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윳쿠리가 처음 모습을 보인건 일제감정기인 1920년대로 당시 일부 일본인들의 부를 과시하는 애완동물이었다.
그렇게 윳쿠리들은 잘먹고잘살며 인간이상의 호화호식을 누렸지만1945년 일제감정기가 끝나고 한인들에대한 공포로 재빨리 한반도를 떠나는일본인들눈에 주인한테 노예라하는 싸가지없는 똥만쥬들을 챙길여유도 이유도 없었기에 결국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윳쿠리는 한반도에 버려졌다.
한반도에 주인의 보호를 잃은 윳쿠리들은 과거의 권력을 잊지 못하고 한국인들을 노예라부르며 놀렸고 1945년 한반도에있던 공식 윳쿠리 400만여마리는 약 1년사이 150만마리까지 줄어들었다.
또한 터무니 없이 약한 몸뚱아리와 가득가득 속찬 팥은 굶주린 아이들의 괴롭힘대상과 간식이되어가며 1950년 3월 약20만마리까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인하면서 윳쿠리는 나름대로(?)안정기를 가지게 된다.
6.25전쟁이 끝나갈때쯤 약"8000"만마리라는 엄청난 숫자로 번식하게 된다.
이후 전쟁을피해 산으로 도주했던 윳쿠리들이 다시 도심가로 내려와서 살면서 곳곳의 똥(팥 혹은 커스타드)을 싸대면서 공공위생을 위협했다. 단순히보면 팥이나 커스타드 가끔가야 생크림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파리,개미,벌등이 꼬이며 1차피해보다는 2차피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후 5.16군사정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전국적으로 윳쿠리 사육을 장려했고 이때 한국에서 독자적 윳쿠리 요리법 (윳쿠리찌개,윳쿠리김치볶음밥,윳쿠릿국등)이 여러가지 만들어진다.
후에 먹고살만해진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윳쿠리가 사람과 닮은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윳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식용윳쿠리사육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게되는데 이때 일부 사육주들이 대량의 식용윳쿠리들을 산에 풀거나 혹은 식용윳쿠리들을 해당 건물에서 방치하면서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tmi
6.25전쟁이후 넘치는 전쟁고아들의 훌룡한 일용할 식량이 되어줌