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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04:32

남극에서 온 그녀 14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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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츠치다 마사히로다.

지금 내 집에서 동거하는 남극 출신의 돌연변이형 몸첨부 윳쿠리 레티의 보호자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윳쿠리 학대파였다.

당장에 레티와 처음 만난 날에도 길가의 게스 마리사를 잡아와 고문하며 즐기려 하려던 때였다.

그 마리사는 곧장 레티한테 잡아먹혔지만.

하지만 레티를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그동안의 학대생활에 일종의 회의감같은 걸 느끼고 있다.

레티가 내가 윳쿠리 학대파라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레티 본인은 자기가 윳쿠리라는 자각이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윳쿠리 학대라는 것을 어떻게 여길까...

요새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고, 그때마다 어두워지는 내 표정을 보고 레티가 걱정한다.

오늘도 그렇다.

 

"마사히로, 괜찮아? 어디 아파?"

"아니야, 레티.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혹시라도 레티가 싫어하진 않을까... 그래서 여태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하는 게 티가 나도 너무 났는지 레티는 몇번이고 내가 괜찮은지 물어봤다.

 

"마사히로, 너무하다! 벌써 1주일째다! 마사히로, 분명 고민한다. 근데 레티한테 숨긴다. 레티도 알고싶다.

레티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돕고싶다! 마사히로, 레티 친구다! 레티, 친구 도와줄거다! 그러니까 얘기해줘라!"

 

이젠 숨길 수도 없는 것 같다.

 

"하아... 알았어, 말할게."

"응! 레티, 마사히로 이야기 들어준다."

"...레티, 넌 윳쿠리를 학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윳쿠리를 학대하는 사람들?"

"응, 별의별 이유를 대거나, 아니면 아예 이유없이 윳쿠리를 괴롭히고 죽이는 사람들말야.

레티도 일단은 윳쿠리잖아. 그런 사람들이 싫거나 하지 않아? 아님 학대당하는 윳쿠리들이 불쌍하다거나..."

"우웅... 그게 마사히로 고민이야?"

"하아... 실은 나도 그런 부류였거든. 널 만나고선 그런 모습 거의 안보여줬지만, 혹시라도 레티가 날 싫어할까봐..."

"레티, 마사히로 좋아한다. 마사히로, 레티 친구다. 괜찮다."

"그래도, 나도 너의 동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부류의 사람이었는데..."

"솔직히 레티, 윳쿠리가 동족인지 잘 모르겠다. 레티, 정신이 들고 보니 남극에 있었다.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냥 그렇게 살기 위해서만 살아오다가 남극 친구들 만났다. 남극 친구들한테 들어서야 레티가 윳쿠리인 거 알았다.

그치만 레티, 윳쿠리를 봐도 동족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레티는 레티, 윳쿠리는 윳쿠리다."

"아아, 맞다. 넌 그랬댔지. 그래도 생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데?"

"레티, 깊게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 모습 많이 보지도 못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지금은 겨울. 윳쿠리의 활동이 매우 적을 시기이다.

이런 시기엔 밖에 돌아다니는 윳쿠리를 찾아보기도 힘들고 그건 즉 밖에서 학대하는 학대파도 적단 소리다.

대부분의 학대파는 실내에서 놀 시기인 셈이다. 레티가 윳쿠리 학대현장을 많이 못 볼만도 하다.

 

"하지만 레티, 이렇게 생각한다. 그거, 중요한 문제 아니다."

"...어?"

"사람이 윳쿠리 좋아하든 싫어하든 사람 자유다. 사람끼리의 규칙만 어기지 않으면 그 안에선 자유다."

"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응. 레티, 생존하기 위해 싸우는 세계에서 왔다. 약자는 먹히고, 강자는 먹는다. 하지만 힘 세다고 강자가 아니다.

결국에 죽는 자가 약자고, 결국에 사는 자가 강자다. 사람보다 힘 센 동물, 많다. 하지만 사람, 정점에 섰다.

생존의 세계를 지배하고 자신들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제일 강자다.

그리고 윳쿠리,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그거 모른다. 다른 동물들, 사람을 따르거나 피하거나 한다.

하지만 윳쿠리는 아니다.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만 할 뿐, 강함과 약함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윳쿠리 약하다. 그래서 윳쿠리 죽는다. 그래서 윳쿠리 강자의 먹이가 되고 장난감이 된다.

이건 선악 이전에 자연의 섭리다. 고양이도 쥐를 가지고 놀기만 할 때도 있다. 코지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돌고래란 바다에 사는 동물은 재미로 바다 위를 낮게 나는 새를 물고 익사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힘있는 자만이 자유로운 세상도 아니다. 쥐가 고양이에게 죽기 싫으면 도망치면 된다.

새가 돌고래의 장난감이 되어 익사하기 싫으면 높이 날면 된다. 모든 동물이 그렇다. 살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윳쿠리, 그런 노력 안하려 한다. 그러면서 세상이 알아서 살게끔 해주길 바라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

그런 윳쿠리가 윳쿠리보다 강한 사람한테 귀여움받아 길러지든 괴롭힘받아 죽어가든 모두 자연의 섭리다."

"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레티는 굉장히 어려운 생각도 하고 있었구나."

"남극에서부터 배운거다. 그리고 남극 친구들한테 말 배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모두가 살기 위해 죽음과 마주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맞선다. 거기서 지면 불행해지고 죽을 뿐이다.

레티도 마찬가지다. 남극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먹이 못 구해서, 추위 못 견뎌서, 그래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티, 처음부터 원망 없었다. 레티는 그저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고, 그게 실패해서 죽는 것일 뿐이다.

살아있는 모든 건 언젠가는 죽는다. 언제, 어떻게가 다를 뿐이다. 레티, 자연의 섭리에 따라 노력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죽는다고 해도 레티 불만없다. 그저 당연한거다. 레티가 잡아먹은 동물들이 그랬듯이."

 

레티의 얘기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천진난만하고 순둥이같은 아이가 이런 복잡하고 심도있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니.

게다가 자신의 죽음마저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를 이미 마치고 있었다니.

레티는 죽음을 부정하고 두려워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봐서 살다가, 죽게 될 때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어쩐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그럼... 레티는 윳쿠리 학대파들이 싫지는 않은거야?"

"잡힌 윳쿠리도 잘못 없고, 잡아서 괴롭히는 학대파도 잘못없다. 강자가 자기 힘으로 강자와 싸우든 약자만 공격하든

그거 모두 힘있는 자가 선택할 자유다. 윳쿠리도 선택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쳐 살아남을지 아닐지.

그리고 코지마가 그랬다. 모든 동물은 스트레스란 게 생긴다고. 스트레스란 건 원래 위협을 경계하기 위한,

생존을 위한 몸의 반응 중 하나였는데 지금의 사람은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가 생기고 해소를 못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윳쿠리를 괴롭혀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도 사람이 생존하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학대파는 학대파 나름대로 그런 방식으로 건강을 챙긴다고 생각하는거네?"

"응.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나쁜 거 아니다. 윳쿠리는 자연의 섭리를 모르기 때문에 약자가 된 것 뿐이다.

학대파는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건강을 챙겨 생존하려 한다. 단지 그뿐이다."

"으음... 뭔가 심오하네. 그것도 많이."

"원래 세상은 어렵다고 코지마도 츠치다도 그랬다."

 

여튼 이걸로 레티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레티에게 윳쿠리 학대파는 그저 자기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를 통해 건강을 챙기는 부류일 뿐인 것이다.

게다가 윳쿠리도 나쁜 게 아니라고 한다. 자연의 섭리를 몰라 살기 위해 해야하는 행동들을 모를 뿐

어느 누구도 나쁜 게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아아, 레티의 생각대로라면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

윳쿠리가 쓰레기더미를 뒤져 주변을 더럽히는 건, 단지 살기 위해 먹이를 찾는 행동일 뿐이고

그로 인해 위생이 더러워지면 인간의 건강에 해를 끼쳐 생존에 위협을 느끼니까 그런 윳쿠리를 구제한다.

윳쿠리도 인간도 살기 위해 서로의 행동을 할 뿐이고 단지 그것이 서로 부딛혀 갈등이 생겼을 뿐.

 

"고마워 레티. 내 고민이 풀렸어."

"헤헤, 마사히로 표정 밝아졌다. 레티, 마사히로한테 도움되어서 기쁘다."

"좋아! 그럼 오늘은 기분도 좋은 겸 고기 먹을까?"

"응! 레티, 고기도 좋아한다!"

"구이용이랑 레티가 생으로 먹을 살코기들하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자."

"와아!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잔뜩이다!"

 

그동안 혼자 끙끙 앓았던 게 이렇게 단번에 풀릴 줄이야. 레티는 의외로 대단한 면이 많다니까.

그리고 이번에 레티가 해준 이야기를 계기로 나도 윳쿠리를 보는 시선이 좀 바뀌었다.

그냥 건방지고 민폐끼치는 것들이 아니라, 무지하게 태어났지만 저 나름대로 생존하려 발버둥치는 생물이라고.

그렇게 보니, 마냥 학대할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다른 이유로 학대파 졸업할 것 같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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