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관계로 레티에게 바니걸을 입히겠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겁니까!"
아사쿠라씨가 왔다.
그 남극 연구원으로 있던 변태형님 맞다.
나한테 동정 죽이는 스웨터랑 여성용 속옷 보내서 레티한테 입혀 찍어달라던 그 사람 맞다.
지금 그 인간이 우리 집에 와선 레티에게 바니걸을 입히겠다고 선언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아사쿠라씨는 그동안의 연구보고서 및 자료를 제출하고 일정기간의 휴가를 가지기 위해 도쿄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원으로써 해야 할 일을 끝내자마자 자기 컬렉션이라는 것들을 들고와선
지금 내 집으로 곧장 찾아온 것이다. 도쿄에 도착한 바로 그날에 말이다.
"나 새벽에 도착해서 자료 제출하자마자 바로 이 멋진 것들을 들고 여기로 온거란 말야. 오늘 일요일이잖아?
이렇게 힘내서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할 건 아니지? 그니까 들여보내줘. 바니걸 입히게 해줘."
"시끄러워요! 레티가 당신 보기 전에 빨리 돌아가요!"
"오오! 마사히로! 남극 친구다! 아사쿠라다!"
"여어 레티! 오랜만이다!"
젠장, 벌써 들켰다. 레티는 아사쿠라씨한테 우호적이니 이젠 내쫓을 수도 없다.
"봐봐, 레티도 저렇게 날 반기잖아. 그러니까 들어가도 되지?"
"하아... 일단 들어오십쇼."
"얏호~! 레티 오랜만이야~!"
"아사쿠라다! 아사쿠라 반갑다!"
둘은 반가움의 포옹을 했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하게 사이좋은 친구같은데 말이지
"오늘은 말이지, 레티? 이 아사쿠라님이 너를 위한 선물을 가져오셨단 말씀!"
"오오! 선물! 아사쿠라 선물, 기대된다!"
"저기요 아사쿠라씨, 그 선물이란거 설마..."
"쨘~! 가장 큰 사이즈의 하겐X즈 아이스크림! 엄청 비싼거라고?"
"와아! 아이스크림! 레티 아이스크림 좋아한다!"
"어라? 의외로 정상적인 선물을 준비하셨네요."
"얌마 너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머리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냐?"
"네."
"즉답이네... 레티가 아이스크림 정말 좋아한다길래 사왔다. 정말 비싸다고? 이거."
"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레티, 여기 메이드복이랑 바니걸이랑 학교수영복이랑"
"역시 그냥 변태잖아 당신!!"
아사쿠라한테 로우킥!
그리고 좀 진정되고...
"여기 차랑 다과를 좀 내왔습니다."
"내 차에 맹렬하게 손가락 들어가 있는뎁쇼?"
"그냥 마셔 변태."
레티는 아사쿠라씨가 사온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 열중하고 있다.
나도 일단은 거실의 테이블에 다과를 두고 앉아 내 앞의 변태씨랑 담소 좀 나누기로 했다.
"그래서, 여기 온 진짜 목적이 뭡니까?"
"바니걸."
"레티 앞에선 말 못하는 사유인 겁니까?"
"바니걸."
"얼마나 극비인 사항인 겁니까? 심각합니까?"
"바니걸."
"진짜 바니걸뿐이냐 이 인간아!!!"
"응."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야 이 인간, 뭐야 이 변태!
무슨 열의로 새벽녘부터 도착한 양반이 쉬지도 않고 내 집에 온갖 마니악한 옷을 가지고 오는 거냐고!
"이래봬도 최대한 노출이 적은 것들만 골라온거다. 더한 것도 많다고."
"당신 진짜 심각한 변태로군요."
"나만 가지고 그러지 말라고. 니 사촌형도 어딘가 엇나가있고, 그 코지마씨도 의외의 면모가 있다고?"
"코지마씨가요?"
"그 사람, 매사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인 것 같지만 마누라 앞에선 찍소리도 못하고 술에 취하면 울어제낀다고?"
"지금 한 얘기 코지마씨한테 이를겁니다."
"제가잘못했습니다형님그것만은봐주세요."
"그럼, 이 이상한 옷들 가지고 돌아가주세요."
"남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물러설 수 없는 때가 있는 법이다, 소년."
태세전환 봐라. 그리고 누가 소년이야 나도 성인이야.
여하튼 이 인간 눈빛으로 봐선 절대 물러설 것 같지가 않다.
"하아... 알겠습니다. 이번엔 제가 양보하죠."
"고마워 마사히로군! 자넨 정말 최고야!"
"대신 코지마씨 험담은 반드시 보고할겁니다."
"남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물러설 수 없는 때가..."
"아까 말하셨잖아요."
"하아~ 아이스크림 맛있었다!"
마침 레티도 아이스크림을 싹 다 비웠다.
하X다즈는 정말 비싼 아이스크림인데, 지금 레티는 얼마의 돈을 이 자리에서 싹 다 비운걸까...
레티가 다른 윳쿠리완 달리 입맛이 높아지는 특성이 없어서 다행이다.
안 그럼 이걸 계기로 계속 하겐X즈 사달라고 졸라댔을텐데...
"레티, 내가 널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옷이 있는데, 입어볼래?"
"응! 아사쿠라 선물, 좋다! 옷, 입어본다!"
"좋아, 그럼 메이드복부터 시작해볼까?"
"잠깐만요, 입는 건 누가 도와주는 겁니까? 설마 아사쿠라씨가..."
"레티도 스스로 입을 줄은 알거든? 내가 옷 갈아입히는 걸 핑계로 레티 알몸이라도 볼까 걱정이냐?"
"네."
"내 신뢰도가 영 좋질 않구나."
"당신 첫 인상을 생각해봐요 신뢰가 되나."
"레티, 일단 이 옷을 입어봐. 저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고 오면 돼. 할 수 있지?"
"응! 레티, 갈아입고 온다!"
레티는 메이드복 세트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레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사쿠라씨는 살짝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너가 보기에 심각한 변태로 인식될만큼 내가 마니악한 건 알거든?"
"알긴 아는겁니까?"
"근데 말야, 난 변태이기 이전에 연구원이라고. 내가 정말로 도를 넘어선 짓을 할 것 같냐?"
"그때 보낸 택배는 아무리 봐도 도를 넘어섰는데요?"
"애당초, 레티를 처음 확보했을 땐, 그 아인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
"네? 남극에서 말이예요!?"
"그래. 그 혹한의 사막에서, 그 아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버텨온거야. 그런 아이한테 의복을 가르친 게 나고."
"......"
"지금의 레티가 옷을 입는 법을 아는 것도,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도 내가 가르쳐준 것 때문이라고."
"레티가 덥다고 해도 최소한의 옷은 입었던게..."
"나 때문이지. 내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그 부분만큼은 엄하게 가르쳤어. 그래서 지금의 레티는 함부로 벗지 않지."
"아사쿠라씨라면 남극기지에서도 못말리는 변태인 줄 알았는데요..."
"다소의 장난은 있었어도 연구원으로써의 선은 항상 지켜왔다. 난 연구원이니까."
"저기, 이 옷 다 입었다."
"오오오! 역시나 레티! 정말 잘 어울려!"
그러고선 아사쿠라씨는 자기 가방에서 전문가용 카메라를 꺼내 여러 각도로 레티를 촬영했다.
레티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평소대로의 아사쿠라씨가 되었지만
...몰랐었다. 아사쿠라씨도 진지할 땐 진지한 사람이었구나.
"레티~ 나한테 한번만 주인님~ 하고 불러봐."
"주인님~?"
"키야아~! 그래 이거야! 그 어떤 메이드 카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메이드가 여기있네!"
"에헤헤, 아사쿠라 기뻐한다. 그래서 레티도 기쁘다."
"하하하, 레티도 참. 자, 우정의 허그!"
"응! 우정의 허그!"
그러고 보면 전에 코지마씨한테 이런 얘길 들었었다.
'아사쿠라는 남극의 환경을 보존하고자 꿈꾸던 사진사의 길을 접고 남극연구원으로 전향했단다.'
그래서 쇼와기지에서 촬영담당은 주로 아사쿠라씨가 했다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아사쿠라씨도 남극을 사랑하는 연구원인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코지마씨가 아사쿠라씨를 그렇게 제지해도 싫어하지는 않는지.
"자 이제 이거 한번 입어보자. 바니걸이야. 깡총깡총 토끼라고?"
"응! 레티 이것도 입어본다! 근데 아사쿠라, 토끼가 뭐야?"
"앗차~ 토끼를 안가르쳐줬구나~! 그럼 레티가 옷 갈아입는 동안, 내가 토끼 사진을 준비해줄게."
"응! 레티, 옷 갈아입고 온다!"
레티는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아사쿠라씨는 자기 핸드폰으로 토끼 사진을 검색했다.
"처음에 레티는 야생성이 강했었어. 경계심이 극에 달했었지."
"그 얘긴 들어본 것 같긴 해요."
"그런 아이가 왜 지금에 와선 저런 순둥이가 됐는지 알아?"
"글쎄요, 일단 남극 연구원분들과 친해져서인 것 같긴 한데..."
"그 친해지는 과정이 고통의 나날이었지. 저 아인 공격적이었고, 언제나 두려움에 떨었었어.
남극이라는 극한의 환경. 그런 세상에서 목숨을 겨우 부지하며 살아가다가, 인간이란 낯선 존재를 만났지.
이미 윳쿠리로써의 기억따윈 남아있지 않았고, 남극의 새로운 맹수로써 존재해왔던 아이였어.
하지만 난 저 아이의 눈빛에서 보았지."
"무엇을요?"
"고통, 공포, 고독. 난 차마 저 아일 내버려둘 수 없었어. 코지마씨마저 단순한 야생동물로 보자며 포기했을 때,
난 끝까지 이 아인 인격체이며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 단지 지금은 마음을 닫았을 뿐이라며 포기하지 않았지."
그리고 아사쿠라씨는 자신의 왼팔의 소매를 걷고, 또한 상의를 들춰 복부를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신체엔 수많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물린 흔적, 할퀴어진 흔적, 맞은 흔적 등등...
"그 아이의 시선에 맞춰 다가가야 했어. 그 아이에게 우린 위험하지 않다고 알려줘야 했어. 그래서 나섰지. 내가.
이건 다 그때 생긴 상처야. 저 아이한테 당한 상처였지. 목숨이 위험할 뻔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지.
내가 몇번을 다쳐도 돌아오고, 그 아일 품어주니까 그제서야 마음을 열더군. 그때 저 아이가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네는 상상할 수 있겠나?"
"...아니요."
"울었어. 서글프게. 마치 사람처럼. 그동안 힘들었다고, 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울었어.
그리고 웃었어. 지금 짓는 해맑은 미소처럼 말이지. 저 아이의 웃음은 그때부터 달라진 것이 없었어.
이후로는 우리와 차차 적응하면서 인간에 대해 배우고, 문명에 대해 배우고, 자신에 대해 배웠지.
우리에게 있어 저 아이, 레티는 친구이고 여동생이고 딸이야. 그런데 내가 저 아일 정말 성적으로 대할 것 같나?"
"그럼 그때 보낸 택배는요?"
"만약 자네가 내 말대로 했다면 난 자네와 레티의 동거에 대해 반대할 생각이었지. 그 이상 갔으면 뭐..."
"그게 시험이었는 줄은 몰랐네요."
"어느 시험이 시험문제를 알려주고 시작하냐? 애당초 난 자네가 츠치다의 지인이란 이유로 선정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더 까다롭게 검토해서 제대로 된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도 이번에 가지고 온 옷들을 생각하면 역시 좀 의심되는데요?"
"나도 취미란 건 있어 임마. 정말 내가 사진 찍어달란 목적으로 보냈다면 지금같이 노출이 심하지 않은 걸 보냈지,
그정도로 도를 넘어선 옷을 보내진 않는다고. 내 컬렉션이라는 것들도 너한테 보낸 택배수준의 물건은 없어."
"이제야 아사쿠라씨의 말이 좀 신용되네요."
"나도 네가 내 택배를 불태웠단 소릴 듣고 속으론 드디어 널 신용할 수 있었지."
"그래도 그때의 화상통화땐 꽤나 처절해 보이셨는데."
"일단은 내 돈 쓴거니까. 내 돈 날라갔단 감정을 이용해서 연기한거지."
"배우하셔도 되겠는데요?"
"하하, 내 진로는 이미 정해져서 말이야, 바꿀 생각 없어."
드디어 레티가 흰색이 메인컬러인 바니걸을 입고 나왔다.
"아사쿠라, 이 옷 다 입었다."
"오옷! 역시나 레티! 몸매가 딱 어울리는데? 메인컬러를 흰색으로 고르길 잘했어. 레티랑 잘 어울려."
"헤헤헤, 잘 어울린다니 레티 기쁘다."
"아참 레티, 이게 토끼야. 어때, 귀여운 동물이지?"
"와아! 귀 길다! 그리고 복슬복슬해 보인다!"
"깡총깡총 뛰어다니지?"
"응! 토끼, 귀엽다!"
"레티, 사진 찍을거야, 내가 하는 포즈 따라해봐봐?"
"응! 레티, 아사쿠라 따라해본다!"
아사쿠라씨가 먼저 포즈를 취하면 레티가 그 포즈를 따라하고, 그 상태를 고정시킨 뒤 다각도로 사진을 찍는다.
확실히 이제보니 아사쿠라씨가 요구하는 포즈에 지나치게 성적 어필을 하는 포즈는 없었다.
오히려 귀여움을 강조하는 포즈가 대부분. 아사쿠라씨 말을 듣고나니 이 사람이 그냥 변태는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촬영쇼는 계속되었다. 바니걸 다음엔 고스로리, 그 다음엔 학교수영복, 다음엔 고양이귀 마법소녀.
마법소녀를 끝으롸 촬영은 끝났다. 아사쿠라씬 좋은 사진 찍었다고 상쾌해하고
레티는 레티대로 여러가지 재밌는 옷들 입어봐서 좋았다고 한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그 옷들은 선물로 줄테니까 입고싶을 때 입어도 돼."
"정말? 레티, 귀여운 옷 좋았다! 기쁘다!"
"마사히로, 그 옷 줬다고 선 넘으란 소리 아니다?"
"알고 있어요, 내가 당신인가."
"하하하, 하긴 그렇지! 그럼 잘 있어 둘다!"
"응! 다음에 보자, 아사쿠라!"
나도 인사하고 아사쿠라씨를 보내려다, 문득 떠오른 질문이 있어
레티는 잠시 집에 남기고 아사쿠라씨를 따라 나왔다.
"저, 아사쿠라씨."
"응? 배웅이라면 괜찮은데?"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혹시 이번에 도쿄에 돌아온게..."
"아아, 병원에 정기적인 검진때문에."
"혹시, 말하셨던 그때 생긴 상처때문에...?"
"이제 심각하진 않지만, 정기적으로 검사는 받아야 해서 말이지."
"...많이 아프십니까?"
"뭐야, 걱정해주는거야?"
"그야, 그렇게 다치셨으니까..."
"난 괜찮아, 마사히로군. 레티의 마음도 열었고, 나도 안죽었고. 다 잘된 거잖아?"
"아사쿠라씨는 정말 긍정적이시군요."
아사쿠라씨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볍게 미소지으셨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곤 이렇게 말하고 떠나셨다.
"레티를 잘 부탁한다."
예, 당신의 노력만큼은 되지 못하겠지만, 레티를 잘 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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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치다 마사히로의 남극쇼와기지의 코지마 연구원으로의 메세지(잡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코지마 연구원의 답장※
그 친구가 그래봬도 사실 굉장히 좋은 친구야. 평소엔 드러내질 않지만 말이지.
하지만 내 험담을 한건 용서 못한다. 돌아오면 관절기 풀코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