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슈트를 입고 있는 아가씨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채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듯 미소를 짓고 있는 아가씨의 커다란 눈망울과 머리카락은 이 나라의 사람이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려는양 검은색이였고 허리를 넘어서 엉덩이를 덮을락 말락할정도로 길다란 머리카락은 잘 관리되었는지 그 뿌리부터 끝부분까지 윤기 있게 찰랑거렸고. 풍성한 속눈썹 바로 위에 칠해진 아이섀도와 도톰한 입술에 발라진 립스틱은 그녀가 화장술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임을 말해주고는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가 앳된 처녀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덜미 아래로는 목 위의 청초한 느낌과는 다른 인상을 주고 있었다. 뭇 남성의, 아니 여성들의 시선도 사로 잡을것이 분명해보이는 풍성한 젖가슴은 비즈니스 슈트가 좁은듯 그녀의 호흡에 따라 꿈틀거리는것이 마치 성체 윳쿠리 두마리가 가공소의 회수봉투에 잡혀서 살려달라 외치는듯 한 느낌이였고 옷깃을 여미는 단추는 숨을 내쉬었을 때에도 팽팽하게 긴장되어 언제라도 터져 나갈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듯 했다

"이정도면 되려나...?"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화장이란걸 한적이 없었기에 대충 바른 립스틱과 마스카라는 초보자 치고는 그럭저럭 바른것 같았고 머리칼도 관리는 쥐뿔도 안한것치곤 양호해보인다. 다만 문제는 가슴이 엄청나게 답답하다는것. 양복 특유의 각진 라인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지만 곧 터질것 같은건 이야기가 다리다고. 부모님이 사준 양복을 어찌 저찌 고쳐서 입고 있지만 더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더 자란거려나. 뭐 양복이 맞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는 일이였고 돈이 없는것도 아니고 새 양복을 사려고는 했지만 다들 내 스리 사이즈를 듣고는 고개를 저을 뿐이였다 내 친척들은 다 평범한 몸매던데 나는 왜 이런건지 원...
이러다 정말로 클라이언트 앞에서 양복이 터져버리거나 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되지만 약속시간까지 한시간 반 남은 시점에서 걱정해봐야 이미 늦은 일이다. 침대에 놓여있는, 초등학교때부터 인생을 같이 한 곰돌이가 미소 짓는걸 보니 별 문제는 없을것이다..물론 저녀석은 언제나 미소짓고 있긴 하지만.
더이상 시간 끌다간 늦을지도 모르겠다. 슬슬 나가야겠는걸.
"뭐가 이리 삼엄하냐..."
약속장소인 호텔은 그 입구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드라마에서 종종 보이던 하지만 어디선가 실제로 보기는 봤었던것도 같은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쓰고는 귀에 이상한게 끼여있는. 그리고 뭔가 수상한 가방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호텔 주변에 잔뜩 있었다.
머리 색이 검지 않은거 보면 다들 외국인인것 같은데...
에잇.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약속시간까진 겨우 10분 남았으니까.
호텔 정문에 들어서려고 하자 그 검은 양복중 험상궃은 얼굴의 갈색머리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가 무어라고 하지만 나는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음.. 외국어 시간에 자지 말걸.
"죄송하지만 금일 호텔은 VIP접객 문제로 전세중입니다. 양해바랍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검은머리의 약간은 작은 체구의 검은 양복이 나와 통역-아마도-해주었다. 험상궃은 얼굴과는 다르게 공손한 말을 했었나보다.
"어. 그러니까. 오늘 클라이언트랑 만나기로 약속했는데요."
"약속 말씀이십니까? 오늘이 확실하십니까?"
어..아니야?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해보니 오늘이 확실하다. 평소에는 좀 덤벙거릴진 몰라도 일에 관해선 헷갈린적은 거의 없었다
"맞아요. 보여드릴까요?"
"아닙니다. 개인 정보니까요."
핸드폰을 내밀었지만 검은 머리의 남자는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검은 머리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갈색 머리 남자에게 슬쩍 손짓을 하자 갈색머리 남자가 머릴 끄덕이고는 호텔 안쪽으로 사라졌다.
아 이러다 늦겠네.
시간이 삼분쯤 지나자 검은머리 남자가 내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쪽에서 착오가 좀 있었습니다. 사죄드립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VIP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검은머리 남자와 입구를 들어서자 곧 검은 머리 남자를 대신하여 다른 검은 양복이 입구를 지키고 섰다.
"어서오세요 달링!"
"니가 왜 여깄냐?!"
안내받은 호텔 스위트 룸에 있는건 여장남자였다. 요 며칠새 안보인다 했더니 검은색으로 염색했던 머리카락이 제법 밀려서 머리 끝부분 4cm정도는 검은색이 아닌 원래 색이 드러나 있었다.
"아아, 통역하려고 왔죠. 달링 우리말 하나도 모르잖아요."
그러고보니 그건 그렇다. 메일이 우리말로 와서 깜빡하고 있었는데 외국인이 우리말을 할리가 없겠지.
여장남자가 살짝 손짓하자 검은 머리의 검은 양복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보니 왠일로 화장을 하셨어요?"
"외국계 클라이언트라니까 신경좀 썼지."
"어차피 안하셔도 이쁜데.. 기왕 하신김에 제 입술에 립스틱좀 나눠주실래요?"
"맞을래?"
이게 어디서...
"그래서 내 클라이언트는 어디있어?"
"달링처럼 검문 받고 있을거예요."
"....그사람이 고용한 사람들 아니였어?"
"그런 회사가 경호원을 대량으로 고용할리 없잖아요?"
"그건 그렇네... 는 왜 저런 사람들을 풀어서 사람 귀찮게 하냐?!"
"누가 좋아서 한대요? 요즘 테러가 하도 극성이라 아버지께서 억지로 붙여주셨다구요. 그나마 여긴 양반이예요 제 집은 완전 병영이라니까요. 여긴 양복이라도 입었지 거긴 군복입은 군인들은 물론이고 시커멓고 맨날 고글 쓰고 다니는 잠입요원에 전자동 센트리건에.. 아. 이나라의 센트리건 좋던데요?"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늦어서 다행이네."
나도 뉴스정도는 보고 살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테러가 벌어지는건 알고 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선 없었지만 멀리있는 귀중한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 못할건 아니기에 난 그냥 입 다물기로 했다.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의 폐허에서 굶주리는 나라일테니까.
"달링, 기다리는 동안 와인이라도..?"
"시끄러워 미성년자. 그리고 클라이언트 만나는데 무슨 술이야."
"아아.. 달링의 립스틱 자국이 남은 잔을 가지고 싶었는데.."
"시끄러워."
"늦어서 죄송하다네요."
"이해하니까 괜찮다고 전해줘."
약 이십분 쯤 뒤에 온 클라이언트의 모습은 엉망이였다. 안경은 비뚤어져 있고 머리칼도 엉망이된걸 급히 빗질한게 눈에 뻔히 보였으며 양복도 마찬가지로 엉망이였다. 분명 옷까지 벗겨가며 검문을 받은 모양이다. 경호원이라는거 무섭네 진짜.
"죄송하지만 화장실좀 다녀와도 되겠냐는데요."
"아아 물론."
나같아도 저런꼴 하고 있으면 화장실에서 정돈하고 올테니까.
여장남자가 손바닥으로 화장실쪽을 가리키자 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는 화장실로 달려가다시피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쪽분의 회사는 생존주의 물품을 주로 다루는 회사라는거죠."
"생존주의?"
"아 그러니까 전쟁이나 재난같은데서 살아남으려는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예요. 어디 시골에 숨어 살곳을 마련하기도 하고 식량공급이 끊어질때를 대비해서 농사를 짓기거나 사냥을 해서 식량을 마련하고 강도를 대비해서 총을 사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 식량확보에 쓸 윳쿠리가 필요한거겠네."
"네. 그렇다네요."
"뭐 나한테 총이라던가 집같은걸 마련해달라는건 아닐테니까."
메모지를 꺼내고 펜을 꺼내 펜촉을 꺼냈다.
"그럼 상세한 조건을 부탁해."
굳이 비싼 브리더까지 부를정도면 무언가 조건이 있다는것이다. 안그럼 길거리의 윳쿠리라도 충분할테니까.
"그러니까 조건은.."
클라이언트도 이래저래 조건을 말하려는듯 잔뜩 말하고 있었지만..
"빨리 자랄것. 생산량이 매우 높을것. 재생산이 가능할것. 가능한 조용할것. 이라는데요?"
"클라이언트의 말은 무지 길었는데?"
"달링에게는 쓸모없는 말은 잘라드리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치 냉면이란걸 먹을때 면을 잘라주는것 같은거예요"
뭐 그런걸 기억하고 있냐. 그보다 무슨 상관이야 냉면이
아무튼 어려울것 같진 않네.
"그리고 가능한 싸게. 라는거겠지?"
"그거야 사업하는 입장에선 당연한 거니까요."
"그렇다고 빼먹냐 이녀석아."
클라이언트 앞만 아니면 머리를 쥐어박았을텐데. 아 그리고 경비원도.
"그러니까 수고비는...."
의논은 당분간 계속되었다.
"어려울것 같아요?"
"아니 그렇게 어려울것 같진 않네."
메모를 다 정리할때 쯤 되자 여장남자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달링. 기왕 스위트룸인데 쉬고가지 않을래요?"
"아니. 지금 답답해 죽겠거든. 양복이 코르셋 뺨치게 답답하네."
"이쪽 욕실에 샤워 가운이 있으니까 입으시면 되겠네요! 부끄러우시면 저와 함께 목... 읏?!"
"수고해라."
헛소리를 하는 녀석의 얼굴에 찢어서 구긴 메모지 덩어리를 정확하게 명중시킨뒤 스위트 룸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