향상되어가고 있었다.

 

"무리에 받아들인 유카종은 내가 부재할 때도 무리에게 농경의 개념을 가르쳐주겠지. 농경능력이 생기면

무리의 생존력도 올라갈테고. 내가 언제까지고 이 무리에 있을 수는 없으니 이들 스스로 미래를 챙길 준비를 시켜야지."

 

언젠가의 혁명에 아포는 자신의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목적을 이룰 것이다만

이 무리까지 전멸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아포는 자신이 없어도 무리가 잘 돌아가게끔 벌써부터 조치를 취한다.

 

"그나저나 방위팀장의 보고대로라면, 슬슬 난동을 부릴 녀석들이 있을텐데..."

"아포! 큰일이다제! 다른 무리가 습격하러 온다제!"

"역시나. 방위팀장! 방위팀 전원 집결시켜! 육아팀과 관리팀은 동굴 깊숙히 숨고! 사냥팀은 사냥나갔지만 잘 숨겠지."

 

전 무리장이었던 방위팀장 마리사가 황급히 뛰어오며 경고를 알렸다.

이 근방의 다른 무리들 중 게스에다가 게으르기까지 한 도스가 다스리는 무리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방위팀장은 몇번이고 보았고, 또한 무리장에게 보고한 것이 있다.

그 무리는 가을이 다 끝나갈 때까지 월동준비를 하나도 안하다가

겨울이 오기 직전에 도스의 명령 하에 다른 무리를 습격해 그 무리를 절멸시키고 식량을 약탈한다.

벌써 세개 무리가 그런 식으로 당했다. 윳쿠리들의 사체까지 식량으로 삼는 게스들의 무리다.

그 게스무리에서 그나마 제일 성실한 녀석이 다른 무리를 찾으면 무리가 단체로 이동해 습격하는 식이다.

 

"녀석들도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긴 했겠지."

"아포! 방위팀 집결 완료했다제!"

"좋아, 동굴 입구를 은폐하고 무기를 들고 입구를 지키도록. 녀석들이 올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고."

 

잠시 뒤,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오며 아종 도스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뒤를 따라 몇십의 윳쿠리들이 바글바글 따라왔다.

 

"느헤헷, 이 무리도 느긋하게 도스님의 먹잇감으로 삼아주겠다제!"

"흐음, 성체만 보면 대충 30마리정도인가."

"너희들이 어딘가에 먹이씨를 잔뜩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있다제! 순순히 넘겨주면 이 도스님이 친히 상냥하게

하늘의 윳쿠리 플레이스로 보내주겠다제! 느긋하게 안심하라제!"

"협상이 엉터리군. 어떤 선택지든 죽이겠단 소리 아냐."

"이 무리의 멍청한 무리장은 누구냐제?"

"방위팀, 좋은 무기를 가졌다고 방심하지 말 것. 잊지 않았겠지?"

"어느 누구도 잊지 않았다제."

"지금 이 위대한 도스님의 말을 무시하는 거냐제!?"

"도스라고?"

"그렇다제! 이몸은 위대한 도스님이다제!"

"훗, 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포는 그 도스를 좀 살펴보더니 대놓고 비웃듯이 크게 웃었다.

 

"뭐, 뭐가 우습냐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몰랐던 것을 한 인간을 통해 알았지. 우리 도스들이 사라지자 윳쿠리들이 도스를 그리워한 나머지

아종이라는 가짜가 탄생했다는 것을 말이야. 중추팥뿐이지만 원종인 입장에서 아종의 잘난체를 보니 우스워서 말야."

"뭐, 뭐냐제!?"

"만약 너가 진짜 도스라면 당연 느긋 오오라도 발산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 않냐제? 도스의 무리는 언제나 느긋하다제! 보이지 않냐제?"

"아니, 그건 그냥 게을러진거고, 진짜 느긋 오오라는 이런거야."

 

아포는 그 자리에서 '진짜' 느긋 오오라를 발산했다.

아포의 뒤에서 싸움을 준비하던 방위팀도 느긋 오오라 덕분에 과도한 긴장이 풀리고 공포를 이겨냈다.

아포의 무리를 침략해온 도스와 그 도스의 무리 윳쿠리들도 난생 처음 느껴보는 '진짜' 느긋 오오라에

당황해하면서도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느늣? 왠지 굉장히 느긋해졌다제."

"어때, 아종. 넌 이런 걸 할 수 있어?"

 

그러자 침략해온 무리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도스라며 모셔온 도스는 단 한번도 이런 오오라를 발산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하다.

자신들이 무리장으로써 따르던 도스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인지한 아종 도스는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졌음을 깨닫고 오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도, 도스도 당연히 할 수 있다제! 그냥 여태껏 하지 않았을 뿐이라제!"

"어째서? 느긋 오오라를 발산하면 모두가 느긋해지는데 왜?"

"그, 그건..."

 

아종 도스는 잠시 그 같잖은 사고력을 풀가동하더니 이내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그, 그거다제! 도스의 무리는 이미 느긋하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제!"

"헛소리."

"느!?"

"느긋 오오라는 마냥 느긋한 기분만 들게 하는 게 아니야. 게스성을 치료하고 지혜를 성장시키지. 스스로도 현명케 하고.

자신을 포함한 무리 전체를 성장시킨단 말이다. 근데 넌 그러질 않았다고? 지혜의 성장엔 한계가 없는데 그걸 관둬?

그런 한심한 발상 자체가 너가 원종이 아니라는 증거다. 다른 무리를 약탈할 필요조차 없게  무리를 성장시켰을 거라고."

"그, 그런 거였냐제!?"

"느? 근데 아포도 무리에 느긋 오오라를 그리 많이 풍기진 않았지 않냐제?"

"내 목적을 위해선 너흴 느긋 오오라의 힘 없이 성장시켜야 했거든. 난 너흴 보살필 목적으로만 온 게 아니니까."

"그, 그런 거였냐제!? 그럼 뭐가 목적이냐제?"

"나중에 천천히 말해주지. 지금은 저녀석들부터 집중해야 하지 않겠어?"

 

아포는 느긋 오오라를 거두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뭐, 나도 이제와선 도스라고 불리기도 그렇지만."

 

그 순간, 침략해온 무리는 엄청난 중압감을 맞이했다.

정확히 그들 무리와 그 도스만.

아포만이 가진 느긋 오오라의 정반대의 힘을 가진 오오라, 프레셔다.

 

"단지 몸첨부인 것만이 아니라, 이미 원종 도스였던 때하고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어. 도스란 종 자체가 아닌거지."

"느게에엑...! 이건... 이건 뭐냐제...!?"

"프레셔다. 어떤 인간의 지식을 기반으로 독학해서 습득한, 느긋 오오라의 정반대지. 더 세게 뿜으면..."

 

아포는 프레셔에 짓눌리는 침략무리에게 프레셔의 강도를 더 높였다.

그러자 그 무리들 중 어린 윳쿠리들이나 정신력이 약한 윳쿠리들이 팥소를 토하고 죽거나 비윳쿠리증에 걸려버렸다.

 

"남아있던 일말의 느긋함마저 없애버릴 수도 있지."

"도, 도스님의 무리가...!"

 

침략무리의 몇몇 윳쿠리가 그렇게 죽거나 리타이어하자 아포는 프레셔를 풀었다.

 

"이쪽에서도 불합리한 제안을 하지.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간다면 아종도스 네놈만 죽이고 나머진 살려보내주마."

"우, 웃기지 말라제! 이딴 느긋하지 못한 오오라를 뿜는거며, 그런 느긋하지 못한 제안을 하는 걸 보면 넌 도스가 아니다제!"

"맞아, 말했잖아? 이미 도스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의 존재라고."

"진짜 도스는 이몸이다제! 이 도스님이 게스 쓰레기인 네놈을 제!제! 해주겠다제! 무리! 돌격이다제!"

"기어이 맹수의 아가리로 뛰어드는건가... 하긴, 단기간에 너희 수준의 게스성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지. 전투준비!"

 

아종 도스 대 아포칼립스

침략무리 대 방위팀

치열한 싸움...이라기엔 너무나도 허무했다.

침략무리의 윳쿠리들은 이미 프레셔에 의해 사기가 제대로 꺾인 상태에서 무기 하나없이 맨몸으로 돌격했고

아포의 방위팀은 철저히 무장한 상태에서 긴장은 하되 공포는 없이, 몸도 마음도 확실하게 대비된 상태에서 싸웠다.

습격경험만 따지면 침략무리가 더 많이 경험했지만 그 경험이랄 것이 단지 숫자로 밀어붙인 오합지졸의 인해전술.

그들의 이빨이 방위팀을 물어뜯기 전에 방위팀의 칼과 창이 그들을 찔렀고

그들의 저부가 방위팀을 짓밟기 전에 방위팀은 여유롭게 피해서 빈틈을 파고들었다.

질낮은 경험만 좀 겪어온 무리는 든든한 무기와 올곧은 각오, 전략전술의 교육 정도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었다.

당연히 방위팀의 압승. 자신들은 피해 하나 없이 침략 윳쿠리 무리들을 전멸시켰다.

그리고 침략해온 도스에게 자신의 완패를 똑바로 보게끔 하기 위해 아포는 아종 도스를 가볍게 제압만 했다.

 

"수고했다 방위팀. 전투훈련이 제대로 빛을 발했군."

"무기도, 전략도 없는 오합지졸은 우리 방위팀에겐 한순간이다제."

"어때? 아종 도스. 너의 위대하신 전략은 이렇게 간단히 짓밟혔는데?"

"느기이이익...!"

"방위팀은 동굴로 돌아가. 나랑 이녀석의 1대1 승부다."

"알겠다제."

 

풀숲과 나뭇가지로 철저히, 여타 윳쿠리의 기준이 아닌 진짜로 은폐된 동굴로 들어간 방위팀.

이젠 아포의 무리로 침략해온, 홀로 남은 아종 도스와 침략당하는 입장의 무리의 무리장, 아포의 싸움.

 

"자, 멍하니 있을거야? 난 널 살려보낼 생각은 없지만 선공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다고? 그래봐야 내가 이기겠지만."

"웃기지 말라제! 위대한 도스님의 도스 스파크로 한방에 날려버리겠다제!"

 

아종 도스가 도스 스파크를 날리겠다고 입을 벌려 힘을 모으는 동안 아포는 다른 자세를 취했다.

한 발을 뒤로 빼고 뺀 발을 90도 틀어 다리의 형태가 위에서 보면 직각처럼 되게끔 하고

양손을 허리 쪽에 옮겨 손가락을 살짝 구부린 두 손 사이에 스파크의 힘을 모아 압축시켰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면서, 인간들의 상상의 세계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이야기.

만화라고 했던가. 그림의 모음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거기선 본래의 인간에겐 없는 다양한 힘을 인간이 구사하지.

이것도 그러한 만화의 한가지에서 따온 기술. 다리로 기술을 버틸 자세를 취하고 양손으로 힘을 모아 쏘는..."

"도스 스파크으으으!"

"카메하메파...!"

 

아포칼립스가 양손을 뻗어 압축된 빛을 쏘아내자

그 광선포는 도스 스파크를 가뿐히 부수고는 아종 도스에게 직격해 피격자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켰다.

그 광선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직선의 경로에 있는 나무들을 죄다 부수다가 저편의 산에 충돌해서야 사라졌다.

 

"이런, 너무 셌나. 가공소가 내 추적을 포기할 리가 없는데 너무 드러냈군. 빨리 숨어야겠다."

 

아포는 재빨리 무리의 은신처인 동굴로 들어갔다.

은폐된 입구에서 전투를 지켜본 방위팀 윳쿠리들은 굉장하다며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지만

아포는 긴장한 탓에 거기에 신경쓰지 못했다. 가공소가 자신을 찾아낼까 걱정된 탓에.

실제로 가공소는 해당 지역을 수색하긴 했지만 아포의 기술이 최종적으로 부딛힌 건너편 산의 진동만 감지한 탓인지

그 산을 중심으로 수색했던지라 최종적으론 성과를 내질 못했다. 산의 도스들 중 하나의 도스 스파크라고만 추측했다.

 

"후우... 기술 연습도 좋지만 들키지 않게 자중은 해야겠군."

"사냥팀 복귀했다묭."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무리장, 무슨 일 있었어묭? 동굴 밖에 윳쿠리들 시체가 있었다묭. 우리 무리는 아니던데묭."

"좀전에 다른 도스의 무리가 침략했었다제. 하지만 전부 물리쳤으니까 안심이다제."

"굉장했다구? 무리장이 빵! 하니까 게스인 도스가 꽥! 하고 사라졌다구?"

"그리고 아포가 알려준대로 훈련한 게 도움이 되었다제? 다들 무사한 채 게스 무리들을 물리쳤다제!"

"역시 무리장은 굉장하다묭!"

"뭐, 개인적으론 더 성장했으면 하지만 다들 잘 해줬어."

"그나저나 밖의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게 이젠 겨울씨가 완전히 다가오는 것 같다묭."

"그런 것 같군. 사냥은 오늘로 마무리하지. 이제부턴 본격적인 월동이다. 모든 팀! 다들 준비하도록!"

 

첫눈이 내리기까진 한참이지만 날짜상으론 이제 12월이 되었다. 겨울이 다가온다.

어떤 무리들은 이미 보금자리의 입구를 막았고

어떤 무리들은 먹이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더 뛰어다니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무리든 월동의 준비방법은 똑같다.

각자의 보금자리에 각자의 먹이만 비축해둔다.

지금껏 수많은 무리가 그렇게 월동을 준비해왔고, 수많은 윳쿠리들이 그러다가 파멸을 맞이했다.

월동 중 발정이 나 먹여살릴 새끼가 불어나거나 잔뜩이라고 신나게 먹어치우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먹이가 동나든,

먹이가 바닥난 상태에서 입구를 막은 눈이 굳어서 뚫지를 못해 갇혀죽든,

열심히 월동준비를 했는데 게스 윳쿠리들에게 모아온 먹이도, 보금자리도, 심지어는 목숨도 빼앗기든지.

방법을 바꾼 것은 오직 아포의 무리뿐.

거대한 동굴에 무리 모두가 들어가서, 다른 무리보다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모아온 먹이를 정량으로 배급하며 겨울을 보내는

무리 전체의 생존을 위한 체제를 실행한 건 이 무리만이 유일하다.

아직 겨울이 지나가진 않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무리는 생존한다.

생존해서 모두 무사히 봄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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