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가 제시한 작전은 이러하다.
먼저 우리가 서둘러서 앞뒤가 무너져 폐쇄된 반대쪽 터널로 넘어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첫번째 비상구로 가 발전기가 있는 통로로 들어간다.
총질을 하면서 녀석들을 견제하고, 녀석들을 이 폐쇄된 터널로 유인하는 것이다.
놈들 대부분이 반대쪽 터널로 넘어왔을 때 우린 발전기 통로의 문을 열고 원래 터널의 입구로 뛰쳐나가는 것.
즉 녀석들을 유인하고 인식의 허점을 찔러 역으로 녀석들의 뒤로 돌아가 도망치자는 것이다.
다들 이 작전에 찬성했다. 나 역시 그렇고.
근데 이 작전, 나는 뭔가 자꾸 찜찜한데... 이 불안감은 뭐지?
하지만 지금은 별 뾰족한 수가 없나... 이 방법대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먼저 저시키들을 유인할 선두가 필요혀. 일단 엽총 든 니놈하고, 그리고 너!"
"늣!?"
"그 뭐셔, 아스 뭐시긴가 뭔가로 몸을 쇳덩이로 할 수 있댔지?"
"느늣! 그렇다구! 그것도 아스트론이 안된 팥소만 남아있으면 얼마든지 해제도 가능하다구!"
"그럼 너가 그 철덩어리 몸으로 방탄 좀 맡어라. 둘이서 유인역을 하란겨."
이렇게 유인역은 근육맨 형님과 레이무가 맡게 되었다.
잠깐이라지만 둘의 관계는 꽤 친밀하다.
게다가 근육맨 형님의 가르침으로 레이무의 격투술과 아스트론 응용력은 내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다.
둘의 콤비는 분명 제 역할을 하겠지.
"니놈과 내가 총들고 발전기실로 먼저 들어간다. 혹시라도 저시키들 중 들어온 녀석이 있으면 다 수틀리니께."
"총 쏴본 적 없는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에잉 쯧쯧, 총구 위에 튀어나온 두개가 가늠좌여. 그거 일직선상에 표적을 맞추는게 겨누는겨."
"하아, 안할 상황도 아니니까 까짓 것 해보죠 뭐."
"나머진 발전기실 문옆에서 기다리다 우리가 안전을 확인허면 그때 들어오고."
"근데 아저씨 정말 괜찮겠어? 나이도 있지, 다리도 그렇지, 자칫하면..."
"아 잔말말고 시키는대로 혀! 글고 내가 그리 허약해 보이디!?"
"팔팔하긴 하구나 아저씨."
"마리사, 혹시 모르니까 내 맥가이버칼 좀 갖고 있어. 너만 몸을 지킬 수단이 없잖아."
"고, 고맙다제."
"정신들 바짝 차리는겨. 삐끗하면 뒤진다 생각허고. 그럼 작전 시작헌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내 짐을 진 채 오른손에 권총을 들고 반대쪽 통로로 가는 문을 열었다.
몇개의 전구만이 노란 빛을 내는 음침한 통로. 좌우론 콘크리트더미가 가득해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난 엔지 아저씨와 함께 달려나가 간이 발전기가 있는 첫번째 비상구에 도착했다.
살짝 뒤돌아보니 우리 은신처였던 두번째 비상구쪽에선 레이무가 스스로가 방패가 되고
근육맨 형님이 바로 뒤에서 엽총을 계속해서 쏘고 있다.
터널 중간즈음엔 나머지 인원들이 조심스레 뛰어오고 있었다. 짐을 진 건 누님과 귀요미.
원래 레이무가 지기로 했던 옷가방은 이번 작전을 위해 귀요미가 대신 지기로 한 것이다.
몸을 써야 하는데 가방까지 메고 있으면 힘들테니까.
난 내 역할대로 조심스럽게 첫번째 비상구의 문을 열었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살펴보니 반대편의 문은 닫혀있고 안엔 아무도 없다.
발전기만이 여전히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고, 한편엔 기름통이 가득한, 처음봤던 모습 그대로다.
"여긴 아무 이상 없습니다."
"좋아, 일단은 잘 되어가는구만. 여자들 먼저 들어가. 난 저 근육이랑 머릿속 깨끗한 년 데려올테니께."
아저씨는 발길을 돌려 유인역인 둘에게로 갔고, 나머지 사람들과 윳쿠리들은 나와 같이 발전기실에 있다.
문을 아주 살짝 열어 원래 통로쪽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보고자 했다.
인간 윳쿠리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이 두번째 비상구 앞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첫번째 비상구에서 터널 입구까지에 있는 거라곤 두세마리 정도의 윳쿠리와
몸집이 큰 나머지 들어오질 못해 입구 앞에 정차한 트럭에서 졸고 있는 도스 하나뿐.
두번째 비상구앞에 몰린 녀석들이 우리 은신처였던 비상터널로 전원 들어갔을 때 뛰쳐나가면 될 것이다.
내가 문을 닫으니, 반대편 문에서 아저씨가 돌아왔다.
"어때요 아저씨?"
"일단 선두쪽은 놈들 견제하면서 천천히 돌아오고 있어. 문제는 저놈들이 제깍제깍 오질 않는구먼."
"녀석들도 경계하는 걸까요?"
"긍께말여. 적어도 인간인 녀석들이라도 다 들어와주질 않음 안되는디..."
"대장인 녀석도 왔어요. 다 들어온 것 같습니다."
어느샌가 근육맨 형님이 레이무와 같이 뒷걸음질치며 여기까지 왔다.
나도 다시 내쪽의 문을 살짝 열어 틈으로 보니 두번째 비상구쪽에 아무도 없다.
"됐어요.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아직이여. 저것들 더 다가올때까지 몇초 기다렸다가 나가."
"근육맨 형님이랑 레이무도 빨리 들어와요!"
"알았어. 레이무 먼저 들어가."
"느늣! 알았다구! 근육맨씨도..."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
문을 넘어오자마자 근육맨 형님을 보고 굳어버린 레이무.
아니, 모두의 표정이 충격과 경악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세 발의 총성.
세 군데의 총상.
근육맨 형님이 총에 맞았다.
그가 비틀거리고, 엽총을 떨어트렸다.
엔지 아저씨는 그 와중에 당황하질 않고 재빨리 떨어진 엽총을 들어 터널 안의 적들에게 견제사격을 가했다.
"...근육맨씨?"
"으아아아아아! 근육맨 아저씨이이이!"
레이무는 친구의 중상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고, 여학생은 이 참상에 절규하고 있다.
마리사도, 레미랴도, 플랑도, 색시 누님도, 그리고 나도. 모두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 다같이 무사히 도망치는 것이 계획이었다.
죽거나 다치는 이 없이 새로운 은신처를 찾으러 모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한명이 사라지려 한다.
"혀, 형님! 괜찮으세요!?"
"아니, 난 여기까진 것 같다."
"아, 아저씨 그런 소리 하지마! 다같이 나가기로 했잖아! 분명 치료할 방법이..."
여고생이 울면서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다시 들리는 몇발의 총성.
피를 흘리며 문앞에 주저앉은 그의 왼쪽 어깨에 총알이 박혔고
오른쪽 귀 일부가 총알에 찢겨나갔다.
눈앞에서 재차 벌어진 유혈사태에 그에게 다가가던 여고생도 놀라 뒤로 넘어졌다.
"으으으... 엔지 형님... 전 같이 못갈 것 같습니다..."
"썩을놈, 내가 언제 뭔 일 일어날 지 모르니까 태평하게 있지 말랬는데 기어이..."
"그래도... 전 그냥 죽진 않을겁니다..."
"그려 새꺄. 니 맘대로 해라."
"레이무..."
"늣...?"
"덕분에 즐거웠다. 넌 살아남아 행복하게 살거라."
"근육맨...씨?"
온몸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던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 마쵸남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랑 같이 동물 해체할때나 쓰던 밀리터리 나이프를 꺼내 어둡고 폐쇄된 터널로 달려나갔다.
그 남자의 포효소리가 몇발의 총성이 들렸음에도 끊이지 않았고, 그가 아닌 다른 남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들린 두세발의 총성에 그의 포효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니들도 멍때리지 말어!"
엔지 아저씨의 일침이 우리의 혼란을 일깨워주었다.
"샷건은 아가씨가 들고 가. 난 이제부터 이걸로 싸울란다."
엔지 아저씬 산탄총을 색시 누님에게 던져주고 자신은 엽총을 든 채 기름통의 뚜껑을 열고 있었다.
잠깐, 이 아저씨 무슨...!
"니들도 빨랑 그 문 열고 꺼져. 더이상 꼴도보기 싫으니께."
"아저씨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고...!"
아저씬 대답 대신 내게 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을 던져줬다.
"난 이제 한대면 충분혀. 나머진 니가 가져."
"아저씨 설마..."
"안돼 아저씨! 아저씨까지 왜그래! 다같이 살아서 나가기로..."
"그게 지금 수틀렸다 이년아. 살 사람은 살아야지. 낸 여기서 죽을 놈이니께 저것들 길동무나 할란다."
아저씬 처움부터 각오를 굳힌 것 같았다.
그럼 이 이상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아저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겠지.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저씨들 몫까지 살겠습니다."
"오, 오빠도 무슨 소릴 하는거야!"
"얼렁 가버려. 시간읎어."
난 계속해서 절규하며 같이 가자고 애원하는 여학생의 손목을 붙잡고 비상구의 문을 열어 터널로 나갔다.
엔지 아저씨만이 남아 발전기가 있는 그 비상통로 곳곳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레이무는 멍한 얼굴로 날 따라왔다.
플랑은 혼란에서 어나오지 못한 채 따라왔다.
레미랴는 울면서 따라왔다.
마리사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면서 따라왔다.
색시 누님은 착잡한 표정으로 산탄총을 든 채로 따라왔다.
우리 모두 슬픈 마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품은 채 터널 바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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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 아주 그냥 화려하게 지랄을 떨어주셨구먼 그려."
"이봐 노망난 늙은이. 당신땜에 우리 동료가 몇 죽었는지 알아?"
"그려 내 총 솜씨가 걔보단 좀 낫긴 하지."
"농담하려는 거 아니거든 망할놈의 영감탱이."
"아직 40대여 이눔아. 영감탱이 소린 좀 이르지 않여?"
"당신 참 이상하군. 이제 총에 총알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그 문을 열지 못하게 막듯 기대는거지? 총맞으면서까지."
"너새끼들은 절대 이해 못할거여. 지들 살기 위해 태연하게 사람 죽여대는 새끼들은."
"걱정마. 이해할 생각도 없으니까."
"알어 새꺄. 후우... 니들 손에 뒤지기 전에 담배 하나만 펴도 되냐?"
"...한모금만 허용하지."
"고맙구먼. 늙은이 옹고집에 응해줘서."
"잠깐만요 대장. 여기 아까부터 기름냄새가 심한게 좀 이상한데요?"
"뭐?"
"후우~ 역시 그 친구가 피우던 담배는 싸구려 맛이구먼."
"이 썩을 영감탱이가 설마!"
"담배 고맙다 새끼들아. 여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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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정확히는 첫번째 비상구가 있던 그곳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불길이 일고, 검은 연기가 한가득 뿜어져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만 같다. 그 아저씨의 마지막 담배는 이렇게 꺼졌을 것이다.
"느? 뭐야 이 느긋할 수 없는 소린?"
젠장. 폭음에 봉고트럭에서 졸던 도스가 깨버렸다.
하지만 우린 이미 그 트럭 옆을 지나가는 상황.
좀만 더 뛰어가자. 그리고 평소에 타던 산을 타 동물을 잡기 위해 깔아둔 덫 사이를 지나가자.
녀석들 중 누군가는 덫에 걸릴수도 있고, 이 산을 넘어서 도망가는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여고생을 이끌면서 내 가족인 윳쿠리들과 도망치고 있다.
잠깐, 색시 누님은?
뒤돌아보니 터널입구의 코너에 몸을 붙이고 계시다.
설마 당신도...
그녀는 이쪽을 보고 말했다.
"너희는 그대로 가. 난 이제 그사람을 만날 때까지 너희를 지킬테니까."
"당신도... 그들처럼 가버릴겁니까?"
"그냥 가는 게 아니야. 너희에게 희망을 걸고 가는거야. 그러니까 부탁해. 내 마지막 소원이야."
"...부디 무사하십시오."
내가 내뱉은 건 헛소리다.
무사할 리 없다는 걸 나도 안다.
그녀는 죽는다.
우릴 위해 시간을 끌다가 저들에게 죽는다.
그럼에도 무사하길 비는 건 기만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만에 하나라도 무사하길. 기적이라도 일어나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고작 몇발의 총성으로 깨져버릴 기대였을지언정.
덫을 깔아둔 곳을 지나 산을 계속올랐다. 그리고 이제 산을 내려가고 있다.
"저기 있다! 저새끼들 잡아!"
한놈. 뒤돌아보니 처음에 왔던 그 석궁남이 우릴 발견했다.
그럼에도 거리는 있다. 계속 도망쳤다.
쫓아오는 인간은 4명. 그중 한놈은 철마스크를 쓴 그 대장놈.
그리고 도스가 십여마리 정도의 윳쿠리들을 이끌고 그들과 같이 쫓아오고 있다.
"도스! 저것들에게 한방 쏴!"
"알았다제! 도스...!"
대장인 녀석이 도스에게 도스스파크를 명령했다.
도스의 입에 밝은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크게 벌린 도스의 입을 가득 메울 정도로 커지더니
이윽고 그 빛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스파쿠우우우우우!!!"
그 빌어먹을 빛덩이는 우리 바로 뒤에 떨어졌다.
직격은 면했지만 충격파덕에 우리 모두 제대로 굴렀다.
몸을 추스렸다. 가장 걱정되는 건 아직 윳쿠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마리사와 레미랴.
찰과상은 있지만 마리사는 낙엽에 안착해 무사했고 레미랴도 공중에서 자신을 제어해 어떻게든 버텼다.
플랑과 레이무는 그 경이적인 신체능력덕분인지 본능적이라지만 낙법같은 걸 해서 무사했다.
귀요미양은...
"전 괜찮아요. 빨리 가요."
이크, 총성이 들려온다. 더 살펴볼 새 없이 그대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와중에 잠시라도 숨을 돌릴 곳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첩첩산중에 마땅한 데가 없었지만 조금 더 가다가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 뒤돌아보니
그 가파른 경사 한곳에 흙이 무너져내려 딱 우리가 숨을만한 정도의 구멍이 생겼다.
재빨리 그곳에 몸을 숨겨 숨을 돌렸다.
"젠장, 놓쳤어! 어디로 갔지?"
"이 멍청이들아! 당장 찾아! 도스 너도 니 윳쿠리 총동원해서 찾으라고!"
"아, 알았다제 대장! 무리의 모두들! 그 게스인간들을 찾아내는거라제!"
녀석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우릴 찾기 위해 뿔뿔히 흩어진 것 같다.
"휴우... 한숨 돌렸구만."
"으아아아... 무서웠다제..."
"우... 힘들다도..."
"하아... 하아... 키우미 오빠..."
"아, 너도 괜찮아? 엄청 뛰었을텐데 지치지는..."
...!!!
귀요미 학생의 다리에 박힌 화살 하나.
아깐 정신없어서 못본건가! 게다가 석궁은 총성보단 소리가 작으니 발사되는지도 몰랐다.
불찰이다. 빨리 화살을 뽑고 내가 가진 의료용구로라도 응급치료를...
"만지지마, 오빠. 위험해..."
"하, 하지만 화살을 계속 박고 있을 수는..."
"맞은 데부터 몸이 저리고 굳어가는 것 같아..."
"설마... 독이라도 발라진건가...!"
"오, 오빠야! 귀요미 언니야 괜찮은거예요? 이거 배야하는 거 아닌가요?"
"에헤헤, 플랑 내 걱정해주는거야?"
"당연하죠! 귀요미 언니는 플랑의 소중한 친구인데요!"
"친구라... 나도 많이 있었지..."
"어이, 정말 독이 발라졌다면 계속 말했다간 독이 더 빨리 퍼질거야. 뭔가 낫게 할 방법이..."
"아니야... 괜찮아...
"하지만...!"
"이제 누군가의 짐이 되는 건 싫어..."
"...너도 뭔가 안좋은 과거가 있댔지."
"응... 실은 나, 여기 이전에도 다른 집단에 몸담은 적 있었어. 두번이나."
"그랬구나..."
"하지만 나, 잘 하는 것도 없고 언제나 모든 것이 서툴러서, 남들에게 짐만 됐어."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니?"
"아니, 그 사람들은 집단에서 가장 어린 내가 미래릉 이끌 희망이라고 늘 그랬어."
"그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지."
"그래서... 그 사람들은 지금처럼 습격당했을 때 나 하날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했어. 꼭 지금처럼."
"그랬구나..."
"지금도 그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나...! 기억할 때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나때문에! 나 하나 지키기 위해 그 사람들이 죽어버린 게 너무나도 아프고 슬퍼서...!"
"귀요미 언니야..."
"그래서... 이번엔 서로의 이름을 듣지 않기로 했어... 그래서 서로 별명으로 부르기로 한거야..."
"그랬었구나... 그게 너의 과거, 너의 아픔이었구나."
"미안해... 나때문에 힘들게 만들어서... 이번에도 나때문에..."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 아니니까 아파하지마."
"에헤헤, 고마워. 하지만 아파. 다들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래서 더 아파..."
"......"
"...있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말해봐."
"내 이름... 내 이름을 말해주고 싶어..."
"그래. 말해주렴."
"내... 이름은..."
나는 그녀의 이름을 듣기 위해 내 귀를 그녀의 입에 바짝 댔다.
하지만 내가 그 이름을 들을 일은 없었다.
내가 들은 거라곤 그녀의 숨이 멈추는 순간의 정적뿐이었으니까.
그 정적속에서 눈물이 흘렀다.
말없이, 소리없이 그저 눈물을 흘렸다.
멸망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힘없이 축 늘어진 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은 모두 내 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슬펐다.
화가 났다.
미웠다.
아팠다.
그리고...
죽이고 싶다.
그 사람들을, 이 따뜻한 사람들을 이렇게 무참하게 죽게 만든 그자식들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날 죽일 것만 같다.
슬픔은 고통으로
고통은 분노로
분노는 증로로
증오는 살의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는 그녀석들을 모두 죽일 것을 결심했다.
"레이무. 마리사. 레미랴. 플랑."
"느으..."
"할아범..."
"우우..."
"오빠야..."
"난, 저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 이 사람들을 죽인 저것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
"..."
"난 저놈들을 죽일거야. 내가 죽을 때까지 저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죽일거야. 죽는 꼴을 내가 볼거야."
"오빠야..."
"윳쿠리고 인간이고 나발이고간에 다 죽여버릴거야. 난 그렇게 할거야. 하지만 너희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
"원한다면 이대로 도망가도 좋아. 어디로든 가서 원하는 대로 살아도 좋아."
"...그 근육맨씨, 레이무한테 참 잘해줬다?"
"...?"
"지금껏 보아온 인간씨는 다 레이무한테 차가웠어. 인간씨도 처음엔 레이무를 그저 도구로만 봤고."
"..."
"하지만 근육맨씨는 처음부터 상냥하게 해줬어. 많은 것도 가르쳐줬고, 잠깐이지만 같이 훈련도 했어."
"...그랬지."
"그 인간씨들이지? 그 인간씨들한테 근육맨씨가 죽은거지?"
"그래."
"그럼 레이무도 싸울래. 친구는 지키겠다고 결심했는데 친구가 눈앞에서 죽었어. 레이무 그 게스인간들 용서못해."
"마리사도 동감이라제. 윳쿠리든 인간이든 상관없다제. 이 언니야도 그랬고 다들 좋은 인간씨였다제."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지."
"할아범에게도 친구고, 마리사에게도 친구였다제. 마리사의 친구를 죽인 그 게스들 용서 못한다제."
"나도 마찬가지야."
"윳쿠리고 인간이고 상관없다제! 마리사도 싸우겠다제! 죽은 친구들을 위해 싸우겠다제!"
"레미랴도 화난다도...! 절대 용서 안할거다도...! 크르르르... 다 죽일거다도...!"
"그래. 너희는 그렇구나. 플랑은? 네 맘대로 해도 좋아."
"...플랑은 되도록이면 다들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렇구나."
"하지만 그 인간씨들, 사이좋게 지낼 생각따윈 전혀 안했어요. 플랑에게도 소중한 친구들을 죽였어요."
"그래. 맞아."
"오빠야. 플랑 가슴이 아파요. 왜 그런지 플랑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플랑은 어떻게 하면 되는거죠?"
"미안해. 그건 나도 몰라. 나도 너처럼 아픈데, 그걸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라."
"그런가요..."
"하지만 누구때문에 아픈지는 알아. 난 그녀석들에게 복수할거야."
"그럼 플랑도 데려가주세요. 플랑에게 명령해주세요. 플랑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주세요."
"...너희들의 마음 알았다. 나가자. 그자식들과 만나자."
그리고 만나서...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다. 인간이든 윳쿠리든 상관없어. 책임은 내가 진다. 그자식들 다 죽여버려."
모두 죽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