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소에서 한 앨리스가 태어났다.
그 앨리스는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에 의해 교육을 받아왔고
공부를 귀찮아하던 다른 동료 윳쿠리들과는 달리 성실히 교육에 임해
열심히 공부한 결과, 찬란히 빛나는 금뱃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앨리스는 성체가 되었고, 지금은 가공소에서 나와 한 윳쿠리샵의 케이지 속에서
자신을 데려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샵에 들어왔다.
남자는 샵의 주인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여러 케이지의 윳쿠리들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멋진 금뱃지를 단 앨리스를 선택하였다.
샵의 주인이 케이지를 열고, 앨리스는 드디어 자신의 주인에게 안길 수 있었다.
앨리스는 정말로 행복했다. 그리고 느긋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행복만큼 자신의 주인도 느긋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앨리스에게 느긋한 미소를 짓는 그 남자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백의의 광인은 오늘, 시내의 윳쿠리샵에서 한 금뱃지 앨리스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는 들고 있던 앨리스를 현관에서 바로 옆에 있는 윳쿠리용 방에 고이 내려놓고
그곳이 앨리스의 집이라고 알려준 뒤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지하연구실로 들어가기 전, 집을 청소하던 자신의 조수인 개조파츄리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오늘 새 윳쿠리를 사왔다. 네가 돌봐라."
"제가 말씀이십니까?"
"그래, 당분간은 내 연구에 몰입하느라 저걸 돌볼 새가 없을 것 같거든. 네가 대신해."
"알겠습니다."
"일단 청소 끝나면 바로 먹이부터 갖다줘. 난 들어가본다."
"수고하십시오."
남자는 흰 가운을 펄럭이며 지하실로 사라졌다.
"하아... 이번엔 또 무슨 실험을 하려고 샵의 윳쿠리를 사온건지..."
파츄리는 한숨을 쉬며 덧없는 한탄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청소를 끝내고, 파츄리는 윳쿠리용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윳쿠리방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파츄리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 언니야는 누구인가요?"
"어? 아아, 나 말이야?"
"아참, 제 소개부터 해야죠? 전 이번에 새로 이 집에 들어온 앨리스예요. 잘 부탁드려요~"
"난 파츄리야. 잘 부탁해. 여기 네 밥."
"고마워요, 언니야."
파츄리가 본 앨리스의 자태는 우아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있었고, 예의도 바른 아이였다.
미모도 빼어나, 다른 앨리스종에 비해서도 훨씬 아름다웠다.
파츄리는 이 앨리스에게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와아~! 그런데 언니야는 정말로 크네요!"
"어? 으응, 그렇지."
"정말로 멋져요~ 어쩜 이렇게 늠름할까요?"
"이,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파츄리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집의 주인에게 개조되어 만들어진 존재임을.
주인이 실험체가 쓸데없는 정보를 얻어 자신의 실험에 차질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그것보다 더더욱,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의해 앨리스에게 자신에 대해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나, 나는 이만 가볼게! 할 일이 있어서..."
"어머, 그런가요? 죄송해요, 제가 괜히 잡아놓았던 것 같네요."
"아니야, 그런거... 어, 어쨌든 여기서 편히 쉬렴."
"네~ 언니야도 느긋하게 있으세요!"
파츄리는 그 말에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윳쿠리방의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파츄리는 거실과 바깥의 마루를 나눠놓는 유리문 너머의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졌다.
"느긋하게, 라... 나, 마지막으로 느긋하게 있었던 적이 언제였었더라..."
파츄리는 과거, 평범한 노숙윳들의 무리를 통솔하는 리더였었다.
무리의 규율을 만들고, 노숙윳들이 최대한 인간과 접촉하지 않게끔 해서 무리의 윳쿠리들을 연명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도시에 대대적인 윳쿠리 구제가 벌어졌었다.
파츄리로써는 지금도 그 구제의 이유를 모른다.
정기적으로 도시에서 실시하는 구제였는지, 어느 한 윳쿠리, 또는 어느 윳쿠리 무리가 인간에게 큰 해를 끼쳤는지
자신의 무리를 포함한 수많은 무리가 구제의 대상으로써 제거되기 시작했다.
파츄리는 그나마 다른 무리들에 비해 일찍이 낌새를 알아채고 무리를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리의 수많은 윳쿠리들이 결국에는 죽거나 잡혀갔고
자신만이 남아 어찌어찌 몸을 숨겼지만, 지나친 체력소모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갔다.
그때 한 남자를 만났다.
파츄리는 공포에 떨었다. 또한 자신도 이대로 구제되는구나, 하고 체념했다.
하지만 남자의 행동은 달랐다.
그는 그 파츄리를 품에 안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파츄리를 정성스레 간호했다.
파츄리는 며칠만에 완전히 건강해졌고, 또한 노숙윳때와는 달리 온몸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때의 파츄리는 정말로 느긋했다.
그동안의 고생에 윳신님이 보답을 내려 애완 윳쿠리가 된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파츄리가 느낀 느긋함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남자는 파츄리가 완전히 회복된 것을 확인하자 빛은 들어오지만 그럼에도 다소 어둡고
무엇보다 어딘가 살벌한 지하실로 파츄리를 데려갔다. 지하실의 어느 방에 데려갔다.
그리고 파츄리의 모자에 357번이란 태그를 붙이고는 그대로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지에 가뒀다.
그리고 남자는 모습을 감췄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같은 파츄리들이 정말로, 매우, 엄청나게 잔뜩 있었다.
자신과 같이 영문을 알 수 없는 태그를 붙이고, 케이지 안의 장치를 통해 공급되는 물과 음식만 먹고
화장실에 볼일을 보는 것 외에는 그저 멍하니 있거나 잠만 자고 있었다.
파츄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오빠야가 어째서 자신을 이런 곳에 가둔 것인지, 그리고 이 파츄리들은 다 왜 여기 있는건지
자신의 모자씨에 붙여놓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도.
파츄리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주어지는 것만 먹고, 주어진 공간에서만 생활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남자는 얼마의 시간을 간격으로 이곳에 드나들며 다른 파츄리를 데려가거나
또는 새로운 파츄리를 데려와 자신에게 했던 것과 같이 모자에 태그를 붙이고 케이지에 가뒀다.
그것이 반복되던 어느 날, 파츄리는 남자가 부주의하게 완전히 닫지 않은 문틈으로 어느 광경을 보았다.
그때 본 광경으로 자신이, 그리고 이곳의 파츄리들이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자는 케이지에서 꺼내간 파츄리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남자의 말마따나 개조실험이었지만
당시의 자신이 봐도,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은 그저 잔악한 고문에 지나지 않은 행위였었다.
파츄리는 큰 충격에 빠졌다.
언젠가는 자신도 이러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모자에 달린 이상한 것의 의미도 깨달았다.
그 방 안의 케이지에 있는 파츄리들은 순서대로 나갔다.
남자는 태그를 확인하고 파츄리들을 꺼내갔다.
이것은 순서였다.
고문받을 순서.
죽음에 이를 순서.
357번이 몇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파츄리는 언젠가는 자신도 저러한 고문을 받고 죽게 될 것이라 깨닫고 말았다.
아마도 자신의 옆자리에 있는 파츄리가 꺼내진 뒤, 그 다음이 자기 차례일 것이리라.
충격에 파츄리는 구토했다.
자신의 팥소를 토해냈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죽고 싶지도 않았다.
필사적으로 케이지의 문에 부딛혀봤다. 하지만 탈출할 수는 없었다.
자신만이 상처를 입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부딛혀봤지만 문은 열려주지 않았다.
완전히 기진맥진 해졌을 때, 남자가 들어와 자신을 보고는, 자신을 데려가 치료를 해 주었다.
하지만 파츄리는 이 치료가 기쁘지 않았다.
이건 그저 자기가 차례가 되기 전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야..."
파츄리는 남자에게 치료받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말해버렸다.
그 한마디로 남자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그래서 무엇을 했는지를.
남자는 친절하게도, 그리고 무정하게도 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연구다. 유약한 너희를 더욱 강한 개체로 개조하는 연구. 357번. 기다려라. 때가 될 때까지 죽지마라."
그것은 명령이었다. 죽을 자유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명령.
회복된 파츄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저항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달았다. 파츄리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저 이대로, 이대로 기다리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겠지...
하지만 파츄리는 지금 살아있다. 개조된 채로 말이다.
357번째인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남자의 실험이 성공했다.
남자는 자신의 성과물을 자신이 잡아가둔 수많은 파츄리들에게 선보였다.
그 남자는 미친듯이 웃으며 즐거워했고, 그 이후 갇혀있던 파츄리들은 다른 실험에 동원되거나
실험에 동원되기 까지 대기하게 되었다.
파츄리는 자신뿐만이 아닌, 5,6마리 정도 되는 다른 종들과 함께하는 케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파츄리는 과거 무리의 리더였던 경험을 살려 다른 윳쿠리들간의 갈등을 조절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
먹이는 꼬박꼬박 나온다. 이젠 혼자도 아니다. 구제도, 천적도 없다. 그 실험이란 이름의 고문도 끝났다.
적어도 따뜻한 애정을 받는 삶은 아니지만, 그나마 무난한 삶을 살게 된 것이라 믿었다.
느긋하진 않았지만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삶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남자가 자신을 데려갔다.
어째서? 실험이란 것은 끝난 것 아니었어?
어째서 그때 봤던 고문기구가 지금 내 앞에 있는거야?
어째서 이런 짓을 내게 하려는거야?
파츄리가 미처 질문하기 전에,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림으로써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두번째 놈은 좀 잘해줄 줄 알았는데... 쯧, 설계도는 완성했으니 없어진 건 새로 만들면 되겠지. 넌 세번째가 될거다."
그리고 파츄리는 엄청난 격통에 시달렸다.
알 수 없는 약물을 투여당했고, 피부에 구멍이 나고, 억지로 새 팥소가 채워지며 소맥분이 추가로 발라졌다.
이후의 개조과정은 자신으로썬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격통으로 기절했던 것 같다.
깨어나보니, 지금과 같은 몸이 되었다.
전보다 거대해졌고, 전보다 튼튼해졌고, 전보다 똑똑해졌다.
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던 자신이, 지금은 글자를 배우고, 그 남자의 논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정신적 충격으로도 팥소를 토해 목숨이 위태롭던 자신이, 지금은 동족을 갈아버려도 아무렇지 않다.
조금만 뛰어도 힘에 벅차던 자신이, 지금은 자기만한 무게의 짐을 머리에 올려놓고도 거리를 거닐 수 있다.
이처럼 파츄리는 강해지는 개조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세번째'조수가 되었다.
첫번째와 두번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남자는 말해주지 않았다.
세번째인 자신으로써도 구태여 알고 싶지 않았다.
이후로는 언제나 백의를 입고 사는 그 남자의 조수로써 일하며 여러가지 일을 했다.
그 보상으로 더이상 실험당할 일이 없고, 생활도 훨씬 자유로워졌으며, 먹을 것도 훨씬 풍족해졌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것도 파츄리에게 느긋함을 주질 못했다.
조수로써 일하게 된 순간, 자신이 그 남자와 같이 동족을 잔악하게 죽이는 존재가 됐음을 느끼고 나서부턴
그 어떠한 호사도 느긋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언제나 죄악감이 자신을 눌러왔다.
그런 자신에게 저 순진한 아이는 느긋하게 있으라 했다.
"나... 느긋하게 있을 수 있을까?"
파츄리는 고민했다.
자신을 짓누르는 죄악감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에게 느긋함을 앗아간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제 죽을 때가 다가온 건지도 모르겠네."
파츄리는 의지를 다졌다.
파츄리는, 그 앨리스를 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탈출시키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자신이 죽을지라도. 그래도 저 아일 그 악마에게 넘겨줄 순 없다고 느꼈다.
"하자, 파츄리. 때가 왔어."
산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파츄리는 결의를 담은 한마디를 조용히 내뱉었다.
"무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