윳쿠리.그것은 언제부터인가 나타난 만쥬생명체.처음 나타날 당시에는 신비함의 정수였지만 지금은 학대하고.죽이고.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인간들.나는 그들을 경멸한다.그들에게 물어보면 윳쿠리를 괴롭히는 것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며.이 만쥬들은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한다.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보다 우월한 외계인이 우리를 괴롭히고 죽여도 된다는 소리나 다름없다.우리가 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그것을 다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윳쿠리는 오로지 느긋하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거기에 의의는 받지 않는다.만약 의의를 제기한다면 우리 인간은 태어난 이유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인간은 살아가면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음식을 먹으며 기억하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부모의 칭찬을 기대하는 것처럼 그들도 어린아이 마냥 느긋함을 갈구하는 것이다.윳쿠리들은 모두 게스라는 의견은 터무니 없다.나는 지금까지 윳쿠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학대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많이 봐았다.어미에게서 아기를 빼앗고 머리장식을 뺏고 불태우며 아기한테서 부모를 앗아가고.발을 태우고 피부를 찢고 눈을 파내고 밟고 짓이기고 때리며 강제로 거세시키고 입을 꿰메고 머리카락을 뽑고 이것이 진정 만물의 영장인가? 아니라고 나는 믿고싶다.저들의 집이 더럽다고 발로 차버리는 것은 지금도 추위에 떨고있는 빈민촌을 도시 미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제로 철거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짓이다.그들은 너무나 순진하고 연약하다.그들은 인간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그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고 그 인간을 죽일까? 아니다.그렇다면 어째서 윳쿠리는 죽어나가는가.이미 가공소가 있는데도 자기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학대하는 자들은 그저 소시오패스에 지나지 않는다.생명이 고통스러워하고 죽어가는 것을 낄낄거리며 즐거워하면서 정작 자신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지성인이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나 다름없다.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처럼.윳쿠리들도 봉투를 찢거나 인간에게 대들거나 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하지만 가공소는 무얼 위해 있는가? 개인이 학대하고 갱생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가공소에는 많는 자들이 사심없이 공정하게 일하고 있으며 엄격한 기계에 의해 관리된다.추악한 따스함에 의지하느니 공정한 차가움에 눈길이 가는 것은 기분탓이 아닐것이다.아기 윳쿠리들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영상을 하루에 수백만명이 시청한다.정말로 끔찍한 광경이다.이해가 가지 않는다면.갓 태어난 아기의 사지를 자르고 항문을 지지며 성기를 마취도 없이 절제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기의 입을 꿰메고 눈알을 숟가락으로 파내며 머리카락을 뽑아 태워버리고는 잔혹하게 밟아죽이면서 즐거워한다고 생각해보라.그리고 하루에 수백만명이 그걸보며 즐거워한다.정말로 끔찍한 광경이다.우리가 어린아이를 훈계하면서 폭력을 사용하는가? 아니라면 어째서 윳쿠리에게는 그런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가.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윳쿠리란 생물을 인간의 카테고리에 끼워놓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도 살아온 지역과 문화에 따라 사고방식이 천지차이가 나는데 윳쿠리는 다르겠는가.그것은 공산주의자에게 자본주의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부르짖는 생명의 소중함은 윳쿠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인종차별과 선민사상과 다르지 않다.우리는 저들보다 우월하고 저들은 열등하다.저들은 만쥬니까.이런 말들이 윳쿠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우리는 모두 윳쿠리라는 생물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제노포비아에 지나지 않다.코끼리가 광할한 대지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윳쿠리게도 먹고 살 땅이 필요하다.어째서 베풀지 않는가? 인간은 이미 전 인류가 먹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나눔을 실천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아가페의 실현은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미지에 대한 공포를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치환하는데에 있다.그리고 거기에 바라기를.윳쿠리들이 이해받기를. 나는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