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냐도-!"
아침에 일어나고 나서 나는 마리사와 레이무에게 새로 동료가 된 레미랴와 플랑을 소개했다.
포식종의 등장에 둘은 겁에 질렸지만, 잘 교육받아 다른 윳쿠리를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고 얘기해줬더니 그제야 안심했다.
잡초투성이 식사가 끝나고, 나는 레미랴와 플랑만 따로 불러 마리사와 레이무가 듣지 못할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인류가 멸망했다는 것, 우린 안전한 곳을 찾아 떠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식량문제에 항상 직면해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정착지를 찾을 때까지 너희들의 아가야를 식량으로 삼겠다는 것.
내 말이 끝나자 레미랴가 한 말이 바로 저거다.
"어째서냐도-!"
중요해서 두번 말하나.
"어째서 아가야를 잡아먹겠다는 거냐도-! 오빠야는 나쁜사람이었냐도-?"
"레, 레미랴... 오빠야를 화나게 하면 안돼요..."
"하지만... 하지만..."
"너희가 바로 수긍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누구라도 자기 새끼를 쉽게 죽게 하긴 싫거든. 인간이라도 말이지."
"그렇다면 어째서...!"
"너희끼리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겠어?"
"우, 우우..."
"사냥하는 방법도 모르고, 남는 거라곤 잡초뿐,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폐건물 사이에서 살 수 있겠냐고."
"우우... 무리다도..."
"플랑도 지금까진 어떻게든 해왔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잘 될거라고 볼 순 없어요..."
"저 마리사와 레이무는 자기 새끼를 내게 헌납하는 것으로 내 힘과 판단력에 의한 보호를 받는다."
"저, 저 윳쿠리들은 자기 아가야들을 바치는거냐도-!?"
"어디까지나 완전히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곳에 도착할 때 까지만이다. 그 이후엔 잔뜩 낳아도 상관안해."
"저희도 오빠야의 보호를 받는 댓가로 오빠야가 먹을 걸 줘야 한다는 거군요."
"플랑은 이해가 빠르구나."
"프, 플랑! 아가야를 죽게 내버려둔다니, 무슨 소리냐도-!"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선 아가야를 키울 수도 없고, 저희도 오빠야 없인 안전하게 살 수 없어요!"
"레미랴."
"우-?"
"내 제안이 맘에 안들면 지금 당장 떠나도 좋아."
"우, 우우??"
"날개가 완전히 부러져 날 수도 없는 너의 소중한 플랑을 보호하면서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우웃...!"
"어젯밤에도 어떻게 할 방법을 몰라 날 찾아온거지? 너흰 금뱃지를 따느라 받은 교육때문에 사냥능력이 없어."
"...부정할 수 없어요."
"난 인간이다. 윳쿠리보다 강한 힘이 있고, 덩치도 크지. 아는 것도 많고, 판단하고 결단하는 능력도 높지."
"실제로 어젯밤은 오빠야 덕분에 플랑이 살 수 있었죠."
"상부상조라고 했다, 레미랴. 내가 너흴 도와줬으니 이젠 너희가 날 도와줘."
"그게 아가야를 바치라는거냐도-?"
"그건 한 부분일 뿐이야."
"우-?"
"내가 너희와 함께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정착지, 너희 수준으론 진정한 윳쿠리 플레이스를 찾을 때까지
내게 힘을 보태달라는 거다. 내가 힘을 내고 살아있게 식량을 내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을 가고, 내가 구할 수 없는 필요품을 대신 가져오는 것. 그것이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도움이다."
"우우... 힘들 것 같다도..."
"이제 편한 걸 찾을 수 있는 시간따윈 없어. 살기 위한 길을 찾을 뿐이지."
"...플랑은 오빠야의 말을 따를게요."
"프, 플랑!?"
"플랑도 아가야는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아가야를 이런 고통속에 둘 수도 없어요."
"넌 결정을 내린 모양이구나."
"네."
"레미랴, 넌 어떻게 할거지?"
"우... 레미랴는 플랑 없이는 살 수 없다도-! 레미랴도 함께 하겠다도-!"
"...적어도 아가야를 먹을 땐 최대한 고통없이 보내게 해줄게."
"우우..."
레미랴는 소리없이 울었다.
그런 레미랴를 플랑이 달래줬다.
학대파라지만 개념종까지 학대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솔직히 미안하다.
하지만 이건 생존의 문제.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애당초 이걸 노리고 도와준거니, 내게 미안해할 자격조차 없겠지만.
"어이, 망할 할아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제!"
저편에서 마리사놈이 시끄럽게 군다.
하긴 슬슬 떠날 때가 되긴 했지.
"지금 간다 이 썩을 만쥬놈아!"
"썩을 만쥬라니 말 다했냐제!?"
"꼬우면 맞짱뜨던가! 함 해볼래!?"
"그, 그건 아니라제..."
힘의 차이를 알고 피할 건 피한다.
게스임에도 지능이 있어야 살아남기에
저것들을 처음 만났을 땐 그정도의 지능이 있음을 눈여겨보고 데리고 다닌 것이다.
게스의 성격상 수시로 기어오르려 해도 막상 위험한 순간엔 꼬리를 내린다.
세상이 멀쩡했을 땐 꼬리를 내려도 봐주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살릴 수 있을때까진 살려야 하니까.
"자, 이제 가자. 플랑, 혼자 움직일 수 있겠니?"
"괜찮아요. 상처가 깊은 것도 아니었고, 언니야의 집에서 지낼 땐 자주 뛰어다니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정말 언니야를 더이상 만난 수 없는 거냐도-?"
처음에 상황을 설명할 때 했던 말 중 한가지, 너희의 옛 주인도 죽었을지도 모른다. 만날 수 있을거라 기대하지 마라.
레미랴는 지금도 그걸 믿기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나도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나서 여태까지 사람의 흔적이라곤 그때 잔해에서 주운 두개골 하나뿐이니...
"살았는진 죽었는진 나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만날 수 없을거라 보는 게 좋을거야."
"그, 그래도 살았다면 언젠가는 만날지도..."
"괜한 기대는 더한 실망감으로 돌아온다. 지금은 당장 살 길만 생각해."
"...알았다도-"
그 아가씨가 어찌 됐을진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난 살아있을거란 기대는 안한다.
잔해 속을 지나온 지 1시간, 골목을 지나오니 8차선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멀쩡했을 땐 그 상가에서 몇분이면 왔을 거리를, 온갖 잔해를 오르거나 우회하거나 하면서 걸음까지 느리게 가니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많은 게 부숴졌단 걸 이럴 때 실감한다.
도로의 상태가 정상적인 건 아니지만 시야가 탁 트이니 좀 살 것 같다.
불안불안한 회색의 균열투성이 벽만 봐왔더니 슬슬 미칠 것만 같았는데.
"이 큰 길을 따라가면 뭐라도 나오겠지. 이렇게 넓고 큰 길은 보통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니까."
잠깐 내가 내뱉은 말을 곱씹어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정정.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길이니까."
더이상 이 길을 오갈 많은 사람들은 없다.
스스로에게 자꾸 상기시키지 않으면, 두려움때문에 현실도피해버릴 것 같다.
이녀석들 앞에선 강한 척,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애시당초 난 뭔 훈련같은 것도 받은 적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생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을 즐겨본 것도 아니다.
그냥 게스 윳쿠리들 학대하는 게 취미인 평범한 일반인이었단 말이다.
연애경험은 제로에, 동정도 못떼고, 첫키스는 어젯밤 잡아먹은 윳쿠리 파츄리에
생존용품이래봤자 집에서 대충 챙겨온 물품 몇개가 고작인 일반인이란 말이다.
대체 왜 난 다른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죽게 두질 않은건지 신이란 새낄 저주하고 싶다.
30분 쯤 지났을까, 길은 중간에서 끊겼다.
사거리 방면에 도착했을 때, 중간지점이 좌우로 크게 무너져서 윳쿠리는 커녕 사람도 건널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그 크게 무너져 파인 넓은 틈에 대량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강과 같이.
"무, 물이다제! 마리사는 목마르다제!"
"어이 잠깐 기다려."
"뭐냐제? 마리사의 슈퍼 꿀꺽꿀꺽타임을 방해하지 말라제!"
"이 물이 안전하단 보장이 있냐? 내가 상태를 살펴보고 나서 마실지 말지를 판단한다."
가방에서 500ml짜리 생수병 두병을 꺼냈다.
하나는 이미 다 마셔 텅 빈 병이고 다른 하나는 생수가 반쯤 남아있다.
나는 텅 빈 병에 도로에 강처럼 흐르는 물을 담아 반쯤 남은 생수와 비교해봤다.
별 차이 없다. 눈에 띄는 이물질이 보이지도 않고, 색깔이 이상하지도 않다.
만약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병원균이 있다면 윳쿠리는 몰라도 나한텐 위험하겠지만 그걸 구별할 능력은 없다.
또 보통은 안전해보여도 한번 끓여서 먹는 게 진짜 안전하지만 아쉽게도 뭘 끓일 기구따위 내겐 없다.
그러니 지금 판단으론 그냥 이 생수처럼 맑으니까 안전하길 바랄 뿐이다.
일단은 마셔도 되는 물이라 치자.
"이 물은 마셔도 되겠다."
"그것 보라제, 마리사님의 판단은 틀릴 리가 없다제."
"아 그러셔? 그럼 앞으론 나 없이도 잘 살겠네?"
"젴, 그, 그건 아니라제..."
"마셔도 되는 물이지만 경사져서 너넨 잘못하면 빠질 수 있겠어. 내가 떠서 주지."
퍼낸 강물을 도로변의 낮게 파인 곳에다 부어 물그릇마냥 만들어줬다. 네마리의 윳쿠리 모두 실컷 물을 마시고 있다.
난 가방에서 1.5L짜리 병을 하나 더 꺼냈다. 이것까지 하면 내게 남은 마지막 병이다.
반쯤 남은 생수는 언젠가 또 비교하거나 그럴 수 있으니까 이건 그대로 냅두고
큰 병 하나 작은 병 하나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가방에 넣고 난 뒤에야 나도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맛이 좋다. 이 앞으로 지나갈 순 없겠지만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니 기억해 둬야겠다.
서로 물을 실컷 마시고 잠시 쉬는데, 강변 저 건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네발로 걷는 짐승... 무슨 사슴이나 고라니같은 것이었다.
"오오! 얘들아, 저것봐라."
"하아? 뭐냐제?"
"우우? 무슨 일이냐도-?'
"무언가가 있나요, 오빠야?'
"느삐이이..."
"이 와중에 한놈은 태평하게 자는구만. 여튼 저것봐라. 뭔진 몰라도 동물이 있다."
"우-!? 저건 뭐냐도-? 괴물이냐도-?"
"고작 저딴거 보라고 마리사님의 느긋한 시간을 방해한 거냐제?"
"어머나, 본 적 없는 동물씨네요. 오빠야, 저건 무슨 동물인가요?"
"너네 반응도 다 제각각이구만. 사슴이나 뭐 그런 쪽이겠지만, 나도 정확하겐 몰라."
"저거 무서운 동물 아니냐도-?"
"초식동물이야. 풀이 주식인 애들이지. 뭐, 윳쿠리한테 어떨진 몰라도. 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 사슴과 동물이 이 주변을 태평하게 서성이고 있다. 도시가 멀쩡했을 땐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한마리만 보이는 거라도 동물이 존재한다는 건, 어딘가에 사람이 편히 살 장소도 있다는 것.
"저런 게 아직 살아남아있다는 건 말이지, 우리가 찾는 제대로 된 정착지가 어딘가엔 있을거란 증거라고."
"그렇다면 저 동물씨는 윳쿠리 플레이스에서 왔다는 거네요?"
"뭐, 비슷한 데서 왔다는 소리지."
"그럼 빨리 저 동물씨를 따라가라제! 마리사를 윳쿠리 플레이스로 안내하는 거 아니냐제?"
"너 저 강 건너봐."
"마리사가 헛소리 했다제."
"알아줘서 고맙네."
여기까지는 태평했다.
그 사슴과 동물이 옆쪽을 보더니 그대로 우리가 바라보는 저편으로 쏜살같이 달려서 도망갔다.
무언갈 보고 도망간 것 같은데 우리때문은 아니고, 그럼 뭐에 대해서 도망간거지?
그 답은 3초만에 해결됐다.
밝은 빛의 광선같은 것이 오른쪽에서부터 아까 그 사슴과 동물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동물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그 너머의 건물에는 직격해서 희뿌연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현대과학의 무기로도 저딴 빔은 못쏠거다. 이딴 미친 빔을 쏠 수 있는 건 유일하게 한가지.
도스.
도스라는 초대형 마리사종 윳쿠리는 도스 스파크라는 괴한 기술을 쓸 수 있다.
횟수제한이 있나없나 그 위력에 대해 논란은 많지만 신장만 3m가 넘는 덩치와 더불어
몇 안되게 인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윳쿠리.
그런 도스가 어딘가에서 저 사슴과 동물을 노리고 도스 스파크를 쏜 것이다. 빗나가긴 했지만.
아니, 차라리 그 동물만 맞추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건물을 맞춘 충격에 주변에 진동소리가 가득했다.
레이무도 이 소란에 잠에서 깬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 저편의 오른쪽 골목에서부터 도스 마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십마리의 윳쿠리 무리.
도대체 저 윳쿠리란 놈들은 어떻게 되먹었길래 그 유약한 내구도를 가지고도 여태까지 잘 살아있냐.
그것도 무리씩이나 지어서.
역시 특유의 번식력이 뭔가 있긴 있나보다.
"느그긋! 도스의 도스 스파크! 를 피하다니 잽싼 사슴씨라제. 하지만 다음은 놓치지 않는다제!"
"그렇다구! 도스는 사냥의 명수니까!"
"그렇다구요! 도스는 정말 도시파적인 지도자라구요!"
"묘묭! 놓치지 말라묭! 저 사슴씨는 무리의 식량이라묭!"
"분명 저 사슴씨는 도스가 사냥해버리는거네! 첸은 알고있어!"
난 니들 존재가 처 모르겠다 이것들아!
어쨌든 저렇게 공격적인 도스가 인간인 내게 우호적일 리 없다.
사냥은 모르지만 일단 포식종인 두 금뱃지에게도 우호적일 리 없다.
남은 두 게스놈은 도스한테 빌붙을지도 모른다.
서둘러서 여길 떠야겠다. 저놈들이 이쪽을 눈치채기 전에 저것들 시야에서 사라져 줘야겠다.
아니, 차라리 도스녀석 피하는 것만이 이 도주의 목적이었다면 다행이었지.
"도스는 사냥의 명수라제! 썩을 사슴씨! 도망치지 말라제! 순순히 도스의 무리의 밥씨가 되는거제!"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까 도스 스파크를 맞은 건물이 무너져 도스와 그 무리를 몽땅 덮쳐버렸다.
그리고 건물이 무너진 충격의 여파로 주변의 금간 다른 건물들도 서서히 무너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인근의 건물은 고층건물이 너무 많다.
"레미랴! 당장 반대편으로 튀어! 절대 뒤돌아보지마!'
난 그렇게 소리치곤 곧바로 가방을 맨 채 세 윳쿠리를 품에 안고 반대편으로 미친듯이 달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뒷쪽에서부터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충격파가 몸으로 다 전해져온다.
레미랴한텐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해진 나는 살짝 뒤돌아봤다.
무너지는 건물들이 무슨 거대한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맹렬히 달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 ㅆㅂ 괜히 뒤돌아봤어. 솔직히 이때 조금 지렸다.
앞으로 뒤로 너무 무겁다. 슬슬 체력이 달려 저 무너지는 건물이란 괴물 아가리에 삼켜질 것만 같다.
그때 저 앞의 맨홀뚜껑이 열리고 사람의 상반신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에게 소리쳤다.
"이봐! 여기야! 빨리 여기로 들어와서 숨어!"
멸망 이후 처음보는 살아있는 사람의 형체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위험한 인물인지 아닌지 생각할 틈도 없다.
난 재빨리 그 인물이 있는 맨홀로 뛰어들었다.
아 잠깐 왜 난 맨홀로 뛰어들지 깊이는 어쩌고.
생각이 멍해지고 그대로 쭉 떨어지다 정신 차리자마자 맨홀구멍 한쪽의 사다리에 왼손을 뻗었다.
처음 몇번은 잡질 못하고 손가락만 부딛혔지만 한 네다섯번쯤 부딛혀 겨우 사다리를 잡았다.
바닥에 떨어지기 1m쯤 남았을 때였다.
아 왼쪽어깨 탈골 안됐음 좋겠네.
머리 윗쪽을 올려다보니 아까 그 사람이 레미랴와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뭘 멍하니 있어! 빨리 내려가! 아직 안전한게 아니야!"
그 말대로다. 맨홀뚜껑엔 구멍이 있다. 거기로 파편이 떨어져서 그거 맞고 죽으면 본말전도다.
난 서둘러 사다리에서 뛰어내리고 하수구 벽에 붙어 아까의 은인을 기다렸다.
"살려줘서 고맙..."
"인사는 나중에! 빨리 저쪽으로 뛰어!"
아직도 더 뛰는거냐... 하지만 일리있다. 지금 위치에선 건물의 무거운 잔해에 맨홀뚜껑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 사람이 가는 방향대로, 그 사람의 뒤를 쫓아 나와 네마리의 윳쿠리는 하수구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하수구 안쪽으로까지 전해져 오던 진동이 멎었다.
이 하수구는 꽤나 깊은 곳에 있었다. 그 덕분에 큰 건물들이 무너져도 하수구까지 무너지진 않았지만
반대로 그만큼 깊었기에 만약 사다리를 잡지 않았으면 최소 다리 부러졌을 것이다.
어깨 뻐근한 걸로 끝난 건 천운이지 진짜.
"레미랴, 괜찮아?"
"우-☆ 레미랴는 무사하다도-☆"
"나머지는?"
"플랑은 무사해요!"
"대체 아깐 뭐였냐제!?"
"느? 뭔 일 있었어?"
레이무놈의 태평함이 오히려 맥빠지게 만드는게 더 안심이네.
정말이지 그 도스놈이 화려하게 해준 덕분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진짜 이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해야겠다.
검은 후드티와 남색의 청바지를 입은 은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을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나도,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걸."
그 생명의 은인이 후드의 모자를 벗고 내게 뒤돌아봤다.
검은 웨이브 머리의 20대쯤 되는 아가씨가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 왜 님 취향저격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