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증거
w/ 라디
“어-이, 마리사. 느긋하고 있냐?”
마리사는 공포에 질려서 고개를, 정확히는 몸 전체를 소리가 들린 쪽으로 홱 돌렸다. 마리사의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악마가 거기에 있었다.
“시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시러시러시러시러시러시러!!! 어댸더 브리더씨 요기 인눈 고야!!! 도라갈래!!!! 바디자 지브로 도라갈래에에에에에!!!!!!”
“야, 너무 대놓고 싫어하는 거 아냐? 좀 반가운 척이라도 해라. 여태까지 먹여 주고 키워 줬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동뱃지도 못 될 쓰레기한테 은뱃지씩이나 달아서 기껏 애완 윳쿠리로 만들어 줬더니, 감사할 줄은 모르고. 배은망덕도 정도가 있지.”
브리더씨는 성큼성큼 걸어와, 회초리를 들지 않은 손으로 마리사의 머리채를 감아쥐었다. 얼굴이 홱 쳐들렸다. 마리사는 연신 위아랫니를 다닥다닥 부딪치면서도, 지엄한 분노를 담아 브리더씨를 노려보려 애썼다. 아기윳처럼 꼴사납게 소리를 지르다니,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왜냐하면 마리사는 긍지 높은 은뱃지 윳쿠리니까. 이 악마 같은 인간씨와 함께 훈육실에 있을 몸이 아니니까. 분명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느긋하지 못한 응응노예가 실수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마리사는 확신에 차 호령했다.
“다, 닥치라제, 똥인간! 위대하신 은뱃지 마리사님께 그 더러운 손을 대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냐제! 뜨거운 맛을 보기 전에 멍청한 노예를 얼른 데려오라제! 그리고 느긋하지 못하게 죽으라제에에에에!”
마리사의 팥소처럼 달콤한 착각은, 왼뺨에 부지불식간에 와 닿은 감각으로 인해 산산조각 났다. 브리더씨의 두꺼운 손이 마리사의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철썩, 소리가 훈육실에 울려 퍼졌다.
“느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뱌아뱌아뱌아뱌아뱌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리사는 볼썽사납게 뒹굴면서 눈물과 시시를 지렸다. 뺨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딱밤을 맞았던 때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응응을 해서도 내보낼 수 없었던, 중추팥소에 저리도록 새겨진 첫 폭력의 기억. 눈알이 빠지는 줄 알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다가 매를 벌었었다. 성윳이 되고 체벌 방식이 바뀌던 날, 처음으로 뺨을 맞았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예전 같았다면 손바닥으로 뺨을 맞는 일 정도야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지에 전시되는 동안에는 한 대도 맞지 않았던 데다가, 일주일간 호화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진 몸은 이런 단순한 체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간으로 치면 은퇴한 육체노동자의 손에서 굳은살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브리더씨의 체벌은 한 대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치게 관대한 일이다. 브리더씨는 엉엉 울어 젖히는 마리사의 머리채를 다시 잡아 올렸다. 그리고 남은 오른손으로 마리사의 왼뺨을 계속 내리쳤다. 만일 노련한 학대파가 이 장면을 본다면, 마리사의 뺨에 가해지는 힘이 매번 일정하다는 데 감탄할 것이다. 그 손길에는 악감정도 울분도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오로지 벌을 주려는 의도만 있었다.
철썩, 철썩, 철썩…….
“늣, 느헥, 늑, 느붑, 느걱, 느갹, 느기긱, 느벡…….”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마리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느긋하게 있었을 뿐인데. 끔찍한 불합리함에 속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것도 잠시. 구타 횟수가 더해질수록 마리사의 팥소뇌에서는 생각이란 것이 사라져 갔다. 모든 것들이 마리사로부터 멀어져갔다. 달군 철판으로 지진 것 같은 뺨의 감각만이 생생했다.
왼뺨과 왼눈이 퉁퉁 붓고 만쥬피에 (신기하게도) 검붉은 멍이 들고 나서야 브리더씨는 손을 거둬들였다. 마리사는 비참해 보였다. 혀는 반쯤 빼물었고, 눈은 허옇게 뒤집어졌다. 자랑으로 여기던 금발은 온통 헝클어져서는, 시시와 눈물과 땀과 여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들로 흠뻑 젖어 빛을 잃었다. 언니야가 매일 풀을 먹여 다림질을 해 준 덕에 빳빳하게 제 형태를 잃은 적이 없던 모자도 여기저기 구김이 가 있었다. 브리더씨가 혀를 찼다.
“요것 봐라. 그동안 배때지가 얼마나 쳐 불렀는지 아주 그냥 빠졌구만. 야, 이 새끼야. 안 일어나?”
브리더씨는 곧장 마리사에게 오렌지주스를 부었다. 느긋하면서도 느긋할 수 없는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리사는 힘겹게 눈을 바로 떴다. 브리더씨가 마리사를 회초리 끄트머리로 쿡쿡 찌르며 물었다.
“야, 똥만쥬. 대답해 봐. 너 나한테 왜 맞은 것 같냐?”
“…….”
“어쭈, 대답 안 해?”
“……마디자니문, 늣, 느구탈, 수 인눈, 느극, 은배찌씨인…… 고제. 절때로, 용서, 모탄…… 다젯.”
볼이 부어올라 불명확하게 우물거리는 발음을 브리더씨는 용케도 알아들었다. 콧구멍이 터질 것처럼 콧방귀를 한 번 뀌고, 브리더씨는 마리사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근데요 마리사님, 그 잘난 은뱃지씨는 여기 있지 말입니다?”
브리더씨의 손에는 마리사의 ‘노력의 증거씨’가 쥐어져 있었다. 마리사의 눈이 커졌다.
“마, 마디쟈에 은빼찌씨갸아아아아아아아! 이 게슈우우우우우!”
“어허, 버릇없이 굴면 안 되지.”
“느뱗!!!”
“이 오빠는 슬퍼요. 내가 널 그렇게 가르치디?”
다 죽어가는 몸으로도 자신에게 덤벼들려는 마리사를 브리더씨는 손쉽게 제압했다. 마리사는 얼굴 한가운데에 커다란 신발 자국이 난 채로 짐승처럼 빽빽 소리를 질렀다.
“빤니!!!! 빤니 내나아아아아아!!!! 바디자에 느그탄 은빼찌씨!!! 바디자으 노력에 증거씨이이이이이이이!!!!!”
“네 주제에 뱃지는 무슨 뱃지. 너네 언니야는 널 키우기 싫다고 샵에 버리고 갔거든? 넌 이제 애완 윳쿠리도 뭣도 아니거든? 그런데 애완 윳쿠리 실격인 윳쿠리한테는 뱃지 같은 건 필요 없거든? 그래서 돌려받은 거야. 애초에 네 것도 아니었고. 이런, 너무 어려운가? 근데 난 바보 말을 몰라서 바보 말은 못 해.”
“늣……!”
믿을 수 없었다. 노예가 마리사를 여기로 데려왔다고? 아니, 버렸다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마리사의 눈동자를 본 체 만 체 하며, 브리더씨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널 어떻게 처분하든 이제 내 맘이라 이거야. 하지만 네가 여태 여기서 처먹은 것들, 널 애완 윳쿠리로 만드느라 들어간 내 노력, 은뱃지 시험 응시료까지 생각하면 때려죽이는 건 역시 아깝지. 사료로 만들어도 수지가 안 맞고. 음, 어쩌면 좋을까?”
“구, 구럴 리가 업써……. 마디쟈눈 은빼찌씨…….”
“좋아, 기분이다. 네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다시 애완 윳쿠리로 만들어 줄게. 오빠야, 상냥해서 미안해!”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아!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아아아아!!!”
“엇차,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으니 가장 마일드한 훈육부터 시작해볼까.”
그리고 브리더씨는 남은 오렌지주스를 마리사에게 모두 부어 버렸다. 마리사가 정신을 놓거나 죽어 버리지 않도록 하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정작 마리사 자신이 그것을 배려로 느끼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붓기가 남은 뺨과 눈이 순식간에 낫는 것이 느껴졌다. 마리사는 새파랗게 질렸다. 회초리가 허공을 갈랐다.
“하지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