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7.01.13 05:51

아포칼립스 속 윳쿠리 -9-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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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이 몸첨부가 되었다.

근데 여태까지 몸첨부 플랑을 여럿 봐왔지만

저런 형태의 몸첨부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가끔 몸첨부라도 사람에 흡사하거나 윳쿠레나이에 가까운 형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긴 들었지만...

무엇보다 저 날개, 플랑종의 원래 날개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

마치 등에 거대한 낫 두개를 달고 있는 듯한...

 

"꺄하하하하! 몸첨부가 돼봐야 열등종은 열등종!"

 

모히칸 플랑이 몸첨부 플랑에게 덤벼든다.

 

"엘리트인 플랑에겐 한입거리ㅇ..."

 

그 플랑이 말을 마치는 일은 없었다.

비명 하나 못지른 채 죽어버렸다.

그 낫과도 같은 날개, 그 날개의 단 한번의 휘두름으로 모히칸 플랑은 순식간에 양단되었기 때문이다.

저 날개, 역시 장식이 아니다. 비행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날개의 검은 줄기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커다랗고 검붉은 색의 보석은 윳쿠리따위 아랑곳 않고 베어버린다.

플랑이 그 모히칸을 양단한 걸 보고 동요하는 무리 윳쿠리들.

플랑은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돌진하여 송곳니로, 손톱으로, 그리고 날개로 무리들을 학살해 나갔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떠올린 어느 게임의 캐릭터.

칼날여왕...

지금 플랑의 모습은 가히 칼날여왕 그 자체였다.

 

"뭐, 뭐냐제 저 플랑! 저런 몸첨부가 있단 소린 못들어봤다제! 저딴 플랑 본 적도 없다제!"

 

도스가 경악하면서 소리친다.

그러게, 나도 저런 몸첨부 플랑은 난생 처음본다.

 

"이, 이히히히힛! 사나에 저 플랑 죽일거야! 그럼 도스, 사나에 칭찬해줄거야! 너 죽어버ㄹ..."

"하등한 윳쿠리가 몸첨부가 되어봤자 엘리트인 레미랴는 이길 수 없..."

"무리들, 돌진이라묭! 수로 밀어붙히면 이길 수 있..."

 

모두 갈려나갔다.

플랑에게 덤벼드는 녀석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 칼날의 제물이 되었다.

핏빛으로 반짝이는 그 칼날은 자신의 적을, 친구들을 해한 적들을 전혀 용서해주지 않았다.

베어 죽이고, 찍어 죽이고, 할퀴어 죽이고, 물어죽였다.

이 무리의 엘리트라던 모히칸 헤어의 윳쿠리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덤벼들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칼날의 플랑에게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기어이 무리의 간부들인 모히칸 윳쿠리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느아아아... 괴물이라제...! 저건 괴물이라제!!"

"첸은 도망치는거네! 알고 있어!"

"데, 데이부는 아가야들이 있는 불쌍한 싱글맘이라구! 죽이면 안된다구!"

 

엘리트들이 전멸한 남은 무리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다.

플랑의 눈빛은 그녀석들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전부터 체력이 약했던데다, 이제 막 갑작스레 몸첨부가 되느라 적응도 못한 아이.

벌써부터 숨을 헐떡대고 몸이 비틀댄다.

그럼에도 플랑은 헉헉대면서 도망치는 녀석들에게 칼날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걸 방해한 건 한발의 충격파.

 

"도스 스파크!"

"큭!?"

"저 썩을 도스놈이!?"

 

어째선지 그렇게 강한 위력은 아니었다. 저 도스의 스파크가 약한건지, 플랑이 그만큼 튼튼한건진 모르겠지만

플랑의 몸에 치명타는 주지 못했다. 하지만 플랑을 바닥에 패대기치는 덴 충분했다.

벌써부터 지친 플랑은 쓰러진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햣하하하하! 죽이진 못했지만 역시 도스의 도스 스파크를 이길 순 없다제!"

"프, 플랑! 괜찮나도-?"

"레이무 아직 여기 있어! 레이무가 지켜줄게!"

"어이 할아범! 이제 어떡하냐제?"

 

...안되겠다. 더이상 이성이고 뭐고 참질 못하겠어.

난 놈이 내게 던져준 가방에서 부엌칼을 꺼내고 맥가이버칼은 마리사에게 넘겨줬다.

 

"마리사, 넌 이걸 갖고 다른 애들이랑 같이 플랑을 지켜줘."

"젴!? 할아범은 어쩌려고?"

 

그런 거 정해져 있잖아. 난 내 손에 쥔 부엌칼을 힘을 줘 꽈악 쥐고

이 무리의 마지막 모히칸, 무리의 중심,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해치워야 할 라스트 보스

모히칸 도스에게 다가갔다.

 

"햣하하하하! 뭐냐제 인간씨, 칼 좀 커졌다고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거냐제?"

"이기고 자시고, 널 족치지 않으면 안되겠다."

"햣하! 예전에도 그런 식으로 도스에게 마지막 발악을 한 인간씨들이 있었다제. 하지만 한번 보라제?"

 

녀석은 자기 뒷쪽의 풀숲에서 뭔갈 뒤적거리더니 인간의 두개골을 꺼내 내 앞에 던져놨다.

 

"그것들 전부 도스의 밥이 되었다제. 네놈도 그때까지의 놈들과 다를 바 없이 죽을 거라제!"

"..."

"어떠냐제? 겁나냐제? 아니면 화나냐제? 자기 동족이 무참히 잡아먹힌 게?"

"..."

"햣하하하하! 겁나는 것도 당연하다제! 아니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제! 어떠냐제? 동족의 시체를 본 기분은?"

"어쩌라고."

"햣하하하하! 그래 어쩌라고...... 엥?"

"아 뭐 어쩌라고. 알게 뭐야."

"이, 인간씨의 해골이라제!? 도스가 잡아먹은 인간씨의 두개골이라제!? 동족이 먹힌 게 화나지 않냐제?"

"겁도 안나고, 화나지도 않는데?"

"어, 어째서냐제에에에! 도스가 이렇게나 도발하는데 왜 태연하냐제!!"

"사람 죽는 건 여럿 봐왔어. 심지어 날 죽이려던 인간도 있었고, 그 인간이 역으로 죽는 꼴도 봤다고."

"하, 하지만 이번엔 도스가 잡아먹은 거라제!? 윳쿠리에게 죽은 거라제!?"

"그럼 그게 그 양반 운명이었던 거겠지. 이런 지옥에서 어떻게 죽든 이상할 게 뭐 있어.

굶어죽을 수도 있고, 잔해에 깔려죽을 수도 있고, 같은 인간에게도 죽을 수 있고, 맹수에게 먹힐 수도 있고.

그런데 도스든 아니든 윳쿠리의 먹이가 된 게 이상할 게 뭐 있어? 그런 세상이라고 지금은."

"그... 그럼 그 눈빛은 뭐냐제! 왜 망설임없이 도스에게 칼을 들고 째려보냐제!"

"난 그냥 내 친구를, 동료를, 가족을! 해친 새끼를 용서못할 뿐인거다! 너새낄 도륙내지 않고는 못참겠다고!"

"그, 그, 그래봐야 도스의 상대는 안된다제! 네놈도 뭉개주겠다제! 잡아먹겠다제!"

 

도스가 내게 귀밑털을 휘둘렀다.

피하지 않는다.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틀어 등으로 막았다.

오히려 피하지 않은 것에 당황한 도스의 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으로 그 머리채를 잡은 채 칼로 잘라냈다.

 

"느아아아아아! 도스의 아름다운 귀밑털이이이! 유일하게 남겨놓은 아름답고 유용한 귀밑털이이이이!!"

"으으... 오빠야...?"

"플랑? 의식이 있는거야?"

"썩을 인간 용서 못한다제!"

 

플랑에게 신경을 돌리느라 녀석에게 빈틈을 보였다.

녀석은 입을 크게 벌려 내 상반신을 삼키고 허리를 물었다.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고, 복부와 등에 격한 통증이 느껴진다.

괜한 발버둥 쳐봤자 놈의 이빨만 더 파고들겠지. 그럼 이건 어떠냐!

난 녀석의 혀에 칼을 박았다.

 

"느아아아아! 도스의 혀가아아아아!"

 

놈이 비명을 지르며 입을 연 순간 나는 움직였다.

놈의 입에서 빠져나오는 대신 역으로 놈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부터 도륙내주마 쳐죽일 놈아.

 

"우-! 오빠야가 도스에게 삼켜졌다도-!"

"하지만 레이무 눈엔 직접 들어간 것처럼 보였는데, 왜지?"

"할아범, 어쩔 생각이냐제!?"

 

어두컴컴한 팥소 속의 세계, 유일한 빛은 녀석이 입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전부.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칼을 양손에 꽉 쥐고 방향감각 없이 사정없이 휘둘렀다.

 

"느아아아아! 도스의 몸 속에서 칼질하지 말라제! 도스의 팥소 휘젓지 말라제!"

 

놈의 몸속이라 그런지 놈의 비명이 더 다이렉트로 들린다. 온몸에 진동이 전해진다.

근데 알 게 뭐야. 그럼에도 난 휘두른다.

네놈이! 죽을! 때까지!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겠다!

거의 본능으로 휘둘렀다. 되는대로 휘둘렀다. 엄청난 양의 팥소의 무게에도 아랑곳 않고 휘둘렀다.

칼날이 바깥까지 나가기도 했다. 놈의 한쪽 눈도 찔러 뽑아버렸다.

도스가 내지르는 비명의 진동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계속 놈의 몸을 칼질하며 휘저었다.

 

"끄으으으!!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도스도 생각이 있다제!"

 

놈의 입이 닫혔다. 새어나오던 빛조차 없어져 완전히 깜깜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놈의 팥소가 요동치더니 날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 팥소로 눌러죽일 생각인가. 오냐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놈의 압박을 견디면서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체력은 떨어져만 갔다.

녀석은 죽을 기미를 안보이고, 계속해서 날 어두컴컴한 제 몸속에서 팥소로 압박해오기만 했다.

젠장... 의식이 흐려져...

이대로... 죽을 수는......

......

...

 

 

"하아... 하아... 고생시키긴, 썩을 인간이. 애 좀 먹었지만..."

"오빠야...?"

"드디어 도스의 승리라제! 햣하하하하하!"

"마, 말도 안돼! 그 할아범이 벌써 죽었을리가...!"

"아아, 확실히 아직 죽진 않았다제. 하지만 도스의 몸속에서 움직임이 둔해진 게 느껴진다제.

이젠 느긋히 소화하는 것만 남았다제. 그러니까 도스의 승리라제! 햣하하하하하하!"

"안돼... 오빠야...!"

"우-! 오빠야 죽으면 안된다도-!"

"아, 아직 레이무의 오의도 자랑 못했는데! 죽으면 안된다구!"

"젠장, 젠장 젠장! 야 이 망할 할아범! 고작 이정도로 죽지 말라제! 할아범은 여태 강하게 버텨오지 않았냐제!?"

"미안해요 오빠야...! 플랑이 좀만 더 힘이 있었어도...!"

"햣하하하하하! 너희의 유언을 죽기 전의 녀석에게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제?"

"오빠야! 제발 죽지 마세요!"

"햣하하하하하하...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난 놈의 아가리에서 중추팥소를 뽑아들고 나왔다.

왼손엔 칼, 오른손엔 놈의 중추팥소.

그 크기는 마치 야구공만한, 한손에 꽉 들리는 구체였다.

나는 팥소투성이로 바닥에 엎어졌다. 남은 힘을 쥐어짜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봤다.

당황하다 못해 공포에 질린 도스의 모습이 내 눈에 비친다.

 

"도... 도스의 중추팥..."

"..."

"돌려... 달라제... 도스의 중추... 팥소..."

 

놈의 몰골이 점점 좀비처럼 되어간다.

덩치가 있는 만큼 중추팥이 뽑혀도 버티는건가. 하지만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

 

"제발... 돌려... 달라제...!"

 

난 눈을 돌려 내 오른손에 들려있는 놈의 중추팥소를 보았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의 사탕같이 단단하고 투명한 겉면.

그 속에 들어있는 흑갈색의 팥소는 마치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내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움켜쥐고, 힘을 주어, 한계까지 힘을 쥐어짜내 중추팥소를 쥐었다.

이윽고 중추팥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도스의 포효가 들려오지만 무시했다.

더더욱 손에 힘을 줬다.

중추팥소의 금이 점점 넓어져갔다.

난 마지막으로 내 분노를 모두 담아 오른손에 집중시키듯 힘을 주었다.

 

"도스의 중추팥소 돌려달라제에에에에!!!"

 

내 오른손에 들려있던 중추팥소는 산산히 부숴졌다.

사탕같은 겉면은 반짝이는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나갔고,

맥동하던 팥소는 힘없이 흘러내렸다.

이윽고 그 거대한 덩치가 쓰러지고 숲 전체에 그 울림이 단말마와 같이 울려퍼졌다.

주먹을 쥐던 오른손을 펴고 도스를 돌아봤다.

더이상의 미동도 없다. 도스였던 그것은 이제 그저 거대한 만쥬덩이에 지나지 않다.

 

"하아..."

 

모든 긴장을 풀어내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친다. 그냥 모든 게 다.

 

"체, 첸은 도망치는거네! 알고 있어!"

"이자식 어딜 도망가냐제!"

"냐아아아아! 왜 첸을 잡는거야! 모르게써어어어!"

"이봐 할아범! 이자식들 도망가려는데 빨리 해치워야..."

"놔둬."

"젴!? 그게 무슨 소리냐제! 이녀석들은 우릴..."

"더이상 전의도 없는 놈들이다. 괜히 힘 더 쓰고 싶지 않아."

"자, 잘은 모르겠지만 데이부는 아가야가 있는 싱글맘이라구? 죽으면 세계의 손해인 걸 인간씨도 알아준거네!"

"아니, 네놈들도 살기 위해 저놈에게 붙은 것 뿐이니까 봐주는 것 뿐이다. 생존을 위한 발버둥에 뭐라 할 생각없어.

하지만, 내 가족을 해하려한 니놈들 꼴도 더 보기 싫거든?"

"묘, 묘묭..."

"냐아아아..."

"그러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묘, 묭은 도망칠거다묭!"

"냐아아아! 란샤마아아아!"

"데이부는 아가야랑 도망칠거야!"

"그, 그럼 키메에마루는 실례하겠습니다아아아아!"

 

모히칸 도스의 무리는 그렇게 산산히 흩어졌다. 내 시야에는 이제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네 윳쿠리만이 남았다.

하아... 지금 내 꼴 어떤 모습일까...

그 여자랑 같은 모습일까?

그 공허하고 어두운, 살기와 광기만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나 혼자서는 모르겠어...

 

"괘, 괜찮아요, 오빠야?"

"얘들아..."

"네?"

"지금의 나... 괴물이니? 그때의 그 여자와 같은... 공허하고, 어둡고, 광기로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니?"

"할아범, 지금 무슨..."

"대답해줘, 제발... 나... 지금의 나... 괴물이니...?"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의 의미를 모르겠다.

역시 난 괴물이 된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이성을 놓고 한 생명을 난도질했다.

윳쿠리라는 자아체를 학살했다. 눈앞에서 심장을 박살내줬다.

그리고 그 팥소... 인간의 피와 내장이나 다를 바 없는 그 팥소로 내 몸은 얼룩져있다.

그러니 이녀석들이 날 괴물로 보는 것도 이상할 것 없지...

그런 의미의 정적인건가...

그렇게 느낄 때, 플랑이 먼저 그 정적을 깨주었다.

 

"오빠야는 전혀 괴물이 아니예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저흴 돌봐줄 때와 같은 상냥한 눈빛을 하고 있는걸요?"

"우-! 레미랴들을 구해준 오빠야가 괴물일 리가 없다도-!"

"어휴, 할아범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네. 할아범이 그 미친 언니야와 같을 리가 없잖아?"

"인간씨는 레이무들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 거니까! 레이무는 알고 있다구?"

 

...아아, 그렇구나.

난 아직 괴물이 아니구나. 아니, 괴물따위 되지 않는구나...!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난, 괴물이 아닌 거구나...!

내가 아직 괴물이 아니란 것이 다행이라선지, 이 아이들의 상냥한 말에 감동한건지,

내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른다. 눈물이 흐른다.

몸에서 힘이 풀리고, 칼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자리에 주저앉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 잠깐 울어도 되지? 우는거, 참지 않아도 되지?"

 

내 말에 이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내게 다가와 날 위로해줬다.

플랑이 날 껴안아주고, 왼손은 레이무가 부비대고, 오른손은 마리사가 귀밑털로 잡아줬다.

레미랴도 내 등 뒤에서 안아주듯 내 몸에 날개를 포갰다.

나는 거기서 울었다. 최대한 소리를 참아보려 했지만, 눈앞이 흐릿해지고 끅끅대는 소리가 새어나갔다.

그렇게 한참동안, 나는 이 아이들의 위로를 받으며 울었다.

 

기분이 정리되고 도스의 뒷편 너머로 가봤다.

그녀석이 자기의 보금자리로 삼았을 곳, 그곳엔 넓지만 깊지는 않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아마 녀석들은 여기서 식수를 구했겠지.

 

"잠깐 몸 좀 씻을게."

 

난 그대로 연못에 들어가 옷과 몸에 묻은 모든 팥소를 연못에 풀어 씻어냈다.

몇분정도 몸을 물에 담그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나와선 젖은 옷을 벗어 가까운 나무에 걸어놓았다.

 

"어이, 할아범. 이제 어떡할거냐제?"

"오늘은 너무 지쳤으니까 그냥 여기서 자고 가자. 불을 피워야겠어."

"그럼 마리사는 적당한 나뭇가지를 구해오겠다제!"

"레이무는 자갈을 모아올게! 화톳불씨를 만드는거지?"

"우, 우우?? 그, 그럼 레미랴는 주변을 돌아보겠다도-!"

 

하하, 이녀석들 그새 이렇게 성장했나. 왠지 대견하네.

근데 플랑은 얼굴을 붉힌 채 가만히 있는데 왜지......

아.

정신 없어서 깜빡했는데 지금 플랑 전라상태지!

게다가 나도 젖은 옷 널어놓는다고 팬티차림이고...

어익후 나도 부끄럽네. 팬티도 젖어서 벗어야 하는데 아직 안벗길 잘했네.

나는 최대한 플랑 쪽에서 시선을 돌린 채 서둘러서 가방에서 마른 옷을 꺼냈다.

다 내 사이즈라 플랑할텐 크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맞춰줘서

가장 밝은 색의 청바지에 흰색의 반팔셔츠

...브라는 없으니 속옷은 흰색 남성용 팬티 하나

서둘러서 플랑에게 옷을 입히고 나도 나무 뒷편에서 팬티를 갈아입었다.

갈아입는 동안 도스녀석의 시체를 봤다. 아직 썩거나 하진 않은 게 먹을 순 있겠다.

깨끗한 부분만 퍼내서 다같이 배부르게 먹도록 하자.

녀석들이 도와준 덕분에 화톳불은 빠르게 완성되었다.

레이무가 구해온 자갈들로 만든 둥근 원 안에

레미랴가 구해온 마른 나뭇잎과 마리사가 구해온 가느다란 나뭇가지

나뭇잎을 깔고 나뭇가지를 세모꼴로 쌓아 캠프파이어처럼 만든 뒤

성인잡지 한장을 뜯어 성냥불을 붙인 뒤 그 안에 집어넣었다.

활활 잘 타오른다. 밝고 온화한 온기가 주변의 한기를 녹여준다.

난 부엌칼로 썰어낸 도스의 일부를 모두에게 균등하게 나눠줬다.

도스의 시체 일부란 건 다들 아는 듯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군말없이 먹었다.

아니, 불쾌함을 참는 기색조차 없다. 어느새 다들 이런 일에 익숙해진건가...

 

"하~암. 배부르고 따뜻하니까, 레이무 졸려..."

"우우... 레미랴도 자고 싶다도..."

"그럼 오늘은 다같이 모여서 자자."

"실수로라도 누르지 말라제?"

"안그래 안그런다고."

 

여러모로 지친 하루, 작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평온한 밤을 보냈다.

아아... 따뜻하다... 가족의 온기가 이 아이들에게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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