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2015.09.09 19:36

성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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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윳쿠리 특유의 고막을 찢는 듯한 앵앵대는 목소리에 경청하길 한참, 길고 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리사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느-."



마리사의 어미는 레이퍼에게 당해서 마리사를 낳았다. 비록 레이퍼의 외견은 물려밭지 않았지만, 마리사의 몸을 이루는 팥소의 절반은 레이퍼 앨리스의 것이었기에 어미는 마리사를 항상 괴롭혀 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아무리 밉다 해도 결국은 자기 새끼였는지, 아예 죽을 지경으로 몰아 가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야는 마리사의 유일한 가족이라구."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자기를 싫어한들 마리사의 입장에선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요 둘도 없는 어미니까. 태어나자마자 레이퍼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 새끼의 입장에선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으리라. 특히나 윳쿠리들은 느긋하게 있는 것에 집착하기에 그 이름마저 윳쿠리이니 실제로 마리사가 받은 충격은 더욱 크지 않았을까.



어쨌건 마리사는 어미 옆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일부러 맛없는 밥씨들만 주고, 그것도 양이 부족했지만 마리사는 그래도 감사히 먹었다고 한다. 부족한 양은 아기윳 시절부터 스스로 해결하였다. 탁구공 만했을 마리사는 어찌어찌 성장을 이룩해, 테니스공 수준의 크기까진 몸뚱이를 키웠다.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꾸준히 어미 옆을 지켰기 때문일까, 나중에는 어미 마리사의 심경에도 변화가 왔던 모양이다. 물론, 그 결과는 부모 마리사의 무덤과, 그 옆을 지키는 새끼 마리사였지만 그런 비극을 겪으면서도, 아니 겪었기에 마리사는 보다 큰 결심을 하였던 것이겠지.



 "레미랴, 레미랴가 갑자기 나타나서-."



지금이야 한참 전의 일이겠지만, 그래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은 언제 떠올려도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게 했나 싶어 마리사를 제지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마리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표정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마리사랑 엄마야는 박스 집씨에서 살았다구. 그런데 레미랴가 나타나서 마리사를 잡아먹으려 했다구."



과연, 자연동굴이나 구덩이에 숨어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종이박스를 지붕삼고 사는 야생윳은 포식종의 훌륭한 먹을거리다. 어찌 보면 아기윳 시절부터 종이박스 집에서 살며 그만큼 성장한 마리사가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마리사는 이대로 영원히 느긋하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엄마야가 마리사를 지켰다구."



감정을 차마 이겨내지 못했는지, 마리사는 끝내 울상을 지었다. 이윽고 파문을 일으키던 마리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여지껏 계속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마리사는 엄마야의 훌륭한 딸이라고..."



어미 마리사는 자신을 미끼로 던지고, 그 사이에 새끼 마리사가 도망가게끔 종용했다. 마리사는 어미 곁에서 떨어지기 싫다며 울부짖었을 것이다. 



 "느, 느겟- 느흣-."



마리사는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터뜨린다. 저부가 수분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진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울어재낀다. 그런 마리사의 뒤에 있는 작은 흙더미가 유난히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래서 마리사는 결심했다구."



겨우 감정이 진정된 마리사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엄마야의 무덤씨를 지어서, 그 곁을 지키겠다구."



나는 한참동안 아무런 말 없이 마리사를 바라보았다. 마리사의 인생 우여곡절이, 마치 몇년 전 내가 겪었던 일들과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두 기억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겹치는 듯한 느낌. 



 "오빠야도 저 무덤씨의 주인을 지키러 온 것 같다구."



마리사의 시선이 향한 곳엔 아버지의 무덤이 있었다. 비석 앞에 높인 꽃 한 송이가 유독 눈에 밟힌다.



 "뭐, 그런가."



 "느, 느늣?"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늣, 여기 무척 맛있어 보이는 꽃씨가 있다구!"



 "레이뮤의 기여우메 바냬서 바위씌가 바칀 거녜!"



종전에 만났던 레이무 모녀, 두 윳쿠리가 비석 앞에 당도한 것이다. 대체 언제 이쪽에 올라온 걸까.



 "늣, 저 꽃씨는 먹으면 안 되는 거라구!"



마리사가 소리쳤다. 마리사는 아마 저 꽃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거겠지. 나는 가만히 서서 마리사와 레이무 모녀를 지켜보았다.



 "늣? 무슨 소리냐구? 마리사는 혹시 바보인 거야?"



 "바뵤 멍텽구리녜!"



 "그렇다구, 저 마리사는 완전 똥바보라구! 이 꽃씨는 레이무랑 아가야의 밥.씨.인 거라구!"



 "느그타쥐 모탄 바뵤는 쥬거!"



아무래도 저 레이무 무녀는 진심으로 저 꽃을 먹을 요량인 것 같다. 난 조금 전까지 마리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도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야, 야!"



사람들 사이에서 말다툼을 벌이는 것처럼 고성을 내질렀다. 이에 레이무 모녀는 "느삣!"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설마 방금 전까지 저 모녀는 나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인가.



 "느, 인간씨라구!"



어미 레이무의 외침. 새끼 레이무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게스 특유의 빈정대는 표정을 짓고 있다.



 "늣-?"



어미 레이무는 이쪽을 한참동안 관찰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조금 전의 기억이 되살아난 모양이다.



 "느헤헤헤헷! 저건 아까 전에 아가야한테 쫄아서 도망친 등신영감이라구!"



그랬던 건가, 그새 저 레이무 모녀의 팥소엔 나라는 인간이 윳쿠리한테 공포를 느끼고 도망간 겁쟁이로 각인된 듯하다. 그렇다면 아마 저 새끼 레이무는 스스로를 끝내주는 영윳이라 믿고 있겠지.



 "느퓨후훗! 바뵤인갼은 이 레이뮤님이 젯.재.해 쥬게따규!"



인내심의 리미터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마리사를 내려다 보았다.



 "마리사."



 "늣?"



 "잠시 뒤돌아 보고 있어라. 절대 이쪽 보면 안 된다."



 "늣, 느긋하게 알겠다구."



난 손을 뻗어 마리사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아름드리 나무 뒤로 돌아가, 어미의 무덤 반대편에 마리사를 내려 놓았다. 복잡미묘한 감정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마리사를 뒤로 하고, 나무 앞으로 향했다.



자, 이 빌어먹을 똥만쥬들을 어떻게 박살을 내 줄까. 그래. 그러고 보니 먼젓번에 인터넷에서 본 괴롭히기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뉴구타계 뒈지라규!"



새끼 레이무의 전력투구. 내 주먹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이니 그 방법을 쓰기에도 딱 알맞다.



 "늣, 레이뮤 하뉴를 나뉸 것 가탸!"



새끼 레이무를 집어 눈높이까지 끌어 올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양쪽 귀밑 털을 파닥대며 꺄르륵 떠드는 것이 정말 짜증난다.



일단은 사전 작업부터.



 "느- 느붹!"



일단은 윳쿠리 뒷편의 아냐루를 막는다. 혹시 모를 오발사고를 막기 위함이다. 좀 기분나쁘긴 하지만, 아냐루에 손가락을 찔러넣고 소맥분 피부를 조금씩 끌어당겨서, 그대로 손으로 반죽을 주무르듯 만져 주면 깔끔하게 막힌다. 



 "아, 아가야!"



그제서야 어미 레이무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 건지 눈치를 챈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두 번째 단계는 조준이다. 양손으로 새끼 레이무를 부드럽게 감싸 쥔다. 이때 얼굴은 정면을 향하게끔 한다. 1미터하고도 반을 넘는 높이, 어미 레이무는 그 높은 곳에서 불안에 떠는 새끼 레이무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 번째, 발사.



 "느븃!"



뿌직 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손아귀에 압력을 가하자 그대로 새끼 레이무의 눈알이 발사됐다. 물론 그 아래 입을 통해선 대량의 팥소가 뿜어져 나온다. 흉측하게 날아간 팥소의 일부는 그대로 어미 레이무의 얼굴에 떨어졌다.



 "아가야아아아아아-!"



몇초간 멍하니 있던 어미 레이무는 이윽고 귀청이 떨어져 나갈 수준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평소보다 2배는 크게 뜬 두 눈에선 눈물이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정신사납게 파닥이는 귀밑 털은 더더욱 보기 흉하다.



 "아가야를 돌려줘어!"



농구공 크기의 어미 레이무가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달라는데 줘야지 뭐 별 수 있나. 난 손아귀의 힘을 풀고는, 그 속에 남은 새끼 레이무의 거죽을 어미 레이무에게 던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새끼 레이무의 소맥분 피부덩어리가 어미 레이무의 얼출에 달라붙었다.



 "느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어디보자, 이번엔 또 뭐가 있을까.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난 발걸음을 뒤로 해서 배낭이 있는 곳까지 왔다. 아까 마리사에게 주고 남은 오렌지 주스가 있다.



 "느부붓!"



어미 레이무의 얼굴 거죽을 잡아 뜯었다. 검붉은 팥소덩어리에 두 눈알이 박히고, 입이 있던 자리의 허한 공간과 젤라틴 혀가 보인다. 솔직히 좀 많이 비위 상하는 모양이다. 얼른 다시 가려 줘야지.



새끼 레이무의 거죽을 억지로 잡아 늘렸다. 그런 다음 어미 레이무의 얼굴에 오렌지 주스를 쏟아부은 다음 다시 새끼 레이무의 피부를 접착했다.



 "늡-느늡-."



이로써 어미 레이무는 새끼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물론 시각이 차단됐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겠지만.



어미 레이무에게 양 손을 뻗었다. 들어 올려 보니 확실히 성체는 상당히 묵직하다. 난 양 팔에 힘을 빡 주고, 그대로 어미 레이무를 수직으로 던져 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려 하는 찰나 그대로 발로 차서 능선 아래로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몇초 후에 철푸덕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



한숨이 나온다. 괜히 와서 시비를 걸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고통받을 일은 없었을 터인데, 그것도 아버지의 무덤 옆에서 이런 행각을 벌이게 하다니.



 "이제 괜찮으니까 나와도 돼."



아름드리 나무를 향해 소리쳤다. 이윽고 마리사의 꼬깔모자 챙이 슬쩍 삐져나왔다.



 "느-."



 "있잖냐 마리사."



 "늣, 무슨 일이냐구."



 "네 엄마야 무덤, 내가 좀 더 크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늣? 그렇게 해 주면 엄마야도 분명 기뻐할 거라구. 고맙다구."



윳쿠리가 자기 입을 이용해서 지은 봉분은 매우 볼품없다. 동시에 심각하게 허술하다. 까딱했다간 바람만 불어도 허울없이 무너질 것이다.



 "삽이라도 챙겨 올 걸 그랬나..."



난 주변에 있는 흙바닥을 손으로 파서, 조금씩 흙을 모아서 어미 마리사의 봉분을 가다듬었다. 흙덩어릴 겉에 붙이고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며 매만지니 잠시 후엔 꽤나 그럴싸한 반구형의 봉분이 완성됐다.



 "이렇게 하면 비바람이 와도 끄떡없을 거다. 네가 안 지켜줘도 무사할 거야."



 "늣, 정말 느긋한 무덤씨라구!"



마리사는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한다. 난 손에 잔뜩 묻은 흙을 털어 내었다.



슬슬 마무리를 지을까. 혹시나 싶어 옷가지에도 흙먼지가 묻어 있나 확인한 후, 배낭을 다시 등에 매고 비석 앞까지 걸어갔다. 마리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바라보기만 한다. 비석에는 고인의 이름 석자와 그 생몰년도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하아-."



재차 한숨이 나온다. 잠시 심호흡을 했다. 봉분 주변에 난 잡초들을 뽑아서 멀리 던졌다. 배낭을 봉분 옆에 내려다 놓고, 그 속에서 소주병을 하나 꺼냈다. 병뚜껑을 손으로 돌려 딴 다음, 비석 앞에 가서 섰다.



쪼르륵-



무색투명한 물줄기가 병에서 쏟아졌다. 이윽고 비석에 닿아 꼴꼴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흙먼지 가득 붙어 있던 자리를 물줄기가 지나가자 진한 회색빛이 감돌았다.



뭐라도 더 할까 싶지만, 당장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고작인 모양이다. 몇년만에 찾아와선 이런저런 생색을 내는 것도 그것대로 더 기분나쁘지 않을까.



병을 다 비우고, 비석 한쪽 옆에 내려 놓았다. 반쯤 무릎을 꿇은 자세로 비석에 새겨진 한자 석자를 노려보았다.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주소록을 열어 [어머니]라 적힌 이름을 터치했다. 착신음이 가길 수차례, 이윽고 통화가 연결됐다.



 "아, 여보세요? 난데요. 방금 다녀왔어요. 네, 뭐. 아 그리고 오늘부터 윳쿠리 하나 키워 보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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