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의 신체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극에서의 극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 탓인지 종종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곤 한다.
언제는 한번 둘이서 거리에 나왔다가 한 100m쯤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오토바이 소매치기범한테 당한 것이다.
레티한테 저 아줌마 도와줘도 되냐길래 허락했더니
그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하던 소매치기범을 약 5초만에 따라잡아 래리어트 일격에 제압한 것이다.
소매치기는 100m앞에서 시작했고, 범인은 오토바이로 도주중이었다. 그걸 5초만에 따라잡은 것이다.
그 이후 조금 격하게 운동한 사람마냥 살짝 지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금방 회복했다.
레티한테 이정도는 몸 안풀고 운동 좀 한 수준인 것 같다.
평소엔 이런 능력을 잘 안쓴다. 쓸 일이 없으니까. 여긴 남극도 아니고 시설 잘 된 도시다.
굳이 레티가 이런 능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고 그럴 기회도 없다. 본인도 딱히 신경 안쓰고.
하지만 레티가 이 신체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가 있다.
게임이다.
"와아! 여기저기 반짝거린다! 마사히로, 여기 어디야?"
"오락실이야. 여러가지 게임이 놓여있고, 즐길 수 있는 곳이지."
그래서 오늘은 레티랑 오락실로 놀러왔다.
사람들이 제법 북적인다.
누군가는 격투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총을 들고 화상 속의 좀비랑 싸우며
누구는 북을 두드리고 누구는 헐렁한 집게로 인형을 집으려 노력한다.
일단 자리가 비는 게임부터 해볼까
"레티, 일단 저거부터 해볼래?"
"응! 레티, 해볼래!"
철의 주먹으로 유명한 격투게임 시리즈다.
레티에게 기본적인 조작법을 알려주고, 아케이드 모드로 컴퓨터와 싸워보게 했다.
첫 상대는 인공지능이 제일 낮은 만큼 레티가 조작법을 익힐 시간이 될 것이다.
캐릭터마다 기술이 다양하고 그 커맨드도 제각각인 게임이니
레티는 이 한판으로 선택한 모든 캐릭터의 기술이나 콤보를 다 파악하진 못했다.
하지만 기본기와 방어를 좀 익히고 나니 맨 첫판에서 연습하다가 몇대 맞은 걸 빼면 3스테이지까지
퍼펙트로 클리어라는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그때 갑자기
<NEW CHALLENGER!>
라는 문구가 뜨고 다시 캐릭터 선택창이 떴다.
맞은편의 게임기에 사람이 앉았다. 레티에게 승부를 건 것이다.
"마사히로, 이거 어떻게 해?"
"맞은편 사람이 레티랑 승부를 겨뤄보고 싶다는거야.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봐."
"응, 그럼 레티, 아까 캐릭터로 한다."
"킥"
맞은편 사람이 비웃었다.
대충 인상을 보니 게임 좀 했다고 자부하는 모양인가보네.
초심자 상대로 지 실력 뽐내면서 굴욕주는 불량 게이머인 모양인가보다.
근데 이쪽도 댁 생각만큼 만만한 인물은 아니거든?
"레티, 어차피 게임 내에서 싸우는거야. 봐줄 필요 없어."
"레티, 열심히 하면 돼?"
"응, 그보다 봐주지마. 레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혼쭐 좀 내줘."
"응! 레티, 열심히 할게!"
"크키키킥..."
상대는 더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다.
네가 전력을 다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는 듯한 표정이네.
난 너의 그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겠지.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상대의 공격을 레티는 단 한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방어할 타이밍에 정확한 부위를 방어하며, 상대가 빈틈이 생기는 순간마다 공격을 넣었다.
비록 기본기에 한정된 콤보도 없는 짧은 공격이었지만 레티의 공격에 헛방은 없었다.
잡기도 모조리 피하고, 고도의 블러핑도 모두 간파했다.
고작 3판 해본 정도로 레티는 공격과 방어를 완전히 마스터한 것이다.
이런 애가 콤보까지 배우면 어떻게 되겠어?
레티의 공격이 콤보없는 기본기에 한정된 탓에 모든 싸움은 시간초과로 승부가 갈렸지만
레티는 단 한대도 허용하지 않고 풀체력인 상태로 승리를 따냈다.
열이 오른 상대가 재도전을 걸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전보다 더 처참.
레티는 그새 약간의 콤보를 익혀 빈틈이 생기는대로 때려박았고
방어도 이젠 방어에만 그치지 않고 카운터까지 이어나갔다.
결국 이번엔 시간초과도 아니고 아예 풀 퍼펙트로 아작을 내줬다.
"와아! 마사히로! 레티 이겼다!"
"잘했어 레티! 아주 제대로 이겼는데?"
"아아아아아악!"
결국 맞은편의 상대는 성질을 내며 오락실을 나가버렸다.
역으로 굴욕을 당했구만. 상대가 안좋았다고, 친구.
"이번엔 뭘 해볼까?"
"레티, 저거 해보고 싶다."
아아, 죽음의 집. 모형 총을 들고 화면상의 좀비를 죽이는 게임.
이거라면 레티랑 같이 할 수 있겠네.
레티한테 조작법을 알려주고 2인플레이로 시작했다.
여기서도 역시 레티는 승승장구했다.
물론 물량 상 스테이지에선 내가 같이 쏴줘야 레티도 편히 싸울 수 있었지만
이 게임에서 레티의 진가는 보스전에서 드러났다.
보스의 공격에 맞서 특정한 곳을 쏴야 하는데, 일단 난사하면서 방향을 맞춰가는 나완 달리
레티는 한발한발 낭비없이 정확한 위치와 탄수로 맞춰야 할 부위를 전부 맞춘 것이다.
전에 친구들이랑 했을 때는 첫 보스 상대로도 코인 두세개는 넣어야 겨우 넘어갔는데
레티랑 같이 하니까 아주 승승장구다. 나 이 게임으로 엔딩본거 처음이야.
"레티, 네 능력은 언제 봐도 놀랍다."
"그런가? 레티는 잘 모르겠다."
"그래, 이 게임은 어땠어?"
"재밌었다! 이거 꾸욱 누르고 있으면 적이 빠바방 하고 쓰러진다!"
"나도 레티 덕분에 처음으로 끝까지 깨봐서 즐거웠어. 어떻게 그렇게 잘 쏘는거야?"
"우웅... 그냥 보인다. 레티 눈엔 별로 안 빨라보인다. 그리고 쏘면서 어딜 쏘면 어디가 맞고 몇대 쏘면 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만큼 쐈다. 레티, 남극에서 배운거 그거다. 힘은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만."
남극은 혹한이고 식량 구하기가 어렵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레티에겐 본능적으로 힘을 필요한 만큼만 써 절약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그럼 이번엔 북을 두드려볼까? 저거 해보자."
"응! 레티, 마사히로랑 노는 거면 다 좋다!"
이번엔 내 수준에 맞춰 좀 낮은 난이도로 놀았다.
그마저도 가끔 콤보가 끊어지는 나에 비해 레티는 매 곡마다 풀콤보다.
진짜 팔방미인이네 레티. 이렇게 잘하면 오히려 못하는 걸 세는 게 더 빠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에헤헤, 노래 신난다! 북 치는 것도 신난다! 레티 즐겁다!"
저 해맑게 웃으면서 노는 모습이 좋다.
그냥 그거면 됐다. 레티가 잘하든 못하든 즐거워만 하면 됐지 뭐.
이후로도 1시간 정도 여러가지 게임을 하며 같이 놀았다.
레티의 신체능력과 학습력에 대해서 쓸 보고서 내용도 되겠지만
그것보다 레티와의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이 나로썬 기쁘다.
아, 그리고 사촌형 놀려먹을 거 하나 더 생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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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건에 대해서 보고서를 받은 뒤의 남극쇼와기지※
"...하아."
"왜 그러세요, 츠치다 선배님?"
"레티가 오락실 섭렵했단다."
"와아, 대단한 거 아닌가요?"
"그 오락실 철주먹 랭킹 1위는 나였다고! 근데 그 타이틀을 빼앗기게 생겼어!"
"그, 그런 게 걱정이신가요?"
"하루마 넌 게임 잘 안하니까 모르나본데, 게임랭킹계는 경쟁이 치열한 전쟁터야. 난 그 전쟁터의 우승자였다고."
"아... 네..."
"근데 왜 마사히로 이녀석은 자꾸 레티한테 게임을 가르쳐서 내 업적을 초월하게 만드는거야!"
"어차피 연구로 바빠서 게임 할 시간도 없게 된 니녀석이 신경 쓸 일이냐."
"아하하하... 아, 레티는 인외의 존재니까 노카운트죠? 그렇죠? 코지마 선배."
"아니, 너 진거 맞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