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젓가락으로 개구기를 만들어 볼까 생각했지만 나무젓가락은 한 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흥이 가신다. 지금 이런 시점에서 강제로 스톱이라니, 신경질적으로 서랍을 닫을 때 전에 가봤던 윳쿠리샵이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그때 가보지 못했던 학대코너. 지금이라면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바닥에 축 늘어져있는 마리사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 올리니 조그마한 소리로 느...느 하고 울었다. 투명상자에 그대로 떨어트리고 오렌지주스를 입 근처에 적당량 들이부었다. 눈도 안 뜬 상태로 달꼼달꼼...하고 중얼거리는 녀석을 뒤로 하고 파츄리를 놔뒀던 방에 들어갔다. 파츄리는 잠들어 있었다. 연보랏빛 나이트캡에 바다처럼 푸른 머리카락, 나가기 전에 잠깐 쓰다듬을까 싶어 나이트캡에 손을 얹는 순간 감은 눈을 잠시 움찔움찔하더니 이내 깨버렸다.
“오빠야... 할 말이 있다구...”
“잠깐 파츄리. 전화가 와서.”
휴대폰 화면을 보니 Y였다. 또 뭔가 시킬게 있는 건가?
“여보세요.”
“나야.”
“나도 알아. 왜? 나 좀 바쁜데.”
“일 잘 되가는지 물어보려고 그리고 할 말이랑 물어볼 것 있으니까 파츄리 데리고 가게로 와.”
“그……. 윳쿠리숍에 들려서 그런 쪽에 쓰는 물건 좀 사려고 하는 거라서 파츄리를 데려가긴 힘들 것 같은데? 혹시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 파츄리란 놈 무조건 멀쩡할 거니까 그냥 데려와.”
이유를 물어보기도 전에 Y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현직 윳쿠리 수의사가 장담하니까 괜찮은 걸까? 그렇지만 멀쩡하다 해도 내 이미지는? 파츄리에게 완전 학대파로 낙인찍힐 것 아닌가! 그렇지만 고용주인 Y가 용건을 전하고 끊어버린 이상 도리가 없다. 다음에 외출하기에도 귀찮으니 Y를 믿고 파츄리를 데리고 외출하기로 했다.
“좀 답답하겠지만 눈뜨면 안 돼. 오빠야가 지금 보려는 물건들은 파츄리가 보기엔 너무 흉악하니까 말이야.”
“무큐…….알겠다구…….”
샵에 있는 동안은 절대 눈을 뜨지 말라고 당부한 후 학대코너로 들어갔다. 이동장에 윳쿠리를 넣어놓고 학대물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니……. 이상하게 보일게 틀림없다. 여유롭게 고를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꽤 좀 불안정하게 됐다. 학대물품 코너는 제법 세밀하게 구분돼 있었다. 잡은 윳쿠리를 고문하기 위한 물품과 야생 윳쿠리를 원정 학대하러 갈 때 쓸 트랩과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고무로 된 가지가 잔뜩 나있는 발판은 사람이 밟으면 문제없지만 뿅뿅 뛰어다니는 주제에 저부가 약한 윳쿠리는 고통에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다치지는 않는 절묘한 강도를 실현했다고 쓰여 있었다. 다른 상품들도 마찬가지였다. 법의 규제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윳쿠리를 잡기에는 충분한, 오직 윳쿠리만을 위한 악의 가득한 디자인으로 되어있었다. 윳쿠리를 위한, 오직 윳쿠리만을 위한 세심한 악의가 주인을, 그리고 고통 받을 윳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걸 보면 파츄리는 까무러치겠지.
“정말 멋지다구요…….”
“파츄리?!”
뭐가 멋지다고 한 걸까? 설마 이것들이...? 갖가지 생각이 스치려는 찰나 직원이 와서 말을 거는 바람에 잠깐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저 그 윳쿠리는…….”
“아! 제가 데리고 온 거예요. 그게 그런 쪽으로 키우는 건 아니고 다른 놈한테 쓰려고 보는 중이였는데 제가 약속이 있어서 애를 데리고 나온 건데...”
“아 그러면 카운터에서 잠시 맡아드릴까요? 사이다로 잠시 재웠다가 나가실 때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원래 입장하실 때 물어봤어야 되는데 제가 재고정리를 좀 하느라…….”
“ 아! 예! 예! 부탁드립니다.”
서로 자기 부분에서 뭔가 쫄리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자기변명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내가 그렇듯이 점원도 지금쯤 뛰는 가슴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동장 문을 열고 사이다를 뿌리는 점원을 뒤로하고 난 다시 아이쇼핑에 몰두하기로 했다.
내 목적은 마리사에게 고통과 트라우마를 주는 것이 목적이니까, 최대한 아프고 기억에 남을만한 것을 골라야한다. 마치 중세시대 고문장에 도라에몽의 스몰라이트를 쏘고 그대로 가져온듯한 장소에서 결정을 내리는건 초심자에게 너무 이른 일이었을까. 파츄리의 일을 머릿속에서 밀어낸다. 고문기구와 파츄리를 같이 연상하는건 괴로운 일이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점원이 다가왔다.
“처음이신가요? 도구를 쓰는건?”
“아! 예……. 그런 티가 나나요?”
“대충 뭐 직감이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윳쿠리부터 고르니까요. 뭐 하하…….”
“좀 윳쿠리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걸 찾고 있는데요. 그리고 개구기도 좀…….”
어제 그런 짓까지 한 주제에 의식적으로 자기변호를 해버렸다. 아프고 트라우마가 남을만한 걸 찾고 있던 주제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건 이벤트용 파티물품이라도 찾는 듯한 말이었다. 기억에 남는건 아파서 기억에 남는걸 찾는데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라도 준비하는 걸로 들리지 않을까?
“사용하실 윳쿠리는 성체인가요?”
“아 네. 성체고 농구공보다 더 큰데 한 이 정도...? 됐던 것 같네요.”
머릿속으로 놈의 크기를 가늠해보며 대충 양손을 벌려서 보여주니 점원은 저만치에서 이것저것 가져오기 시작했다.
“ 개구기는 여기 있고 고문랙은 어떻습니까? 고정대로 쓸 수도 있어서 실용적이고 강도 조절도 쉽고 간단합니다. 아이언메이든도 있고요. 머리분쇄기도 있습니다.”
“죽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들인가요?”
“네. 여기 고문랙은 윳쿠리를 고정하고 여기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윳쿠리를 세로로 잡아 늘이게 됩니다. 그 상태로 고정할 수도 있어서 다른 도구하고 같이 쓰기도 좋고요. 그냥 고정용으로 쓰실 수도 있습니다. 머리분쇄기는 머리에 씌우고 이 위쪽 손잡이를 돌리면 머리를 점점 조이게 됩니다. 고정성이 좋아서 좀 날뛰는 정도로는 떨어지지도 않아요.”
“오오……. 많이 좋네요. 아 저건 뭔가요?”
“아. 이건 애니메이션 콜라보 제품이네요.”
제법 큼직한 철판위에 뭔가 원형판때기가 덤으로 달려있다. 이건 설마...?!
“먼저 철판을 달군 후에 윳쿠리를 두고 이 판을 이렇게 내리면 고정됩니다. 고정을 푸는 건 살짝 눌러주면 풀립니다. 카이지라는 도박 애니에서 나왔는데요. 정말로 마음이 담긴 사죄라면 달군 철판위에서도 할 수 있다! 라면서 나와요. 윳쿠리는 자기가 조금만 불리해져도 거짓사과를 하니까 딱이죠?”
카이지라면 나도 본 적이 있다. 또라이 회장이 자기 부하를 철판 도게자시키는 장면이 확실히 있었지……. 확실히 패키지에는 철판위에서 구워지며 우는 윳쿠리와 그걸 보며 그 또라이 회장이 실실 웃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러면 구개기랑 고문랙, 분쇄기랑 철판 이렇게요”
“구개기에 집게도 같이 들어있네요? 플라이어로 해보려고 했는데”
“처음에 도전 하시는 분들이 공구 많이 생각하시는데, 그런 도구들은 힘 조절이 힘들어서 이빨을 빼는 게 아니라 다 부셔요. 이 집게는 가공소에서 이빨뿐 아니라 눈이나 페니페니도 손쉽게 잡고 뺄 수 있게 디자인해서요. 초심자도 다루기 쉬워요.”
그냥 집게가 아니라 윳쿠리 학대의 특화된 다용도 집게라는 건가. 확실히 조그마한 플라스틱 집게는 끝이 살짝 넓게 퍼져있고 안쪽에는 고무도 발라져있다. 배려심이 느껴지는 세트구성이다.
“회원등록 하실 건가요?”
“네.”
어쩌면 단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잠이 든 파츄리를 넘겨받으며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파츄리가 한 말과 Y과 내게 하고 싶다는 말은 뭘까. 파츄리가 돌아옴과 동시에 잊고 있던 고민도 같이 돌아왔다.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어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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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자신의 윳쿠리샵 안에 따로 마련된 자기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Y는 윳쿠리의 존재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탐탁치 않아하는 주제에 윳쿠리샵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윳쿠리를 자기 마음대로 죽일 수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비난도 받지 않으니까 라고 나는 추측하고 있다.
“친구한테 놀러오면서 메로나 하나 사오지 않다니 너무 인색한거 아냐?”
“사려고 했더니 요즘 메로나는 본인인증 못하면 안 판다 그러더라. 진짜 사오고 싶었는데.”
“그건 뭔데 뭘 그리 바리바리 사왔냐? 어디 이민 가냐?”
“아 이거? 제대로 하려고 물건을 좀 사왔지. 돈 많이 썼다 야.”
“오~ 네가 이런걸 다? 그게 너한테 꽤 많은걸 인상깊었나봐? 라인업도 꽤 괜찮고. 일은 잘돼가냐?
“거기 점원이 추천해줘서 골랐어. 그 마리사는 정신력이 꽤 좋은 것 같아서 뭐가 좀 필요할 것 같더라고.”
“꽤 괜찮은 생각이네. 아 그리고 네 ‘파츄리’ 보여줘봐 그거 말하려고 부른 거니까.”
“파츄리를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거기 가게에서도 뭔가 좀 그렇긴 했어. 가게에서 학대 도구 보고 대단하다니 뭐니 말하던데.”
“그렇겠지. 이건 파츄리종이 아니니까.”
“뭐?!”
“이건 희소종인 ‘텐시’다. 쓰고 있는 장식물은 파츄리종이 맞지만 본체가 달라. 윳쿠리 분양샵에서 일한다는 놈이 이런 것도 틀리다니.”
“돌연변이 그런 거라서 머리만 다른 건줄 알았지. 근데 처음 봤을 때 왜 안 말해준거야?”
“네가 너무 좋아하길래 잠시 동안 좀 즐거우라고 그랬다. 들을게 있으니까. 깨워봐 그거.”
한참 자고 있던 파츄리 아니 텐시를 흔들어 깨웠다.
“늣! 무..무큐! 깜빡 졸아버리고 말았다구요.”
“무큐는 뭐가 무큐야. 파츄리종 아닌 것 아니까. 그 모자 왜 썼고 어디서 왔는지 말해.”
잠에서 깨자마자 정체를 간파당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몰아세워진 탓인지 텐시는 위축된 모습으로 조심조심 말하기 시작했다.
“텐시는 아주 어릴 때 고아로 산에 있는 무리에 장인 파츄리 엄마에게 주워져서 길러졌어요. 텐시는 장식물 씨가 없었지만 무리의 어른들은 텐시랑 잘 지내줬어요. 하지만…….”
“텐시가 파츄리 엄마한테 모자 씨를 물려받고 대장이 됐을 때 상쾌제한같은 느긋하지 못한 건 필요 없다면서 윳쿠리들이 윳민재판을 열어서 텐시는 대장에서 실각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느긋하지 못한 대장은 처형하자고 해서 도망쳤어요. 텐시는 파츄리 엄마같은 좋은 대장이 되고 싶었는데…….”
“진짜 부모나 원래 있던 곳은 기억하나. 무리에 너 말고 다른 희소종은?”
“죄송해요…….”
“쓸모 있는 정보는 없군……. 그래 그래서 너 이거 키울거냐 말거냐. 파츄리 아닌데.”
“조금이지만 정들었으니까 키워야지. 한번 집에 들였는데 내버리는 건 싫어.”
“흠…….”
“왜?”
“텐시종은 다른 윳쿠리하고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주인하고 성향이 안 맞으면 기르기 힘들지.”
“뭔데?”
“마조히스트다. 물론 안 그런 개체도 존재하지만 대다수가 그래. 괴롭혀주지 않으면 쇠약사하기도 한다.”
“놀랍구만. 그럼 텐시 아까 가게에서 그런 것도?”
“텐시는 파츄리 엄마를 따라 파츄리로 살기로 했지만... 그 가게에서 본 도구들은 너무나 느긋해서 텐시의 봉인되었던 마음이 깨어나 버린 것이에요.”
“근데 텐시의 내용물은 뭐야?”
“복숭아향이 은은하게 나는 통팥이다. 나름 고급 식재료에 속한다고 하던데 말이야.”
“텐시. 집에 처음 왔을 때 생크림 토했던건 뭐야?”
“보호소에 잡히기 전에 만났던 파츄리가 토했던 크림이에요. 죄송해요 오빠야.”
“그걸 왜?”
“그건 나 윳쿠리왜건이 설명해주지. 아까 말했듯이 텐시종은 마조히스트다. 고통받지 않으면 느긋함이 부족해서 쇠약사하지. 하지만 좁은 보호소에서는 제대로 된 학대를 받을 수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텐시종은 학대가 없으면 스스로 변태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학대해서 쇠약사를 방지하기도 한다.”
“고마워요! 윳쿠리왜건! 그럼 야생에서는?”
“텐시는 누군가 말을 걸때까지 하얗고 질척거리는 걸 입에 머금어서 느긋할 수 있었어요. 파츄리 엄마가 있을 때에는 엄마야가 나뭇가지로 텐시를 달래줬었는데...”
“과연 변태구나.”
무심코 그 변태혼에 감동하여 오른손을 내밀자 텐시도 귀밑털을 내밀어 응수해준다.
“섹x!”
“교x!”
“자x!”
“보x!”
“텐시……. 너는 애완 윳쿠리가 아니다. 같은 변태혼을 지닌 동료다!”
“오빠야……. 텐시 감동했어요! 집에 가서 마음껏 학대해줘요!”
“마리사 끝나면 해줄게. 사실 오빠야의 일은 마리사를 마구 학대해서 느긋하지 못하게 하는게 이번 일이야!”
“어쩜 그리 느긋할 수 있는……!”
“발정난 중딩도 아니고 이 뭔……. 이제 물어볼 것도 없고 오늘은 딱히 도와줄 것도 없으니까, 집에 가서 할 일이나 해.
짐이 많은데도 발걸음이 가볍다. 귀여운 텐시와 헨-타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길을 걸으니 마음속 어딘가가 따뜻해지는 것만 같다. 얼른 집에 가서 더 느긋하게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마리사도 말이다.
“마리사 느긋하게 있으라구!”
“느긋하게 있으라구! 엑...? 똥인간!”
“아직도 좋은 기세구나. 마리사 감동적이야.”
무심코 자동반응한 후에 투명상자 안에서 날 보며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마리사를 무시하고 이동장에서 텐시를 꺼내줬다. 사온 학대기구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같이 학대 토-크를 하려는 순간
“느헤헤헤헤! 원수는 외나무다리씨에서 만난다더니 결국 이렇게 마리사님에게 추격! 당한거라제!”
“아아... 설마?”
“그렇다구요. 오빠야 이 마리사가 저를 대장에서 축출하고 추격해온 다음 대장이에요. 이런 우연이…….”
“마리사에게 추격! 당하다 못해 피신한 곳이 똥인간의 집인 거냐제? 똥인간은 마리사에게 잔뜩 아파아파 당하고 항복해서 목숨만은 살려달라면서 달콤달콤씨를 헌상한거라제~?”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다 있다니 기가 막히는 건 둘째 치고 반쯤 기절한 상태로 얻어맞아서 그런 건지 선척적인 팥소뇌와 자존심이 패배를 용서치 않고 기억에서 삭제시킨 것인지 상당히 왜곡된 기억을 하고 있다. 내 팔뚝이 들락날락한 마무마무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데 말이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그래도 나름 무리의 리더라는 것인가?
“마리사 덕분에 텐시하고 만날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그런 것도 모르고 너에게 막 대하다니 정말 미안해. 사과의 의미로 정말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느흐흐흐흐 이제야 마리사님의 은혜를 알아보다니 너무 느긋하지만 용서해준다제. 마리사 자비로워서 미안해! 선물은 씽이냐제? 달콤달콤씨냐제?”
“그럴 리가 없잖아 새꺄.”
마리사에게 과시하듯이 천천히 쇼핑백에서 학대도구들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