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윳쿠리를 연구하는 자 -3-

by mad posted Feb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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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마리사에게 있어 지극히 느긋한 날이었다.

정말로 많은 달콤달콤씨, 따뜻한 방씨, 멋진 보물씨와 재밌는 장난감씨

아무도 마리사를 느긋하지 못하게 할 수 없었다.

마리사는 자신의 느긋한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날 밤 잠들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끄럽고 이상한 기계소리가 들려왔다.

그 느긋하지 못한 소리에 마리사는 잠에서 깼다.

천천히 눈꺼풀을 열어보니

그 풍경은 그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느긋한 방씨가 아니었다.

불빛은 환했지만 그럼에도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이상한 방.

마리사는 그 방 한가운데의 테이블에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상자에 갇혀 있었다.

아니, 마리사만이 아니었다.

마리사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무도

자신의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야들도

모두 제각각 투명한 상자에 갇혀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엔 흰 가운의 자신의 노예가 등만을 보인 채 자기 앞의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이, 이건 뭐냐제!"

"오, 깬거냐? 뭐, 상관없지만."

"레이무! 일어나보라제! 뭔가 이상하다제!'

"느으... 레이무는 더 잘거야..."

"이봐 노예! 당장 마리사들을 여기서 꺼내라구! 당장이 좋다구!"

"흐음... 이 유전배열은 역시나의 그거로군. 게스인자가 충만해."

"무슨 영문 모를 소릴 하는거야! 헛소리말고 빨리 마리사를 꺼내라구!"

"너무 걱정마. 차례를 기다리면 결국엔 너도 거기서 나올테니까."

"그게 무슨..."

 

흰 가운의 남자가 뒤를 돌아보자 그 남자 앞의 테이블엔

머리뚜껑이 열려 팥소가 드러난 자신의 사랑스런 아가야 중 하나가 있었다.

팥소 한군데가 크게 파여 있었고, 아가야는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썩을 노예에에에! 마리사의 아가야에게 무슨 짓이냐제에에에에!"

"느!? 무슨 소리야?"

 

마리사의 고함에 태평하게 잠들어 있던 나머지 윳쿠리들도 깨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가야, 또는 자매가 처참한 몰골이 되어있는 걸 보고 다들 경악해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딴거 아랑곳않고 그새 다른 아가야에게 손을 뻗으려 했다.

케이지에 갇힌 아이윳들 중 가장 기가 센 아이 마리사 하나가 남자에게 뿌꾹을 했다.

 

"뿌꾸욱! 마리짜님에게 다가오지 말라쩨 써글 노예!"

 

남자는 그 마리사를 손대지 않았다.

뿌꾹에 겁먹어서? 그럴리가. 단지 남자의 순서에 이 마리사는 아직 때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바로 옆자리의 그 마리사보다 어린 레이무를 투명 케이지에서 꺼내갔을 뿐이었다.

 

"흥! 역찌 마리짜의 뿌꾸욱!은 세께 쵯!깡!이라쩨!"

"아가야 무슨 소릴 하는거야아아! 옆의 아가야가 잡혀갔잖아아아아아!"

"자아, 너의 게스인자는 얼마나 될까?"

"느아아아! 레-뮤를 놔주라꾸!"

 

그러나 남자는 듣는 척도 안했다.

그저 무심하게 자기가 할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진행할 뿐이었다.

남자는 남자 앞의 테이블에 처참한 몰골이 된 아가야처럼

자기 손에 들려있는 어린 레이무에게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메스로 머리피부를 잘라 떼어내고 둥글게 드러난 팥소를 작은 스푼으로 떠내어 기계장치에 돌렸다.

그 결과물을 또 다른 기계에 넣고 그 내용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뿐이었다.

 

"썩을 노예! 당장 그 아가야들에게서 손 떼라제!"

"마리사! 빨리 어떻게 좀 하라구! 느긋하게 있지 말고 아가야들을 구하라구!"

"마리사도 그러고 싶다제! 하지만 투명한 벽씨가 방해해서 나갈 수가 없다제!"

"어째서 그런 소릴 하는거야! 마리사는 아가야들을 구하고 싶지 않은거야!?"

"아니라제! 마리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제! 투명한 벽씨가 나쁜 거라제!"

"마리사가 무능한 게스니까 그런거겠지 이 의지박약! 당장 레이무를 구하라구! 느긋하지 말고 당장이 좋다구!"

"아아~ 결국은 내부분열로 이어지네요. 저녁때까지만 해도 단란한 가족인 양 굴었던 녀석들이."

"게스인자는 당 개체의 생존을 위해 이기성을 부추기니까 말이야.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그 개체의 생존만을 우선시하느라 공동체적인 상황에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거군요."

"그래. 게스는 야생 호랑이마냥 단일개체로 사는 게 가장 좋은 생활방식인 거지."

 

남자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20여마리의 아가야들이 차례대로 실험대에 올라 해부되고 팥소가 파여 분석되었다.

그리고 통상보다 2배는 큰 우락부락한 파츄리는 10마리 단위로 실험에 쓰이고 남은 잔해

즉 팥소가 약간 파이고 다시 머리뚜껑을 닫아놓은 아기, 아이윳들을 가공실에 가져가 사료로 가공했다.

그 과정에서 뿌꾹을 시전하던 마리사도 예외는 없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재차 뿌꾹을 시전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착각과는 달리

그 남자는 망설임없이 그 마리사를 데려가 실험대에 올렸다.

어째서 뿌꾹이 안먹히냐고 남자에게 무의미한 호소를 하고

실험대에 묶여 남자가 자신에게 은빛으로 빛나는 메스를 가져다 대자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살려달라 울부짖지만 남자는 그런 호소따위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 마리사는 결국 다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가공실에서 분쇄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2세대들은 이 와사종만 남은건가."

"네, 그렇습니다. 나머지 2세대 실험체들은 모두 처분완료했습니다.

"총 21마리. 그 사이 많이도 낳았군 그래. 뭐, 나야 실험체가 늘어나니 좋지만."

"뉴아아아! 쩨꼐의 아이돌찌인 레뮤에게 무쯘 찌슬 하료는고야!"

 

가장 어린 개체였다.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말은 혀짧은 발음으로 뭉개져서 알아듣기 힘들고 와사종 특유의 귀밑털은 저항의 의미로 파닥거리고 있었다.

물론 이 남자는 그런 거 신경도 안쓰지만 말이다.

이 와사종 레뮤가 뭐라고 하든 남자는 아까와 같이 레뮤를 실험대에 고정시키고 메스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와사종 분석은 이걸로 25번짼가?"

"네. 지금까지 성체 10, 아이 10, 아기 4. 그리고 그 아기윳 하나로 총 25입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대로라면 와사종의 특징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게스인자와 매우 밀접하게 얽혀있었는데."

"그 실험체도 그럴까요?"

"분석해봐야 알지. 결론내기엔 이르지만 이정도 데이터라면 새 가설을 세우기도 충분하겠는걸."

"뉴와아아아아! 그 느끄타지 모탄 거 레뮤에게 대지마아아아아아!"

 

듣지 않는다.

푹. 서걱서걱.

레뮤는 이마부분을 둥굴게 썰려 껍질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 적갈색의 팥소를 드러내었다.

레뮤가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지금까지의 다른 자매들보다 제일 시끄러웠지만

남자에겐 그 소음이 어떠한 데미지로도 오질 않았다.

 

"...다른 자매들이 썰려갈 땐 유일하게 잠만 자면서 듣도보도 안하더니 자기 차례가 되니 제일 시끄럽네."

 

파츄리가 가볍게 중얼거렸다.

스스로를 아이돌이라 칭하던 이 레뮤는 다른 자매들보다 더 많은 팥소를 빼앗겼다.

아니, 팥소뿐만이 아니다. 벗겨진 두피도 메스로 잘라내어 플라스크에 담겨 용액에 녹으면서 분해되었다.

원심분리기엔 이 레뮤의 신체 일부 곳곳을 넣은 플라스크로 꽉 채워 풀가동되었다.

레뮤가 잃은 것은 팥소, 복실복실한 귀밑털, 머리장식, 오른쪽 눈, 앞니 두개, 저부, 양 볼의 피부

팥소가 들어간 플라스크는 두개였으니 그렇게 총 8개가 원심분리기에 돌려졌다.

 

"느아아아아! 레이무의 사랑스러운 아이돌인 레이무가아아아아!!!"

"썩을 노예!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냐제!"

"뭐, 그야 처음부터 이럴려고 너흴 데려온거니까."

"...에?"

"그게 무슨 헛소리야아아아! 노예는 레이무를 불쌍히 여겨서 데려온거잖아아아아!"

"아 그거 연기야. 애당초 내 목적은 연구니까 말이지. 너흰 그냥 내 연구대상으로 데려온 것에 불과해."

"그, 그게 무슨 말이냐제...? 노예는 마리사들에게 복종해서 잘해준 거 아니었냐제?"

"너희의 게스성을 부추기기 위해서 일부러 노예가 되어줬을 뿐이야. 훌륭한 게스가 되었으니 수확할 뿐이지."

"당신들은 처음부터 이 남자에게 속은 겁니다. 이 남자의 머릿속엔 윳쿠리에 대한 연구밖에 없거든요."

"하하하, 신랄하구나 파츄리. 하지만 난 그런 것도 마음에 들어."

"전 당신이 불편합니다만."

"솔직해서 좋다고. 아, 원심분리기도 마침 다 돌아갔네."

 

남자는 원심분리기의 뚜껑을 열고 플라스크 하나를 집어 성분분석기에 넣었다.

분석된 그 데이터를 컴퓨터로 열람하고, 다시 플라스크의 내용물을 분석기에 넣고, 다시 열람하고

그렇게 8개 전부 분석기에 넣어져 분석되었다.

 

"뉴우우... 어재서 이런지슬 하는고야... 레뮤 아무 잘모탄거 엄는데..."

 

기운이 빠진 어린 실험체가 눈물을 흘리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어째서 이런 끔찍한 짓을 당해야 하냐고.

만약 그 남자가 평범한 학대파였다면

'너의 존재가 잘못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학대파가 아니다. 물론 애호파도 아니지만 학대파인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남자는 이렇게 답한다.

 

"맞아. 넌 잘못이 없어."

"뉴우?"

"넌 그저 태어났지. 풍족한 환경을 만끽하게 된 부모에게서 마지막 아이로써 태어났지.

하지만 너의 부모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단다. 난 윳쿠리를 연구하는 인간씨.

연구하고자 하는 욕심이 광기의 수준에 도달한 미치광이.

너의 부모는 나의 달콤한 말에 낚여 순순히 날 따라왔고

너의 부모와 너의 언니들을 게스로 만들기 위한 나의 성심성의에 제대로 보답해줘 훌륭한 게스가 되어줬단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 어떠한 교육도 받지 않고 그저 풍족하게만 살아온 너는

자신의 욕심이 언제나 만족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너는

다른 존재를 배려하는 법도, 스스로를 낮추는 법도, 양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배울 수가 없었지.

그러한 네가 게스로 거듭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

그리고 난 그것을 기다렸단다.

너 뿐만이 아니라 너의 가족 모두가 훌륭한 게스로 거듭나길 말이지.

그리고 난, 지금, 훌륭한 게스로 거듭난 너희를 수확하는 거란다.

나의 연구욕을 채우기 위해! 너희에게 다한 성의의 보답을 받기 위해!

특히 넌 이 일가의 유일한 와사종! 너는 다른 자매들보다 더욱 연구하고 싶은 것을 많이 갖고 있단다!

그래서 넌 더더욱 고통스럽게 해부된거다! 널 더더욱 연구하기 위해서!

네가 어째서 이런 짓을 당하는거냐고? 그건 내가 너를 통해 내 연구욕을 채우기 위해서란다!

네가 그 느긋한 세상에서 태어난 것도! 원하는 만큼 달콤한 것들을 잔뜩 먹을 수 있었던 것도!

비나 바람이나 천적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내 연구욕을 채우기 위해서였을 뿐이란다!

넌 잘못이 없단다. 그래, 넌 단지 그 방에서 태어났을 뿐이었지.

하지만 그것이 네가 고통받는 이유란다. 넌 거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고통을 받는거야.

누구의 잘못일까? 네가 이런 고통을 받는 이유는? 한번 고민해볼래? 내게 단 한마디라도 네 생각을 말해볼래?"

"뉴, 뉴우... 레뮤는 모르게쪄... 모르게따구..."

"그렇구나, 모르는구나... 그럼 내가 힌트를 주지.

네가 고통받는 건 네가 그 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네가 그 방에서 태어난 건 네 부모가 내 달콤한 말에 속아 그 방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지.

자아, 그럼 누가 잘못했는지 선택지가 둘로 나뉠 것 같네.

누굴까? 너의 부모를 속이고 데려간 나일까, 아니면 나에게 속아서 이곳에 따라온 너의 부모일까?

자아... 생각해보렴... 내게 답을 들려주렴...!"

"아가야! 엄마야는 잘못 없다구! 모두 저 썩을 노예가 잘못한 거라구!"

"그렇다제! 마리사는 그저 속았을 뿐이라제! 마리사는 잘못 없다제!"

 

죽어가는 이 어린 윳쿠리는 어떠한 답을 내릴 것인가.

오직 그 어린 윳쿠리만이 알 것 같은 문제이지만

사실은 남자는 이미 진작에 답을 알고 있었다.

확률상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 어린 윳쿠리가 어떤 답을 내리기 쉬운지

이 남자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뉴..."

"아가야?"

"뉴구따지 모탄 쮸레기 부모눈 쭈그라꾸!"

"아가야!? 그게 무슨 말이냐제!?"

"쮸례기 뿌모가 이딴 인간찌한떼 속찌만 아나쪄도 레뮤는 이러케 느그타지 모탄 꼬리 되지 안아쯜꺼라꾸!"

 

이 남자가 연구 끝에 발견한 윳쿠리들이 가진 호르몬 중 하나

해당 개체의 생존력 강화를 위해 본능에 이기적 성향을 강하게 만드는 호르몬

해당 호르몬이 활발히 분비되는 윳쿠리들에게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명칭에서 이름을 따온 호르몬

게스 호르몬. 혹은 게스 인자.

게스 인자의 특징 첫번째.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와 적대해야 할 경우, 가장 상호간 친밀도가 높은 개체부터 적대한다.

상대가 자신을 아끼는 만큼 배신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게스 인자에 의한 본능의 조건적 반사작용 중 하나이다.

 

"인간찌! 레뮤는 뎡말 뉴규탈쮸 잇는 레뮤라꾸? 그러니까 레뮤를 살료달라구?"

 

게스 인자의 특징 두번째.

위기상황을 타파하고자 할 땐 가장 강하다고 인식되는 존재의 편에 붙으려 한다.

특히 자신의 목숨이 좌지우지할 땐 자신의 목숨줄을 붙잡고 있는 쪽에 붙으려 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가족까지 배신하는 일이더라도.

설령 그것이 직전까지 자신을 해치던 존재일지라도.

 

"후후후, 솔직한 대답 고마워."

"뉴! 구로니까 레뮤를 살료주는고네?"

"하지만 난 대답을 들려달라고만 했지 딱히 살려준다고는 안했는데?"

"...뉴?"

"어이, 어미되시는 분, 이 걸레짝은 돌려드리겠습니다. 마음껏 사랑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곤 남자는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이 어린 것을 어미 레이무가 갇혀있는 케이지에 넣어주었다.

 

"뉴, 뉴우웃! 모하는고야! 레뮤를 구해조야지!"

"아~가~야~?"

"뉴, 뉴뉴늇!? 오, 옴먀야? 레뮤라구? 세꼐의 아이돌찌인 레뮤라구? 레뮤눈 옴마야 쩰루 쪼아한다꾸?"

 

두번째 특징의 연장선으로 이런 식으로 원래 붙으려던 쪽에 붙으려다 거절당해서

배신했던 개체나 그룹에게 되돌려졌을 때, 자신의 배신이 배신당한 쪽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치 못하고

도로 그쪽에 붙으려고 한다. 그야 당연히 자신의 목숨줄을 붙잡은 존재가 배신당한 쪽으로 바뀌었으니까.

 

"느긋하지 못한 게스는 죽으라구!"

 

어미 레이무는 자신의 귀밑털을 힘껏 내려쳐 이미 죽기 직전인 자신의 마지막 새끼를 제 손으로 숨을 끊었다.

여기서 게스 인자의 세번째 특징.

게스 인자가 활발하게 분비되는 개체, 즉 게스 윳쿠리는

종족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본능, 예를 들어 부성애 또는 모성애같은 것보다

순간적이고 부정적인 감정, 분노나 질투, 증오 등이 더 강하고 우선시된다.

그렇기에 평온할 땐 모성애가 넘쳐보이던 윳쿠리도

막상 화가 나면 자기 새끼고 뭐고 자기 내키는대로 화를 내는 것이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어린 실험체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 지.

그리고 그 대답을 낸 그것을 어미에게 던져주면 어미가 어떻게 대할지를.

그럼에도 이 남자가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단 하나다.

검증

실제 행동으로 옮겨 실험함으로써 이론을 검증한다.

이미 몇번이고 검증했었던 것이지만 예외의 경우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을 상정해

재차 검증한다.

오직 그것만이 이 남자가 이 일련의 파국을 만든 이유이다.

 

"레, 레이무! 어째서 아가야를 죽인 거냐제!"

"시끄러워! 이딴 게스 레이무의 아가야가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 마리사와 레이무 사이의 소중한 아가야였다제? 마지막 아가야였다제?"

"애당초 마리사가 이딴 게스 인간씨한테 속지만 않았으면 이런 꼴이 되지도 않았다구!"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거냐제!"

"좋아 다음 실험체."

"느아아아아! 레이무에게서 손 떼라구!"

"하, 할아범! 레이무를 놔주라제!"

 

마리사가 남자를 지칭하는 호칭이 바뀌었다.

노예에서 할아범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멸칭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자신이 멋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인지했다는 뜻이다.

남자는 이것 역시 안다. 그동안 실험한 윳쿠리의 개체수만도 천단위가 넘는데 어찌보면 당연하리라.

하지만 남자는 마리사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그 강렬한 광기의 연구욕을 채우는 것만을 원할 뿐이다.

 

"어제 실험했던 개체와 너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 한번 그 머릿속을 들여다볼까?"

"느아아아아! 하지마아아아아!"

 

한다.

그러나 한다.

그럼에도 한다.

실험한다.

이 어미 레이무는 전날의 1375번 레이무와 같은 수순을 밟았다.

머리가 열리고, 팥소가 파이고, 그것이 분석되어 결과가 나오면 더이상 볼 일 없으니 가공실로 보낸다.

파츄리는 어제와 같이 익숙하다는 듯한 움직임으로 이 어미 레이무를 가차없이 분쇄기에 던졌다.

이후는 말할 것도 없겠다.

남은 건 마리사뿐이었다.

마리사의 주변엔 텅 빈 케이지들이 수두룩했다.

모두 자신의 가족들이 갇혀있던 케이지들이었다.

그리고 그 케이지의 수만큼 자신의 가족들이 죽었다.

단 한 남자의 손에.

지금껏 자신들 앞에서 뻔뻔하게 노예인 척 해왔던 이 광인(狂人)에게.

그리고 그 공허한 투명 플라스틱 상자들을 보며 마리사는 느꼈다.

다음은 나다.

마지막으로 남은 내 차례다.

남자가 마리사가 갇혀있는 케이지에 다가왔다.

 

"마리사가 잘못했습니다!"

 

마리사는 곧장 남자에게 엎드려 사죄했다.

 

"마리사가 너무 건방떨었습니다! 인간씨의 자비에 오만하게 굴었습니다! 마리사가 나빴습니다!

마리사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론 건방떨지 않겠습니다! 노예라고 부르지도 않겠습니다!

얌전하게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달콤달콤씨 없어도 됩니다! 추운 집씨여도 됩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마리사만은 살려주세요!"

 

남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마리사를 꺼내지도,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너 말이야, 뭔가 오해하고 있구나?"

"...네?"

 

남자는 마리사를 꺼내지 않은 채 실험대의 의자에 앉아 마리사 쪽으로 몸을 돌려 쳐다봤다.

 

"가볍게 내 얘기를 잠깐 해줄까? 그럼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내가 누구인지."

"...무슨...?"

"난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타고난 학구열이 있었어.

하지만 그건 단지 열심히 배운다는 선에서 끝나는 그런 게 아니었지.

연구. 내 스스로 가설을 세워 분석하고 그 결과를 보고 정리하고 답을 내리는 것.

그리고 그 욕망은 남들에겐 없는 수준이었지. 그래, 마치 광기 그 자체와도 같은 강렬한 욕망이었어.

미취학아동이었을 땐 식물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놀았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면서 말이야.

초등학생 땐 곤충을 해부했어. 또래 애들이 장난으로 날개나 머릴 뜯어내는 선으로 끝날 때

난 커터칼로 곤충들의 배를 째서 돋보기로 내장을 들여다봤지.

중학생 땐 조류나 양서류, 어류같은 걸로 나아갔지. 방학때 낚시를 해서 잡은 생선을 째서 내장을 들어내거나

새총으로 잡은 새를 과도로 이곳저곳 갈라보거나, 개구리 해부도 많이 해봤지.

고등학생 때엔 기어이 포유류로 나아갔지. 길가 떠도는 개나 고양이를 부엌칼로 죽인 뒤 그걸 해부한거야.

배 가르는 건 이젠 기본이 됐고, 가죽을 벗겨 속살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살펴보거나

성기만 따로 잘라내서 분해하기도 했고, 유치원에서 애들 정서교육용으로 키우던 토끼를 훔쳐서

산채로 배를 갈라 심장이 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기도 했지.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안들키게 하는 게 제일 힘들었지."

"주인님 옛날 얘기는 들어본 적 없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미쳐있었네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 뭐냐제 그게... 잘 모르겠지만 엄청 느긋할 수 없다제...!"

"하여튼 그랬는데 말야, 뭔가 부족하더라고. 정말 살면서 온갖 것들을 해부하고 연구해봤는데

그런데 뭔가가 채워지질 않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것들은 이미 다 연구된 것들이잖아?

이미 누군가가 시도해서 알아본 것이고 이젠 생물관련 책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들이라고.

게다가 무엇보다, 반응이 단조로워. 동물이란 건 말야, 약한 모습 보이면 더 쉽게 위협받으니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어지간히도 참고 강한 척 한단 말이야. 약한 모습을 안보여. 그러나까 반응이 단조롭지.

그래, 그게 부족했던거야. 반응에 대한 연구. 난 그것도 하고 싶었지. 근데 동물 상대론 원하는 그런 게 안나와.

그래서 사람을 연구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봤지. 하지만 역시 사람을 연구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크단 말야.

먼저 법적으로 최소 상해죄에 내 실험방식과 내용을 생각하면 살인죄도 가뿐하겠지.

그런 살인마를 경찰이 가만두고 볼리가 없잖아? 범죄자로 붙잡히면 더이상 나도 실험을 못하고.

그래서 인간을 실험체로 삼는 건 참고 있었지. 하지만 연구욕을 참는 게 점점 임계점을 넘어가서

이젠 그냥 연쇄살인범 될 각오하고 사람이라도 납치할까 했는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너희야.

윳쿠리.

가장 사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으면서 그 어떤 법적문제도 생기지 않는 존재.

포획과 관리도 쉬운데다, 무엇보다 지금껏 윳쿠리를 면밀하게 연구한 자가 없었어.

즉! 너희는 내게 최적의 연구대상이었던 거야! 내 욕망을 가장 완벽하게 채워줄 존재!

그것이 너희 윳쿠리였어! 인간에게 있어 완전히 미지의 생명체, 그러면서 인간에 가장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존재!

너희는! 내게! 최적의 연구대상이었단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렇게 즐거운 연구는 지금껏 해본 적이 없었어! 그 어떠한 것들도 윳쿠리만큼 내 연구욕을 채워주질 않았다고!

그래서 난 그 누구도 걷지 않았던 윳쿠리 연구에 발을 들였단다!

이 광기의 연구욕을 완전히 채우기 위해서! 그걸 위해서 난 너흴 잡아 가두고! 해부하고! 분해하고! 분석한다!

연구! 연구!! 연구!!! 너희를 연구하는 거는 정말 참을 수 없이 즐거운 일이야!"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광기의 환희에 휘둘려 그 자리에서 크게 웃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윳쿠리는 물론이요, 사람이 봐도 가히 악마의 것이었다.

 

"유, 윳쿠리도 살아있다제? 심한 짓 하면 안된다제?"

"그 소린 이 남자에게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이 남자는 윳쿠리를 진심으로 생명체로 인정하면서 실험하고 있어요."

"그래, 학대파들은 말하지. 너흰 그냥 말하는 만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난 아니야. 너흰 생명체야. 그것도 보통 생명체가 아니지.

동식물 포함해서 대부분의 생물이 신체 대부분을 수분과 단백질로 구성할 때

너희 윳쿠리는 수분과 탄수화물로 구성한다. 그게 내가 연구한 결과 처음으로 알아낸 것이지.

세포도, 유전자도! 신체 구성성분이 단백질을 대신해 탄수화물이 차지한 존재!

탄수화물로 이루어진 생명체! 나는 내 첫번째 논문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의 생물들이 단백질계 생명체라면, 너희 윳쿠리는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탄수화물계 생명체라는 것을!

오히려 난 몸첨부나 윳쿠레나이의 존재를 근거로 너희가 신인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생명체로까지 인정한다고?

난 정말 너희를 살아있다고 여긴단다. 어쩌면 너희는 탄수화물계 인류가 탄생하기 전의 과도기적 존재일지도 모르지.

고대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차이처럼

너희가 지금의 윳쿠리에서 먼 미래엔 새로운 인류로 거듭날지도 모른다고 여긴단다!

그렇듯! 난 너희를 생명체로 본단다!

그래서 연구한단다! 살아있기 때문에! 하지만 어떻게 살아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기에!

그래서 난 너희를 해부하고 연구한단다! 너희에게 하는 심한 짓은! 너희가 살아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다는거다!"

 

마리사는, 이제서야 이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단어나 문장을 이해한 것이 아닌, 이 남자의 광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노숙윳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했다.

생명체로 봐주질 않았다. 존중해주질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마리사를, 그리고 윳쿠리를, 생명체로 봐준다. 생명체로 여기고 존중해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광기로 가득한 연구를 한다.

실험하고, 해부하고, 분석한다.

마리사는 이제와서야 후회했다.

처음부터 이 남자와 얽혀서는 안되었다고.

힘들고 고단 노숙윳의 삶을 살더라도 이 광기의 존재와 마주해선 안되었었다고.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너무 늦었다.

 

"자아... 이제 마지막으로 너의 차례다. 즐겁게, 내게 너에 대해서 알려주렴?"

"느아아아아..."

"연구의 시간이다! 실험대로 올라와라! 나에게 너를 보여줘라!"

"느아아아아! 하지마아아아아아아!"

 

다음 날 아침, 남자는 서류뭉치를 들고 지하실에서 나왔다.

그 남자의 이번 주제에 대한 연구결과이다.

 

<게스 호르몬의 정의와 그 분비의 선천적, 후천적 변화>

 

남자는 논문을 정리하느라 꼬박 밤을 샜지만 자신의 연구에 성과를 낸 기쁨에

피곤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파츄리, 넌 오늘은 푹 쉬어도 좋아. 난 이 논문을 제출하고 오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잘 다녀오십시오."

"논문이 통과하면 연구비를 받게 되겠지. 뭐 먹고싶은 거 있나? 돌아올 대 사주지."

"...아뇨, 지금은 그냥 쉬고 싶습니다. 특히 당신의 광기는 도스의 안티테제마냥 느긋하지 못한 파장을 뿜어서 말이죠."

"하하 그정도인가?"

"전 그럼 자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치광이 주인님."

"그래, 다녀오마. 충실한 반항아 조수여."

 

남자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현관을 나섰다.

길을 거닐면 여러 윳쿠리들을 볼 수 있다.

생계를 위해 먹이를 구하는 노숙 윳쿠리

주인과 함께, 또는 혼자 산책하는 애완 윳쿠리

숲과 가까운데선 야생에서 서식하는 야생윳쿠리

그 윳쿠리들 하나하나가 그의 연구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속으로 생각한다.

 

'다음번엔, 어떤 주제로 연구해볼까?'

 

그렇게 그는,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짓는다.

[프롤로그 - 광기의 학자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