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2017.03.15 10:31

남극에서 온 그녀 -17-

mad
조회 수 127 추천 수 1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허억... 허억..."

"우으으..."

"젠장... 젠장...! 젠장!"

 

난 지금 레티를 업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쓰러진 레티를 만졌을 때,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평소 체온이 사람보다 낮아 더울 때 안으면 시원할 듯한 그 아이가

갑자기 사람으로써도 괴롭다고 할 정도의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콜택시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이미 내 몸은 머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문을 잠궜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서둘러서 레티를 병원으로 데려가야겠단 생각 뿐이었다.

윳쿠리 병원? 치료가 간단한 윳쿠리의 병원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있더라도 이 시간대엔 다른 동네병원들마냥 문을 닫을테고, 무엇보다 레티는 일반 윳쿠리와 같다고 볼 수 없다.

사람의 병원, 그것도 전문가들이 수두룩하고 오래 불이 켜져있는 대학병원이라면 뭔가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만 떠올랐고, 그 즉시 행동에 옮겼을 뿐이다.

내 등에 업힌 레티는 아직도 온몸이 뜨거운 채 신음하고 있다.

이젠 비까지 내린다. 하지만 내가 젖는 건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이 비가 레티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내려줬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소, 손님? 어쩐 일로 오셨..."

"고열이요! 의사, 누가 이 아이 상태 좀 봐줄 의사 없나요?"

"으우우..."

"저기, 죄송하지만...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해주셔야..."

"젠장 아무나 좋으니까 일단 좀 도와달라고!"

 

이때 한 의사가 내쪽으로 다가왔다.

 

"일단 환자분을 응급실로 보내게, 나카무라 간호사."

"아, 알겠습니다, 이시다 선생님!"

"환자분은 이제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보호자분도 진정하시고요."

 

레티는 급히 응급실로 옮겨졌다.

난 응급실 가까이의 의자에 앉아 흥분된 정신을 추스리고 있었다.

마침 내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사촌형의 전화였다.

 

{어이, 마사히로. 너네 집에 도착했는데 문은 열려있고 사람은 없고, 뭔 일이야?}

"형, 그게..."

 

난 내 사촌형, 츠치다 연구원에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젠장, 이런 경우는 생각 못했는데. 알았어. 그 병원 어디야? 내가 바로 가볼게.}

 

형에게 병원 위치를 알려주었다. 30분 정도 뒤, 그 사람이 내쪽으로 왔다.

 

"마사히로, 레티는 어딨어?"

"응급실."

"일단 레티를 살펴보는 의사랑 얘기해야겠다. 그 사람들은 레티에 대해 모를테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나, 나도 갈래!"

"기다리라고! 지금의 책임자는 나다. 전문가도 나고. 넌 니 몸이나 추스려."

"레티가 저 상태인데 어떻게 내 몸이나 추스리란거야! 나도 가겠어!"

 

난 억지로라도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형을 지나쳐가려 했다.

그리고 형은 날 붙잡았고, 내가 돌아보자마자 내 뺨을 때렸다.

 

"..."

"정신차려라 임마. 지금 니 상태를 봐라. 온몸은 젖었지, 정신은 혼란하지, 감정은 흥분했지. 지금 넌 도움이 안돼."

"..."

"그러니까 기다려. 너가 침착해야 나중에 레티가 널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아냐."

"...미안해."

"하아... 뺨 때린거 미안하다."

 

그리고 형은, 츠치다 연구원은 응급실로 들어갔다.

난,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가까운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며 나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다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간호사가 건네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내며 다시 감정을 추스리려고 노력했다.

무력감을 느끼며, 1시간을 기다렸다.

 

"마사히로."

 

어느샌가 사촌형이 내게 와 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형은 응급실에서 좀 떨어진 한산한 통로로 날 데려갔다.

 

"레티, 많이 안좋아?"

"어... 최악이랄 건 아니지만, 확실히 가볍게 볼 건 아니지."

"설마... 레티 이대로 죽는 건..."

 

난 형에게 멱살을 잡혔다.

 

"야 임마, 일본에선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너야! 그런 너가 벌써부터 자포자기하면 어쩌잔거야!"

"미안... 아직도 혼란스러워..."

"하아..."

 

그는 내 멱살에서 손을 놓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바로 출국준비를 할거야. 환자 해외이송업체를 통해서. 넌 바로 집으로 가서 레티 짐 챙겨서 국제공항으로 와."

"...알았어."

"내 우산을 줄게. 또 젖어서 가지 말라고."

 

형은 차비까지 내게 주면서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닐봉투에 레티가 처음 이 집에 찾아왔을 때 입었던 옷과 신발, 신분증과 서류

마지막으로 내가 레티에게 선물하려 했던 아이스크림을 담았다.

그것들을 잠깐동안 쳐다보며, 그동안 레티와 같이 지내왔던 시간들을 생각해왔다.

즐거웠었다. 기뻤었다.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작별이라니, 그간의 추억들이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다.

입안이 썼다. 눈물이 흘렀다.

마냥 울 수만은 없었기에 짐을 들고 일어났다.

다시 택시를 타고 도쿄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어느샌가 비는 그쳤다.

공항에 들어서서, 다시 사촌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도착했어. 어디로 가면 돼?"

{공항엔 이미 이야기해놨어. 안내원한테 네 신분증 보여주면 안내해줄거야}

 

공항의 안내센터로 가서 내 신분증을 보여주며 내 이름을 밝혔다.

안내원은 바로 나를 알아보고는 전화기로 전화를 좀 하더니, 이내 두 남자직원이 날 안내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활주로. 거기엔 한 대의 구급차와 일반 항공기보단 작은 비행기가 있었다.

그곳에 사촌 형, 츠치다 연구원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어?"

"아니, 적당해."

 

그는 자기 뒤의 비행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랑 레티는 이걸 타고 갈거야.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간 다음 군항공기로 맥머도 기지로 가는거지.

위치는 쇼와기지랑은 거의 정반대편에 있지만 그쪽이 시설도 잘 되어있고 무엇보다 현재로썬 가장 빠른 복귀법이지."

"남극에 가면, 레티는 나을 수 있는거야?"

"딱 잘라 말하면, 나도 몰라.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남극은 그 환경상 질병원이 없는 지역이라

레티가 도쿄에서 무언가에 감염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하니까. 일단 요양같은 거라고 생각해."

"알았어..."

"짐은 나한테 줘. 난 나머지 절차를 준비할게. 레티는 아직 구급차 안에 있으니까, 지금 작별인사라도 해."

 

그리고 츠치다 연구원은 내가 들고있던 비닐봉지를 넘겨받고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구급차 뒷쪽으로 향했다.

문은 열려있었고, 레티는 환자이송용 침대에 누워있었다.

구급차 안의 의사에게서 들어와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난 구급차 안으로 들어와 레티의 옆에 앉았다.

 

"레티..."

"우으으..."

"레티, 내 말 들려?"

"...마사히로?"

"응, 마사히로야. 나 여기있어."

"마사히로... 미안..."

"왜 레티가 미안해하는거야..."

"그치만... 마사히로... 레티 아파서... 울잖아..."

 

아... 어느샌가 또 울고 있었다.

레티 앞에선 그래도 침착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도 멈추질 않는다.

 

"미안하다... 마사히로... 레티, 마사히로... 슬프게 하고... 떠난다... 기쁘게 하고... 떠나고 싶었다..."

"응... 나도 알아... 그래도, 레티 잘못 아니야... 레티가 나쁜거 아니야..."

 

레티가 힘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쪽으로 뻗으려 했다.

난 그 손을 내 양손으로 감싸듯 잡아주었다.

 

"에헤헤... 마사히로... 손... 시원하다..."

"레티는 시원한 걸 좋아하니까..."

 

의사가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레티... 꼭, 꼭 반드시 건강해져야해? 알았지?"

"응... 레티... 마사히로랑... 약속한다..."

"그래서... 그래서 나중에... 반드시 꼭... 다시 만나자... 응?"

"응... 다시 만나자..."

 

난 레티의 양손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내가 구급차에서 내리자, 의사와 공항직원들이 레티가 누워있는 침대를 옮겨 비행기에 태웠다.

의사는 구급차에 올라타 떠나고, 공항 직원들은 안전한 곳으로 날 안내했다.

난 레티가 탄 그 비행기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그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았다.

한밤중에 반짝이는 활주로의 안내등을 따라, 레티는 비행기를 타고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향했다.

난 비행기가 사라진 허공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공지 글 창작물 게시판 이용안내 2 류민혜 2015.09.05 1143 0
» 일반 남극에서 온 그녀 -17- 3 mad 2017.03.15 127 1
709 애호 존엄한 존재 1 미카엘 2017.03.14 185 0
708 애호 골목길의 가족들 미카엘 2017.03.14 182 0
707 기타 마리사를 알아보자 1 미카엘 2017.03.14 167 0
706 제법 미카엘 2017.03.14 109 0
705 학대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16- 2 mad 2017.03.14 161 4
704 일반 남극에서 온 그녀 -16- 4 mad 2017.03.14 115 1
703 하천의 윳쿠리들 2 미카엘 2017.03.13 172 0
702 데이부 미카엘 2017.03.13 138 0
701 학대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15- 6 mad 2017.03.13 162 4
700 일반 남극에서 온 그녀 -15- 4 mad 2017.03.13 130 1
699 규칙 미카엘 2017.03.13 150 0
698 학대 여름 미카엘 2017.03.12 152 0
697 애호 느긋! 미카엘 2017.03.12 134 0
696 애호 좋은 밤 미카엘 2017.03.12 136 0
695 기타 더위 속 윳쿠리 일가 느왁스 2017.03.12 212 0
694 학대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14- 1 mad 2017.03.12 158 1
693 일반 남극에서 온 그녀 14 1 mad 2017.03.12 118 0
692 학대 조기교육 미카엘 2017.03.12 180 0
691 일반 레이무종에 대한 고찰 1 미카엘 2017.03.11 140 0
Board Pagination Prev 1 ...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 81 Next
/ 81

좀 더 느긋하고 싶었어
비로그인
비로그인
느긋함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