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1.28 02:39

아포칼립스 속 윳쿠리 -15-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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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수색은 어떻게 된거야! 고작 피래미 하나에 이렇게 오래 걸릴거야!?"

"죄, 죄송합니다 대장. 지금 남은 인원 전원을 투입했으니까 금방 찾을 겁니다."

"도스! 네놈의 윳쿠리들은 뭐하는거야! 이럴 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라고 했을텐데?"

"도, 도스의 윳쿠리들은 잘못 없다제? 느긋하지 않게 숨어버린 게스가 나쁜 거라제?"

"그럼 너네도 그 빌어먹을 느긋함을 갖다버리고 잽싸게 찾아다녀야 할 것 아냐! 노닥거리라고 먹여준 줄 아냐!?"

"여, 열심히 하겠다제!"

"젠장, 그래서 수색인원은 총 몇이야?"

"8명입니다. 아까의 그 영감탱이의 총질과 불질에 생긴 사상자가 5명, 근육 빵빵한 녀석한테 죽은 두명, 터널 앞에 매복했던 년한테 샷건맞고 죽은 한명 빼면..."

"잘도 해줬구만 새끼들. 화상입은 녀석들도 살 가망이 없고... 사실상 8명이나 죽어버린 셈이구만."

"인간은 대장과 절 포함해서 10명이 전부입니다 이제. 남은 윳쿠리는 십여마리와 저 도스 하나뿐이고요."

"이렇게까지 우리 집단에 손실을 줬으니 남은 한놈이라도 제대로 고문해서 죽여버리지 않으면 성에 안차."

"가능하면 생포하라고 했습니다만, 여차하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녀석이 발악을 안할 것 같진 않으니 시체나 보겠죠."

"그 시체라도 갈갈이 찢어놔야지 그럼."

"대, 대장! 큰일났습니다!"

"너 그 석궁 좋아하던 그놈아냐? 뭔 일이야?"

"그게, 놈을 찾긴 찾았습니다만... 그런데..."

"그런데?"

"그게... 녀석이..."

"퇴각! 퇴각해 이새끼들아! 대체 저새끼들은 뭐야!?"

 

작전이랄 건 없었다.

그저 분노에 몸을 맡겼을 뿐이다.

효율적인 행동은 그저 본능에 의해 나왔을 뿐이다.

저 집단은 윳쿠리와 인간의 협동으로 상당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

그때의 그 모히칸 무리만큼 강한 윳쿠리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똑똑하고, 수색에선 인간과 비등하다.

인간들은 모두 총기류로 무장했고, 자신들의 집단 이외의 인간에겐 적대적이다.

그들은 자비없고, 가차없고, 잔인하다.

하지만 단지 내 분노가, 증오가, 살의가

우리의 슬픔과 원한과 분노와 증오와 살의가

저놈들의 잔악한 성격을 아득히 뛰어넘었을 뿐이었다.

신체의 정면을 아스트론한 레이무가 먼저 돌진했다.

당황한 녀석들이 레이무에게 총질했지만 두꺼운 철의 몸뚱아리에 모두 튕겨나갔다.

난 레이무의 바로 뒤에서 달려가다가 레이무와 같이 녀석들을 공격했다.

녀석들은 수색을 위해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

먼저 두놈. 레이무의 철의 정권이 한놈의 두개골을 으깼다.

난 옆에 있는 놈의 목에 칼을 쑤셔넣은 뒤 왼쪽 눈에 권총을 대고 쏴 머리에 구멍을 내줬다.

멀리서 또다른 두놈이 소총을 들고 이쪽으로 온다.

 

"너 이새끼 잘도 우리 동료를..."

 

그 아가리가 하고싶어하던 말을 다 할 일따윈 없었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온 플랑의 낫에 두놈 다 세로로 양단되었으니까.

주변에 윳쿠리 세마리가 있다.

겁에 질린 나머지 나에게서 도망치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놈은 레이무. 마리사의 맥가이버 칼에 오른쪽 눈부터 찔린 뒤 그대로 몸이 반정도 썰렸다.

남은 두놈은 앨리스와 첸. 레미랴의 송곳니에 뜯겨나갔다.

작전을 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 지 알 것만 같았다.

다시 레이무가 스스로 방패가 되어 내 앞을 지키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 놈들의 급소를 노린다.

플랑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밟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위에서부터 덮친다.

윳쿠리들의 처리는 마리사와 레미랴가 한다.

그렇게 싸우기를 몇번.

우린 모두 우리의 적의 피나 팥소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죽지 않은 놈들이 있다.

귀요미양에게 독화살을 박은 석궁남

이 윳쿠리들을 이끄는 도스

그리고...

이 집단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철가면의 대장놈

그놈들이 살아있다. 그리고 죽이고 싶다. 아니, 죽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다.

 

"퇴각! 퇴각해 이새끼들아! 대체 저새끼들은 뭐야!?"​

 

한놈이 퇴각이란 명령을 내린다.

그 근처에 있던 두놈이 명령을 내린 녀석쪽으로 도망간다.

엔지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총구 위에 튀어나온 두개가 가늠좌여. 그거 일직선상에 표적을 맞추는게 겨누는겨.'

 

그 말대로 겨눴다.

퇴각이란 말을 반복하며 손을 흔드는 녀석의 머리에

총구 위에 나온 두개의 가늠좌의 일직선에 놓았다.

녀석의 머리를 겨눴다.

그리고 그저 방아쇠를 당겼다.

 

"일단 퇴각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한번에 몰아붙..."

 

타앙.

내 앞에서 불을 뿜으며 울려퍼지는 총성.

그리고 산의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계선에서 손을 흔들던 녀석은

머리에서 피가 터지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히, 히익!"

"뭐야 저놈! 저 거리에서 어떻게 권총으로...!"

 

명령받고 퇴각하던 두놈.

바로 레이무와 플랑이 추격하여 각각 자신이 자랑하는 무기, 핏빛의 낫과 강철의 주먹으로 목을 베고 머릴 날렸다.

머리가 없어진 신체는 비틀거리다 털썩하고 쓰러졌다.

두 인간이었던 고깃덩이가 바닥에 뒹구는 걸 본 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아끼는 두 가족이 날 천천히 따라왔다.

마리사는 온몸과 입에 문 칼에 팥소를 범벅으로 묻혔고

레미라의 입에선 팥과 커스타드, 초콜렛 등의 온갖것이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 뒤에 나열된 10여마리의 윳쿠리의 사체.

그걸 확인한 뒤 산을 올랐다.

내 아래엔 내가 그 죽음을 꼭 확인하고 싶었던 셋만이 남아 있었다.

석궁을 든 양아치같은 젊은 남자.

덩치만 큰 어리석은 도스.

철의 가면을 쓰고 태연하게 사람을 죽여왔던 괴물.

난 그를 봤다.

그의 눈을 봤다.

양옆의 두놈과는 달리 철가면의 남자의 눈엔 동요가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즐거운 자의 눈.

이러한 상황을 당연히 여기는 자의 눈.

살인을 즐기는 괴물의 눈.

그때 그년과 같은 공허하고 어두운 눈.

그런 주제에 왠지 모르게 빛나는 눈.

지금의 나와 같은 눈.

 

"대, 대장... 어떡할까요?"

"그, 그래도 아직 우리가 유리하다제! 재빨리 공격하면..."

"니들은 좀 닥쳐봐."

"네, 넵!"

 

철가면의 남자는 떨면서 주절대는 두놈을 닥치게 했다.

그리고 이젠 내게 말을 건다.

 

"너 참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

"8명. 지금 너 혼자 죽여온 사람의 수야. 너 하나 죽이려고 보낸 내 부하들의 수."

"..."

"총까지 갖고 있는 집단이란 보고를 받고, 빈집털이당할 각오를 하고 총동원해서 왔는데 말이지, 다 죽어버렸네?"

"..."

"그 마쵸남한테 둘, 그 늙은이가 다섯, 한년이 하나. 그리고, 너 혼자 여덟. 이놈 산하의 윳쿠리까지 다 죽였으면 이제 우리 집단은 우리 셋이 다야."

"..."

"정말 대단해. 숫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우리가 한 수 위였는데 다 전멸했어. 그중 절반은 너 혼자의 업적이고."

"아직 전멸은 아니지."

"응?"

"니들이 남았잖아."

"아아, 확실히 우리가 남았으니 전멸이란 단어는 안맞지만, 괴멸이라면 맞잖아?"

"너희도 우릴 괴멸시켰고."

"그래. 근데 우린 집단으로 너희 다섯 중 넷을 죽인건데 넌 혼자서 여덟을 죽였네?"

"착각하나본데, 혼자가 아니야."

 

내 옆으로 레이무가 다가왔고, 나무 위엔 플랑이 녀석들을 노려본다.

레이무의 반대쪽엔 마리사와 레미랴가 있다.

 

"내 가족들과 함께다."

"오우, 윳쿠리를 가족이라고 부르다니, 너 정말 대단한 윳쿠리 애호가구나?"

"본론이나 말해. 하고싶은 말이 뭐야?"

"난 내 집단을 새로 꾸려야 해. 다들 죽어서 괴멸상태니까. 그래서 말이지, 난 널 초대할 생각이야. 우리 집단에."

"잠깐만요 대장님! 저런 괴물을...!"

"닥치랬지."

"네, 넵!"

"넌 정말 굉장한 실력을 가진 우수한 전투원이라고 생각해. 네가 가족이라 부르는 그녀석들도 그렇고 그래서..."

"난 널 죽일 생각이니까 거절하지."

"아아, 이거 안타깝네. 최후의 협상이라는 건데."

"니놈 모가지가 날아가는 걸 내 눈으로 보지 않음 안되겠어서 말이야."

"꼭 그렇게 해야겠어? 서로 많은 걸 잃었잖아? 그러니까 잃은 사람끼리 합쳐서 다시 채우자는 거지."

"너때문에 잃은 사람들이다."

"이봐, 그건 너무하네. 지금 상황이 어느땐지 알잖아?"

"..."

"물자는 한정되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 모두 살 수 없으니까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의 것을 빼앗아 사는 것이 지금같은 세기말의 시대엔 당연한 섭리라고. 약육강식! 그게 지금 우리의 삶이란 말이야!"

"하지만 고등생물일수록 그 섭리를 초월해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를 일구어낼 수 있지. 넌 그냥 쓰레기야."

"쓰레기라니, 우리도 살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

"같이 살아갈 방법하나 모색하려 하지도 않았잖아."

"당연하지! 말했잖아? 물자는 한정되어 있고 살고자 하는 자는 많다. 그러니까 경쟁이 생기는거야. 우린 그 경쟁에서 승리해왔을 뿐인거고."

"그저 약탈과 살육일 뿐이지."

"약탈과 살육은 수단이야. 우리가 살기 위한."

"다른 방법도 있었어."

"없으니까 이런 방법을 취한 거 아냐?"

"아니, 있었어. 단지 니가 그 방법을 귀찮아하고 싫어하고 지루해했을 뿐이지."

"하하, 설마 그럴리가..."

"네 눈을 알아."
"음?"

"살인을 즐기는 눈. 타인의 고통에 희열을 느끼는 눈. 피를 보길 좋아하는 눈. 네 눈에서 그때 본 그년의 눈이 보여."

"호오?"

"그게 증거다. 네 부하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넌 그런 놈이야. 넌 그냥 살인마일 뿐이지."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녀석은 호탕하게 웃는다.

양옆의 두놈이 이 상황에 당황하고 어이없어할 때 녀석은 더욱 호탕하게 웃는다.

더욱 크게. 더욱 우렁차게. 더욱 미친듯이.

 

"그래 맞아! 바로 맞췄어! 난 이게 재밌어! 생존이란 핑계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죽이는 거! 그게 재밌다고!"

"그렇겠지. 너랑 같은 부류의 여자를 만난 적이 있었어."

"그래서 내 본질을 꿰뚫어봤구나!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됐지?"

"..."

 

죽었다. 혹은 죽였다.

어느쪽일까. 난 그저 날 죽이려던 그 여자에게서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난 분명 그 여자가 죽길 바랬고,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만 않았을 뿐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죽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죽여버린 것일까.

난 저 남자의 질문에, 그리고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죽였다."

 

그래. 죽인거다.

죽길 바랬다. 그리고 바램대로 이루어진 그 상황을 태연히 받아들였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뒤틀린 사상을 고치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하수구에 빠져 기어오를 때 손을 잡아 끌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을 그저 방관만 했다. 그녀가 살아 돌아오질 않길 바라면서.

그러니까 죽인거다. 내가 죽인거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내가 죽인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난 저 남자가 죽길 바란다.

저 남자는 나와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제시했다. 협상을 제시했다.

만약에 그걸 받아들였으면 이 피비린내나는 대치상황도 평화롭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다음엔 저 남자의 뒤틀린 가치관을 고쳐 올바른 길로 인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거부했다. 내쪽에서 거절했다.

저 남자가 죽길 바래서. 내가 그 평화를 위한 협상을 결렬시켰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니, 오히려 협상을 받아들였으면 그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대치상황이 힘들긴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 협상을 받아들이는 게 내게 더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저새끼때문에 죽은 그 사람들은 뭐가 되는데...!!!

그러니까 결심했다. 재차 결심했다.

저 남자를 죽이기로. 그때 그 여자를 죽였듯이.

 

"내가 그 여자를 죽였고, 너도 그렇게 죽일거다."

"그래, 그게 니가 내린 대답이냐?"

"그래."

"그럼 이제 이 수밖에 없겠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철가면의 남자는 내게 자신이 들던 AK소총을 겨눠 망설임없이 발포했다.

레이무가 바로 내게 몸을 던져 난 뒷쪽으로 레이무와 같이 엎어졌다.

플랑이 나무에서 녀석들 방향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보였고, 마리사와 레미랴도 내려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해줘서 고마워 레이무."

"느늣! 당연하다구!"

"이제 가자. 저놈들을 죽이러."

 

몸을 일으켜 다시 그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계로 올라갔다.

철가면의 남자와 석궁남은 도로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고

도스는 레미랴와 마리사와 싸우고 있다.

플랑의 발밑에 3등분된 AK소총이 있는 걸 보아 플랑의 낫을 총을 막으려다 총이 잘리자 도망간 모양이다.

 

"느아아아아! 도스를 괴롭히지 말라제 이 썩을 게스들!"

 

남겨진 도스의 꼴이 말이 아니다.

그새 레미라한테 왼쪽 눈이 파먹히고 마리사의 칼질에 저부쪽이 계속 난도질되고 있다.

 

"할아범! 인간씨 둘은 도망갔다제! 이 게도스는 마리사랑 레미랴가 맡을테니까 쫓아가라제!"

"아니, 그놈 죽는 거 먼저 봐야겠다."

 

그래서 모두 가세했다.

난 왼손의 칼로, 플랑은 날개의 낫으로, 레이무는 주먹질과 발차기로, 레미라는 물어뜯고 마리사는 난도질했다.

 

"느아아아... 도스는 아직 죽기 싫다제..."

 

도스가 저항을 포기하고 도로변으로 기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스 스파크조차 쓸 생각도 들지 않는건가.

 

"저래서야 오래 못가겠지만 그래도 끝장내야 한다제. 다같이 저 게도스를 제제해버리는거제!"

"잠깐만. 챙길 게 있어."

 

터널 입구에서 얼마 안되는 도로변이다.

도로로 내려온 뒤, 터널로 향했다.

예상했던대로, 복부에 여러발의 총알을 맞은 채 눈을 뜨고 죽은 색시 누님의 시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손엔 그녀가 가지고 맞서싸웠을 산탄총이 여전히 들려 있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누님. 귀요미도 지키지 못했어요."

 

난 그녀의 시신의 눈을 감겨주고, 그녀의 손에 들린 산탄총을 들었다.

 

"하지만, 여러분의 복수만큼은 꼭 해내고 말겠습니다. 부디 저승에서 편히 쉬세요."

 

난 산탄총을 들고는 온몸의 크고 작은 상처에서 팥소를 미친듯이 흘리면서 도로를 기는 도스에게로 다가갔다.

놈은 터널을 등지고 도망가고 있었다. 난 걸어서 놈을 앞질러 놈의 면상과 마주했다.

 

"느으으... 인간씨... 도스가 잘못했다제... 살려달라제..."

"싫어."

 

파-앙.

폭발적인 총성이 내 앞에서 들렸다.

놈의 면상은 산탄총의 위력 앞에서 날아갔다. 산탄에 갈갈이 찢겨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면상이 그대로 쓰러졌다.

산탄총은 레이무에게 맡기고, 난 아까처럼 권총과 부엌칼로 무장했다.

 

"너희 모두 석궁 든 놈을 찾아서 잡아놔. 가면쓴 놈은 나 혼자 담판짓는다."

"...마음은 알겠지만 무리하지 말라제 할아범."

 

녀석들이 어느 방향으로 도망쳤는진 대충 봤다.

석궁남은 도로 저편으로, 철가면은 터널 안으로 갔다.

난 불길이 타오르는 터널로 들어갔다.

여기서 일어난 폭발때문인지 여길 밝게 비추던 전구들은 모두 깨졌고

그나마 저 너머에 남은 전구도 더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다.

여길 비추는 건 첫번째 비상구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화염만이 전부다.

그리고 그 화염 너머. 두번째 비상구에서 권총을 들고 나오는 철가면의 남자가 있었다.

그자는 지금의 나처럼 오른손엔 권총, 왼손엔 칼을 들고 있었다.

부엌칼인 나완 달리 그의 칼은 밀리터리 칼인 게 다를 뿐이지만.

 

"여어, 젊은 친구. 이렇게 단둘이 만날 줄이야."

"왜 여기로 온거지?"

"자네가 아끼던 그 친구들이 죽인 내 동료들한테서 총 좀 빌리려고 했지. 내가 아끼던 총을 네 가족이 망가뜨려서 말야."

"그런 것 치곤 변변치 못한 걸 고른 것 같군."

"그러게. 거기서 주울 수 있는 거라곤 이게 다였거든. 하지만 난 만족해. 지금의 너랑 같아졌잖아?"

"대결이라도 하자는 소리냐?"

"재밌잖아? 서로 같은 조건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나도 가끔은 일방적인 학살이 아닌 이런 걸 해보고 싶었거든."

"그년도 똑같은 소릴 내게 했었지. 왜 난 이딴 새끼들한테나 인기있는거냐..."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저승에선 인기있을지도 모르잖아?"

"내가 죽는 걸 전제로 말하지 마라."

"하하하하, 미안하구만. 내가 죽을 거란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러고는 각자 권총을 들어 서로를 겨눴다.

이후는 정적이었다.

몇초였는지, 몇십초였는지, 아님 몇분이었는진 모르겠다.

그저 서로 긴장 속에서,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었다.

불길은 조금씩 더 커져갔고, 천장엔 검은 연기가 자욱해졌다.

그리고, 나와 그 남자 사이에서 그나마 멀쩡하게 남아있던 전구 하나가 폭발함을 시작으로 우리의 싸움이 시작됐다.

서로 옆으로 뛰어 피하면서 총격전.

쉴 틈 없이 서로를 겨누고 총을 쏴댔다.

옆으로 피하면서, 동시에 다가가면서 총을 쐈다.

우린 점점 가까워졌고, 이윽고 서로의 이마 한가운데에 총구를 댔을 때

딸깍.

서로의 총알이 다 떨어졌다.

내가 놈의 목에 칼을 휘두르려 하자 놈은 날 발로 찼다.

내가 고꾸라지자 마자 녀석은 칼을 역수로 잡고 내게 뛰어들었고

난 옆으로 굴러 그 칼이 머리에 박히는 걸 피했다.

재빨리 일어나 오른손에 들고 있던 총알 떨어진 권총을 놈에게 던졌고

놈의 가면에 총이 맞은 순간 달려들어 로우킥을 먹였다.

그때 그년에게 먹였던 타격감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놈이 뒤로 고꾸라졌고, 놈의 왼손을 발로 차 칼을 놈에게서 떼어놨다.

그 즉시 녀석도 자기 발로 내 발을 걸어 날 넘어뜨렸고, 자기도 일어나서 내가 했듯 내 왼손의 칼을 걷어차냈다.

놈이 마운트 포지션으로 내게 주먹을 휘두르려 하니까 내가 먼저 녀석의 명치에 주먹을 날렸다.

녀석이 콜록거릴 때 놈을 밀쳐서 떼어내고 놈의 복부에 발차기를 먹였다.

놈은 발차기를 맞긴 했지만 순순히 맞아주진 않고 내 발을 잡곤 들어올려 날 또 넘어뜨렸다.

녀석이 자기 칼이 떨어진 곳으로 가려 하길래 놈의 발목에 발차기 스윙을 날려 다시 넘어뜨렸다.

칼을 줍기 위해 기어가는 녀석에게 올라타 목을 졸랐다.

놈이 격렬히 발버둥친 덕에 녀석은 마스크가 벗겨지는 대신 내 목조르기에서 벗어났고, 그대로 일어나 난 또 넘어졌다.

첫번째 비상구에서 재차 폭발이 일어났고, 온갖 파편이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녀석이 칼을 들어 이쪽을 보았다.

철가면이 벗겨진 그 자의 얼굴은 왼쪽 빰에 칼에 베인 듯한 흉터가 있는 30대 초중반의 평범한 남자.

그자는 칼을 들고 나를 덮쳤고, 나는 마침 내 오른쪽에 떨어진 달궈지고 끝이 뾰족한 쇠파이프를 집었다.

손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현재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

그 남자는 내게 올라타 내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고 난 쇠파이프를 겨눴다.

내 목 바로 앞까지 내려와 살갗을 살짝 찢어낸 칼은 그 자리에서 멈췄고

불에 달궈진 뾰족한 파이프는 내 오른손바닥을 달구면서 그자의 심장에 자리잡았다.

그자는 사악하고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내 위에서 죽었다.

그자를 내 몸 위에서 치우고 나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에 화상을 입었다. 저 남자는 심장이 뚫린 채 심장에 화상을 입었겠지만.

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여태 내 가방을 메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어쩐지 묘하게 몸이 무겁다 싶었더만.

그리고 분명 하수구에서 몇몇 의료용품을 챙겼을 것이다.

왼손으로 가방을 열어 뒤져보니 다행히도 마땅한 게 있다.

먼저 물통을 꺼내 화상을 입은 손바닥에 물을 부어 열을 식히고

소독약을 붓듯이 발라 소독한 뒤, 손에 천천히 붕대를 감았다.

손가락이 서로 달라붙지 않게 붕대를 감으려니 어렵다.

그보다도 이걸 치료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현재 있는 거라곤 이게 다이니 별 수 없지 않은가.

붕대의 끝을 손목쪽에 묶고, 그자가 들고 있던 칼과 내 부엌칼을 챙겨 가방에 넣고 다시 가방을 잠궜다.

그 아이들은 무사할까. 그리고 그 석궁남은 잡았을까.

난 서둘러 가방을 메고 불길이 치솟는 터널을 빠져나왔다.

 

터널 입구로 나와 녀석들이 타고 온 차량을 지나쳐 도로를 계속 달리다보니 저편에서 레미랴가 날아왔다.

 

"우-! 오빠야 찾았다도-!"

"레미랴! 어떻게 됐어?"

"다들 무사하고 그 인간씨 잡아놨다도-!"

"잘했어. 무엇보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오빠야도 무사... 하지 않다도!?"

"아아, 내 손? 치료는 했으니까 걱정마."

"그래도..."

"괜찮아. 그보다 날 그쪽으로 안내해줄래?"

"우-! 알았다도-!"

 

레미랴의 안내를 받아 도로의 커브길을 돌아 조금 더 가니 그 석궁남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레이무가 석궁남의 가슴에 발을 얹고 산탄총을 겨누고 있었고

플랑이 그 석궁남이 가지고 있던 석궁을 들고 있었다.

 

"오! 할아범 돌아왔다제!"

"오빠야! 다치신 덴 없나요?"

"뭐, 너희가 걱정할 건 아니야."

"어, 어이... 제발 살려줘...! 나도 살려고 한 짓이었단 말이야!"

"느긋하지 못하니까 조용이 하라구!"

"으으..." 

"어라? 레이무 너 그거 쓸 줄 알아?"

"몰라!"

"모르면서 겨눴던거냐..."

"모르지만, 근육맨 오빠야가 썼던 것처럼 하면 될까 해서... 이 인간씨도 겁먹은 거 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너 왠지 옛날보다 똑똑해진 것 같다?"

"느늣! 정말?"

"그건 나한테 넘겨줘. 이녀석과 얘기 좀 하자."

"느늣! 알았어!"

 

레이무에게 산탄총을 넘겨받고, 이번엔 내가 그걸 녀석에게 겨눴다.

 

"이, 이봐... 제발 부탁이야, 나도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랬던거라고..."

"아 그래? 살기 위해서라고? 그런 것 치곤 꽤나 즐겁게 사람 죽여대던 모양이던데?"

"그, 그건 우리 집단 대장이 그런 성향이니까 맞춰주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래... 그래! 전부 그 사람이 나쁜거야!"

"..."

"나, 난 그냥 살려고 거길 들어간거고 살려고 거기 룰에 맞춰 살았을 뿐인거야! 그러니까 제발..."

"니 눈에선 있지..."

"응?"

"열의도 없고 광기도 없어.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급급한 그런 녀석인거지."

"그, 그래 맞아! 나도 세상이 이 꼴이 되기 전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그냥 살기 위해 이런 거라니까?"

"넌 자기 소신하나 없는 비겁한 쓰레기일 뿐이지."

"윽..."

"널 쏠 가치나 있을까..."

 

난 총을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걸어갔다.

철컥

 

"하하 멍청아! 그렇게 물러터지니까 죽는"

 

서걱

 

"거야... 어라?"

 

뒤돌아볼 필요도 없다. 소리만으로도 뭔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겠다.

내가 뒤돌아 빈틈을 보였을 때 놈은 아마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겠지.

그걸 플랑이 팔째로 잘라버렸을테고.

처음부터 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명령이다. 내가 책임질테니 다 죽여버리라고.

내가 쏠 가치가 없었을 뿐 처음부터 살려주겠다고 한 적 없었다.

그 다음에 들려오는 소리론 분명 레이무와 플랑의 동시공격

플랑이 녀석의 심장에 낫을 박은 뒤 그대로 어깨까지 찢어발기고

레이무의 아스트론 주먹이 놈의 머리를 박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봐 죽음을 확인할 가치도 없는 놈이다.

적어도 그 두 미친놈년들은 그 광기에 나름의 긍지라도 있었지.

저딴 새끼는 그냥 흔한 게스 윳쿠리랑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저기 오빠야, 이 물건들 저 인간씨 거였는데 챙길까요?"

"석궁과 권총이라. 있어서 나쁠 건 없지. 가져가자."

"그럼 플랑이 들고 갈게요."

"그래, 부탁할게. 그리고 레이무."

"느늣?"

"...귀요미가 있었던 곳에 가서 그녀가 메고 있던 가방 가져와줄래? 그리고... 그녀의 눈을 감겨줘."

"...알았다구."

"레미랴는 레이무랑 같이 갔다와. 헤메지 않게."

"우- 알았다도-"

"할아범, 이제 어쩔거냐제?"

"후우... 생각이 있어."

 

레이무와 레미랴는 먼저 산을 타고 우리가 아까 몸을 숨겼던 곳을 향해 갔다.

난 플랑과 마리사와 함께 터널 입구로 돌아갔다.

그곳엔 여길 약탈하려 했던 그녀석들이 몰고 온 차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중 도스를 싣고 온 봉고트럭을 살펴봤다.

열쇠는 차에 꽂혀있고, 시동도 걸린다.

내 가방을 짐칸에 놓고는 색시 누님의 시신을 들어올려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두번째 비상구를 통해 반대쪽 터널로 들어가면 그 터널 한가운데엔 근육맨 형님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난 먼저 색시 누님의 시신을 가지런히 놓았고, 그 다음은 근육맨 형님의 시신을 그 옆에 놓았다.

눈을 뜬 채 죽은 형님의 눈을 감겨주고 첫번째 비상구쪽을 살펴봤다.

불길이 너무 세 들어갈 수 없지만 어렴풋이 보인다. 그 아저씨의 불타버린 시신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애도는 여기까지인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지. 부디 이제는 평안하시길...

왔던 길을 되돌아와 트럭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레이무랑 레미랴도 트럭쪽으로 돌아왔다.

색시 누님의 시신이 처음 있던 자리에 남겨둔 식량가방

그리고 레이무가 거기서 들고 온 옷가방은 짐칸 내 가방 옆에 두었다.

이 봉고트럭은 4인석이다. 누가 짐칸에 탈 필요는 없겠다.

난 뒷자석을 열어 레이무와 플랑을 먼저 태우고, 그 둘의 무릎 위에 마리사와 레미랴가 앉게 했다.

그리고 뒷자석 문을 닫고 나도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느늣? 인간씨, 이건..."

"그놈들은 다 죽었으니, 이젠 우리가 가져도 문제 없겠지."

"이게 그 자동차, 라는 건가요?"

"맞아. 인간들의 씽-이라고나 할까?"

"우-! 레미랴 자동차 처음 탄다도-! 신난다도-!"

"할아범. 이제 어디로 갈꺼냐제?"

"되는대로. 그냥 어디든 멀리, 우리가 살 수 있는데로."

"처음에 약속했었을때 말했던 완전히 느긋할 수 있는 플레이스 말하는거제?"

"그래... 온전히, 완전히 느긋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말이지."

 

운전대를 잡고, 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아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불타는 터널을 지나, 형님과 같이 동물 해체했던 다리를 건너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는, 어느 누구도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그 중에서 우리 모두가 느긋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땅으로.

인간도 윳쿠리도 느긋할 수 있는 윳쿠리 플레이스로.

난 떠난다. 윳쿠리와 함께. 내 가족들과 함께.

백미러 너머로 참담해졌지만 그리운 풍경이 보였고, 그 풍경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제 어딜 보든 새로운 세상. 그런 세상에서 이 차를 타고 다같이 달려본다.

아포칼립스 속 윳쿠리 플레이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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