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
2017.03.14 22:31

존엄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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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는 느긋할 수 없었다.태어났을 때도.자라고 있을 때도.그리고 지금도.마리사는 단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밥이라고는 냄새나고 맛없는 쓰레기와 시커먼 폐수뿐이다.하지만 그것조차 몇 주를 기다려야 간신히 먹을까 말까한 수준.사랑했던 윳쿠리도 있었다.느긋했던 앨리스였다.정말로.정말로 자신을 지금까지 살아가게 해준 앨리스.그런데.....그런데....죽어버렸다.횡단보도에서 아이가 장난으로 찬 발에 맞아 차에 치여버린 것이다.허무하다.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던 그녀가.인간에게는 그저 죽여도 되는 장난감으로서의 가치밖에 없단 것인가.

 

언젠가.인간들에게는 인권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태어난 그 순간부터.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그게 바로 인간이다.적어도 인권이라는 그 얄팍한 개념이 그렇게 지켜주고 있었다.절로 웃음이 나온다.그럼 윳쿠리는? 다른 동물들은 보호니 뭐니 떠들어대면서.저 인간들은 멀쩡하게 살고 있는 윳쿠리들의 아가야들을 빼앗아 고작 500원이라는 너무나 작은.한 생명의 가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가격에 사람들에게 판다.고양이나 개들은 보호해야 한다면서.윳쿠리들은 그냥 아무때나 죽여버리고 고문해도 되는 그런 하찮은 존재인가.인간에게 말을 걸어서 죽고.인간의 도시에 살아서 죽고.그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윳쿠리들이 기생충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하지만 인간들은 윳쿠리의 존재를 해악이라고 여기는지 숲까지도.다른 대륙까지 쫓아와 죽여버린다.그것만큼은....절대 이해할 수 없다.왜? 자신들은 그저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으면서.우리는 윳쿠리란 이유만으로 아무런 보호도.가치도 없는 해충으로 본다.그건 불합리하다.윳쿠리도 동물이다.엄연히 생태계의 한 일원이다.인간들은 생태계를 파괴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받는다면서 팻말을 들고 시위한다.우리가 팻말을 들고 시위한다면 그저 무참히 짓밟힌다.자신들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존엄한 존재라면.윳쿠리들도 존엄한 존재로서 존중받아야한다.하지만 인간들은 윳쿠리 주제에 건방지다며.그래봤자 윳쿠리란 식으로 노력마저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앨리스는......마리사를 아우구스투스라는 별명으로 부르고는 했다.인간들이 오래전에 세운 국가의 황제라면서.그 뜻은 존엄한 자라고 말했다.마리사는 그 별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아무리 배고프고 목말라도 마리사가 존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면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하지만.지금 그 별명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그 별명을 불러주던 유일한 존재가.자신을 만쥬따위가 아닌 윳쿠리로서 대해준 존재는...이제 이 세상에 없다.마리사는 인간에게는 신이라는 게 있다고 앨리스에게 들은 적이 있다.기도하면 인간들을 느긋하게 해주고.바르게 살면 천국이라는 하늘의 윳쿠리 플레이스로 인도해주고.게스들에게는 지옥이란 느긋할 수 없는 곳으로 보낸다고 했다.

 

마리사는 혹여나 자신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까 매일 조심하며 살았다.앨리스는 빨갛게 빛나는 십자가가 교회라고 했다.인종에 관계없이.나이에 관계없이.성별에 관계없이 신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매일매일 희미하게 빛나는 십자가를 보면서 천국에 가기를 바란다.더럽고.냄새나고.열등한 윳쿠리들도.신은 공평하게 인도하신다고 말했다.그런 앨리스의 말들을 곰씹어 볼때마다 희미하게 웃음이 난다.하지만 기억은 점점 잊혀져간다.필사적으로 떠올리고.되새기면서 오늘도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하루에도 앨리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때가 점점 많아진다.아아.의식이 점점 희미해진다.이제.마리사도 신의 곁에 갈 시간인가 보다.마리사는 천천히.지난 날을 곰씹어보면서 골목을 나왔다.새벽의 해가 희미하게 십자가 위로 올라온다.마리사는 몸을 풀고.지금까지 모든 것을 회상하며 해를 향해 눈을 감는다

 

.지금 마리사는 최후를 맞이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텅텅 빈 배는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차고.괴로웠던 과거는 천국을 상상하며 달콤해진다.아아.이제야 기억난다.앨리스의 얼굴이.정말로 느긋한.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앨리스의 얼굴이.마리사의 눈에서 눈물이 새 나온다.윳쿠리로서.자신은 끝을 마지한다.인간이 인간으로서 끝을 맺는 것과 같이 마리사도.하나의 존엄한 존재로서.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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